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2022.09.15 14:23

느림의 미학

조회 수 5997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느림.jpg

 

 

  얼마 전, 차의 문제가 생겨 공장에 맡기고 2주 동안이나 답답한 시간을 지내야만 하였다. 갑자기 핸드폰이 울렸다. 친구 목사의 전화였다. “내가 데리러 갈테니까 커피를 마시자는 내용이었다. 친구의 차를 타고 커피숍으로 향했다. 그날따라 대화는 진지와 웃음을 오가며 길게 이어졌다. 헤어지는 시간이 가까워지며 그냥 가, 난 걸어갈게” “아니 불편한 몸으로 멀텐데” “요사이 운동도 못하고 걷고 싶네완강한 내 태도에 친구는 이내 가버리고 나는 걷기 시작했다. 무더운 날씨 탓에 얼마 안되어 온몸은 땀범벅이 되었다. 차를 운전하며 오고가던 길은 막상 걸어보니 끝이 보이질 않았다. 이미 늦었다. 걸어야 했다. 차로 7분이면 되는 거리를 무려 꼬박 1시간 40분이 걸려 집에 당도했다.

 

  샤워를 하며 기분은 좋았다. 운동 후에 느껴지는 청량함과 좀처럼 걷지 않는 내가 2마일이 넘는 거리를 걸었다는 성취감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빠르게 달리는 차로 깨닫지 못하던 느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인도를 따라 걷는 여유, 스쳐가는 나무들의 자태, 나비, , 각종 벌레들의 날개짓, 신호등에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 ‘집 근처에 이런 곳이 있었구나!’하는 새삼스러움, 가지런히 서 있는 집들의 다양함을 감상할 수 있었다. 한편, ‘다리가 튼튼하면 매일 이렇게 걸을 수 있을텐데하는 아쉬움도 밀려왔다.

 

  속도와 감성은 반비례한다. 일단 속도가 느려야 생각을 많이 할 수 있고 깊고 세밀하게 관찰할 수 있다. 달리는 차보다는 자전거가, 그런 이동 수단보다 걷는 단계에서 사람은 저 바닥에 가라앉아있는 감성을 경험하게 된다. 바야흐로 스피드 시대이다. 일단 빨라야 한다. 자동차도, 인터넷도, 금융처리도 빨라야 좋아하는 세태이다. 식당에 가서도 음식이 빨리 안 나오면 짜증을 낸다. 특히 한국 사람들은 빨리빨리민족이다. 덕분에 유럽에서 500년이 걸린 과정을 우리 민족은 단 50년 만에 이룩해냈다. 위대해 보인다. 하지만 그 빠른 세월이 가져다주는 후유증은 감내하기 힘든 과정으로 부딪쳐오고 있다.

 

  어린 시절, 구하기 힘든 만화책을 받아들면 아이들은 즉석에서 읽어갔다. 하지만 나는 항상 집에 들어가 방에 배를 깔고 천천히 음미하며 읽었다. 읽다가 내용이 이해가 안 되면 다시 앞으로 돌아가 읽었다. 고교 시절부터 정류장에서 버스를 탈때에 서둘러 오른 적이 거의 없다. 급박스럽게 내가 탈 버스가 당도하면 일단 보내고 천천히 다음 차를 기다렸다. 나는 밥도 아주 천천히 먹는다. 편한 사이는 대화를 많이 하기에 그 속도는 더 느리다. 그래서 나는 맛이 없는 것이 거의 없다. 감성적인 사람들의 특성이다.

 

 그럼 성격이 차분할까? 아니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내가 얼마나 급한지 잘 안다. 하지만 속도감을 줄여야 할 때는 무섭도록 조절을 하려 애를 쓴다. 인생을 살아보니 급해서 좋은 일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우리 세대는 느린 것에 이골이 났다. 전기가 없어 호롱불로 어둠을 밝히고, 자동차도 드물어 주로 걸어 다니거나 소달구지를 의지하고, 자전거가 나오며 조금 속도가 났다. 수도는 상상도 못하고 주로 우물물과 펌프로 식수를 해결했다. 밥을 하려면 아궁이에 불을 지펴야 했기에 뜸을 들이기까지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만 하였다.

 

 하지만 그때는 다들 행복해 했다. 다들 그렇게 살았기에 비교의식을 가질 필요도 없었고, 그래서 서로를 도와주며 삶의 이야기를 써나갔다. 그때에 비하면 모든 것이 편리해지고 놀랄 정도로 모든 것이 빨라졌다. 손에 든 핸드폰으로 못하는 것이 없다. 어느곳에서나 원격조정을 하면 모든 것이 가동되는 세상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점점 곤고해하고 행복지수는 점점 떨어지고 있다. 속도와 행복은 결코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실감하며 살고 있다.

 

  나무에는 다 나이테가 있다. 세포 분열 속도가 달라 영양이 풍부한 여름에는 많이 자라고 겨울이 오면 성장이 더뎌지며 동심원 모양의 테를 갖게 된다. 나이테를 보며 놀라는 것은 겨울에도 자란다는 사실이다. 느리다고 해서 자라지 않는 것은 아니다. ‘빨리빨리천천히의 균형을 잘 맞추는 사람이 인생을 진정으로 음미할 줄 아는 사람이다

 

 


  1. 받으면 입장이 달라진다

    사람이 이 땅에 산다는 것은 “관계”를 의미한다. 숙명적인 “가족 관계”로부터 자라나며 “친구 관계” “연인 관계” 장성하여 가정을 꾸미면 “부부관계”가 형성된다. “인생은 곧 관계”...
    Views6215
    Read More
  2. 사랑, 그 아름답고 소중한 얘기들

    우리시대 최고의 락밴드 <송골매>가 “전국 공연을 나선다”는 소식을 들으며 저만치 잊혀졌던 추억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송골매가 결성된 것이 1979년이니까 40여년 만에 노장(?)들이 무대에 함께 서는 것이다. 공연 테마가 “열정”이...
    Views6217
    Read More
  3. “밀알의 밤”을 열며

    가을이다. 아직 한낮에는 햇볕이 따갑지만 습도가 낮아 가을바람이 기분을 상쾌하게 한다. 가을은 상념의 계절이다. 여름 열기에 세월 가는 것을 잊고 살다가 스산한 가을바람이 옷깃을 스치면 비로소 삶의 벤치에 걸터앉아 지난날을 돌아보게 된다. 이제 곧 ...
    Views6297
    Read More
  4. 느림의 미학

    얼마 전, 차의 문제가 생겨 공장에 맡기고 2주 동안이나 답답한 시간을 지내야만 하였다. 갑자기 핸드폰이 울렸다. 친구 목사의 전화였다. “내가 데리러 갈테니까 커피를 마시자”는 내용이었다. 친구의 차를 타고 커피숍으로 향했다. 그날따라 대...
    Views5997
    Read More
  5. 내 나잇값

    나는 젊어서부터 나름대로 가지고 있는 철학이 있다. “세부류와는 절대 싸워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불신자, 여자, 연하이다. 목사이다보니 신앙이 없는 사람을 이길 확률이 없다. “당신 목사 맞아” 그러면 끝이다. 여자를 이기려고 ...
    Views6078
    Read More
  6. 또 다른 “우영우”

    지난 23일. 대구에서 30대 엄마가 자폐 증세가 있는 자신의 아이를 살해한 뒤 극단적 선택을 했다. 2살 아들을 흉기로 살해한 뒤 아파트 베란다 아래로 뛰어내려 숨진 것이다. 집 안에서는 “가족들에게 미안하다”라는 내용을 담은 유서가 발견되...
    Views5948
    Read More
  7. 시간이 말을 걸어 올 때까지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70년대만 해도 선교사를 파송하면 현지에서 적응하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였다. 불타는 열정으로 선교지에 도착하였다 하더라도 6개월은 아무일도 못하게 한다. 답답해도 참아야 한다. 그 기간이 차면 서서히 선교활동을 시작한다. ...
    Views5936
    Read More
  8. 바람길

    무덥던 여름 기운이 기세가 꺾이며 차츰 시원한 바람이 뺨을 스친다. 그렇게 한 계절이 바람을 타고 바뀌어 가고 있다. 무척이나 차가웠던 겨울바람, 그리고 가슴을 달뜨게 하던 봄바람의 기억이 저만치 멀어져 갈 무렵 이마에 송글송글 땀방울이 맺히게 만드...
    Views6168
    Read More
  9. 거울 보고 가위 · 바위 · 보

    거울을 보고 가위, 바위, 보를 해보라! 수백 번을 해도 승부가 나질 않는다. 계속 비길 수밖에. 그런데 평생 이런 모습으로 살아가는 부류가 있다. 바로 부부이다. 갈등없이 살아가는 부부가 있다. 모든 것이 너무 잘 맞아서 만족하며 살아가는 부부말이다. ...
    Views6459
    Read More
  10. 영옥 & 영희

    장애아를 둔 학부모들은 일평생 무거운 돌에 짓눌려 있는 듯한 고단한 삶을 살아야 한다. 옆집 아이들처럼 평범하게 자라기를 바라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기대임을 실감하면서 말이다. 소중한 내 아이에 대한 사랑은 그 누구보다 진하다. 남들 눈에는 어떻게 ...
    Views6253
    Read More
  11. 아이스케키

    한 여름 뙤약볕이 따갑다. 목이 말라 냉장고에서 시원한 물을 꺼내 마시다가 문득 어린 시절에 추억이 떠올랐다. 나는 초등학교 때 시골에서 살았다. 날씨가 더워지면 냇가로 멱(수영)을 감으러 가서 더위를 식혔다. 배가 고프면 주로 감자나 옥수수를 먹었다...
    Views6425
    Read More
  12. 해방일지 & 우리들의 블루스

    한 교회에서 35년을 목회하고 은퇴하신 목사님이 “이 목사님, 드라마 안에 인생사가 담겨있는 줄 이제야 알겠어요”라고 말해 놀랐다. 일선에서 목회할 때에는 드라마를 볼 겨를도 없었단다. 게다가 그런 것은 할 일이 없는 사람이 보는 것 정도로...
    Views6362
    Read More
  13. 다섯손가락

    얼마 전 피아니스트 임윤찬군의 쾌거 소식을 접했다.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역대 최연소 나이로 우승하며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그 연주자다. 18살 밖에 안된 소년이 세계적인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모습은 감동 그 자체였다. 나...
    Views6216
    Read More
  14. 행복한 부부생활의 묘약

    세상에 그냥 되는 일은 없다. 남녀가 만나면 feel이 통하고 그래서 사랑을 하고 무르익으며 결혼을 한다. 결혼은 시작이다. 그런데 많은 부부들이 결혼을 하면 다 된 줄 안다. 젊은 부부를 만나면 노파심에 하는 말이 있다. “노력 없이는 부부생활은 어...
    Views6846
    Read More
  15. 은총의 샘가에서 현(絃)을 켜다

    “엄마… 같이 죽자!” 어린 신종호는 면회 온 어머니에게 매달렸다. 엄마의 눈동자가 커지더니 눈이 빨개졌다. 장애가 있어 외할머니 등에 업혀 학교를 다녔는데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생업에 매달려 바쁜 가족들에게 더 이상 짐이 될 수 없...
    Views6728
    Read More
  16. 나는 괜찮은 사람인가?

    사람들마다 자아상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스스로 느끼는 방향과 다른 사람을 통해 받는 평가라고 할 수 있다. 얼마 전, 한국에 나가 대학 동창을 만났다. 개척하여 성장한 중형교회를 건실하게 목회해 왔는데 무리를 했는지 급격히 건강이 악화되어 작년 말....
    Views6102
    Read More
  17. 오디

    날마다 출근하는 아내가 오늘따라 귀가 시간이 늦어지고 있다. 전화기를 만지작거리며 조금 더 기다리다보니 현관문이 열리고 아내가 무언가 잔뜩 담긴 용기를 내어민다. “이거 드셔!” “뭔데?” 들여다보니 ‘오디’였다. &...
    Views6450
    Read More
  18. 파레토 법칙

    <파레토 법칙>을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사실 이 용어는 개미를 소재로 한 과학실험에서 나온 말이다. 19세기 이탈리아의 경제학자이자 사회학자인 빌프레도 파레토(Vilfredo Pareto, 1848∼1923)가 개미를 관찰하여 연구하는 중에 개미의 20%만이...
    Views7123
    Read More
  19. 障礙가 長愛가 되려면

    장애를 가지고 평생을 사는 것은 고통이다. 사람은 항상 자신의 수준에서 인생을 생각한다. 건강한 것은 물론 축복이다. 하지만 장애에 대해 절실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장애는 선천성과 후천성이 있다. 사람들은 선천성 장애가 많은것으로 생각한다. 아니...
    Views7928
    Read More
  20. 보내고 돌아오고

    3년 만에 한국을 방문하고 전국을 다니며 집회를 인도하면서 고국의 향취를 진하게 느끼고 있다. 활기차게 움직이는 인파를 보며 한국은 팬데믹 충격에서 벗어나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고 있는듯하다. 20년 전, 정들었던 성도들과 생이별을 하며 미국 이민 길...
    Views7238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35 Next
/ 35

주소: 423 Derstine Ave. Lansdale., PA 19446
Tel: (215) 913-3008
e-mail: philamilal@hotmail.com

© k2s0o1d4e0s2i1g5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