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사이 노년을 나이로 나누려는 것은 촌스러운(?)일이다. 워낙 건강한 분들이 많아 노인이라는 말을 사용하기가 송구스럽다. 굳이 인생을 계절로 표현하자면 늦가을에 해당되는 시기이다. 늙는 것이 서럽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삶의 수확을 거두는 시기가 노년기이다. 노인들은 사실 그 세대를 인도해 가는 삶의 지도자들이다. 한국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 노인들이 차지하는 퍼센트가 늘고 있다. 성경은 노년이야말로 인생을 지도하는 때요, 구원과 지혜, 그리고 빛의 길로 인도하는 세대로 본다. 노인은 외롭다. 그런데 자식들은 부모를 이해하려고도 않고, 귀하게 여기지도 않는다. 자식이 부모를 이해할 때가 있다. 아파할 때가 있다. 자기가 자식을 키울 때이다. 자기가 늙어서 자식을 만날 때 비로소 알게 된다. “그때 우리 어머니, 아버지는 얼마나 아팠을까?” 깨닫지만 이미 때는 늦은지 오래다.
나에게 상담의 진수를 깨닫게 해 주신 정태기 교수님의 이야기이다. 정 교수님이 미국 유학을 떠날 때 전남 한 외딴 섬에 어머니는 65세였다. 교수님이 미국으로 떠난다고 하자 모친이 어렵게 꺼낸 말. “나, 너 미국 가는 비행기 타는 것 보고 잡다(싶다)” 너무나 먼길이었다.(65년이니 상상을 해보라!)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 당시 정 교수님은 어머니의 마음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누가 서울까지 인도한단 말인가? 또 비용은 어디서 충당한단 말인가?’ 교수님은 내뱉듯 말한다. “어매! 안 돼, 나 미국에서 곧 올거여” 어머니는 아무 말 않고 건넌방으로 가셨다. 미국에 간지 3년 후 그 모친은 세상을 떠난다. 68세에 어머니는 미국에 간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천국으로 향한 것이다. 정 교수님은 고백하셨다. 손자를 키우며 어머니의 마음을 읽었노라고. “어머니가 이렇게 외로왔겠구나!”
1,500명 모이는 교회에 권사님 이야기다. 65세에 아들이 결혼을 한다. 20대에 혼자되어 아들을 키웠다. 사실 이 권사님에게는 아들이 아니라 생명이었다. 그런데 늦게 결혼한 아들은 완전히 달라진다. “예술을 한다”는 아들은 밖으로 돌고 아들이 결혼을 한 다음엔 혼자 밥을 먹어야만 했다. 결혼 1년이 지나며 떡두꺼비 같은 손자를 맡겨 놓고 둘이만 바쁘게 살아간다. 어느새 머리맡에는 몸살약이 자리를 잡고, 손자를 보다가 원한마저 쌓여간다. 어느 날 오후 4시에 전화가 온다. “둘이 연극을 보고 늦게 들어가니 저녁을 혼자 잡수시라”는 내용이었다.
권사님은 손자에게 우유를 먹여 재워놓고 운다. 억울하고 분해서 울고 또 운다. 밤 11시가 지나자 아들, 며느리 들어왔다. 어머니를 부르다가 “주무시나봐요”하고는 거실에서 둘이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눈다. 며느리가 하는 말이 권사님을 깜짝 놀라게 한다. “나는 무슨 복이 많아서 저런 좋은 시어머니, 친정엄마보다 더 사랑스럽고 존경스러운 분을 만났는지 몰라” 권사님이 울다 말고 “아니 저년이!” 아들이 받아 말을 한다. “어머니가 나를 위해 고생한 것을 생각하면 화장실에서도 눈물이 나. 여보” 권사님이 깜짝 놀라 “워매! 저 새끼도”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들과 며느리에 대한 섭섭한 마음이 한순간 다 사라져버렸다. 아들 며느리가 다 사랑스러워 못 견딜 지경이 되어버렸다. 다음날 아침, 며느리가 구두를 신다 말고 “하나님! 난 어머니 없으면 못 살아요” 눈물을 글썽이며 나간다. 그때부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손자를 업고 5시간이나 돌아다녀도 몸살이 안 나는 것이다. 놀랍게 건강 해졌다. 5년이 지난 지금 그 권사님은 천국을 살고 계신다. 아들과 며느리를 다시 생각하면서 권사님의 삶은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마음을 몰라 줄 때 부모는 외롭다. 일제 학정기와 보릿고개를 힘겹게 넘어온 분들, 전쟁의 참혹성을 눈으로 목도하며 험난한 길을 걸어 여기까지 오신 분들이다. 다 외롭게 살아온 세대이다. 노인들은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다. 나이가 들었다고 어둡고 우울하게 살아서는 안 된다. 신바람 나게 살아야 한다. 마음과 생각을 바꾸고 예수님 안에서 새롭게 변화되면 노년을 청춘같이 행복하게 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