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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포영화를 좋아한다. 그것도 잔인하리만큼 참혹한 장면을 보는 것을 즐겨한다. 내 스스로도 ‘왜 그런 영화를 좋아하는지?’ 알아차리지도 못한 채 무방비로 그런 영화에 매료되었다. 어떤 때는 괴상한 형상을 한 물체가 등장하기도 한다. “사람이 저렇게도 악해질 수 있구나!”할 정도의 끔찍한 장면이 연출되기도 한다. 분명한 것은 주인공은 반드시 살아남으며 악당들은 비참하게 최후를 맞이한다는 불변의 진리를 믿으며 시청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50대에 접어들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괴기영화, 즉 공포를 조장하는 화면에 거부반응이 나타났다. 그 변화는 내가 놀랄 정도였다. 그렇게 좋아하던 공포영화가 너무도 싫어졌다. ‘아, 내가 나이가 들었구나!’ 이제는 그런류의 영화는 아예 거들떠도 안보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나이가 들면 여성호르몬이 증가하고 마음도 약해지는 것을 실감하며 살고 있다. 2001년, 한국영화의 흐름을 바꾸어 놓은 영화가 등장한다. 바로 “친구”이다. 우리 세대보다는 조금은 어린 친구들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정서는 10년을 함께 하는 것 같다.

철없이 어울리던 어린 친구들이 성장하면서 서로 다른 길을 가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표현되었다. 그 중에서도 어둠의 길(조폭)에 접어든 두 친구의 갈림길 인생이 마음을 ‘짠’하게 만드는 영화였다. “니 가라, 하와이!”부터 “그마해라, 너무 마이 묵었다.”라며 참혹한 살인 장면을 여과없이 영상에 비춰낸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영화였다. 그러다가 2013년, “친구2”가 등장한다. ‘친구1’에 대한 향수와 기대는 영화를 보는 내내 실망을 안겨주었다. 너무도 잔인한 장면들이 유희처럼 표현되는 것에 거부감이 들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끔찍한 영상들이 자꾸 뇌리에 떠오르는 것이었다. 젊었을 때는 하루만 지나면 지워지던 영상이 불안을 동반하며 정신을 어지럽게 했다. 역시 나이가 들며 “지·정·의”중에 감성이 예민해 진 것이다. “감정”, <emotion>의 라틴어 어원은 “움직이다”라는 뜻의 “movere”에서 나왔다. “E-motion” 즉, ‘에너지 모션’ 우리의 감정은 움직이고 변화 한다. 지금의 감정이 다가 아니고 언젠가는 소멸되고 다른 느낌이 다가온다. 그렇기에 그 불편한 감정들을 없애려고 애를 쓸 필요가 없다. 찾아오는 감정들을 잘 만나주며 우리가 원하고 바라는 삶으로 인도해 주는 것이 삶의 기슬이다.

그러다보면 슬픔을 만나며 내 안에 상처가 치유되고, 분노를 만나며 내 안에 힘이 키워진다. 수치심을 만나며 내 안에 더 깊은 신성을 만나게 된다. 그렇다면 내면의 아픔들을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까? 방법 중 하나는 ‘감정일기’를 쓰는 것이다. 지금 내 안에 일어나는 느낌을 글로 표현하는 것이다. 이것은 해결되지 않은 감정의 응어리를 회복시키고 나를 가장 정직하게 만나게 하는 힘이 있다. 지금 내면에 일어나는 감정과 자주 만나는 사람은 심성이 깊어지는 체험을 하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현실 속에서 만나는 불편한 감정들이 고개를 들면 피하고 도망치고 숨고 외면하고 싶어 한다. 감정일기를 쓰며 내가 애써 외면한 아픔들과 직면하고, 화해의 길을 찾아가는 사람이 도인(道人)이다. 사람은 자신을 만날때에 정직해 진다. 우리는 자주 물어야 한다. “내가 왜 이렇게 마음이 무겁지? 왜 행복하지 않지? 왜 이렇게 부끄러워하지? 왜 자꾸 움추러 드는 걸까?” 그러면 저 깊숙한 곳에서 올라오는 내면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문득 예전 비슷한 현실의 문제들 속에서 전혀 다르게 반응하며 해석하고 있는 대견한 나를 발견하게 된다. 후에는 감사와 노래가 나온다.

시(詩)가 가슴으로 들어온다. 예술과 철학, 종교가, 자연이, 슬픔이, 외로움이 달리 해석되어 내게 주는 삶의 힘을 얻게 된다. 진짜 삶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나와 ‘맞짱뜨기’이다. 결심이 아니다. 지식이나 머리도 아니다. 영혼에서 흘러나와 가슴과 손·발을 통해 울려 나오는 삶, 감히 기대할 수 없는 삶, 이런 삶을 살고 있는 나는 이런 내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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