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대학 2학년이 되면서 교육전도사 임명을 받았다. 그렇게 커보이던 전도사, 바로 내가 그 직함을 받고 누구나 “이 전도사님!”이라 부르는 자리에 선 것이다. 까까머리 고교시절부터 성장해 온 그 교회에서 이제 어린이들에게 설교를 하고 함께 자라온 친구, 동생들을 교사로 세우고 사역을 전개하게 되었다. 문제는 본 교회라는 이유로 여전히 성가대에 서고 청년대학부 활동을 병행해야만 했다. 어느 때보다 주일은 바빴다. 새벽예배를 시작으로 유년주일학교 예배, 성가대 연습과 대 예배 참석, 오후 2시에는 청년대학부 예배, 4시에는 유년주일학교 오후 예배를 인도한다. 사찰 집사님 댁에 두꺼운 얼굴로 들어서서 저녁을 얻어먹으면 곧바로 주일 저녁 예배 성가대석 테너 자리에 서야만 하였다. 예배 후 성가대 연습을 하고 집에 오면 몸은 파김치가 될 정도로 지쳐버렸다.
매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감동보다는 의무의 예배로, 아무 생각도 없이 찬양하고 설교를 듣는 내 모습을 발견하였다. 마치 예배에 중독된 듯한 느낌이었다. 담임 목사님에게 상담을 요청했다. “아무 감흥 없이 반복되는 예배에 죄의식을 느낀다”고. 목사님은 “그런 반복되는 일상 속에 어느 순간 한 줄기 빛이 비추어오며 신비한 영적 경험을 할 것이라”고 답해 주셨다. 실로 몇 해가 지나가며 내 가슴에 새로운 영적 근육이 붙기 시작하였다. 그러면서 반복되는 예배 속에서 시간마다 부으시는 새로운 무언가를 가슴에 담게 된다. 하늘의 에너지를 공급받는 단계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 뭐니뭐니해도 방학이 최고의 행복이었다. 그때는 왜 그리 노는 것이 즐겁던지? ‘방학 숙제는 나중에 천천히 하자’ 미루다보면 왜 그리 방학은 빨리도 지나가는지? 개학이 다가오며 숙제에 대한 부담감이 짓눌러 온다. 그중에도 가장 더 무거운 짐은 일기이다. 개학을 일주일 앞두고 한꺼번에 일기장을 써내려간다. 내용은 거의 대동소이 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밥 먹고 놀다가 점심 먹고 또 놀다가 저녁 먹고 잤다” 여름방학은 앞 개울에서 하루종일 멱감던 얘기, 겨울방학에는 하루종일 연 날리고, 팽이치고 썰매 타던 일을 적는다. 담임선생님의 너그러운 아량(?) 속에 숙제검사를 통과하며 새로운 학기를 맞이했다.
돌아보니 인생은 반복이 겹치며 일생을 만들고 평범이 지속되며 행복을 만들어 내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사람들은 평범을 축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반복되는 삶을 무료해 하며 불평을 한다. 뭔가 특별한 일이 있어야 좋을 줄 안다. 그리고 그 일상이 언제까지든지 지속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요사이 그 모든 것이 무너져버렸다. 코로나바이러스(COVID-19) 엄습으로 모든 일상이 무너졌다.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고, 내 입맛에 맞는 음식을 찾아 식도락을 즐기고 아름다운 모임에서 풍성한 대화를 나누던 그 시간이 송두리째 날아가 버렸다.
우리는 언제까지든지 예배당에 모여 은혜로운 예배를 드릴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한국교회 136년사에 없던 주일예배 중단이라는 초유의 사태에 직면했다. 필라델피아 한인교회도 예외는 아니다. 주일 영상예배가 늘어가고 있고 주중예배와 모임이 사라져버렸다. 랜트해서 사용하는 미국교회가 문을 닫음으로 예배를 드릴 처소를 잃어버린 교회가 늘고 있다. 예배 후 받은 은혜를 나누며 먹던 친교 시간은 기대조차 할 수가 없다. 몇주 전만해도 상상하지 못하던 일들이 현실이 되어버렸다. 문제는 이 사태가 언제 종식될지 예측불가라는 것이다.
돌아보아야 한다. 아무 감격 없이 습관적으로 예배를 드리지 않았는지? 그 시간을 소홀히 하지는 않았는지? 하나님의 도우심을 전적으로 의지하기보다 내 지혜와 능력을 과대평가하며 살아오지 않았는지를. 과연 사람이 무슨 힘이 있다는 말인가? 변종바이러스 앞에 허둥대는 인생들을 보며 생이 덧없음을 실감한다. 사람들은 잃어버린 다음에야 소중함을 깨닫는다. 일상이 너무도 큰 은총이었음을 이제야 절실히 느끼고 있다. 별변동없이 반복되던 일상이 그래서 그립고 또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