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까지 사랑해야 한다

by 관리자 posted Feb 22,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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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을 고해(苦海)라고 한다. 진정 삶이란 그렇게 풀어내기 힘든 과제일까? 주위를 둘러보면 다들 별 어려움 없이 다들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나만 힘들고 꼬이는 생을 살아가는 것 같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들어가 보면 나보다 더 허덕거리며 살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겉으로 표현을 안 할 뿐이다. 13() 서울의 한 아파트에서 30대 가장이 부인과 자녀를 살해한 뒤 투신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잘 나가던 한의원 원장부부는 젊디 젊은 나이에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아이들이 겨우 5(아들)과 한 살배기 딸이라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거실 식탁 위에 놓인 유서는 무려 A4 용지 8장에 달했다. 오죽했으면 그랬을까마는 채 피어보지도 못하고 생을 마감한 아이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져 왔다.

 

  1997년을 생각한다. IMF가 터졌다. 멀쩡하게 다니던 직장이 부도가 나고, 명예퇴직을 당하고 하루 아침에 실업자가 된 가장들의 모습은 처참하기까지 했다. 아내에게 실직당한 것을 알리지 못한 채 평소처럼 출근을 하며 방황하는 가장들이 있었다. 탑골공원을 배회하고 찜질방에 가서 누워 보지만 마음을 추수리기가 힘들 수 밖에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실이 드러나며 파탄 나는 가정이 늘어갔다. 남편이 어려움을 당할때에 붙들어주고 힘이 되어 주어야 할 아내는 매정하게 돌아섰다. 그러면서 아이들은 고아 아닌 고아로 버려지기 시작했다.

 

  그 아픔의 과정에서도 서로를 보듬어주며 살아온 부부들은 일어섰고 반듯하게 성장한 자녀들의 모습 속에서 노년의 보람을 찾으며 살고 있다. 세계적인 한센병(나병) 권위자인 '폴 브랜드' 박사는 미국 남부 루이지애나주의 한센병환자 재활원 원장이다. 인도에서 20, 미국에서 30, 50년을 한센병 치료를 위해 헌신한 분이다. 어느 날 영국에 일정이 잡혀 여러 지방에서 업무를 본 뒤에 기차를 타고 장시간의 여행 끝에 런던에 도착하게 된다. 호텔에서 옷을 갈아 입고 양말 한 짝을 벗는 중에 갑자기 발뒤꿈치에 아무런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한센병의 권위자인 그이기에 이 일은 그냥 넘길만한 일이 아니었다. 인도에서 수많은 한센병 환자들을 시술하고, 피고름을 만지면서 치료해 본 경험이 많은 그는 순간적으로 의심이 스쳐갔다. 기계적으로 일어나서 날카로운 핀을 찾았다. 그리고, 복숭아 뼈 아래 부분을 찔러 보았다.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한센병에 감염된 것이 틀림없었다.

 

  그 날 밤, 브랜드 박사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이제부터는 나도 한센병 환자로구나. 한센병 환자로서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꼬박 밤을 새우며 그는 번뇌한다. 두려운 마음이 엄습해 왔고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격리되어야 할 외로운 자신의 인생의 말로를 그려 보았다. 가족들을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렸다. 고통의 밤이 지나고 날이 밝아 오기 시작했다. 브랜드 박사의 마음속에는 더 이상 희망이 없었다. 그는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다시 한번 더 자기의 발을 찔러 보았다. 순간 너무나 아파서 !” 하고 비명을 질렀다.

 

  그러면서 그의 입에서 이런 기도가 튀어나왔다. “아이고 하나님, 감사합니다. 아파서 감사합니다. 아파도 감사합니다. 아프게 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아픔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알고 보니 어제 장시간 기차 여행을 하면서 좁은 자리에 오랫동안 앉아 있어 신경의 한 부분이 눌려서 호텔 방에 올 때까지 그 마비가 풀리지 않았던 것이다. 아프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실패와 고통은 견디기 힘든 과정이다. 하지만 아픔이 있기에 겸손한 삶을 살며 인생의 고귀함을 깨달을 수 있다면 그 아픔은 나의 스승이요, 축복의 통로가 될 수 있다.

 

  지금 내가 고통을 느끼고 있다는 자체가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이다. 고통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뜻이 담겨있다. 부부문제, 자녀문제, 불편한 인간관계, 온갖 삶의 아픔은 내가 살아 있기에 겪어야 할 과정인 것이다. 견디기 어려운 아픔이 있다 해도 포장지를 벗겨내면 그 속에 놀라운 은혜의 선물이 담겨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따라서 이 아픔은 축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