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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17 09:08

군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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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처럼 한국 친구 목사와 전화통화를 하다가 “친구야, 용인에서 먹던 <묵밥>이 먹고 싶다.” 외쳤더니 한참을 웃다가 “너는 기억력도 좋다. 언제든지 와 사줄게.”하는 대답이 정겹게 가슴을 파고든다. 30대였을거다. 추운 겨울날에 친구와 시골밥집에 들렀다. 아랫목은 ‘팔팔’ 끓는데 위풍은 심해서 시종 손을 엉덩이에 깔고 있어야만 하였다. 드디어 들어온 “묵밥”은 정말 맛이있었다. 통화를 하다가 갑자기 그 ‘묵밥’이 떠오른 것이다. 나뿐일까? 사람들은 음식을 통해 추억을 찾고 옛 생각에 젖어들게 되는 경우가 있다. 우리 세대가 잊을 수 없는 음식이 있다면 그것은 “밤”이다. 먹을 것이 흔치 않던 시절에 겨울을 나면서 우리가 주로 먹었던 간식은 “고구마와 밤”이었다.

 

 돌아보면 겨울이 되면 집집마다 필수적으로 자리한 것이 “요강과 화로”였다. 추운 겨울밤에 자다가 재래식 화장실(뒷간)을 간다는 것은 고문중에 고문이었다. 따라서 요강은 따뜻한 방에서 용변을 해결할 수 있는 요긴한 도구였다. 또 하나 빼어 놓을 수 없는 것이 “화로”였다. 해도 해도 끝이없는 추억들이 “화로”에 담겨있다. 다른 곳보다 “화롯가”에서 나누었던 이야기들은 세월이 지나도 기억 속에 따뜻하게 남아있다. 그중에서도 오늘은 “군밤”을 생각해 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로 기억한다. 엄마가 양평 읍내에 나간 틈을 타서 친구들을 집으로 불러 모았다. 악동들은 안방 화롯가에 둘러앉아 ‘낄낄’대며 놀고 있었다. 입이 심심해지자 군것질을 하고 싶었고 “뭐 먹을 것 없냐?”는 친구의 물음에 엄마가 다락에 고이 간직해 놓은 “밤”을 기억해 냈다. 지금보다도 그때 밤은 크기도 컸고 맛이 더 있었다. 아마 오래된 아름드리 밤나무에서 따낸 것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시장기가 돌아서인지 우리는 많은 양의 밤을 화로 불속에 집어넣었다. 잠시 후에 고개를 내어 밀 달콤한 군밤을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한 10분이 지났을까? 갑자기 ‘펑!’ 하는 소리가 나더니 연속해서 ‘펑, 펑, 펑, 펑!’ 소리가 이어졌고, 급기야 밤은 천장을 치더니 화로 속에 재가 안방 전체를 뒤덮어버렸다. 그나마 화재가 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밤’을 구울 때는 흠집을 내어야 하는 것을 전혀 몰랐기에 일어난 사건이었다. 이후 엄마에게 엄한 꾸중을 들은 것은 물론이다. 지금도 군밤을 보면 그때 생각이 나서 슬며시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몇 년전, 한국에 갔다가 지하철 역 입구에서 추운 겨울 칼바람을 맞으며 연탄 위에 석쇠를 올려놓고 밤을 굽고 있는 할머니를 보며 기억이 새로웠다. 노릿한 밤 내음이 코끝을 스친다. 똑같은 밤인데 ‘찐밤’과 ‘군밤’은 모양도 다르고 맛도 다르다. 밤을 구우면 살짝 벌어져서 먹기가 좋고 당도도 더 유지가 되는 것 같다. 겨울철에 동치미 국물과 곁들이면 부러운 것이 없었다. 군밤을 까먹다가 손에 검은 것이 묻은 줄도 모르고 얼굴을 문질러 ‘우수꽝’스럽게 변해 버린 친구의 얼굴을 보며 한바탕 웃는 것도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모른다.

 

 한국에 가도 이제는 소박하게 밤을 굽는 풍경은 찾아보기 힘들다. 뻥튀기 기계로 밤을 튀겨 팔고 있는데까지 장족의 발전을 했다. 까먹기는 훨씬 수월했지만 어린 시절에 투박하게 구워먹던 군밤의 정감어린 맛은 느껴지지 않아서 아쉽다. “밤”이 익기를 기다리고 다 구워진 군밤을 까먹으며, 이야기가 하도 재미있어 배가 아플 정도로 웃던 때가 그립다. 추억을 더듬으며 밤을 구워본다. 한 개 까서 입에 넣고 씹으니 은근한 향기와 구수한 맛이 입안 가득히 번져간다. 바스러지는 밤 알갱이들이 감미로운 맛을 혀끝에 남긴다.

 

 젊은 날에 데이트를 하다가 군밤 한 봉지를 사서 품에 안고 “까준다”는 핑계로 ‘슬쩍’ 잡아보던 그 누군가의 손길이 가슴 한켠에서 고개를 내어민다. 추운 겨울밤에도 군밤이 있기에 행복했다. 어쩌다 지나가는 “찹쌀떡” 장수의 운율이 겨울밤에 추임새를 넣어주었고, 이어 외치던 “메밀묵” 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머물고 있다.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골목길에 운치가 군밤의 추억을 안고 낭만으로 이끌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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