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2020.07.17 11:07

오솔길

조회 수 19337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오솔길.jpg

 

 

  사람은 누구나 길을 간다. 넓은 길, 좁은 길. 곧게 뻗은 길, 구부러진 길. 처음부터 길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 길이 생기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고와 애씀이 있었는지를 생각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길의 종류는 많기도 많다. 기차가 다니는 철로가 있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하늘에도 비행기가 다니는 길이 있다. 마음껏 속도를 내며 다니는 길(high way)이 있다. 바다에도 배가 다니는 길이 있고, 운하도 있다. 길이 있기에 사람이 그곳에 살 수 있는 것이리라! 마을과 마을을 연결하는 길을 보며 문득 어린 시절 거닐던 오솔길을 떠올렸다.

 

  어릴 때는 시골에 사는 것이 못마땅했다. 하지만 이제는 시골에서 산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얼마나 큰 재산인지! 지금도 삶이 힘들고 마음이 곤고해 질 때면 눈을 감고 어린 시절 뛰어놀던 시골 풍경을 천천히 회상해 본다. 그리 높지 않은 아담한 뒷산, 집 앞을 흐르던 정겨운 시냇물, 저만치 보이던 앞산, 사시사철 변해가며 꿈을 주던 나무들과 꽃, 그 사이를 날아다니는 나비, , 벌레들. 가을 하늘을 수놓던 고추잠자리, 저녁 무렵이면 집집마다 피어오르던 굴뚝 연기, 무어라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나무 타는 냄새. 그 모든 것들이 농축되어 글을 토해내게 한다.

 

  아침이면 오솔길을 따라 학교에 간다. 아직은 날씨가 추워서인지 입에서는 하이얀 입김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길옆에 피어오르는 온갖 풀들, 그 사이에 고개를 내미는 이름 모를 들꽃들. 논둑을 가로질러 이제 막 모내기를 해 놓은 논으로 뛰어드는 개구리 한 마리. 다리를 스치는 풀을 괜히 잡아 뜯어 입에 물고, 다리에 걸리는 돌은 저만치 차버린다. 이내 큰길(행길)에 접어들면 아랫마을 사는 친구들과 마주친다. 처음에는 눈웃음으로만 인사를 나눈 우리는 어느새 어제 있었던 이야기를 나누다가 방과 후 뭉쳐서 갈 곳까지 도모하며 학교에 도착한다.

 

  오솔길이 너무 좁아 소달구지는 큰길 귀퉁이에 세워놓은 후 황소와 쇠스랑을 짊어진 옆집 아저씨가 오솔길을 지나갈 때면 잠시 논둑길로 몸을 비켜주어야만 한다. 지나가며 건네는 아저씨의 정겨운 말 한마디가 어린 마음에 얼마나 따뜻하게 느껴지든지! 수줍음이 많던 시절, 오솔길에서 마주친 여자아이를 피해 저만치 논둑길로 달려가다가 애써 심어 놓은 콩 줄기를 밟고 논둑에 발이 빠지기도 했다. 토요일 오후, 오솔길을 걸으며 콧노래를 부르고 오후부터 내일까지 이어지는 휴식이 너무 기뻐서 들뜬 마음으로 불러 제끼던 다양한 노랫가락- 동요부터 어깨너머로 배운 유행가까지.

 

  걷다가 힘들면 걸터앉아 들여다보던 자그마한 도랑물, 미꾸라지의 현란함, 올챙이들의 몸놀림, 윗마을 논에서 흘러온 부평초까지. 그 맑은 물속을 들여다보며 상상의 나래를 폈다. 오솔길은 결코 사람들이 옆으로 서서 갈 수 없다. 한 줄로 서서 지나가야만 한다. 길이 좁아 비껴 갈 수 없다. 한쪽에서 비켜주어야만 지나갈 수 있다. 그래서 마주치면 먼저 그 상황을 결정해야만 했다. 내가 먼저 지나가야 할 것인지? 아니면 상대방이 먼저 가도록 양보해야 할 것인지? 양보가 없이는 둘 다 어려움을 당할 수밖에 없는 길이 오솔길이다.

 

  고속도로는 편리하기는 한데 너무 삭막하다. 속도는 빠를지 모르지만 사고의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다. 세상은 오직 빠르고 편리한 것만을 추구하고 있다. 그래서 소중한 것을 잃어가고 있는 것 같다. 차가 질주하는 대로에서, 까아만 아스팔트 위에서 인생을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오솔길에 접어들면 사람은 비로소 사람이 된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웬지 모를 풍요감이 임하는 곳, 어쩌다 마주친 그 사람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하는 곳, 옆을 스치는 풀 한포기, 벌레 한 마리에도 시선이 가게 하는 곳, 양보가 있고, 따뜻한 인사말이 있고, 서로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저절로 샘솟는 곳- , 그곳이 오솔길이여라!

 

 삶의 지친 사람들이 찾아와 아픈 이야기를 마음껏 지절거리는 그곳, 오솔길 한켠에서 그들을 편안하게 맞아주는 오솔길 지기이고 싶다.

 

 

 


  1. 컵라면 하나 때문에 파혼

    팬데믹으로 인해 결혼식을 당초 예정일보다 5개월 늦게 치르게 된 예비 신부와 신랑. 결혼식 한 달을 앞두고 두 사람은 신혼집에 거주하면서 가구와 짐을 정리하며 분주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주말에 신혼집을 찾은 예비 신부가 집 정리를 끝낸 시간은 자...
    Views16768
    Read More
  2. 우리 애가 장애래, 정말 낳을 거야?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는 것은 모든 부부의 바램이다. 임신소식을 접하며 당사자 부부는 물론이요, 가족들과 주위 사람들이 다 축하하며 즐거워한다. 그런데 태아에게 장애가 발견되었을때에 부부는 당황하게 된다. ‘낳아야 하나? 아니면 다른 선택을 ...
    Views16744
    Read More
  3. 반 고흐의 자화상

    누구나 숨가쁘게 삶을 달려가다가 어느 한순간 묻는 질문이 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위해 그토록 애를 쓰며 살아왔을까?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볼까?”라는 정체성에 관한 것이다. 화가들이 최고의 경지에 이르면 자화상을 그린다. 뒤...
    Views16778
    Read More
  4. 버거운 이민의 삶

    교과서에서 처음 배운 미국, 스펙터클 한 허리우드 영화, ‘나성에 가면’이라는 노래로 그리던 L.A. ‘평생 한번 가볼 수나 있을까?’ 고등학교 때부터 함께 뒹굴던 친구가 졸업하자마자 미국으로 떠나버린 날, 강주와 나는 자취방에서 ...
    Views16835
    Read More
  5. 기찻길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자란 동네에서 어릴 때부터 익숙하게 접하는 것이 있다. 바닷가 근처에 살았다면 푸른 바다와 그 위를 유유히 가르며 다니는 크고 작은 배들. 비행장 근처에 살았다면 헬리콥터로부터 갖가지 모양과 크기에 비행기를 보며 살게 된다. 나...
    Views23194
    Read More
  6. “안돼” 코로나가 만든 돌봄 감옥

    코로나 19-바이러스가 덮치면서 우리 밀알선교단은 물론이요, 장애학교, 특수기관까지 문을 열지 못함으로 장애아동을 둔 가정은 날마다 전쟁을 치르고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이다. 복지관과 보호센터가 문을 닫은 몇 달간 발달장애인 돌봄 공백이 생기면서 ...
    Views17658
    Read More
  7. 인생은 집 짓는 것

    어쩌다 한국에 가면 좋기는 한데 불안하고 마음이 안정되지 않는다. 정든 일가친척들이 살고 있는 곳, 그리운 친구와 지인들이 즐비한 곳, 내가 태어나고 자라나며 곳곳에 추억이 서려있는 고국이지만 일정을 감당하고 있을 뿐 편안하지는 않다. 왜일까? 내 ...
    Views18487
    Read More
  8. 그러려니하고 사시게

    대구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 절친 목사에게 짧은 톡이 들어왔다. “그려려니하고 사시게”라는 글이었다. 그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대형교회를 목회하고 있다. 부친 목사님의 연세가 금년 98세이다. “혹 무슨 화들짝 놀랄만한 일이 생기더라도...
    Views17607
    Read More
  9. 부부는 『사는 나라』가 다르다

    사람들은 결혼식을 올리고 혼인 신고만 하면 부부인 줄 안다. 그것은 부부가 되기 위한 법적인 절차일 뿐이다. 오히려 결혼식 이후가 더 중요하다. 결혼식은 엄청나게 화려했는데 몇 년 살지 못해 이혼하는 부부들이 얼마나 많은가? 왜 그럴까? 남편과 아내는...
    Views18098
    Read More
  10. 다시 태어나도 어머니는 안 되고 싶다

    장애를 가지고 생(生)을 산다는 것은 참으로 힘겨운 일이다. 건강한 몸을 가지고 살아도 힘든데 장애를 안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버거운지를 당사자가 아니면 짐작하지 못한다. 나는 장애인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말한다. “목사님은 장애도 아니지요? ...
    Views17552
    Read More
  11. 지금 뭘 먹고 싶으세요?

    갑자기 어떤 음식이 땡길 때가 있다. 치킨, 자장면, 장터국수, 얼큰한 육개장, 국밥등. 어린 시절 방학만 하면 포천 고향 큰댁으로 향했다. 나이 차이가 나는 사촌큰형은 군 복무 중 의무병 생활을 했다. 그래서인지 동네에서 응급환자가 생기면 큰댁으로 달...
    Views17929
    Read More
  12. 인내는 기회를 만나게 된다

    건강도 기회가 있다. 젊을 때야 돌을 씹어 먹어도 소화가 된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가며 조금만 과식을 해도 속이 부대낀다. 그렇게 맛있던 음식이 땡기질 않는다. 지난 주간 보고 싶었던 지인과 한식당에서 얼굴을 마주했다. 5개월 만에 외식이었다. 얼굴이 ...
    Views18467
    Read More
  13. 오솔길

    사람은 누구나 길을 간다. 넓은 길, 좁은 길. 곧게 뻗은 길, 구부러진 길. 처음부터 길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 길이 생기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고와 애씀이 있었는지를 생각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길의 종류는 많기도 많다. 기차가 다니는 ...
    Views19337
    Read More
  14. 백발이 되어 써보는 나의 이야기

    한동안 누구의 입에나 오르내리던 대중가요가 있다. 가수 오승근이 부른 “내 나이가 어때서”이다. “♬어느 날 우연히 거울 속에 비춰진 내 모습을 바라보면서 세월아 비켜라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 점점 희어지...
    Views18011
    Read More
  15. 말아톤

    장애아동의 삶이 세상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만든 영화제목(2005년)이다. 제목이 “말아톤”인 이유는 초원(조승우)이 일기장에 잘못 쓴 글자 때문이다. 영화 말아톤은 실제 주인공인 자폐장애 배형진이 19세 춘천마라톤 대회에 참가하여 서브쓰리...
    Views18503
    Read More
  16. 이제 문이 열리려나?

    어느 건물이나 문이 있다. 문의 용도는 출입이다. 들어가고 나가는 소통의 의미가 있다. 하지만 요사이 다녀보면 문이 다 닫혀있다. 상점도, 음식점도, 극장도, 심지어 열려있어야 할 교회 문도 닫힌 지 오래이다. COVID-19 때문이다. 7년 전, 집회 인도 차 ...
    Views19052
    Read More
  17. 배캠 30년

    나는 음악을 좋아한다. 하지만 우리 세대는 안타깝게도 음악을 접할 기회가 쉽지 않았다. TV를 틀면 다양한 음악 채널이 잡히고 유튜브를 통해 듣고 싶은 음악을 마음껏 듣게 될 줄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시대였다. 길가 전파사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Views18359
    Read More
  18. 부부의 세계

    드라마 하나가 이렇게 엄청난 파장을 일으킨 적이 있을까? 종영이 된 지금도 <부부의 세계>는 여전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여운을 이어가고 있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없이 가족 드라마라 생각하고 시청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미모와 탁월한 연기력을 겸...
    Views18483
    Read More
  19. 학습장애

    사람은 다 똑같을 수 없다. 공동체에 모인 사람들은 나름대로 개성이 있고 장 · 단점이 있다. 어떤 사람은 악보를 전혀 볼 줄 모르는데 음악성이 뛰어난 사람이 있다. 그림을 배워본 적이 없는데 천재적인 작품을 그려내기도 한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
    Views19206
    Read More
  20. Small Wedding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 그래서 나이가 들면 부부의 연을 맺고 가정을 이루게 된다. 우리 세대는 결혼적령기가 일렀다. 여성의 나이가 20대 중반을 넘어서면 노처녀, 남성은 30에 이르르면 노총각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세태가 변했다. 이제는 30이 넘어도 ...
    Views19235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 5 6 7 8 9 10 11 12 13 14 ... 35 Next
/ 35

주소: 423 Derstine Ave. Lansdale., PA 19446
Tel: (215) 913-3008
e-mail: philamilal@hotmail.com

© k2s0o1d4e0s2i1g5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