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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11 09:57

기찻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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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로.png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자란 동네에서 어릴 때부터 익숙하게 접하는 것이 있다. 바닷가 근처에 살았다면 푸른 바다와 그 위를 유유히 가르며 다니는 크고 작은 배들. 비행장 근처에 살았다면 헬리콥터로부터 갖가지 모양과 크기에 비행기를 보며 살게 된다. 나는 경기도 양평에서 어린 시절을 지냈다. 그때부터 매일 만난 것은 기차였다. 처음에는 시커먼 연기를 뿜어대며 달리는 증기 기관차를 보았고 어느 때부터 인가 세련된 전기 기관차가 등장했다.

 

 하루에도 수십 차례 기차가 지나간다. 짐을 실은 기차와 사람을 태우고 달리는 여객차가 하루 종일 철로 위를 달렸다. 중앙선이기에 주로 석탄을 실은 기차가 많았다. 오렌지 색깔의 선도 차량에 어떨 때는 많은 차량이, 어떨 때는 수가 얼마 안 되는 적은 차량들이 매어 달려 특유의 리듬을 내며 달려간다. 학교에서 오는 길에나 혹은 친구들끼리 놀다가 기차가 지나가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는 앞에서부터 차량을 세기 시작하였다. 어떤 때는 숫자가 서로 맞지 않아 자그마한 말다툼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기차가 지나가면 손을 흔들었다. 반가이 마주 손을 흔들어 주는 모습에 우리는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그때까지 기차 구경만 했지 한 번도 타보지 못한 아이들이 많았다. 서울에 친척이 있는 아이는 방학이면 기차를 타는 행운을 안았지만,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기차를 탈 기회가 쉽게 주어지지 않았던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기차가 지나가면 이상한 행동(?)을 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소위 팔뚝질이었다. 그게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해괴망칙한 짓을 기차가 다 지나갈 때까지 해댔다. 아마 기차를 마음대로 타지 못하는 것에 심술이 나서 그랬는지 모른다. 지금 이 글을 읽으며 빙그레 웃는 분은 전과자인지도 모른다.

 

 옛날에는 철로 밑을 기름을 먹인 나무로 받혀놓았다. 보통 침목이라고 했는데 그 나무 위로 걸어가면 야릇한 기분이 들었다. 가끔 맨발로 침목 위를 걸으면 까칠까칠한 감촉이 기분을 좋게 했다. 숫자를 세며 그 침목 위를 걷다 보면 집에도 금방 도착하는 느낌이 들었다. 아이들은 아예 레일 위를 마치 평균대 위를 걷듯 걸어 다녔다. “누가 떨어지지 않고 멀리까지 가나?”가 내기 중에 하나였다.

 

 하루는 원표가 이상한 물건을 주머니에서 끄집어내었다. 칼은 칼인데 이상한 모양이었다. 알고 보니 대못을 철길 위에 올려놓아 기차가 지나가며 눌려진 것이었다. 어떤 아이는 동전을 올려놓기도 하였다. 영웅심리 탓일까? 기차 레일 위에 귀를 대고 있다가 기차가 가장 가까이 왔을 때 몸을 일으키는 아이가 이기는 내기도 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위험천만한 일을 그 시절 아이들은 천연덕스럽게 저질렀다.

 

 기찻길을 따라 걷는 것은 낭만이 있다. 그래서 영화에도 종종 연인들이 철로 위를 걷는 장면이 연출 되는가 본다. 강아지풀을 뜯어 입에 물고 철로 위를 걷다 보면 저만치 구부러진 기찻길 위로 아지랑이가 뿌옇게 피어오른다. 친구가 묻는다. “이 기찻길을 따라가면 어디가 나올까?” 뭔가 안다는 듯 정호가 대답했다. “북쪽으로 가면 서울이 나오고, 남쪽으로 가면 원주가 나온다.” 우리는 그 말에 고개를 끄떡이며 미지의 세계에 대한 꿈을 꾸었다.

 

 기차 기적이 울리면 우리는 기찻길에서 황급히 내려섰고, 기차가 지나갈 동안 기찻길 옆 풀밭에 드러누워 하늘을 보았다. 저만치 보이는 산등성이로 독수리가 거만한 자태로 날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부모님을 따라 서울행 기차에 올랐고, 서울과 더불어 꼬박 30년을 살았다. 젊은 날, 서울 생활에 지치고 곤고 해 질 때면 무작정 중앙선 열차에 몸을 실었다. 저만치 산길을 걸어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가물가물해지는 옛 정취를 떠올렸다. 가끔은 통로 계단에 앉아 스쳐가는 바람에 얼굴을 맡기며 노래를 흥얼거렸다. 오늘도 기찻길 위로 수많은 기차들이 달린다. 길 다란 기찻길처럼 인생 이야기도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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