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2023.01.27 09:08

잊혀져 간 그 겨울

조회 수 5064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겨울의 한복판을 지나고 있다. 날씨는 음력이 정확하게 이끌어 주는 것 같다. (22)을 넘어 입춘(24)이 한주 앞으로 바싹 다가서고 있다. 불안한 것은 눈이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별걱정을 다한다고 할지 모르지만 겨울이 겨울답지 않은 것이 마음 한켠에 아쉬움을 준다. 계절은 계절에 걸맞는 온도와 풍경이 있는 법인데 말이다. 겨울은 차갑고 색깔은 흰색이어야 하는 것 아닐까? 누군가가 어떤 계절이 좋으냐?”고 물어온다면 선뜻 대답하기가 어렵다. 계절마다 특징이 있고 매력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때 겨울이 좋을때가 있었다. 우선 내뱉는 입김의 자취가 좋았고, 매섭지만 얼굴을 스치는 찬 바람의 애무가 정겨워서였다. 차가운 기운이 젊은 날의 아픔을 감추어줄 것 같아 겨울이 고마웠다.

 

  양희은의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중에 가랑비야 내 얼굴을 거세게 때려다오 슬픈 내 눈물이 감춰질 수 있도록.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기에 음~”하는 가사가 있다. 넘 아파서 눈물이 흐를 때 소낙비를 홈빡 맞으며 걸어본 경험이 있는가? 젊은 날의 초상은 겨울의 찬바람과 더불어 묘한 위로를 받았다. 그냥 내가 싫었다. 항상 기우뚱거리며 걷는 것, 병들어 안방 아랫목에 누워 투병하고 있는 아버지, 모든 면에서 밝은 빛은 전혀 새어 들어 올 가망성이 없는 내 삶이 한없이 초라해 보였다. 그래서 나는 가끔 이렇게 외친다. “20대가 그립기는 하지만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돌아보면 손에 잡힐듯한데 일찍이 하늘로 떠난 아버지의 나이를 넘어선 지 오래이다. 그래서 나를 항상 응원해 주던 그분의 체취가 그립다. 불어오는 찬바람을 핑계 삼아 실눈을 떠본다. 왜 이리 세월은 빨리 흐르는지? 속절없이 추억은 멀어져만 가는지? 그 해 그 겨울. 아스팔트에 뒹굴던 마로니에 잎의 잔영이 내 가슴에 남아있다. 길거리 전파상에서 울려 퍼지는 감미로운 음악에 발걸음을 멈추고 군밤과 호빵 냄새를 맡으며 다가올 봄의 따스함을 기대했다. 여기는 미국. 오랜 세월을 그렇게 해가 바뀌고 새롭게 다가오는 겨울 냄새를 맡으며 살고 있다.

 

  모든 것에는 시작이 있다. 시작을 찾아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어느덧 마음이 넉넉해진다. 사는 것이 힘겹고 되알지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시작할 때를 더듬어보면 살며시 미소가 올라온다. 나는 계절을 냄새로 느낀다. 겨울은 무취라서 좋다. 차갑지만 정신을 맑게 해 주어 싱그럽다. 밤새 눈이 와서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한 마당을 지나 초막 속에 고이 묻어놓은 장독 뚜껑을 열어 새빨간 김장 김치를 꺼내는 엄마의 머리 수건이 정겨웠다. 별 양념없이 담근 동치미의 시원한 맛이 겨울과 어우러져 나를 부자로 만들었다. 화로에 구워 먹는 고구마, 감자, 옥수수. 그리고 차가운 다락에서 꺼내와 먹던 다식과 밥풀강정, 단단한 엿이 겨울 밤의 대화를 풍성하게 만들어 주었다.

 

  눈이 펑펑 오는 날이었다. 기다리던 버스는 한참을 오지 않았고, 하늘하늘 떨어지는 해파리 같은 눈송이들이 촘촘히 쌓여가고 있는 버스 정류장에는 그리 많지 않은 승객들이 빼꼼이 고개를 내어밀며 집에 데려다줄 버스를 기다렸다. 추었지만 춥지 않았던 이유는 그 시절에는 이웃간의 끈끈한 정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새해가 되었지만 쏟아지는 뉴스는 희망보다는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고통을 예고하고 있다. 고정희 시인의 피맺힌 시, ‘야훼전상서가 떠오른다. “신도보다 잘사는 목회자를 용서하시고, 사회보다 잘 사는 교회를 용서하시고, 제자보다 잘사는 학자를 용서하시고, 독자보다 배부른 시인을 용서하시고, 백성보다 살쪄 있는 지배자를 용서하소서!” 잘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모르지만 무언가 모순덩어리인 사회의 경종을 울리는 듯 하다.

 

  겨울이 깊을수록 봄은 가까워 온다. 고통이 심할수록 평안의 따스한 손길은 다가오고 있다. 겨울은 겨울다워야 한다. 추위를 견딘만큼 봄을 맞이하는 환희는 배가 되기 때문이다. 바람이 드셀수록 산천초목은 강인하게 버티며 봄을 봄답게 맞이할 수 있다. 모두의 겨울이 부디 춥고 외롭지 않기를. 서로의 쓸쓸한 어깨에 따스한 목도리를 둘러 줄 수 있는 그런 겨울이 되기를 기도한다.

 


  1. No Image

    상처는 스승이다

    인생은 철모르는 어린아이 때 기대했던 것처럼 그리 녹록지 않았다. 굽이굽이 고비를 넘어야 했고, ‘이제 편한 세상이 되었나보다!’하면 어느새 무엇인가 꿈틀거리며 다가와 찔러 댔다. 생존은 마치 전쟁터 같은 느낌이 든다. 게다가 우리는 이민...
    Views8
    Read More
  2. No Image

    아버지를 만나야 한다

    그의 아버지는 항상 완고했다. 때로는 가정폭력을 행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가 싫었다. 나이가 들어가며 아들로 기본예의는 갖추었지만 누구처럼 아버지에게 살갑게 다가가지 못했다. 결국 그는 상담을 받게 되었고, 조언을 받아들여 아버지와의 ...
    Views1236
    Read More
  3. 아, 정겨운 봄날이여!

    “어느 계절을 가장 좋아하세요?”라고 물으면 취향은 다양하다. 하지만 춥고 지루하고 변덕스러운 겨울을 지나 맞이하는 봄은 누구나에게 포근함을 안겨준다. 봄은 희망이다. 봄은 말 그대로 봄(view)이다. 죽은 듯 보이던 대지에서 파아란 새싹이...
    Views1509
    Read More
  4. No Image

    ‘호꾸’와 ‘모난 돌’

    갑자기 중 · 고 시절 입던 교복이 생각났다. 까만색 교복에 모자까지 눌러쓰고 다녀야 하는 세월이 무려 6년이었다. 하복은 그렇다치고 동복에는 ‘호꾸’라는 것이 있었다. 하얀색 얇은 플라스틱으로 된 칼라를 목 안쪽에 장착하고 채워야...
    Views1555
    Read More
  5. No Image

    데이모스의 법칙

    삶은 생각이라 할 수 있다. 사람은 잠에서 깨어나면서 하루 종일 생각하며 산다. 과연 내 삶을 스치는 생각은 얼마나 될까? 우리나라 말에 “오만가지 생각이 다 난다”는 표현이 있다. 그렇다. 묘하게도 사람은 하루에 5만~6만 가지 생각을 한다. ...
    Views1600
    Read More
  6. No Image

    결혼하고는 완전 다른 사람이예요!

    결혼 3년 차에 접어든 새댁이라면 새댁이 내뱉은 말이다. 연애할 때는 그렇게 친절하고 매너가 좋았는데. 그래서 ‘이 남자하고 살면 마냥 행복할 줄 알았는데’ 결혼해 살아보니 “말짱 꽝”이다. 연애 할 때는 이벤트로 깜짝깜짝 놀라...
    Views2737
    Read More
  7. No Image

    H-MART에서 울다

    희한하다. 딸은 나이가 들어가며 엄마를 닮아간다. 사춘기 시절 엄마가 다그칠때면 “난 엄마처럼 안 살거야” 외쳐댔다. 그런데 지금 내 모습이 엄마를 너무도 닮았다. 아이들을 야단치며, 거친 말을 내뱉을 때 스스로 놀란다. 그렇게 듣기 싫은 ...
    Views2858
    Read More
  8. No Image

    이런 인생도 있다

    지극히 평범한, 아니 처절하리만큼 모진 삶을 살다가 미국 한복판에서 미군 고급장교로 인생을 마무리했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서진규 씨의 기사를 접하고 혀를 내둘렀다. 학력이 뛰어났다든가? 어릴때부터 머리가 명석했다든가? 명문가문에서 태어난 분이 ...
    Views2392
    Read More
  9. No Image

    하트♡

    우리가 사용하는 말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단어가 “사랑”이다. 사람을 사랑속에 태어나 사랑을 받고 사랑으로 양육되어진다. 간혹 어떤 분들은 “자신은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면밀히 삶을 돌이켜보면...
    Views2461
    Read More
  10. No Image

    있을 수 없는 일?

    가끔 정신이 ‘멍’해지는 뉴스를 접할때가 있다. 상상이 안되는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지면 사람들은 “있을 수 없는일이 벌어졌다”고 말한다. 밀알선교단 창립 45주년 행사 참석차 한국을 방문했다. 지인과 서울을 오가다가 성수대교를...
    Views2641
    Read More
  11. No Image

    “자식”이란 이름 앞에서

    누구나 태어나면 자녀로 산다. 부모가 능력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그 그늘 아래에 사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나이가 들어서야 깨닫게 된다. 철없이 투정을 부리고 때로는 부모의 마음을 속타게 하며 자라난다. 장성하여 부모가 되고 나면 그분들의 노고와 ...
    Views2407
    Read More
  12. No Image

    오체불만족

    일본인 ‘오토다케’는 태어날 때부터 팔다리가 없이 태어났다. 산모가 충격을 받을까봐 낳은 뒤 한 달 후에야 어머니와 첫 만남을 가지게 된다. 그런데 그의 어머니는 놀라지도 않고 “귀여운 우리 아기”라고 말하며 아가를 끌어안는다...
    Views2410
    Read More
  13. No Image

    화장은 하루도 못가지만

    낯선 사람과 마주치며 느끼는 감정이 첫인상이다. 어떤 실험 결과에 의하면 첫인상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는 ①복장(服裝) ②헤어스타일 ③얼굴 표정 ④목소리 톤, 말투 ⑤자세로 밝혀졌다. 첫인상과 관련해서 ‘6초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겨우 6...
    Views2140
    Read More
  14. No Image

    '무’(無)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에 한 왕이 태어났다. 그의 이름은 ‘무’(無)라고도 하고 ‘영’(靈)이라도 했다. ‘그’라고 부르기는 하겠지만 그는 남자도 여자도 아니었다. 형체도 모양도 없었다. 실제는 그의 이름도 없었다. &ls...
    Views2435
    Read More
  15. No Image

    이제, 희망을 노래하자!

    새해가 밝았다. 새해가 되면 누구나 펼쳐질 미지의 세계에 대해 기대감을 가진다. 더 나아지고,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하지만 연초에 쏟아지는 예측은 사람들의 희망을 앗아간다. 무엇보다 예민한 것은 경제전망이다. 꼭 맞아떨어지는 것도 아닌데 그...
    Views2752
    Read More
  16. 윤슬 =2024년 첫 칼럼=

    아버지는 낚시를 즐기셨다. 공직생활의 여유가 생길때마다 도구를 챙겨 강을 찾았다. 지금처럼 세련된 낚시가 아닌 미끼를 끼워 힘껏 강으로 던져놓고 신호를 기다리는 “방울낚시”였다. 고기가 물리면 방울이 세차게 울린다. 아버지는 잽싸게 낚...
    Views2854
    Read More
  17. No Image

    무슨 “띠”세요?

    2023년이 가고 2024년이 밝아온다. 사람을 만나 대화를 하다가 나이를 물으면 바로 “몇살입니다.”라고 대답하는 경우는 드문 것 같다. 대개 “저는 몇 년생입니다.”로부터 “저요? ○○ 띠입니다.”라고 해서 한참을 계산해야...
    Views2500
    Read More
  18. No Image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

    어느새 세월이 흘러 2023년의 끝자락이 보인다. 한해가 저물어감에 아쉬움이 밀려오지만 마음이 서럽지 않은 것은 “크리스마스”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 “크리스마스”는 기독교의 축제날이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 예...
    Views2416
    Read More
  19. No Image

    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

    나는 어린 시절을 시골(양평)에서 자랐다. 집 앞에 흐르는 실개천에 한여름 장마가 찾아오면 물의 깊이와 흐름이 멱감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물이 불어난 그곳에서 온 종일 아이들과 고기를 잡고 물장구를 치며 놀았다. 동네 뒤편에는 병풍을 두른 듯 동산이 ...
    Views2500
    Read More
  20. No Image

    숙명, 운명, 사명

    살아있는 사람은 다 생명을 가지고 있다. 생명, 영어로는 Life. 한문으로는 生命-분석하면 살 ‘生’ 명령 ‘命’ 풀어보면 “살아야 할 명령”이 된다. 엄마의 태로부터 태어난 그 순간부터 우리는 “살라는” 명을...
    Views2610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35 Next
/ 35

주소: 423 Derstine Ave. Lansdale., PA 19446
Tel: (215) 913-3008
e-mail: philamilal@hotmail.com

© k2s0o1d4e0s2i1g5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