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2020.10.30 10:03

그 애와 나랑은

조회 수 17407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풋풋한 사랑.jpg

 

 

  갑자기 그 애가 생각났다. 아무것도 모른 채 무거운 책가방을 들고 진학의 꿈을 향해 달리던 그때, 그 애가 나타났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되면서 전근을 자주 다니던 아버지(경찰)4살 위 누이와 자취를 하게 했다. 그 시대는 중학교도 시험을 쳐서 들어가던 때였다. 아버지는 중학교는 서울로 가야한다.”고 강조하셨기에 어떻게든 서울에 있는 중학교 진학을 위해 얼마나 애를 썼는지 모른다. 어린이 한국일보에 나온 시험지를 풀며 서울을 꿈꿨다. 하지만 입시제도가 변경되며 좌절의 쓴맛을 보아야 했다. 하지만 양평중학교에 7등으로 입학하며 아버지의 첫 칭찬을 들었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도 한번 따놓은 명성을 놓치지 않기 위해 공부에 매진했다.

 

  3이 되자 아버지는 또다시 서울에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할 것을 집요하게 요구하셨다. 과외공부가 성행하던 그때. 학교 수업이 끝나면 영어, 수학 과외를 받게 되었다. 수학선생님은 남자분이었고 대략 8명 정도가 팀을 이뤄 사택에서 공부를 배웠다. 수학과외가 끝나면 여 선생님 댁으로 이동하여 영어과외를 받는다. 김영미자 선생님. 이름이 독특하게 4자였기 때문인지, 아리따운 외모로 인해서인지 세월이 지나도 선생님의 이름과 모습은 잊혀지지가 않는다.

 

  김영미자 선생님 댁에는 우리 남중생들뿐 아니라 여중학생들이 팀을 이뤄 과외를 받았다. 시간이 교차하기에 가끔 스치듯 지나치는 경우가 생기게 되었다.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때에 내 눈에 들어온 한 소녀가 있었다. 하지만 한 학년 아래 아이들이라는 말을 듣고 관심을 줄였다. 그때에는 한 살 차이가 너무도 커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우리는 운명처럼 만났다. 우연히 마주친 골목에서 내가 먼저 말을 건넸다. “○○아니니?” “아니? 내 이름을 어떻게 아세요?” 겸연쩍은 표정을 짓고 있는 내게 아이는 여동생처럼 다가왔다. 그렇게 우리의 동화는 시작되었다.

 

  그 애와 나랑은 매일 만났다. 시골이라 눈에 띄게 만나는 것은 불가능했고 지금처럼 핸드폰이 있는 때도 아니었기에 모종의 방법으로 접선(?)을 시도해야 했다. 당시 공개적으로 이성교제를 하는 것은 금기시되던 때였다. 하지만 풋풋한 사춘기 사랑을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방과 후 남한강이 내려다보이는 강가에서, 때로는 철길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서 이야기꽃을 피웠다. 신록이 우거져가는 숲에서, 낙엽이 눈처럼 날리는 가을의 품에서 우리는 마냥 푸르른날을 물들여 갔다. 그러면서 시인이 되고, 소설가가 되고, 작가가 되어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어느 날 수업을 마치고 자취방에 와보니 그 아이가 와있었다. 얼마나 놀랐던지! 누이는 내 친구들을 통해 내가 한 소녀를 만나고 있다는 정보를 알아내고는 탈선을 할까봐 그 애를 만나 동생을 삼고 직접 집으로 초대를 한 것이었다. 풋풋하고 신비했던 그 애와의 사랑은 그렇게 색이 바래갔다. 이상하게 누이가 개입하고 나서는 흥미로운 만남을 이어갈 수가 없었다. 산에서 고이 자란 화초를 억지로 캐어내어 화분에 심어놓으면 그 향기와 자태를 잃어가는 것 같았다고나 할까?

 

  드디어 나는 서울에 있는 고등학교에 합격을 했다. 양평을 떠나갈 때 기차역에 나와 눈물을 흘리던 그 애. “오빠 나는 어떻게 해?” 떠나가는 기차를 향해 한없이 손을 흔들던 그 애의 모습은 영화처럼 내 가슴에 남아있다. 차창에 기대어 저만치 멀어져가는 그 애의 애달픈 눈동자를 지켜보며 나는 어른이 되어갔다. 거리가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는 것일까? 고교생활에 집중하다보니 편지도 뜸해지며 소식은 멀어져갔다. 고교 3학년 때였던가? 누이가 일하던 대왕코너에 와서 한참을 이야기하고 갔다는 것을 나중에야 전해 들었다. 우리 누이 참 짖굿다.

 

  남자는 처음 사랑을 잊지 못한다고 했던가! 깊어가는 가을. 갑자기 그 애가 생각났다. 멀쑥하게 큰 키, 자그맣고 하얀 얼굴, 애교가 철철 넘치던 말투, 이제는 누군가의 아내로, 할머니로 살아가고 있을 그 애와의 추억을 더듬으며 저만치 멀어져가는 어린 날의 초상을 떠올려보았다.

 


  1. 그 애와 나랑은

    갑자기 그 애가 생각났다. 아무것도 모른 채 무거운 책가방을 들고 진학의 꿈을 향해 달리던 그때, 그 애가 나타났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되면서 전근을 자주 다니던 아버지(경찰)는 4살 위 누이와 자취를 하게 했다. 그 시대는 중학교도 시험을 쳐서 들어가던...
    Views17407
    Read More
  2. 창문과 거울

    집의 경관을 창문이 좌우한다. 창문의 모양과 방향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진다. 창문 밖으로 펼쳐지는 장면은 시야로 흡수되고 느낌을 풍성히 움직인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통유리가 있는 집에 살고 싶었다. 창을 통해 시원하게 펼쳐진 정원을 바라보는 것이 ...
    Views17947
    Read More
  3. 나무야, 나무야

    초등학교 1학년. 당시 아버지는 경기도 양평 지제(지평)지서에 근무중이셨다. 이제 겨우 입학을 하고 학교생활에 흥미를 가지게 될 5월초였다. 방과 후 집에 돌아와 친구랑 자치기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아버지가 나타나셨다. 그 시간이면 한창 근무할 때인...
    Views18032
    Read More
  4. 컵라면 하나 때문에 파혼

    팬데믹으로 인해 결혼식을 당초 예정일보다 5개월 늦게 치르게 된 예비 신부와 신랑. 결혼식 한 달을 앞두고 두 사람은 신혼집에 거주하면서 가구와 짐을 정리하며 분주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주말에 신혼집을 찾은 예비 신부가 집 정리를 끝낸 시간은 자...
    Views18037
    Read More
  5. 우리 애가 장애래, 정말 낳을 거야?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는 것은 모든 부부의 바램이다. 임신소식을 접하며 당사자 부부는 물론이요, 가족들과 주위 사람들이 다 축하하며 즐거워한다. 그런데 태아에게 장애가 발견되었을때에 부부는 당황하게 된다. ‘낳아야 하나? 아니면 다른 선택을 ...
    Views17905
    Read More
  6. 반 고흐의 자화상

    누구나 숨가쁘게 삶을 달려가다가 어느 한순간 묻는 질문이 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위해 그토록 애를 쓰며 살아왔을까?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볼까?”라는 정체성에 관한 것이다. 화가들이 최고의 경지에 이르면 자화상을 그린다. 뒤...
    Views18042
    Read More
  7. 버거운 이민의 삶

    교과서에서 처음 배운 미국, 스펙터클 한 허리우드 영화, ‘나성에 가면’이라는 노래로 그리던 L.A. ‘평생 한번 가볼 수나 있을까?’ 고등학교 때부터 함께 뒹굴던 친구가 졸업하자마자 미국으로 떠나버린 날, 강주와 나는 자취방에서 ...
    Views18120
    Read More
  8. 기찻길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자란 동네에서 어릴 때부터 익숙하게 접하는 것이 있다. 바닷가 근처에 살았다면 푸른 바다와 그 위를 유유히 가르며 다니는 크고 작은 배들. 비행장 근처에 살았다면 헬리콥터로부터 갖가지 모양과 크기에 비행기를 보며 살게 된다. 나...
    Views24571
    Read More
  9. “안돼” 코로나가 만든 돌봄 감옥

    코로나 19-바이러스가 덮치면서 우리 밀알선교단은 물론이요, 장애학교, 특수기관까지 문을 열지 못함으로 장애아동을 둔 가정은 날마다 전쟁을 치르고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이다. 복지관과 보호센터가 문을 닫은 몇 달간 발달장애인 돌봄 공백이 생기면서 ...
    Views18852
    Read More
  10. 인생은 집 짓는 것

    어쩌다 한국에 가면 좋기는 한데 불안하고 마음이 안정되지 않는다. 정든 일가친척들이 살고 있는 곳, 그리운 친구와 지인들이 즐비한 곳, 내가 태어나고 자라나며 곳곳에 추억이 서려있는 고국이지만 일정을 감당하고 있을 뿐 편안하지는 않다. 왜일까? 내 ...
    Views19729
    Read More
  11. 그러려니하고 사시게

    대구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 절친 목사에게 짧은 톡이 들어왔다. “그려려니하고 사시게”라는 글이었다. 그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대형교회를 목회하고 있다. 부친 목사님의 연세가 금년 98세이다. “혹 무슨 화들짝 놀랄만한 일이 생기더라도...
    Views18710
    Read More
  12. 부부는 『사는 나라』가 다르다

    사람들은 결혼식을 올리고 혼인 신고만 하면 부부인 줄 안다. 그것은 부부가 되기 위한 법적인 절차일 뿐이다. 오히려 결혼식 이후가 더 중요하다. 결혼식은 엄청나게 화려했는데 몇 년 살지 못해 이혼하는 부부들이 얼마나 많은가? 왜 그럴까? 남편과 아내는...
    Views19219
    Read More
  13. 다시 태어나도 어머니는 안 되고 싶다

    장애를 가지고 생(生)을 산다는 것은 참으로 힘겨운 일이다. 건강한 몸을 가지고 살아도 힘든데 장애를 안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버거운지를 당사자가 아니면 짐작하지 못한다. 나는 장애인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말한다. “목사님은 장애도 아니지요? ...
    Views18643
    Read More
  14. 지금 뭘 먹고 싶으세요?

    갑자기 어떤 음식이 땡길 때가 있다. 치킨, 자장면, 장터국수, 얼큰한 육개장, 국밥등. 어린 시절 방학만 하면 포천 고향 큰댁으로 향했다. 나이 차이가 나는 사촌큰형은 군 복무 중 의무병 생활을 했다. 그래서인지 동네에서 응급환자가 생기면 큰댁으로 달...
    Views19059
    Read More
  15. 인내는 기회를 만나게 된다

    건강도 기회가 있다. 젊을 때야 돌을 씹어 먹어도 소화가 된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가며 조금만 과식을 해도 속이 부대낀다. 그렇게 맛있던 음식이 땡기질 않는다. 지난 주간 보고 싶었던 지인과 한식당에서 얼굴을 마주했다. 5개월 만에 외식이었다. 얼굴이 ...
    Views19680
    Read More
  16. 오솔길

    사람은 누구나 길을 간다. 넓은 길, 좁은 길. 곧게 뻗은 길, 구부러진 길. 처음부터 길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 길이 생기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고와 애씀이 있었는지를 생각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길의 종류는 많기도 많다. 기차가 다니는 ...
    Views20461
    Read More
  17. 백발이 되어 써보는 나의 이야기

    한동안 누구의 입에나 오르내리던 대중가요가 있다. 가수 오승근이 부른 “내 나이가 어때서”이다. “♬어느 날 우연히 거울 속에 비춰진 내 모습을 바라보면서 세월아 비켜라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 점점 희어지...
    Views18967
    Read More
  18. 말아톤

    장애아동의 삶이 세상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만든 영화제목(2005년)이다. 제목이 “말아톤”인 이유는 초원(조승우)이 일기장에 잘못 쓴 글자 때문이다. 영화 말아톤은 실제 주인공인 자폐장애 배형진이 19세 춘천마라톤 대회에 참가하여 서브쓰리...
    Views19472
    Read More
  19. 이제 문이 열리려나?

    어느 건물이나 문이 있다. 문의 용도는 출입이다. 들어가고 나가는 소통의 의미가 있다. 하지만 요사이 다녀보면 문이 다 닫혀있다. 상점도, 음식점도, 극장도, 심지어 열려있어야 할 교회 문도 닫힌 지 오래이다. COVID-19 때문이다. 7년 전, 집회 인도 차 ...
    Views19971
    Read More
  20. 배캠 30년

    나는 음악을 좋아한다. 하지만 우리 세대는 안타깝게도 음악을 접할 기회가 쉽지 않았다. TV를 틀면 다양한 음악 채널이 잡히고 유튜브를 통해 듣고 싶은 음악을 마음껏 듣게 될 줄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시대였다. 길가 전파사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Views19340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 5 6 7 8 9 10 11 12 13 14 ... 35 Next
/ 35

주소: 423 Derstine Ave. Lansdale., PA 19446
Tel: (215) 913-3008
e-mail: philamilal@hotmail.com

© k2s0o1d4e0s2i1g5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