그래도 살아야 한다

by 관리자 posted Nov 01,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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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4. 배우 겸 가수인 설리(최진리)가 자택에서 사체로 발견되었다. 그녀의 나이 겨우 25. 이제 막 피어나기 시작한 청춘은 우울증을 견디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청순하고 빼어난 미모, 평소 밝은 성격의 그녀가 자살한 것은 커다란 충격이다. 설리의 자살은 그 여파가 만만치 않다. 이른바 베르테르 효과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2003, 홍콩 배우 장국영이 자살하자 9시간 만에 그의 팬 6명이 자살했고, 2008, 최진실과 안재환이 자살한 그해 10월의 자살률은 월별 자살률보다 3배나 높았다. 이처럼 자살은 전염성이 강하다.

 

 살면서 자살 충동을 전혀 받지 않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는 생후 2살에 홍역을 앓으며 소아마비 장애인이 되었다. 나이가 들수록 장애의 무게는 점점 나를 짓눌러왔다. 돌아보면 정말로 삶을 포기하고 싶을때가 부지기 수였다. 전혀 길이 보이지 않고 아무리 밀어도 끄떡하지 않는 벽을 마주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를 악물고 버텼고 신앙을 가진 이후에는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면서 장애의 아픔을 견뎌낼 수 있었다. 앞뒤좌우를 둘러보는 시각이 있는 사람은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가 없다. 떠난 자보다 남은 자의 아픔을 생각한다면 자살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내가 어린 시절에는 모두가 어려운 시대였다. 반면에 이웃 간의 관계가 끈끈했고 가정이 모든 것을 품었다. 하지만 80년대에 들어서며 다원화 시대를 맞은 한국은 여러 분야에 약진을 이뤄내며 계층의 불균형이 생기기 시작했다. 경제가 나아진 것은 분명했지만 반면 정신위생은 점점 약화 되고 사회경쟁은 심화되어갔다. 핵가족화가 가속화되면서 삶의 응집력이 무너졌다. 상대적인 박탈감과 스트레스로 인한 면역체계의 붕괴, 사회 가치체계가 무너지면서 자살이 급증하기 시작하였다. 작년 한 해만도 자살수가 13,000여 명에 이른다. 매일 40명의 사람들이 삶을 포기하고 있는 것이다. 분명 우리 사회는 심리적 건강 척도가 위험수위에 이르렀다.

 

 안타까운 것은 교회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이다. 자살을 가장 큰 죄로 보는 교회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관심을 갖고 있을까? 또한 생명의 소중함과 품위 있는 죽음에 대하여 어떤 교육을 하고 있는 것일까? 나타난 통계를 보면 묘하게도 일반인들과 크리스천의 자살률이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현실이 이렇다면 이제 교회와 목회자는 자살 예방에 초점을 맞춰야 할 때이다. 무엇보다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워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해야 하고 인생 여정에서 맞이하는 위기에 대처하는 내면세계의 메커니즘을 구축하게 해야 한다.

 

  삶을 극단적으로 포기한 사람을 무조건 지옥에 갔다고 말할 것이 아니라, 교회가 생명공동체로서 그들을 이해하고 품지 못했음을 성찰해야 한다. 무엇보다 남은 유족들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품는 돌봄의 목회로 나아가야 한다. 한 사람의 극단적 선택은 최소한 8명에게 큰 충격을 준다고 한다. 한 번 극단적 선택을 하기까지 약 25번의 준비가 진행된다고 한다. 이런 현실을 보면 목회자의 헌신과 그리스도인들의 배려가 어느 때보다 요구된다.

 

 심리학자 조이너는 <왜 사람들은 자살하는가>라는 책을 통해 자살을 실행하는 3가지 심리 조건에 대해 언급한다. 첫째는 사회적으로 고립되었다고 느끼는 마음(상실감), 둘째는 스스로 타인에게 짐이 된다고 생각하는 무능감, 셋째는 죽음의 고통을 받아들일 만한 육체적 심리적 조건들이었다. 조이너는 이 3가지 심리 조건 중 단 하나라도 충족되지 않으면, 절대로 자살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나는 장애인 사역자이다. 그래서인지 다운타운 길목에서 만나는 노숙자들을 보면 울분부터 올라온다. 멀쩡한 사람이 풀린 눈으로 구걸을 하는 모습이 연민을 넘어 분노로 다가온다. 이 땅에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도 살아보려 몸부림치는 분들이 많다. 한국사회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자살이라는 특급열차를 타고 있다. 이 열차를 멈추게 하기위해 기도하며 힘을 모아야 할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