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조회 수 59335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세월의_끝자락.jpg

 

 

한해가 조용히 저물어 가고 있다. 이맘때가 되면 사람은 누구나 회상에 젖는다. 이민생활이 워낙 각박해서 그럴 여유조차 없는 분들도 있겠지만 말이다. 해의 높이가 낮아진 만큼 햇빛이 방안 깊숙이 파고 들어와 좋다. 반면 그 낮아진 햇빛에 비친 산 그림자가 마당까지 들어온다. 집 주위에 선 나무 그림자도 길게 져서 둘러싼 공간은 명암이 분명하면서도 빛은 옅어졌다. 한여름 하늘을 붉고 찬란하게 물들이던 석양도 겨울기운에 생기를 잃은 듯하다. 

때 이른 폭설이 흰백색의 세계를 연출하고 특유의 찬 공기가 엄습하면서 겨울의 한복판에 들어왔음을 실감나게 한다. 나이가 들어가며 느끼는 것은 그날이 그날 같은 무료함이다. 하지만 돌아보면 1년 열두 달, 삼백예순닷새 하루라도 의미 없는 날은 없었던 것 같다. 둥근 고리에 처음과 끝이 어디 있으랴? 365일 돌아가는 나달에 처음과 끝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기준이 없으면 나달에 매듭을 지을 수 없고, 삶의 순환과 주기를 가늠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날짜와 요일을 확인하고 그렇게 한해를 달리다가 끝자락에 당도하면 묵은해를 보내는 아쉬움과 다가올 새해에 대한 뜻 모를 설레임을 가지며 보내게 된다. 따지고 보면 새해가 어디 있으며 새날이 어디 있으랴? 하지만 해가 바뀌며 어느 것 하나라도 맺고 끊고 새로 이어갈 수 있음이 다행스럽다. 내가 어린 시절에는 해와 달이 참 가깝게 느껴졌다. 달로 인해 생기는 그림자에 민감했고 달이 찼다 이지러졌다 하는 모양으로 날을 헤아리고 철을 가늠하였다. 아무런 볼 것, 들을 것도 없었지만 그때 밤은 너무도 흥미 있는 일들이 많았다.

볏 짚단 속에 들어가 ‘킥킥’거리고, 담벼락에 기대어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러다가 찾아 들어간 친구 집 건넌방에서 우리는 소박한 추억을 만들었다. 그즈음에 먹는 간식은 ‘무우’아니면 ‘고구마’가 전부였다. 창호지로 만들어진 문풍지가 조금만 틈을 내주어도 겨울바람은 매섭게 파고 들어왔다. 따뜻한 아랫목이 그래서 더 정겨웠고 우리들의 이야기는 연기처럼 피어올랐다. 지금 생각하면 무엇이 그리 재미있었는지 괘종시계가 열한번을 울려대고야 우리는 떠밀리듯 일어섰다. 시간을 멈출 수만 있다면 잡을 수 없는 바람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

어쩌다 마주치는 분들이 멈춰서서 인사를 건네온다. “목사님, 칼럼 잘 읽고 있어요.” “예, 예”하고 돌아서지만 힘이 난다. 지난주에는 해리스버그에 설교를 하러갔다. 예배 후에 인상 좋은 집사님 한분이 다가온다. “목사님, 제가 목사님 칼럼 팬이예요. 이렇게 만나뵈니 너무 반갑네요.” “아니 어떻게 이 먼 곳에서 제 글을 읽으세요?” “마트에 나가면 신문을 꼭 챙겨오거든요.” “와!” 고마웠다. 그러면서 일종의 사명감 같은 것이 올라왔다.

누구나 가슴 한켠에 아스라한 그리움 하나쯤은 있다. 그것은 향수 같은 것 일수도 있고 그리움 일 수도 있다. 애틋한 사랑 일수도 있고 저만치 떠나버린 연인에 대한 것일 수도 있다. 내 칼럼을 읽으며 사람들이 추억에 젖었으면 좋겠다. “그래 그때는 그랬지. 그래 맞아!”

까맣게 잊혀졌던 그리움을 다시 퍼 올려 주는 그런 글을 계속 쓰고 싶다. 그리움을 오래 간직한 사람일수록 맑고 깨끗한 심성을 지니고 있는 분들이 많기 마련이다. 당장 살아가는데 있어 그건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그리움과 심성을 소유한 분들이 많을수록 세상은 아름답고 마음까지 따사로와 질 것 같다. 그리움이 번져 추억이 되고 추억을 그리다 그리움으로 사무쳐오는 것을 보면 그리움과 추억은 서로 오래된 기억으로 부터 오는가보다.

새해에는 그 머무르고 싶은 이야기 속으로 더 들어가련다. 세세한 부분까지 보고 거기에 이야기와 생각을 담고 감정까지 담아 많은 분들을 행복하게 만들고 싶다. 한 해 동안 부족한 종의 글을 읽어주신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1. 새해 2020

    새해가 밝았다. 2020.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신선한 이름이다. 사람은 언제 행복할까? 우선 주어진 기본욕구가 채워지면 행복하다. 문제는 그 욕구충족이 사람마다 다 다르다는 것이요, 나이가 들수록 그 한계가 점점 넓어지고 높아진다는 것이다. 다...
    Views23616
    Read More
  2. 연날리기

    바람이 분다. 겨울이라 그런지 바람 소리가 예사롭지 않다. 앙상한 나뭇가지를 훑어대며 내는 소리는 ‘앙칼지다’라고 밖에는 표현이 안된다. 내가 어릴 때는 집이 다 창호지 문이었다. 어쩌다 자그마한 구멍이라도 생기면 파고드는 칼바람의 위력...
    Views25849
    Read More
  3. 나를 잃는 병

    세상에서 가장 끔찍하고 무서운 병은 어떤 것일까? 알츠하이머? 치매가 아닐까? 자신은 행복할지 모르지만 가족들과 지인들을 안타깝고 힘들게 만드는 병. 얼마 전 명배우 윤정희 씨가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다는 사실을 그의 부군이자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백...
    Views25736
    Read More
  4. 가정이 무너지고 있다

    정신과 창구에 비친 한국 가족 위기의 실상은 몇 가지 특징적인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고려병원 신경정신과 이시형 박사가 “우리 가족 이대로 좋은가?”라는 발표를 들여다보며 그 사실을 실감한다. 먼저는 남편이 무너지고 있다. 우리가 어릴 ...
    Views28793
    Read More
  5. 삶은 경험해야 할 신비

    어느새 2019년의 끝이 보인다. 금년에도 다들 열심히 살아왔다. 수많은 위기를 미소로 넘기며 당도한 12월이다. 이제 달랑 한 장 남은 캘린더 너머에 숨어있는 2020년을 바라본다. 산다는 것은 참 신비한 일이다. 하지만 인생을 살아갈수록 사람들은 ‘...
    Views26176
    Read More
  6. 고통의 의미

    지난 주간 충격적인 소식을 접해야 했다. 고교시절부터 우정을 나누는 죽마고우 임 목사가 뇌졸증으로 쓰러졌다는 급보였다. 앞이 캄캄했다. 지난 여름 한국에서 만나 함께 뒹굴며 지내다 왔는데. 워낙 키와 덩치가 커서 고교 시절부터 씨름을 하던 친구여서 ...
    Views27551
    Read More
  7. 민들레 식당

    민들레의 꽃말은 ‘사랑’과 ‘행복’이다. 민들레는 담장 밑이나 길가 등 어디에서나 잘 핀다. 늘 옆에 있고 친숙하며, 높은 곳보다 항상 낮은 지대에 자생한다. 잎이 필 때도 낮게 옆으로 핀다. '낮고 겸손한 꽃’ 민들레처럼...
    Views26353
    Read More
  8. 노년의 행복

    요사이 노년을 나이로 나누려는 것은 촌스러운(?)일이다. 워낙 건강한 분들이 많아 노인이라는 말을 사용하기가 송구스럽다. 굳이 인생을 계절로 표현하자면 늦가을에 해당되는 시기이다. 늙는 것이 서럽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삶의 수확을 거두는 시기가 노...
    Views26824
    Read More
  9. 최초 장애인 대학총장 이재서

    지난봄. 밀알선교단을 창립하고 이끌어오는 이재서 박사가 총신대학교 총장에 출마하였다는 소식에 접하게 되었다. 고개를 갸우뚱하였다. “대학교 총장?” 이제 은퇴를 하고 물러나는 시점인데 난데없이 총장 출마라니? 함께 사역하는 단장들도 다...
    Views27277
    Read More
  10. 그래도 살아야 한다

    지난 14일. 배우 겸 가수인 설리(최진리)가 자택에서 사체로 발견되었다. 그녀의 나이 겨우 25살. 이제 막 피어나기 시작한 청춘은 우울증을 견디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청순하고 빼어난 미모, 평소 밝은 성격의 그녀가 자살한 것은 커다란 충...
    Views28421
    Read More
  11. 가을, 밀알의 밤

    어느새 가을이다. 낯선 2019년과 친해지려 애쓰던 것이 바로 어제 같은데 겨울을 거쳐 봄, 여름이 지나가고 어느새 초록이 지쳐가고 있다. 여기저기 온갖 자태를 뽐내며 물들어 가는 단풍이 매혹적이기는 한데 애처로워 보이는 것은 내 기분 탓일까? 가을은 ...
    Views28648
    Read More
  12. 생각이 있기는 하니?

    생각? 사람들은 오늘도 생각을 한다. 아니 지금도 생각중이다. 그런데 정작 삶에는 철학도, 일관성도 없다. 그래서 누군가가 “넌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사냐?”라고 핀잔을 주면 “나도 나를 모르겠다.”고 대답을 한다. '나는 ...
    Views26431
    Read More
  13. 침묵 속에 버려진 청각장애인들

    “숨을 내쉬면서 혀로 목구멍을 막는 거야. ‘학’ 해 봐.” 6살 “별이”는 엄마와 ‘말 연습’을 하고 있다. 마주 앉은 엄마가 입을 크게 벌리고 “학”이라고 말하면 별이는 ‘하’ 아니면 &...
    Views30257
    Read More
  14. 사랑이란 무엇일까?

    오늘 우리는 왜 살고 있는가? 사랑 때문이다. 사랑을 하고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은 행복하다. 하지만 그 누구도 사랑할 수 없고,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은 죽지 못해 살아가게 된다. 사람은 사랑으로 태어난다. 한 생명이 태어나기 위해서는 사랑이 필...
    Views26273
    Read More
  15. No Image

    이름이 무엇인고?

    사람은 물론 사물에는 이름이 다 붙는다. 10년 전 고교선배로부터 요크샤테리아 한 마리를 선물 받았다. 원래 지어진 이름이 있었지만 온 가족이 마주 앉아 새로운 이름을 지어 주기로 하였다. 갑론을박 끝에 “쵸코”라는 이름이 나왔다. “...
    Views27433
    Read More
  16. 이혼 지뢰밭

    어린 시절에 명절은 우리의 꿈이었고 긴긴날 잠못자게 하는 로망이었다. 가을 풍경이 짙어진 고향산천을 찾아가는 기쁨, 집안사람들을 모두 만나는 자리, 또래 친척 아이들을 만나 추억을 만드는 동산, 모처럼 산해진미를 맛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기 때문...
    Views27364
    Read More
  17. 시각장애인의 찬양

    장애 중에 눈이 안 보이는 어려움은 가장 극한 고통일 것이다. 그러나 시각장애인 중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고 존경의 대상이 될 만한 인물들이 속속 배출된 것을 보면 고난은 오히려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는 끈질긴 내성을 키워내는 것 같다. 한국이...
    Views27642
    Read More
  18. 칭찬에 배가 고팠다

    어린 시절 가장 부러운 것이 있었다. 부친을 “아빠”라고 부르는 친구와 아빠에게 칭찬을 듣는 아이들이었다. 라디오 드라마(당시에는 TV가 없었음)에서는 분명 “아빠”라고 하는데 우리 집에서는 항상 “아부지”라고 불러...
    Views28635
    Read More
  19. 늘 푸른 인생

    한국 방송을 보다보면 나이가 지긋한 분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이 늘어나는 것을 본다. 부부가 출연하는 것이 대부분이고, 때로는 홀로 나오기도 한다. “인생살이”에 대한 진솔한 대담은 현실적 삶의 현장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나이 드신 ...
    Views28334
    Read More
  20. 핸드폰 없이는 못살아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의 손에는 핸드폰이 들려 있는 시대가 되었다. 모든 세대를 초월하여 핸드폰 없이는 사는 것 자체가 의미 없는 세상이 된 것 같다. 눈을 뜨면서부터 곁에 두고 사는 새로운 가족기기가 탄생한 것이다. 이제는 기능도 다양해져서 통화영역...
    Views32009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 7 8 9 10 11 12 13 14 15 16 ... 35 Next
/ 35

주소: 423 Derstine Ave. Lansdale., PA 19446
Tel: (215) 913-3008
e-mail: philamilal@hotmail.com

© k2s0o1d4e0s2i1g5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