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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03 13:45

맥도날드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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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 할머니.jpg

 

 

 인생은 참으로 짧다. 하지만 그 세월을 견디는 순간은 길고도 지루하다. ‘희희락락’하며 평탄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은 드물다. 반면 ‘기구하다.’고 표현할 정도로 험난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일명 ‘맥도날드 할머니’로 불리우며 유명세를 탔던 한 여인이 있다. 본명은 “권하자.” 일찍이 성공한 목재사업가의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공주 대접’을 받으며 살았다. 어릴 적부터 말수가 적은 반면 자존심도 강했다. 남보다 우월의식이 강해서인지 친구도 없이 스스로 방에 갇혀 살다시피 했다.

 

 소녀는 공부를 잘했다. 한국외국어대 불문과를 졸업한 후에는 들어가기 어렵다던 외무부에서 근무할 만큼 수재로 불렸다. 지적이고, 미모까지 뛰어났으며, 학창시절에는 ‘메이퀸’으로 불릴 정도로 친구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샀다. 하지만 이런 삶이 그녀의 인생에는 그림자를 드리우는 악재로 작용을 했다. 늘상 부모의 그늘에서 살다보니 자연스럽게 그녀는 독신으로 나이가 들어갔다. 평생 자신의 우산이 되어 줄줄 알았던 부모가 세상을 떠나면서 여인은 사막에 홀로 남겨진 것 같은 절박함에 허덕인다.

 

 남은 가족들은 미국으로 이민을 가거나, 서로 연락이 끊기면서 고립된 삶이 시작되었다. 더욱이 직장을 그만두고, 혼자 갇혀 지내면서 생활도 궁핍해져 갔다. 나이는 들어갔지만 수중에 돈은 없었고, 또 돈을 벌 생각도 안 했다. 할머니는 결국 길거리를 떠도는 ‘걸인’이 되고 말았다. 그럭저럭 살아가던 할머니에게 추운 겨울이 닥쳐온다. 할머니가 찾은 곳은 24시간 영업을 하는 ‘맥도날드 매장’이었습니다.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사 근처의 ‘맥도날드’는 그래서 그녀의 도피처가 되었다.

 

 그때가 2001년이었고, 10년 넘게 그곳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지냈다. 이곳에서 매일 밤 9시에 나타나 새벽 4시까지 눕지도 않고, 새우잠을 자면서 길에서 주운 신문을 읽고, 성경을 보는 것이 전부였다. 졸리면 엎드려 잘만도 하건만 할머니의 모습은 흔들림이 없었다. 다른 것은 먹지 않고, 커피 한 잔으로 끼니를 때웠다. 이런 모습을 누군가 지켜보다가 방송에 제보를 했다. 할머니의 이야기는 공중파(TV)를 통해 소개되었고 일약 유명세를 타게 된다. 시청자들의 눈에는 유창한 영어와 교양 있는 말투를 쓰는 할머니가 예사롭지 않았다. 과거의 이력이 나오자 ‘맥도날드 할머니 된장녀’라는 별명까지 얻게 된다.

 

 방송이 나가자 할머니의 지인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미 기억 속에서 사라졌던 과거의 동료, 여고 동창생, 지인들이 연락을 해 왔고, 소식이 끊겼던 반가운 손님들의 연이은 방문에 할머니는 매우 행복해 했다. 당시 외무부 후배들은 그녀를 보며 “어쩌면 이렇게 변할 수 있냐?”고 놀라움을 표한다. 사람들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노후를 편안하게 보낼 수 있도록 거처와 일자리를 제공하겠다.”는 제의를 한다. 그러나 할머니의 반응은 ‘No’였다. “내 방식대로 남은 생을 이어가겠다.”는 것이었다.

 

 언론에 자주 노출되던 할머니는 어느 날 조용히 맥도날드 매장을 떠난다. 그렇게 간간히 소식이 들려오며 세월이 흘러간다. 사람들에게도 할머니는 서서히 잊혀져 갔다. 그러다가 돌연 할머니의 ‘부음(訃音)’이 들려왔다. 향년 73세. 송파구 거여동에 있는 ‘송파새희망요양병원’에서 심폐정지로 숨을 거두고 만 것이다. 아마도 할머니는 요양원에 오기 전까지 여전히 거리를 전전했던 것 같다. 길거리에 쓰러진 할머니를 발견하여 병원에 옮겼을 때에는 이미 암이 복막에까지 퍼져있었고, 요양원으로 옮겨져 세상의 마지막을 보냈다. 가족과도 연락이 닿지 않아 할머니는 결국 ‘무연고 사망자’로 처리돼 한 줌의 재로 변하고 만다.

 

 “살아간다.”는 것은 소통을 의미한다. 일면식도 없는 ‘맥도날드 할머니’의 생을 보며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 곁에 소통할 수 있는 단 한사람만 있었더라도 할머니는 보다 의미 있고 정감 넘치는 삶을 살지 않았을까? 우리 주위에는 또 다른 ‘맥도날드 할머니’가 있을지도 모른다. 돌아보자, 그리고 다가가자. 들어주고 살려보자. 이것이 내가 살아야할 또 하나의 이유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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