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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이한.jpg

 

 

 2018년 봄. 후배 선교사로부터 집회요청을 받고 베트남을 방문하게 되었다. 베트남 행 비행기 안에서 초등학교 때 추억이 삼삼히 떠올랐다. 베트남? 우리가 어린 시절에는 월남이라고 불렀다. 어느 날, 월남에서 전쟁이 터졌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 이야기를 들은 지 얼마 안 되어 친구 재식의 삼촌이 월남으로 떠난다는 말을 접하게 되었다. 전쟁터로 향하는 그를 인정 많은 동네 사람들은 염려 가득한 표정으로 환송했다.

 

 학교에서는 월남에 파송된 군인 아저씨들에게 위문편지를 쓰라며 편지지를 나눠주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아이들은 단순하다. 내용이 진지하거나 장문을 구사할 능력이 없었다. 일기를 쓰듯 그렇게 편지를 작성하여 날려 보냈다. 편지를 쓴 사실조차도 잊혀질 즈음에 간간히 답장을 받는 아이들이 있었다. 몹시 부러웠다. 어떤 아이 편지에는 고무나무 이파리가 함께 담겨있었다. 그 아이는 일약 스타가 되었고 그 이파리 한번 만져보려고 아이들은 줄을 서야 했다. 지금 생각하면 하찮은 것이지만 그 당시는 대단한 일이었다.

 

 우리는 남자아이들이라 그런지 군가를 참 좋아했다. 파송되는 군대마다 군가가 다 각각이었고 남자들의 취향에 맞는 박자와 곡조는 우리들의 입에서 항상 맴돌았다. 맹호부대는 맹호는 간다였다. “자유통일 위해서 조국을 지키시다 조국의 이름으로 님들은 뽑혔으니 그 이름 맹호부대 맹호부대 용사들아해병대 출신 청룡부대는 삼천만의 자랑인 대한해병대 얼룩무늬 번쩍이며 정글을 간다백마부대는 아느냐 그 이름 무적의 사나이 세운 공도 찬란한 백마고지 용사들등 각종 군가를 부르며 지게 작대기를 들고 총 쏘는 흉내를 내며 논둑을 뒹굴던 기억이 새롭다.

 

 초등학교 5학년 여름이었다. 월남전에 갔던 재식이 삼촌이 돌아왔다. 멋진 군복에 훈장을 단 모습은 동리를 술렁이게 했다. 동네 사람들 말로는 월남전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고 돈도 많이 벌어왔다고 했다. 그중에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것은 야외전축이었다. 가뿐하게 손에 들고 다니는 자그마한 플라스틱 바구니 같은 것이 뚜껑을 열고 판을 올리면 남진, 나훈아, 이미자 노래가 흘러나왔다. 그렇게 신기할 수가 없었다. 재식이의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동네 한가운데 오리나무 그늘에서 여유롭게 음악을 듣는 삼촌의 모습은 너무도 멋져보였다.

 

 문제는 삼촌이 월남에서 가져왔다는 서치 라이터(대형손전등)였다. 재식이네 뒷마당에는 복숭아나무가 자리하고 있었다. 복숭아가 얼마나 탐스럽고 달든지 우리는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야밤에 그것도 달이 안 뜨는 그믐쯤에 우리의 복숭아 서리는 절정에 이른다. 옛날에는 집울타리가 전부 나무였다. 나무가 오래되다보니 힘껏 힘을 주어 뽑으면 위로 솟구친다. 안간힘을 써서 개구멍을 만들면 두 녀석이 들어가 나무에 오른다. 우리는 밖에서 망을 보다가 그 아이들이 던져주는 복숭아를 한곳에 모은다. 다시 내려와 울타리를 제자리로 내려놓으면 감쪽같다. 개울가에 가서 복숭아를 씻어 입에 넣으면 꿀맛이었다. 그런데 월남에서 가져온 라이터가 등장하며 우리의 모든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불빛이 보통전등보다 몇십배 밝아 복숭아나무에 접근하는 것은 불가능해 진 것이다. 그 당시 제일 갖고 싶었던 것이 그 서치라이터였다.

 

 비행기가 하노이공항에 도착했다. 후배의 영접을 받고 그곳에서도 2시간 떨어진 Bac Ninh(박린)에 머물며 말씀을 전하고 여러 곳을 둘러보았다. 내가 어릴때에는 따이한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지만 역사가들은 한국군대의 잔인함이 도를 넘었었다는 평가를 하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돌아보면 아픈 기억이 많은 월남전이었건만 현재 베트남사람들은 한국인에 대하여 대단한 호감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그 한가운데에는 베트남 축구영웅 박항서 감독이 있다.

 

 아직은 때묻지 않은 베트남인들의 순수한 미소에 매료된 여행이었다. 그렇게 역사는 흐르고 아픔도 세월에 묻혀 흘러가는 것 같다. 월남전에서 돌아와 위용을 뽐내던 재식의 삼촌은 지금은 어디에서 살고 있는지 궁금해 지는 새해 벽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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