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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램.jpg

 

 

미당 서정주 선생은 “자화상”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스믈세햇동안 나를 키운건 8할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 가도 부끄럽기만 하드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입에서 천치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바람’을 안고 산다. 어리디 어린 아이들에게도 바람이 있다.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 하려는 바람부터 남에게 칭찬을 받고 유쾌한 삶을 살기 위한 바람을 추구하며 살아간다. 그 바람에 대한 열정이 클수록 이루어지는 확률이 높아지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아이들을 키워본다. “바람”에 억척스러우리만큼 매어달리는 아이가 있다. 반면 “주면 좋고 안주면 그만이고.” 성격의 아이가 있다.어릴 때는 몰랐는데 성장하면서 아이의 삶의 가치관이 극명하게 갈라지는 것을 발견한다. 바람이 지나치면 집착이 되는 위험성도 없지 않아 있지만 내가 원하는 바람(Desire)을 위해 달려가는 인생은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운가? 누구에게나 바람이 있다. 하지만 세파에 시달리다보면 바람을 잃어버리고 그날이 그날 같은 맹물 같은 인생을 이어가고 있지는 않은지?

 

나의 바람은 무엇이었을까? 내가 평생 안고 사는 바람은 “건강”인 것 같다. 온전하지 못한 신체가 정상인 아이와 같아지는 것. 하지만 그 바람은 지금도 요원하다. 그것이 장애인의 한계이다. 돌아보면 그래서인지 친구들과 뒹굴며 지내는 놀이를 많이 하며 자랐다. 요사이는 어떤 용어를 쓰는지 모르지만 우리가 어릴 때는 “가이생”을 많이 했다. “가이생”은 “회전(會戰), 즉 대규모 병력들이 격돌하는 것을 뜻”하는 일본말 “가이센”에서 유래되었다. 땅에 선을 그려놓고 편을 갈라 쳐들어가 “만세!”를 부르는 놀이였다.

 

지금 생각하면 치열하게 격돌을 했다. 길목을 막고 아예 땅 바닥에 주저앉아 얼굴에 상처가 나는 것도 잊은 채 방어를 했다. 무서운 기세로 돌진해 오는 아이들을 막아냈다. 하체는 부실했지만 커다랗고 힘센 두 손이 한몫을 했다. 장애를 가졌지만 아이들은 나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격려해 주었다. 행복했다. 성장하면서 나의 바람은 “나도 서울 사람이 되는 것.”으로 바뀌었다.몇 년 전. 한국에 가서 내 어린 추억이 오롯이 담겨있는 경기도 양평에 서울로부터 전철이 연결되어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내가 어릴 때는 서울이 참 멀었다. 아마 비포장 길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 양평에서 두 시간은 족히 달려야 ‘신설동 버스터미널’에 당도할 수 있었다. 하도 ‘덜컹’거려서 차멀미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서울은 화려했다. 어쩌다 서울에 오면 많은 차들과 인파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밤을 휘감는 네온사인 불빛은 내 가슴을 달뜨게 만들었다. 3· 1 빌딩, 낭만의 거리 원효로, 한강을 건너 만나는 삼각지 로터리를 지날 때면 배호의 “돌아가는 삼각지”를 흥얼거렸다. 그 바람은 고교 1학년. 우리 가족이 서울로 이사를 하면서 성취되었다. 그렇게 30년을 서울에서 살았다. 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의 장구한 세월이었다. 서울이 어떻게 변해갔는지를 나는 안다. 풋풋하던 서울이 도도한 도시로 변형되는 모습을 지켜보아야만 하였다. 천덕꾸러기(?) 말죽거리와 잠실 벌판이 “강남”이라는 화려한 이름으로 변신해 가는 역사의 현장에 나는 있었다. 21세기를 살면서 “격세지감!”을 실감하는 세대가 그 시절 서울에 살던 사람들일 것이다.

 

“잘살아 보세!” 어린 시절부터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던 선전 문구이고 노래이다. 우리 부모들은 이런 바람으로 자식을 키웠다. 희생을 각오하고 현세의 영화(榮華)를 일구어냈다. 바람은 어느 정도 이루어 진 것 같다. 하지만 사람들의 허기진 영혼은 무엇으로 메꾸어 갈꼬? 바람은 귀한 것이다. 하지만 그 방향이 성취보다 귀한 것임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나보다 우리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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