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조회 수 50267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김종수 목사.jpg

 

 누구에게나 잊지 못할 인연이 있다. 한 순간, 한 마디의 말, 한 사람이 인생전반에 은은한 잔영으로 남아있게 마련이다. 어느 날 문득 삶을 되돌아보면 말로 표현하기 힘든 그 무언가가 끊임없이 나에게 에너지를 주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고등학교 3학년, 예비고사가 끝난 직후 3을 위한 부흥회”(미션스쿨)가 열렸다. 강사는 포스가 남달랐다. 희끗희끗한 머리에 까만 두루마기를 입고 등단하셨는데 새하얀 동정은 목사님의 자그마한 얼굴을 돋보이게 했고, 독립운동가 같은 강렬한 인상으로 분위기를 압도하였다.

 

 약간은 허스키한 목소리가 답답함을 느꼈지만 점차 시간이 지나며 그분의 설교는 고3들의 가슴을 파고들기 시작하였다. 성함은 김종수 목사님태능 근처 영세교회를 담임하고 계셨다. 그 분은 목사님의 아들이었다. 곱게 자라던 그는 사춘기에 접어들며 비뚤어지기 시작하였고, 급기야 신앙을 버리게 된다. “연희전문학교”(, 연세대학교)에 입학을 하고 응원단장을 맡으면서 그는 실로 기고만장한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

 

 그렇게 한창 세상길을 가고 있던 종수에게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진다. 어머니가 암에 걸려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는 전갈이었다. 하지만 그는 어머니를 돌아볼 여유조차 없이 향락에 젖어있었다. 결국 결정적인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한 이후에야 집을 생각하게 된다. 어머니를 찾아 향한다. 그의 집은 과수원 한복판에 있었다. 배꽃이 만발한 동산을 지나 싸릿문을 열고 마당에 들어서자 어머니의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아파, 너무 아파, 주님, 주님!” 가슴이 저며 왔다. 방문을 살며시 열자 어머니는 힘겹게 고통을 참아내며 돌아누워 계셨다.

 

 “어머니, 저예요. 종수가 왔어요!” 놀란 어머니가 힘없는 눈동자로 아들을 쳐다본다. “종수가 왔다구요.” “, 아들아 네가 왔구나! 내가 너를 얼마나 기다렸는데.” 종수가 다가가 어머니를 안는다. 뼈만 앙상하게 남은 몸이 닿아오자 아들은 오열한다. “어머니, 용서하세요. 잘못했어요. 저를 용서해 주세요.” 그때 어머니가 아들의 얼굴을 만지며 입을 연다. “얘야, 괜찮아. 다 모르고 그랬는걸 뭐.” 이 한마디에 아들은 통곡하며 방을 뒹군다. 결국 어머니는 아들의 품안에서 숨을 거둔다. 그는 목사가 되어 배꽃동산에 교회를 짓고 목회를 하게 된다.

 

 부흥회 둘째 날, 신앙부장인 내가 사회를 맡게 되었다. 설교가 끝나갈 무렵, 강사 목사님은 제가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고 싶습니다. 오늘 사회를 보는 학생이 여러분을 대표하여 제 기도를 받도록 하겠습니다.” 당황하며 단에 오르자 목사님은 성경책을 펼치더니 오른 손을 성경에 올려놓으라.”고 하셨다. 나는 그렇게 축복기도를 받았고 놀랍게도 훗날 목사가 되어 성직의 길을 가게 된다. 그 한순간의 기도가 나를 이끌어 갈 줄이야.

 

 그렇게 세월이 흘러가고 1994년 여름, <수동기도원>으로 전교인수련회를 가게 되었다. 밤늦게까지 설교를 하고 교인들을 위해 기도를 하다 보니 자정이 훨씬 넘어갔다. 배정받은 <목사관>에 들어갔다. 시즌이 피크여서인지 내 방에 누군가가 잠을 자고 있었다. 기도원 원목에게 이미 들은 바라 더듬거리며 방에 들어서는 순간 어슴프레 불빛에 비춰진 얼굴을 보고 깜짝놀랐다. 고교시절 단에 섰던 그 목사님이 그곳에 누워계셨다. 인기척에 눈을 뜨신 목사님은 그리도 그리던 김종수 목사님이셨다. “아니, 목사님. 웬일이십니까?”

 

 놀란 것은 김 목사님이셨다.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 인사를 하니? 그것도 새벽 2시에. 그분은 나를 기억하지 못했다. 설명을 듣고서야 얼마나 반가워하시던지? 이후 우리 가족은 종종 목사님 댁에 드나들며 사랑을 받았다. 우리가 도착할라치면 이미 아파트 입구까지 나와 서계셨다. “형님, 어서 오구려!” 세상에 어리디 어린 나에게 형님이라니? 그분은 누구든 그렇게 섬기며 멋지게 사셨다. 마지막 남긴 어머니의 말 한마디를 사랑과 섬김으로 승화시키셨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목사님의 목소리와 특유의 제스처는 내 가슴에 깊이 새겨있다. 이제 한해의 말미이다. 부족하다. 실수가 많다. 돌이켜보면 후회뿐이다. 그런 우리를 향해 주님은 말씀하신다. 얘야, 괜찮아. 다 모르고 그랬는걸 뭐.”


  1. 겨울만 있는 것이 아니다

    봄이 성큼 다가서고 있다. 미주 동부는 정말 아름답다. 무엇보다 사계절이 뚜렷한 것이 커다란 매력이다. 서부 L.A.를 경험한 나는 처음 필라델피아를 만났을 때에 숨통이 트이는 시원함을 경험했다. 계절은 인생과 같다. 푸릇푸릇한 봄 같은 시절을 지내면 ...
    Views33965
    Read More
  2. 가위, 바위, 보 인생

    누구나 살아오며 가장 많이 해 온 것이 가위 바위 보일 것이다. 누가 어떤 제의를 해오던 “그럼 가위 바위 보로 결정하자”고 손을 내어민다. 내기를 하거나 순서를 정할 때에도 사람들은 손가락을 내어 밀어 가위 바위 보를 한다. 모두를 승복하...
    Views36593
    Read More
  3. 절단 장애인 김진희

    인생을 살다보면 벼라 별 일을 다 겪게 된다. 영화나 드라마에나 나올법한 일이 현실로 닥쳐올 때에 사람들은 흔들린다. 그것도 불의의 사고로 뜻하지 않은 장애를 입으면 당황하고 좌절한다. 나처럼 아예 갓난아이 때 장애를 입은 사람은 체념을 통해 현실을...
    Views34227
    Read More
  4. 별밤 50년

    우리는 라디오 세대이다. 당시 TV를 소유한 집은 부유의 상징일 정도로 드물었다. 오로지 라디오를 의지하며 음악과 드라마, 뉴스를 접하며 살았다. 내 삶을 돌아보면 가장 고민이 많았던 때가 고교시절이었던 것 같다. 그때 다정한 친구처럼 다가온 것이 심...
    Views31812
    Read More
  5. 아이가 귀한 세상

    우리가 어릴 때는 아이들만 보였다. 어디를 가든 아이들이 바글바글했다. 한 반에 60명이 넘는 학생이 오밀조밀 앉아 수업을 들어야만 하였다. 복도를 지날 때면 서로를 비집고 지나갈 정도였다. 그리 경제적으로 넉넉할 때가 아니어서 대부분 행색은 초라했...
    Views36199
    Read More
  6. 동화처럼 살고 싶다

    사람은 누구나 가슴에 동화를 품고 산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평생 가슴에 담고 싶은 나만의 동화가 있다. 아련하고 풋풋한 그 이야기가 있기에 사람은 나이가 들어도 늙지 않는다. 나이가 들면 저절로 철이 나고 의젓한 인생을 살줄 알았다. 하지만 나이...
    Views33254
    Read More
  7. 환상통(幻想痛)

    교통사고나 기타의 질병으로 신체의 일부를 절단한 사람들에게 여전히 느껴지는 통증을 환상통이라고 한다. 이미 절단되었기에 통증은 사라졌을 법한데 실제로 그 부위에 통증이 나타나는 것이다. 통증뿐 아니라 가려움증도 있고 스멀거리기도 한단다. 절단 ...
    Views38459
    Read More
  8. 종소리

    세상에 모든 존재는 소리를 가지고 있다. 살아있는 것만이 아니라 광물성도 소리를 낸다. 소리를 들으면 어느 정도 무엇인지 알아차리게 되어 있다. 조금만 귀기우려 들어보면 소리는 두 개로 갈라진다. 무의미하게 나는 소리가 있는가하면 가슴을 파고드는 ...
    Views36644
    Read More
  9. 누구나 가슴에는 자(尺)가 들어있다

    사람들은 다 자신이 공평하다고 생각한다. 누구보다 의롭고 정직하게 산다고 자부한다. 사건과 사람을 만나며 아주 예리하고 현란한 말로 결론을 내린다. 왜 그럴까? 성정과정부터 생겨난 자신도 모르는 자(尺) 때문이다. ‘왜 저 사람은 매사에 저렇게 ...
    Views39105
    Read More
  10. 땅이 좋아야 한다

    가족은 토양이고 아이는 거기에 심기는 화초이다. 토양의 질에 따라 화초의 크기와 향기가 달라지듯이 가족의 수준에 따라 아이의 크기가 달라진다. 왜 결혼할 때에 가문을 따지는가? 집안 배경을 중시하는가? 사람의 성장과정이 너무도 중하기 때문이다. 미...
    Views37456
    Read More
  11. 목사님, 다리 왜 그래요?

    어린아이들은 순수하다. 신기한 것을 보면 호기심이 발동하며 질문하기 시작한다. 아이는 솔직하다. 꾸밈이 없다. 하고 싶은 말을 거리낌 없이 내뱉는다. 상황과 분위기에 관계없이 아이들은 속내를 배출한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이 무섭다. 한국에서 목회를 ...
    Views35601
    Read More
  12. 가상과 현실

    고교시절 가슴을 달뜨게 한 노래들이 멋진 사랑에 대한 로망을 품게 했다. 70년대 포크송이 트로트의 흐름을 잠시 멈추게 하며 가요판세를 흔들었다. 템포가 그리 빠르지 않으면서도 서정적인 가사는 청춘의 발걸음을 멈추게 만드는 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었...
    Views38927
    Read More
  13. 여자가 나라를 움직일 때

    내가 결혼 했을 즈음(80년대) 대부분 신혼부부들의 소망은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낳아 부모님께 안겨드리는 것이었다. 이것은 당시 최고 효의 상징이었다. 그런 면에서 나는 딸 둘을 낳으면서 실망의 잔을 거듭 마셔야 했다. 모시고 사는 어머니의 표정은 서...
    Views36904
    Read More
  14. 백년을 살다보니

    새해 첫 KBS 인간극장에 철학교수 김형석 교수가 등장했다. 평상시 즐겨보는 영상은 아니지만 제목이 눈에 들어왔고, 평소 흠모하던 분의 다큐멘터리이기에 집중해서 보았다. 김 교수는 이미 “백년을 살다보니”라는 책을 97세에 집필하였다. 이런...
    Views35499
    Read More
  15. No Image

    <2019년 첫 칼럼> 예쁜 마음, 그래서 고운 소녀

    새해가 밝았다. 2019년 서서히 항해를 시작한다. 짙은 안개 속에 감취어진 미지의 세계를 향해 인생의 노를 젓는다. 돌아보면 그 노를 저어 온지도 꽤나 오랜 세월이 지나간 것 같다. 어리디 어린 시절에는 속히 어른이 되고 싶었다. 그만큼 어른들은 할 수 ...
    Views42977
    Read More
  16. No Image

    새벽송을 그리워하며

    어느새 성탄을 지나 2018년의 끝이 보인다. 기대감을 안고 출발한 금년이 이제는 과거로 돌아갈 채비를 서두르고 있는 것이다. 지난 토요일(22일) 첼튼햄 한아름마트 앞에서 구세군남비 모금을 위한 자그마한 단독콘서트를 가졌다. 내가 가진 기타는 12줄이다...
    Views36872
    Read More
  17. No Image

    월급은 통장을 스칠 뿐

    서민들에게 월급봉투는 생명 줄과 같다. 애써 한 달을 수고한 후에 받는 월급은 성취감과 새로운 꿈을 안겨준다. 액수의 관계없이 월급봉투를 받아드는 순간의 희열은 경험해 본 사람만 안다. 세대가 변하여 이제는 온라인으로 급여를 받는다. 편리할지는 모...
    Views37419
    Read More
  18. No Image

    “오빠”라는 이름의 남편

    처음 L.A.에 이민을 와서 유학생 가족과 가까이 지낸 적이 있다. 신랑은 남가주대학(U.S.C.)공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었고, 세 살 된 아들이 하나 있었다. 아이 엄마는 연신 남편을 향해 “오빠”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었다. 지금과 달라서 그때...
    Views39560
    Read More
  19. No Image

    영웅견 “치치”

    미국에 처음 와서 놀란 것은 미국인들의 유별난 동물사랑이다. 오리가족이 길을 건넌다고 양쪽 차선의 차량들이 모두 멈추고 기다려주는 장면은 감동이었다. 산책하는 미국인들의 손에는 반드시 개와 연결된 끈이 들려져있다. 덩치가 커다란 사람이 자그마한 ...
    Views38675
    Read More
  20. No Image

    행복은 어디에?

    사람은 누구나 행복을 목말라 하며 살고 있다. 저만큼 나아가면 행복할 것 같다. 하지만 그곳에 가도 그냥 그렇다. 과연 행복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누가 가장 행복한 사람일까? 과거에는 주로 경제적인 면에서의 결핍이 사람의 행복을 가로채 갔다. 맛있는 ...
    Views41800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 35 Next
/ 35

주소: 423 Derstine Ave. Lansdale., PA 19446
Tel: (215) 913-3008
e-mail: philamilal@hotmail.com

© k2s0o1d4e0s2i1g5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