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조회 수 79162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짜장면.png

 

 

밀알선교단 모임에서 “당장 죽음이 가까워 온다면 꼭 먹고 싶은 음식은 무엇입니까?”라는 화두로 대화의 광장을 열었다. 희한한 질문에 장애인들 대부분은 “짜장면”이라고 대답했다. 사람이 철이 나려면 세 가지 현상이 나타나야한단다. 첫째는 명절이 기다려지지 말아야 하고, 둘째는 명절이 되어도 담담해야하며, 셋째는 짜장면이 싫어져야 한다나. 어디서 나온 이야기인지는 모르지만 나를 돌아보았다. 어느 순간인가? 명절에 대해 초연해 졌고, 명절이 와도 오히려 번거롭게 느껴지기까지 하는 단계에 다다랐다.

 

그런데 짜장면은 아니다. 나이가 들어도 짜장면은 여전히 사무치게(?) 좋다. 삼단 논법을 펼쳐보면 “짜장면을 좋아하면 아직 철이 안 난 것이다. 나는 짜장면이 좋다. 고로 나는 아직 철이 안 났다?” 우리세대에는 특별한 날이 되어야 짜장면을 먹을 수 있었다. 요사이 한국에 가면 흔히 만날 수 있는 것이 짜장면집이다. 하지만 어린 시절에 먹던 그 맛이 아니다. 그 시절에는 별로 먹을 것이 없어서인지, 아니면 진짜 요리사들이 뛰어나서인지, 짜장면 맛이 기가 막혔다.

 

특별히 그때는 면을 손으로 뽑아내었다. 그래서 중학교를 진학하지 못한 아이들이 중국집(‘중화요리’ 집에 준말)에서 짜장면 배달을 하며 면 뽑는 기술을 배우곤 했다. 그 기술을 익히느라 2-3년을 궂은 일만하다가 겨우 기술을 배워 주방에서 일하게 되는데 그것도 지원한 모두에게 주어지는 혜택은 아니었다. 지금은 ‘수타면’(手打麵)이라는 거창한 이름이 붙었지만 어린 시절 면을 뽑아내는 장면은 처음 목격할 때에 신기함은 말로 표현이 안 된다. 마술 중에 마술이었다. 커다란 몽둥이처럼 생겼던 밀가루 반죽이 어느 순간 가늘어지고 가늘어져서 주방장 아저씨의 손가락 마디마디에서 여린 국수 줄기로 뽑아져 나오는 광경은 입을 못 다물게 했다.

 

20대 초반, 나는 자라난 홍릉교회의 어린이 성가대 지휘자로 임명받게 되었다. 장애를 가진 내가 기우뚱한 뒷모습을 보이며 지휘를 한다는 것은 결단하기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전도사님의 설득을 이기지 못해 어린이 성가대 지휘봉을 잡게 되었다. “어린이 성가대”라고 하니 글을 읽는 분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길지 모르지만 20대인 내가 “어린이성가대”에 쏟았던 열정과 집중력은 지금 생각해도 대견할 정도였다. 우선 한 달에 한번 마지막 월요일은 기도회로 모였다. 초등학교 4-6학년 어린이들. 겨우 30명. 그때는 먹을 것이 없어서인지(70년대 중반) 아이들도 키가 지금 아이들처럼 크지도 않았다.

 

처음 기도회로 모였을 때에는 분위기가 너무 어색했다. 통성기도를 시켜놓으면 나 혼자 기도를 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그러나 달이 지나가며 아이들은 변해갔다. 어느 순간, 그 어린 아이들이 눈물과 콧물을 유년부실 마루 바닥에 흘려가며 기도하는 열정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그때 난 성령의 역사를 보았다. 하나님은 순수한 어린아이들에게 더욱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심을 그때 체험하였다. 기도회가 끝나고 나면 함께 저녁 먹는 시간을 가진다. 교회 앞에 일렬로 줄을 세우고 팔을 힘껏 저으며 우리는 간다. 짜장면 집으로!

 

짜장면이 나오는 동안 한 달 동안 빠지지 않고 성가대 연습에 임한 아이들에게 상품을 준다. 드디어 짜장면이 나오면 마냥 행복 해 하며 먹던 아이들의 천진한 표정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걔중에 몇몇 남자 아이들은 얼마나 먹성이 좋았던지 남들이 먹다 남겨 놓은 것까지 깨끗이 먹어버렸다. 지금 아이들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입가에 묻은 짜장면의 흔적을 보며 우리는 또 한 번 웃었고 그렇게 짜장면을 먹으며 우리는 하나가 되었다. 그해 동평양 노회 성가경연대회에서 2등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기도와 짜장면의 힘이었다.

 

그때 어리게만 보이던 아이들이 이제는 40대 중반의 엄마, 아빠가 되어 있고 가장 개구졌던 ‘동국’이가 러시아 선교사로 헌신하는 모습을 보며 세월의 빠름을 실감한다. 한국에서 목회 할 때 박동국 선교사가 내가서는 강단에서 말씀을 전하고 온 성도들이 은혜 받는 모습을 보며 만감이 교차했다. 남이 남긴 짜장면까지 먹어 치우던 장면이 생각나서 설교를 들으며 혼자 몰래 웃었다. 짜장면은 우리의 추억이다. 짜장면 한그릇 드실래예!


  1.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이 세상을 떠났다. 그를 재벌로 만든 원동력은 바로 롯데껌이었다. 수 많은 사람들이 즐기던 껌 덕분에 그는 국내 재계 순위 5위 재벌이 되었다. 지금이야 껌의 종류도 다양하고, 흔하고 흔한 것이 껌이지만 내가 어린 시절만 해도 껌은 ...
    Views26247
    Read More
  2. 다시 태어난다면

    부부는 참 신비하다. 처음 만나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할 때는 못죽고 못사는데 평생 평탄하게 사는 부부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거의 세월의 흐름 속에 데면데면 밋밋한 관계가 된다. 누구 말처럼 ‘도파민’이라는 호르몬이 고갈되어 그런 것인...
    Views24737
    Read More
  3. 모르는 것이 죄

    소크라테스는 “죄가 있다면 모르는 것이 죄”라고 했다. 의식 지수 400이 이성이다. 우리는 눈만 뜨면 화를 내며 산다. 다 알지 않는가? 화를 자주 내는 사람보다 전혀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이 더 무섭다는 것을. 한번 터지면 걷잡을 수 없다. 풀리...
    Views24247
    Read More
  4. 월남에서 돌아온 사나이

    2018년 봄. 후배 선교사로부터 집회요청을 받고 베트남을 방문하게 되었다. 베트남 행 비행기 안에서 초등학교 때 추억이 삼삼히 떠올랐다. 베트남? 우리가 어린 시절에는 월남이라고 불렀다. 어느 날, 월남에서 전쟁이 터졌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 이야기...
    Views25811
    Read More
  5. 새해 2020

    새해가 밝았다. 2020.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신선한 이름이다. 사람은 언제 행복할까? 우선 주어진 기본욕구가 채워지면 행복하다. 문제는 그 욕구충족이 사람마다 다 다르다는 것이요, 나이가 들수록 그 한계가 점점 넓어지고 높아진다는 것이다. 다...
    Views24816
    Read More
  6. 연날리기

    바람이 분다. 겨울이라 그런지 바람 소리가 예사롭지 않다. 앙상한 나뭇가지를 훑어대며 내는 소리는 ‘앙칼지다’라고 밖에는 표현이 안된다. 내가 어릴 때는 집이 다 창호지 문이었다. 어쩌다 자그마한 구멍이라도 생기면 파고드는 칼바람의 위력...
    Views27038
    Read More
  7. 나를 잃는 병

    세상에서 가장 끔찍하고 무서운 병은 어떤 것일까? 알츠하이머? 치매가 아닐까? 자신은 행복할지 모르지만 가족들과 지인들을 안타깝고 힘들게 만드는 병. 얼마 전 명배우 윤정희 씨가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다는 사실을 그의 부군이자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백...
    Views26917
    Read More
  8. 가정이 무너지고 있다

    정신과 창구에 비친 한국 가족 위기의 실상은 몇 가지 특징적인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고려병원 신경정신과 이시형 박사가 “우리 가족 이대로 좋은가?”라는 발표를 들여다보며 그 사실을 실감한다. 먼저는 남편이 무너지고 있다. 우리가 어릴 ...
    Views30055
    Read More
  9. 삶은 경험해야 할 신비

    어느새 2019년의 끝이 보인다. 금년에도 다들 열심히 살아왔다. 수많은 위기를 미소로 넘기며 당도한 12월이다. 이제 달랑 한 장 남은 캘린더 너머에 숨어있는 2020년을 바라본다. 산다는 것은 참 신비한 일이다. 하지만 인생을 살아갈수록 사람들은 ‘...
    Views27555
    Read More
  10. 고통의 의미

    지난 주간 충격적인 소식을 접해야 했다. 고교시절부터 우정을 나누는 죽마고우 임 목사가 뇌졸증으로 쓰러졌다는 급보였다. 앞이 캄캄했다. 지난 여름 한국에서 만나 함께 뒹굴며 지내다 왔는데. 워낙 키와 덩치가 커서 고교 시절부터 씨름을 하던 친구여서 ...
    Views28820
    Read More
  11. 민들레 식당

    민들레의 꽃말은 ‘사랑’과 ‘행복’이다. 민들레는 담장 밑이나 길가 등 어디에서나 잘 핀다. 늘 옆에 있고 친숙하며, 높은 곳보다 항상 낮은 지대에 자생한다. 잎이 필 때도 낮게 옆으로 핀다. '낮고 겸손한 꽃’ 민들레처럼...
    Views27685
    Read More
  12. 노년의 행복

    요사이 노년을 나이로 나누려는 것은 촌스러운(?)일이다. 워낙 건강한 분들이 많아 노인이라는 말을 사용하기가 송구스럽다. 굳이 인생을 계절로 표현하자면 늦가을에 해당되는 시기이다. 늙는 것이 서럽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삶의 수확을 거두는 시기가 노...
    Views28247
    Read More
  13. 최초 장애인 대학총장 이재서

    지난봄. 밀알선교단을 창립하고 이끌어오는 이재서 박사가 총신대학교 총장에 출마하였다는 소식에 접하게 되었다. 고개를 갸우뚱하였다. “대학교 총장?” 이제 은퇴를 하고 물러나는 시점인데 난데없이 총장 출마라니? 함께 사역하는 단장들도 다...
    Views28679
    Read More
  14. 그래도 살아야 한다

    지난 14일. 배우 겸 가수인 설리(최진리)가 자택에서 사체로 발견되었다. 그녀의 나이 겨우 25살. 이제 막 피어나기 시작한 청춘은 우울증을 견디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청순하고 빼어난 미모, 평소 밝은 성격의 그녀가 자살한 것은 커다란 충...
    Views29793
    Read More
  15. 가을, 밀알의 밤

    어느새 가을이다. 낯선 2019년과 친해지려 애쓰던 것이 바로 어제 같은데 겨울을 거쳐 봄, 여름이 지나가고 어느새 초록이 지쳐가고 있다. 여기저기 온갖 자태를 뽐내며 물들어 가는 단풍이 매혹적이기는 한데 애처로워 보이는 것은 내 기분 탓일까? 가을은 ...
    Views30063
    Read More
  16. 생각이 있기는 하니?

    생각? 사람들은 오늘도 생각을 한다. 아니 지금도 생각중이다. 그런데 정작 삶에는 철학도, 일관성도 없다. 그래서 누군가가 “넌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사냐?”라고 핀잔을 주면 “나도 나를 모르겠다.”고 대답을 한다. '나는 ...
    Views27661
    Read More
  17. 침묵 속에 버려진 청각장애인들

    “숨을 내쉬면서 혀로 목구멍을 막는 거야. ‘학’ 해 봐.” 6살 “별이”는 엄마와 ‘말 연습’을 하고 있다. 마주 앉은 엄마가 입을 크게 벌리고 “학”이라고 말하면 별이는 ‘하’ 아니면 &...
    Views31536
    Read More
  18. 사랑이란 무엇일까?

    오늘 우리는 왜 살고 있는가? 사랑 때문이다. 사랑을 하고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은 행복하다. 하지만 그 누구도 사랑할 수 없고,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은 죽지 못해 살아가게 된다. 사람은 사랑으로 태어난다. 한 생명이 태어나기 위해서는 사랑이 필...
    Views27642
    Read More
  19. No Image

    이름이 무엇인고?

    사람은 물론 사물에는 이름이 다 붙는다. 10년 전 고교선배로부터 요크샤테리아 한 마리를 선물 받았다. 원래 지어진 이름이 있었지만 온 가족이 마주 앉아 새로운 이름을 지어 주기로 하였다. 갑론을박 끝에 “쵸코”라는 이름이 나왔다. “...
    Views28826
    Read More
  20. 이혼 지뢰밭

    어린 시절에 명절은 우리의 꿈이었고 긴긴날 잠못자게 하는 로망이었다. 가을 풍경이 짙어진 고향산천을 찾아가는 기쁨, 집안사람들을 모두 만나는 자리, 또래 친척 아이들을 만나 추억을 만드는 동산, 모처럼 산해진미를 맛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기 때문...
    Views28762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 7 8 9 10 11 12 13 14 15 16 ... 35 Next
/ 35

주소: 423 Derstine Ave. Lansdale., PA 19446
Tel: (215) 913-3008
e-mail: philamilal@hotmail.com

© k2s0o1d4e0s2i1g5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