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2018.06.22 14:16

야학 선생

조회 수 42607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야학.jpg

 

 

  20대 초반 그러니까 신학대학 2학년 때였다. 같은 교회에서 사역하는 김건영 전도사께서 주일 낮 예배 후 할 말이 있다.”며 다가왔다. 우리는 비어 있는 유년주일학교 예배 실 뒤편 탁자에 마주 앉았다. 용건은 나에게 야학 선생을 해 달라.”는 것이었다. 매일 사당동까지(당시 우리 집은 청량리) 학교에 다니기도 버거운데 야학까지 담당하기에는 모든 것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전도사님의 너무도 간곡한 부탁이라 거절하기도 그렇고 생각 할 여유를 달라고 했다. 며칠을 고민하다 결국 전도사님의 부탁에 응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야학이 열리는 곳은 월곡동이었다. 드디어 야학 첫 수업을 위해 출발하였다. 청량리에서 전철을 타고 성북역까지 갔다. 그곳에서 버스를 다시 타고 몇 정류장을 지나 내렸다. 당시 월곡동은 개발되기 전이라 허허벌판에 허술한 집들과 공장들이 드문드문 서있는 풍경이었다. 불편한 다리를 끌고 그것도 캄캄한 밤중에 지정한 공장을 찾아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드디어 높은 회색 담이 처진 공장에 당도했다. 기다리고 있던 선배 야학 선생의 인도를 따라 2층 교실로 들어섰다.

 

  자그마한 공간, 머리위에 켜져 있는 형광등 불빛, 그리고 책상에 앉아 있는 30여명의 학생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공장에서 일하는 공원들이었고 대부분 여공들이었다. 이내 소개를 받고 단에 섰다. 모두다 이미 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는지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나를 쳐다보았다. “제 이름은 이재철 입니다. 지금 신학대학에 다니고 있는 신학생이구요. 오늘부터 여러분들에게 음악을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인사가 끝나자 그들은 박수로 환대 해 주었고, 웃으며 자기들끼리 무어라 속삭였다.

 

  당시는 70년대 후반이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였기에 시골에서 많은 10대들이 무작정 상경을 하는 때였다. 운이 좋아 친척이 있는 친구들은 보증을 서주어 공장에 취직을 했다. 일은 엄청나게 하면서도 대부분 낮은 임금을 받고 공장에서 일하는 그들의 모습은 보기에도 안쓰러웠다. 그렇게 일을 하다 보니 공부에 대한 열의가 되살아나게 되었고, 그들의 장래를 위해 따뜻한 마음을 가진 분들이 마련해 준 공간이 야간학교였다. 검정고시 과정을 공부시키는 과정이었다. 따라서 당시 야간학교에는 나이가 든 학생들이 많이 있었다.

 

  당시 나는 23세였다. 학생들은 대부분 16살에서 20살까지였고 어떤 학생은 나의 누이 나이 정도까지 보이기도 했다. 20대 초반의 내 외모는 꽤나 매력이 있었다. 믿거나 말거나. 거기다 음악을 가르쳤으니 학생들의 인기는 얼마안가 나에게 쏠려 버렸다. 1주일에 단 한번 찾아가는 야간학교였지만 행복했다. 처음 야간학교를 찾아갈 때 코에 스며들던 월곡동 골목의 풋풋한 풀 향기를 지금도 기억한다. 음악을 가르치다보면 그들은 이론보다는 노래를 부르는 실기시간을 더 좋아했다.

 

  가끔 기타를 들고 가서 풍금과 맞춰 함께 노래를 불렀다. 분위기가 고조되면 기타를 치며 내가 독창을 했다. 음악시간은 그들의 삶의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기쁨의 시간이었다. 음악책에 나와 있는 노래를 부르며 그들은 모두 아련한 꿈을 꾸고 있었다. 이제 세월이 지나 기억이 흐릿해 졌지만 많은 시간들을 그들과 함께 지내며 꿈을 심었다. 소설 상록수(작가 심훈)의 주인공 채영신의 심정으로 대화 속에서도 소망어린 단어를 많이 구사한 것 같다. 그렇게 시작된 야학선생은 그해 가을, 10 · 26 사건이 터져 시국이 어수선해지면서 흐지부지 막을 내렸다.

 

  사람이 누리는 즐거움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노는 즐거움이고, 다른 하나는 배우는 즐거움이다. 그들은 노는 즐거움 대신 배우는 즐거움을 택했던 사람들이었다. 공부를 가르치는 동안 그들 중에는 눈으로 말하는 학생도 있었고, 노래로 말하는 학생도 있었다. 어느 하늘아래에서 누군가의 어머니로 살아가고 있을 그들의 모습이 문득 그리워진다.

 


  1. 시각장애인의 찬양

    장애 중에 눈이 안 보이는 어려움은 가장 극한 고통일 것이다. 그러나 시각장애인 중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고 존경의 대상이 될 만한 인물들이 속속 배출된 것을 보면 고난은 오히려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는 끈질긴 내성을 키워내는 것 같다. 한국이...
    Views29075
    Read More
  2. 칭찬에 배가 고팠다

    어린 시절 가장 부러운 것이 있었다. 부친을 “아빠”라고 부르는 친구와 아빠에게 칭찬을 듣는 아이들이었다. 라디오 드라마(당시에는 TV가 없었음)에서는 분명 “아빠”라고 하는데 우리 집에서는 항상 “아부지”라고 불러...
    Views30132
    Read More
  3. 늘 푸른 인생

    한국 방송을 보다보면 나이가 지긋한 분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이 늘어나는 것을 본다. 부부가 출연하는 것이 대부분이고, 때로는 홀로 나오기도 한다. “인생살이”에 대한 진솔한 대담은 현실적 삶의 현장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나이 드신 ...
    Views29739
    Read More
  4. 핸드폰 없이는 못살아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의 손에는 핸드폰이 들려 있는 시대가 되었다. 모든 세대를 초월하여 핸드폰 없이는 사는 것 자체가 의미 없는 세상이 된 것 같다. 눈을 뜨면서부터 곁에 두고 사는 새로운 가족기기가 탄생한 것이다. 이제는 기능도 다양해져서 통화영역...
    Views33713
    Read More
  5. 부부의 사랑은~

    아이들은 혼자서도 잘 논다. 그러다가 친구를 알고 이성에 눈을 뜨며 더 긴밀한 관계를 알아차리게 된다. 사춘기에 다가서는 이성은 등대처럼 영롱하게 빛으로 파고든다. 청춘에 만난 남 · 녀는 로맨스와 위안, 두 가지만으로 충분하다. 눈을 감고 내 ...
    Views28186
    Read More
  6. 장애인들의 행복한 축제

    어느새 27회를 맞이한 밀알 사랑의 캠프(25일~27일)가 막을 내렸다. 실로 역동적인 캠프였다. 마지막 날은 언제나 그렇듯이 눈물을 가득 담고 곳곳을 응시하며 다녀야 했다. 철없는 10대 Youth 친구들이 장애아동들을 돌보는 모습 자체가 감동으로 다가오기 ...
    Views32054
    Read More
  7. 쾌락과 기쁨

    사람들은 만나면 인사를 한다. “요즈음 재미 좋으세요?” 재미, 복합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한마디로 사는 맛이 있느냐는 것이다. 대답은 갈라진다. “그저, 그렇지요.” 내지는 “예, 좋습니다.” 사실 사람은 재미를 찾아 ...
    Views35214
    Read More
  8. 나에게 영성은…

    같은 인생을 살면서도 눈앞만 보고 걷는 사람이 있고, 내다보고 사는 인생이 있다. 중학교 동창 중에 희한한 친구가 있다. 남들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서울에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좋은 대학교에 가는 것을 목표로 살아가고 있을때에 미국을 품는다. 벼...
    Views31089
    Read More
  9. 밤나무 & 감나무

    나무마다 생긴 모양도 다르고 맺는 열매도 다양하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생김새가 다르듯 성향도 다 각각이다. 그것이 사람의 매력이다. 나무와 비교해 보자. 밤나무는 밤나무대로, 감나무는 나름대로 개성과 멋을 풍기며 자라고 열매를 맺는다. 밤나무는 ...
    Views32656
    Read More
  10. 죽음과의 거리

    지난 주간 우리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해야만 했다. 젊은 목회자 가정에 불어 닥친 교통사고 소식에 모두는 말을 잃었다. 얼마나 큰 사고였으면 온 식구가 병원에 실려가야했고, 그 충격으로 세 자녀 중에 막내 딸은 결국 숨을 거두고 말았다. 겨우 5살 나이에...
    Views33072
    Read More
  11. 생각의 시차

    한국의 지인에게 전화를 할라치면 반드시 체크하는 것이 있다. ‘지금, 한국은 몇시지?’ 시차이다. 같은 지구별에 사는데 미국과 한국과는 13시간이라는 차이가 난다. 여기는 밤인데 한국은 대낮이고, 한창 활동하는 낮이면 반대로 한국은 한밤중...
    Views29926
    Read More
  12. 냄새

    누구나 아침에 눈을 뜨면 냄새를 느끼며 하루를 시작한다. 날씨, 온도, 집안분위기를 냄새로 확인한다. 저녁 무렵 주방에서 풍겨 나오는 냄새를 맡으며 식탁의 기쁨을 기대한다. 아내는 음식솜씨가 좋아 움직이는 소리만 나도 기대가 된다. 나는 계절을 냄새...
    Views32018
    Read More
  13. 야매 부부?

    지금은 오로지 장애인사역(밀알)을 하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목회를 하면서 가정 사역을 하며 많은 부부를 치유했다. 결혼을 하고 마냥 행복했다. 먼저는 외롭지 않아서 좋았고 어여쁘고 착한 아내를 만났다는 것이 너무도 신기하고 행복했다. 하지만 허니문이...
    Views30610
    Read More
  14. 끝나기 전에는 끝난 것이 아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평탄한 길만 가는 것이 아니다. 험산 준령을 만날 때도 있고 무서운 풍파와 생각지 않은 캄캄한 밤을 지날 때도 있다. 그런 고통의 시간을 만날 때 사람들은 좌절한다. “이제는 끝이라”고 생각하고 포기 해 버린다. 이 땅에는 성...
    Views31290
    Read More
  15. 상큼한 백수 명예퇴직

    부지런히 일을 하며 달리는 세대에는 쉬는 것이 작은 소망이다. ‘언제나 일에서 자유로워져서 쉴 수 있을까?’ 젊은 직장인들의 한결같은 하소연이다. 해서 내 오랜 친구는 50에 접어들며 이런 넋두리를 했다. “재철아, 난 일찍 은퇴하고 싶...
    Views30932
    Read More
  16. 봄날은 간다

    봄은 보여서 봄이다. 겨울의 음산한 기운에 모든 것이 눌려 있다가 대기에 따스한 입김이 불기 시작하면 곳곳에서 생명이 움트기 시작한다. 숨어있던 모든 것들이 서서히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다. 실로 봄은 모든 것을 보게 한다. 아지랑이의 어른거름이 아름...
    Views31693
    Read More
  17. 어린이는 "얼인"이다!

    5월은 가정의 달이요, 5일은 어린이 날이다. “어린이날”을 손꼽아 기다리던 때가 있었다. 어린이날은 왠지 모든 면에서 너그러웠기 때문이다. 어른들도 야단치는 것을 그날만은 자제하는 듯 했다. 화려하진 않았지만 어린이날은 우리에게 꿈을 주...
    Views33028
    Read More
  18. 장모님을 보내며

    수요일 오후 급보가 날아들었다. 근간 몇 년 동안 숙환으로 고생하시던 장모님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것이다. 난감한 것은 월요일에 중요한 행사를 앞두고 있었다. 장모님이기에 한국에 나가긴 해야 하는데 너무도 부담스러웠다. 월요일 뉴욕에서 열리는 행...
    Views32406
    Read More
  19. No Image

    아빠, 내 몸이 할머니 같아

    장애인사역을 하면서 가장 가슴이 아플 때는 희귀병을 앓는 장애인을 만날 때이다. 병명도 원인도 모른 채 고통당하는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와 가족들은 커다란 멍에를 지고 가는 듯 한 고통을 감내해야만 한다. 2개의 희귀질병 앓고 있는 김새봄 양. 대학입...
    Views31173
    Read More
  20. 혹시 중독 아니세요?

    사람은 누구나 무엇엔가 사로잡혀 산다. 문제는 “얼마나 바람직한 것에 이끌려 사느냐?” 하는 것이다. 사로잡혀 사는 측면이 부정적일 때 붙이는 이름이 있다. 바로 중독이다. 중독이란 말이 들어가면 어떤 약물, 구체적인 행동을 통제할 수 없어...
    Views33123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 8 9 10 11 12 13 14 15 16 17 ... 35 Next
/ 35

주소: 423 Derstine Ave. Lansdale., PA 19446
Tel: (215) 913-3008
e-mail: philamilal@hotmail.com

© k2s0o1d4e0s2i1g5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