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조회 수 53349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바람과 풍차.jpg

 

 바람이 분다. 얼굴에 머물 것 같던 바람은 이내 머리칼을 흔들고 가슴에 파고든다. 나는 계절을 후각으로 느낀다. 봄은 뒷곁에 쌓아놓은 솔가지를 말리며 흘러들었다. 향긋하게 파고드는 솔 향이 짙어지면 기분 좋은 현기증이 봄이 가까이 왔음을 알게 했다. 여름은 굴뚝 근처에 번져가는 곰팡이를 스쳐가는 ‘퀘퀘한 내음’으로 다가왔다. 선풍기도 없던 시절에 부채질은 더운 열기를 돋우워 잠자리를 설치게 했다. 어쩌다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덕에 겨우 꿈나라로 향할 수 있었다. 가을은 스산한 기운으로 오동나무 잎을 훑으며 다가섰다. 바람이 부는 대로 쏠려 다니는 낙엽 구르는 소리가 세월의 아쉬움을 달래주었다. 겨울은 전깃줄을 타고 휘몰아치며 아이우는 소리를 내며 불어댔고, 그럴때면 우리는 온돌 깊숙이 몸을 숨겼다.

 

 바람 중에 가장 예쁜 “하늬바람”이 있다. 사실 ‘하늬바람’은 농부나 뱃사람들이 ‘서풍’을 부르는 말이다. ‘하늬’는 뱃사람의 말로 서쪽이란다. 따라서 ‘하늬바람’은 맑은 날 서쪽에서 부는 서늘하고 건조한 바람을 말한다. 습하고 무더운 ‘된마(동남풍)’에 상대되는 바람이다. 무더운 여름철에 부는 ‘하늬바람’은 말의 느낌만큼이나 실제로도 상쾌한 느낌을 주는 바람이다. 때늦은 장마가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끈적이는 습도 때문이었다. 후덥지근한 장마도 지나가며 이파리 무성한 숲길에서는 매미 소리가 요란하고, 언덕배기로 서늘한 하늬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면 어느덧 방학이 끝날 무렵이었다.

 

 뉴햄프셔 주에 있는 ‘White Mountain’ 정상에 오른 적이 있다. 방갈로를 나서자 세찬 바람은 친구의 선글라스를 허공으로 냅다 날려버렸다. 난감해 하는 친구를 향해 다른 친구가 소리쳤다. “그래도 바람을 맞는 것이 그렇게 건강에 좋단다.” 우리는 얼굴을 마주보며 웃어댔다. 바람은 때로 모든 것을 앗아간다. 미국 남부에 몰아치는 ‘토네이도’는 그동안 쌓아놓았던 모든 것을 공중분해 시켜 버린다. 태풍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태풍이 몰아치며 저 깊은 바닷 속을 휘저어놓기에 바다가 기나긴 세월의 흐름에도 청정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청춘들에게는 자신도 가누지 못하는 바람이 있다. ‘질풍노도’라고 하지 않는가? 왜 그리 쏘다녔는지? 수업만 끝나면 달려가 죽치고 앉아있던 명동 ‘케잌파라’ 3층은 지금 생각해도 아련한 추억의 창이다. 고교시절에 여름방학은 캠핑으로 시작하여 끝이 났다. ‘텐트, 코펠, 라면, 통기타, 그리고 …’. 그렇게 뒹굴고 소리치며 놀아도 지치지 않았다. 무슨 그리 할 일이 많았는지? 무엇을 하며 지냈는지? 칫솔하나로 돌아가며 이를 닦고, 악동들은 추억을 쌓느라 하루가 모자랐다. 개학을 하면 그 바람을 진정시키느라 한참을 힘들어 해야 했다.

 

 ‘가는 바람’은 약하게 솔솔 부는 바람이다. ‘간들바람’은 부드럽고 가볍게 ‘살랑살랑’ 부는 바람이며 ‘강쇠바람’은 첫가을에 부는 동풍을 일컫는다. ‘골바람’은 골짜기에서부터 산꼭대기로 부는 바람인데 시골에서 초등학교를 다닌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매서운 겨울바람의 아픈 추억을 담고 살고 있으리라. ‘골바람’이 얼굴에 부딪히면 절로 눈물이 났다. 핑계 김에 서러움을 담아 울던 겨울을 잊을 수가 없다. ‘높새바람’이 있다. ‘동북풍’을 달리 이르는 말로 주로 봄부터 초여름에 걸쳐 태백산맥을 넘어 영서 지방으로 부는 고온 건조한 바람으로 농작물에 피해를 준다.

 

 바람을 기다려 본 경험이 있는가? 매서운 겨울바람이 불면 손수 만든 연을 들고 언덕배기에 올라섰다. 달리며 놓아버린 연이 바람을 타고 하늘 높이 날아오른다. 긴 연줄이 곡선을 그리며 저만치 한 점이 되어 버렸다. 돛단배를 띄운 뱃사공이 반갑고 반가운 것이 강바람이다. 바람에 흐느적거리는 버드나무의 향연을 본적이 있는가? 한차례 소낙비가 지나간 후 바람결에 흔들리는 미루나무 잎에 ‘반짝거림’을 실눈을 뜨고 바라본 적이 있는가? 나무는 바람을 타고 잎을 흔들며 대화를 나눈다.

 

 한적한 깊은 산속 숲 소리와 바람의 빛깔을 알 수 있다면 자연의 언어인 바람을 통해 우리는 더 풍요로운 인생의 맛을 느낄 수 있으리라!


  1. 다시 태어난다면

    부부는 참 신비하다. 처음 만나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할 때는 못죽고 못사는데 평생 평탄하게 사는 부부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거의 세월의 흐름 속에 데면데면 밋밋한 관계가 된다. 누구 말처럼 ‘도파민’이라는 호르몬이 고갈되어 그런 것인...
    Views24725
    Read More
  2. 모르는 것이 죄

    소크라테스는 “죄가 있다면 모르는 것이 죄”라고 했다. 의식 지수 400이 이성이다. 우리는 눈만 뜨면 화를 내며 산다. 다 알지 않는가? 화를 자주 내는 사람보다 전혀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이 더 무섭다는 것을. 한번 터지면 걷잡을 수 없다. 풀리...
    Views24224
    Read More
  3. 월남에서 돌아온 사나이

    2018년 봄. 후배 선교사로부터 집회요청을 받고 베트남을 방문하게 되었다. 베트남 행 비행기 안에서 초등학교 때 추억이 삼삼히 떠올랐다. 베트남? 우리가 어린 시절에는 월남이라고 불렀다. 어느 날, 월남에서 전쟁이 터졌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 이야기...
    Views25798
    Read More
  4. 새해 2020

    새해가 밝았다. 2020.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신선한 이름이다. 사람은 언제 행복할까? 우선 주어진 기본욕구가 채워지면 행복하다. 문제는 그 욕구충족이 사람마다 다 다르다는 것이요, 나이가 들수록 그 한계가 점점 넓어지고 높아진다는 것이다. 다...
    Views24805
    Read More
  5. 연날리기

    바람이 분다. 겨울이라 그런지 바람 소리가 예사롭지 않다. 앙상한 나뭇가지를 훑어대며 내는 소리는 ‘앙칼지다’라고 밖에는 표현이 안된다. 내가 어릴 때는 집이 다 창호지 문이었다. 어쩌다 자그마한 구멍이라도 생기면 파고드는 칼바람의 위력...
    Views27031
    Read More
  6. 나를 잃는 병

    세상에서 가장 끔찍하고 무서운 병은 어떤 것일까? 알츠하이머? 치매가 아닐까? 자신은 행복할지 모르지만 가족들과 지인들을 안타깝고 힘들게 만드는 병. 얼마 전 명배우 윤정희 씨가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다는 사실을 그의 부군이자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백...
    Views26908
    Read More
  7. 가정이 무너지고 있다

    정신과 창구에 비친 한국 가족 위기의 실상은 몇 가지 특징적인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고려병원 신경정신과 이시형 박사가 “우리 가족 이대로 좋은가?”라는 발표를 들여다보며 그 사실을 실감한다. 먼저는 남편이 무너지고 있다. 우리가 어릴 ...
    Views30047
    Read More
  8. 삶은 경험해야 할 신비

    어느새 2019년의 끝이 보인다. 금년에도 다들 열심히 살아왔다. 수많은 위기를 미소로 넘기며 당도한 12월이다. 이제 달랑 한 장 남은 캘린더 너머에 숨어있는 2020년을 바라본다. 산다는 것은 참 신비한 일이다. 하지만 인생을 살아갈수록 사람들은 ‘...
    Views27513
    Read More
  9. 고통의 의미

    지난 주간 충격적인 소식을 접해야 했다. 고교시절부터 우정을 나누는 죽마고우 임 목사가 뇌졸증으로 쓰러졌다는 급보였다. 앞이 캄캄했다. 지난 여름 한국에서 만나 함께 뒹굴며 지내다 왔는데. 워낙 키와 덩치가 커서 고교 시절부터 씨름을 하던 친구여서 ...
    Views28805
    Read More
  10. 민들레 식당

    민들레의 꽃말은 ‘사랑’과 ‘행복’이다. 민들레는 담장 밑이나 길가 등 어디에서나 잘 핀다. 늘 옆에 있고 친숙하며, 높은 곳보다 항상 낮은 지대에 자생한다. 잎이 필 때도 낮게 옆으로 핀다. '낮고 겸손한 꽃’ 민들레처럼...
    Views27646
    Read More
  11. 노년의 행복

    요사이 노년을 나이로 나누려는 것은 촌스러운(?)일이다. 워낙 건강한 분들이 많아 노인이라는 말을 사용하기가 송구스럽다. 굳이 인생을 계절로 표현하자면 늦가을에 해당되는 시기이다. 늙는 것이 서럽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삶의 수확을 거두는 시기가 노...
    Views28212
    Read More
  12. 최초 장애인 대학총장 이재서

    지난봄. 밀알선교단을 창립하고 이끌어오는 이재서 박사가 총신대학교 총장에 출마하였다는 소식에 접하게 되었다. 고개를 갸우뚱하였다. “대학교 총장?” 이제 은퇴를 하고 물러나는 시점인데 난데없이 총장 출마라니? 함께 사역하는 단장들도 다...
    Views28643
    Read More
  13. 그래도 살아야 한다

    지난 14일. 배우 겸 가수인 설리(최진리)가 자택에서 사체로 발견되었다. 그녀의 나이 겨우 25살. 이제 막 피어나기 시작한 청춘은 우울증을 견디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청순하고 빼어난 미모, 평소 밝은 성격의 그녀가 자살한 것은 커다란 충...
    Views29762
    Read More
  14. 가을, 밀알의 밤

    어느새 가을이다. 낯선 2019년과 친해지려 애쓰던 것이 바로 어제 같은데 겨울을 거쳐 봄, 여름이 지나가고 어느새 초록이 지쳐가고 있다. 여기저기 온갖 자태를 뽐내며 물들어 가는 단풍이 매혹적이기는 한데 애처로워 보이는 것은 내 기분 탓일까? 가을은 ...
    Views30036
    Read More
  15. 생각이 있기는 하니?

    생각? 사람들은 오늘도 생각을 한다. 아니 지금도 생각중이다. 그런데 정작 삶에는 철학도, 일관성도 없다. 그래서 누군가가 “넌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사냐?”라고 핀잔을 주면 “나도 나를 모르겠다.”고 대답을 한다. '나는 ...
    Views27625
    Read More
  16. 침묵 속에 버려진 청각장애인들

    “숨을 내쉬면서 혀로 목구멍을 막는 거야. ‘학’ 해 봐.” 6살 “별이”는 엄마와 ‘말 연습’을 하고 있다. 마주 앉은 엄마가 입을 크게 벌리고 “학”이라고 말하면 별이는 ‘하’ 아니면 &...
    Views31500
    Read More
  17. 사랑이란 무엇일까?

    오늘 우리는 왜 살고 있는가? 사랑 때문이다. 사랑을 하고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은 행복하다. 하지만 그 누구도 사랑할 수 없고,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은 죽지 못해 살아가게 된다. 사람은 사랑으로 태어난다. 한 생명이 태어나기 위해서는 사랑이 필...
    Views27636
    Read More
  18. No Image

    이름이 무엇인고?

    사람은 물론 사물에는 이름이 다 붙는다. 10년 전 고교선배로부터 요크샤테리아 한 마리를 선물 받았다. 원래 지어진 이름이 있었지만 온 가족이 마주 앉아 새로운 이름을 지어 주기로 하였다. 갑론을박 끝에 “쵸코”라는 이름이 나왔다. “...
    Views28814
    Read More
  19. 이혼 지뢰밭

    어린 시절에 명절은 우리의 꿈이었고 긴긴날 잠못자게 하는 로망이었다. 가을 풍경이 짙어진 고향산천을 찾아가는 기쁨, 집안사람들을 모두 만나는 자리, 또래 친척 아이들을 만나 추억을 만드는 동산, 모처럼 산해진미를 맛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기 때문...
    Views28760
    Read More
  20. 시각장애인의 찬양

    장애 중에 눈이 안 보이는 어려움은 가장 극한 고통일 것이다. 그러나 시각장애인 중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고 존경의 대상이 될 만한 인물들이 속속 배출된 것을 보면 고난은 오히려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는 끈질긴 내성을 키워내는 것 같다. 한국이...
    Views29034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 7 8 9 10 11 12 13 14 15 16 ... 35 Next
/ 35

주소: 423 Derstine Ave. Lansdale., PA 19446
Tel: (215) 913-3008
e-mail: philamilal@hotmail.com

© k2s0o1d4e0s2i1g5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