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누구의 입에나 오르내리던 대중가요가 있다. 가수 오승근이 부른 “내 나이가 어때서”이다. “♬어느 날 우연히 거울 속에 비춰진 내 모습을 바라보면서 세월아 비켜라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 점점 희어지는 머리칼, 탄력을 잃어가는 피부를 보며 탄식하는 분들을 향한 희망 섞인 외침이다. 나이가 들면서 그 무게에 사람들은 실망하고 모든 꿈을 내려놓는다. 속에서 올라오는 속삭임 때문이다. ‘지금 네 나이가 얼마인데 그래?’ 누군가 “재수 없으면 100살까지 살아야 한 대요”라고 말해 한참을 웃었다.
지금 외쳐야 한다. “내 나이가 어때서?” 지금 내 나이가 무언가를 시작하기 가장 적합한 나이라는 용기를 가질때에 나도 모르는 에너지가 샘솟기 시작한다. 내가 회장으로 있는 <필라문인협회>에 가끔 나이 지긋한 분들이 지원해 온다. 찾아온 동기를 물으면 “글쓰는 실력을 키워 <자서전>을 쓰고 싶다”고 한다. 누구나 인생이 깊어지면 살아온 삶을 글로 남기고 싶어하는 소망이 생기나보다. 요사이 한국에서 가장 hot 한 곳은 복지관 평생교육 프로그램이다.
해방둥이로 태어나 피난을 다니느라 공부 시기를 놓치고, 스무 살 넘어서는 “시집을 가라”는 부모님 말씀에 결혼하여 남편, 아이들 챙기고 뒷바라지 하다보니 나이가 들어버린 할머니들이 한글을 깨우치고 배움에 정진하는 곳이다. 사람의 강렬한 욕구 중에 하나는 ‘배움의 욕구’이다. 배움은 사람에게 엄청난 즐거움을 안겨준다. 평생 배우고자 하는 욕구를 추구하며 사는 사람은 늙을 사이가 없다. 너무나 하고 싶었던 공부를 시작하며 배움에 대한 열정을 돋우는 할머니들의 모습이 그래서 참으로 귀하다.
공부를 하며 스스로 놀란다. ‘내 속에 이런 배움의 불씨가 숨어있었구나!’ 한글을 능숙히 구사하며 저만치 잠자고 있던 창작력까지 캐어내는 분들도 있다. 그러면서 아직은 미숙하지만 세월이 담겨있는 작품도 써 내려가고 있다. 글을 몰라 그동안 표현하지 못했을 뿐이지 그분들이 캐어낸 글 속에는 많은 의미와 교훈이 담겨져 있다. 말과 글의 차이는 존속성이다. 말은 금방 잊혀지지만 글은 영원히 남는다. 인류 최고의 발명품은 뭐니뭐니해도 언어이다. 그중에서도 인간의 뇌를 뇌답게 하는 것은 글이다. 글자라는 부호를 눈으로 읽고 뇌로 해석하여 만나는 세계는 정말 신묘막측이다.
인간만이 글자를 갖고 있다. 지구에는 말은 하는데 글이 없는 민족, 종족이 의외로 많다. 글이 있었기에 사라질 생각들, 말들과 지혜들을 저장하여 전달한다. 정보를 멀리, 지식과 지혜를 후대에까지 물려줄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의 문화 문명 생활이 가능해진 것이다. 따라서 책을 사랑해야 한다. 돌아보면 어린 시절은 책과 함께 눈을 뜨고 책과 함께 잠이 들었다. 아버지는 어디만 다녀오시면 각종 장르에 책을 선물로 안겨주셨다. 책을 읽으며 꿈을 꾸고 그 내용은 어느새 내 삶이 되었고 내 입을 타고 전파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만큼 책을 가까이하지 않는다. 영상미디어 때문이다. 나이가 드니 눈에 피로를 금방 느끼고 영상은 재미와 지식을 겸하여 제공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책 읽음의 능력은 상상 이상이다. 내가 책을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없다. 지금 살고 있는 인생은 결국은 그동안 읽은 책과 그동안 만났던 수많은 스승들 덕인 것이다. 지인 중에 한 분은 이 어려운 COVID-19 시기에 책을 읽는 재미(독서삼매경)에 빠져 시름을 잊고 있다. 옛날 분들이 하던 말이 생각난다. “그 집에서 책 읽는 소리가 나면 그 집은 일어나는 줄 알거라.” 안중근 의사는 “책을 3일만 읽지 않아도 입속에서 가시가 돋는다”고 했다. 원하는 곳에 마음대로 나다닐 수 없는 이때에 책을 읽자. 책이 나를 위로하고 삭막한 현실에서 풍요로움을 선물로 안길 것이다. “죽어가는 노인은 불타고 있는 도서관과 같다.” 아프리카의 한 속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