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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22 22:18

박첨지 떼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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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첨지.jpg

 

 내가 어린 시절에는 볼거리가 거의 없었다. 따라서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들에게는 손에 잡히는 모든 것이 장난감이었다. 학교를 오가며 논길에 들어서면 거의 모든 것을 훑고 지나다녔다. 강아지풀을 잡아채어 입에 물고 다니는 것으로 시작하여 막 피어나는 도라지꽃을 터뜨리는 재미. 잠자리, 매미는 물론 개구리를 잡아 다양한(?) 방법으로 가지고 놀았다. 이제 막 밑둥에 푸른빛을 띄며 익어가는 ‘무’는 우리들에게는 더할 나위없는 최고의 간식이었다. 강변에 깔려있는 땅콩과 참외밭, 수박밭은 좋은 표적이었다. 교문을 나서며 발견한 깡통을 이리저리 차며 집에까지 몰고 올 정도로 아이들은 놀이에 목말라했다.

 

 전기가 없던 시절이었기에 해가 뜨면 일어나 움직이고 해가 지면 잠자리에 들어야 했다. 이장 집에서 연결한 라디오 스피커에서는 오로지 KBS 국영방송만 울려 퍼졌다. 단조롭고 딱딱한 내용이었지만 사람들은 ‘지직’거리며 들려오는 방송내용에 울고 웃었다. 어린 우리들이 좋아하던 것은 오후 6시에 나오는 “국군의 방송”이었다. 씩씩한 군가로 시작하다가 연속극이 나오는데 전우애가 물씬 풍길 뿐만 아니라 전투장면에 터지는 폭탄과 총소리에 악동들은 매료되었다. 방송을 듣지 않으면 학교에 가서 대화에 낄 수 없기에 항상 줄거리를 꾀고 있어야만 했다.

 

 그러다가 만난 것이 “박첨지 떼루아!”라는 인형극이었다. 기억이 희미하지만 동네에는 달변에 손재주가 뛰어난 한분이 계셨다. 동네사람들에게는 조금 “괴짜”로 취급을 당했던 것 같다. 누가 뭐라고 하던지 그분은 매일 나무 인형을 깎으며 공연을 준비하셨다. 그분이 개발을 한 것인지? 아니면 전승되어 온 것인지는 모르지만 “박첨지 떼루아!”가 공연될 때면 어머니는 나를 대동하고 구경을 가셨다. 커다란 마당에 사람들이 모이면 앞쪽에 쳐진 천막위로 인형들이 떠오르며 극은 시작된다.

 

 천막 뒤에서는 그분과 변사들이 숨어 대사를 이어가는 “박첨지 떼루아!”는 볼거리가 없던 동네사람들에게 대단한 반응을 일으켰다. 잘 다듬어지거나 고운 모양의 인형이 아니었다. 투박하면서도 우스꽝스러운 모양이었다. 그 나무 인형들이 번갈아 나와 변사들의 대사에 맞추어 ‘기우뚱’거리며 반응을 한다. 한창 공연을 하다가 “박첨지 떼루아!”하고는 옆의 인형에 박치기를 하면 다른 인형이 ‘쏙’ 들어가는데 그 모습이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모른다.

 

 내용은 거의 ‘권선징악’(勸善懲惡)이었고 그 당시 “박첨지 떼루아!”는 서민들의 애환을 달래주는 큰 역할을 했다. “박첨지 떼루아!” 공연이 끝나면 아이들은 한동안 그 흉내를 내며 다녔다. “박첨지 떼∽루∽아!”하고는 다른 친구의 머리를 박았다. 그 모습에 아이들은 또한번 자지러진다. 얼마 후 우리는 아버지의 인사이동으로 “서종”으로 이사를 한다. 언제나 그랬듯이 부지런히 친구를 사귀고 부모님이 집안일로 포천에 가신 날. 나는 아이들을 집으로 불러보았다. 어느새 안방은 아이들로 가득차고 “박첨지 떼루아!” 첫 공연이 시작되었다.

 

 각본을 내가 직접 쓰고 인형대신 아이들을 지도하여 연극을 준비했다. 막은 한창 유행하던 국방색 담요 끝에 줄을 매어 사용했다. 공연이 시작되며 아이들은 “재미있다.”고 배꼽을 잡았다. 그날 공연은 대성공이었다. 마지막에 특유의 억양을 넣어 “박첨지 떼∽루∽아!”를 합창하며 연극은 막을 내렸다. 그 끼와 재능은 젊은 전도사 시절, 교회 중고등부를 지도하며 “문학의 밤”을 진행하며 빛을 보았고 지금도 “밀알의 밤”을 연출하며 도움이 되고 있다.

 

 나는 어린 시절에 장인(匠人)을 보았다. 주위의 시선과 평판을 묵묵히 견뎌내며 “박첨지 떼루아!” 공연을 진행하는 그분은 거인이었다. 세월이 흐르며 그분의 소식이 궁금해졌다. 언뜻 들리는 소문에 그분은 “인간문화재”로 지정되어 <한국민속촌>에서 공연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역시! 한 우물을 파던 어르신의 모습이 아스라이 그려진다.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고, 게다가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 있는 것을 추구하는 사람이 장인이요. 거인이다. 게다가 내가 하는 일을 통해 많은 사람이 행복해 진다면 더할 나위없는 값진 인생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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