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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26 16:23

여름을 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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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현계곡.jpg

 

 

 지난 6월 어느 교회에서 주일 설교를 하게 되었다. 예배를 마치고 친교시간에 평소 안면이 있는 집사님과 마주앉았다. 대화중에 “다음 주에 한국을 방문한다.”는 말을 듣자마자 나도 모르게 외쳤다. “여름에 한국엘 왜가요?” 잠시 당황하던 그분의 표정을 기억한다. 작년 여름, 공교롭게도 7월 중순부터 8월 중순까지 한국 일정이 잡혔다. 여름 내내 한국에서 집회를 인도하며 지내야 했다. 찌는 듯한 더위, 이어지는 폭우, 답답한 공기가 나를 조여 왔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지만 고국에서의 여름은 정말 곤혹스러웠다.

 

 왜 그렇게 지난 여름을 힘겨워했을까? 가만히 돌아보니 환경의 차이였다. 내가 주로 머물던 처제아파트에는 분명히 에어콘이 있다. 그런데 거실에 위치해 있다. 낮에는 그렇다 치더라도 밤에는 이미 장성해 가는 여 조카들이 있기에 문을 열고 잘 수가 없었다. 게다가 전기누진세 때문에 밤새 풀가동하지도 않는다. 미국에서야 시원한 내차를 몰고 기분 좋게 다니지만 한국에 가면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해야만 한다. 택시를 타면 그래도 나은 편이지만 버스나 전철을 이용하려면 한없이 걸어야 했다. 비에 젖은 듯 온몸에 땀이 흐른다. 그런 면에서 보면 미국은 천국이다.

 

 나이가 들어가며 여름이 싫어진다. “덥다.”는 것 자체가 정이 가질 않는다. 돌아보면 그 여름을 기다리던 때가 있었다. 어린 시절에 여름 방학은 꿈 자체였다. 우선은 학교를 안 가도 되어 좋았고, 눈만 뜨면 물가에서 친구들과 어울리며 하루가 갔다. 경기도 서종은 여름이면 떠오르는 나의 꿈동산이다. 본 것은 있어서 아이들은 집에서 된장, 고추장을 챙겨 “철엽”을 떠났다. 계곡물을 누비며 반도로 고기를 잡고 어설픈 실력으로 매운탕을 끓였다. 누런 모시에 담아온 보리밥과 함께 한술 입에 떠 넣으면 꿀맛이었다. 숟가락으로 그릇을 두드리며 메아리를 벗 삼아 노래를 불렀다. 뭐가 그리도 재미있었는지?

 

 고교시절 여름은 캠핑으로 한 달을 보냈다. 코펠과 캠핑용구를 챙겨 주말이면 여행을 떠났다. 통기타를 두드리며 또 다른 일행을 만들고 용문산, 치악산, 간현, 무량수전이 있는 경북 ‘풍기’까지 쏘다녔다. 그중에서도 “이름 모를 소녀”를 만났던 간현에서의 추억은 지금도 입가에 미소가 번지게 한다. 그리 넓지도, 그렇다고 좁지 않은 푸르른 계곡, 솟아오른 산세가 해를 일찍 지게 만들었지만 석양빛을 바라보며 불러대던 ‘포크송’의 음률은 그 봉우리 허리를 타고 “에코”효과를 만들어 주며 캠핑 족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주었다. 그 덕에 김치를 비롯한 반찬을 공수 받으며, 그 여름밤을 추억으로 수놓아 갈 수 있었다.

 

 금년 여름은 몹시도 덥고 길게 이어지고 있다. 지구 온난화 현상으로 역대 최고치를 갈아치우며 지구곳곳에서 수은주는 치솟고 있다. 이제 여름은 기다리기보다 견뎌내야 하는 나이에 와있다. 하기야 “삼포세대”(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 “오포세대”(삼포+인간관계, 주택 구입을 포기)를 사는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여름이 싱그럽지만은 않을 듯싶다. 사람들은 말한다. “왜 이렇게 더워?” 아니, 여름이니까 더운 것 아닌가? 여름은 더워야 한다. “왜 이리 사는 것이 힘들어?” 그래야 청춘이다. 그래서 인생이다.

 

 이영복의《할매의 봄날》이란 시가 있다. “여름은 너무 덥다. 해도 길고 일도 많아서 쉴 사이 없이 바쁘다. 그래도 여름이 없다면 큰일이다. 뜨거운 햇볕 덕분에 벼도 과일도 잘 큰다. 더위와 많은 일 속에 정신없이 살며 가을을 기다린다.” 여름은 더워야 한다. 아니 더우니까 여름이다. 여름이 덥지 않으면 심각한 상황이 벌어진다. 덥기 때문에 사람들은 시원함을 사모한다. 숲속, 강가, 나무그늘을 찾아 시원한 바람을 가슴에 담는다. 내가 어릴 때는 더위를 안 먹으려고 벼라별 방법을 다 쓰며 살았다.

 

 여름은 결코 길지 않다. 견디다보면 가을이 성큼 다가온다, 특유의 향기를 안고 말이다. 인생의 아픔도 잠깐이다. 고통이 지나면 환희가 찾아온다. 풍성한 가을 인생이 당신에게 다가오고 있다. 어차피 감내해야 한다면 즐겨야 한다. “여름아, 참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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