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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가장 흔한 인쇄술을 ‘가리방’이었다. 아니 다른 대안이 없는 유일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가리방’은 일본 말인 듯 하고 사실은 “등사기”라고 해야 맞는 어법이다. 하지만 글의 맛이 살리기 위해 ‘가리방’이라고 하고 싶다. 그러고 보니 우리세대는 한글인지 일본어인지도 모르고 자란 것 같다. 도시락은 ‘벤또’, 젓가락은 ‘와루바시’, 단무지는 ‘닥광’, 양파는 ‘다마내기’라고 했으니까. 지금도 급하면 그런 말이 튀어나오는 것을 보면 어린 시절에 받은 교육배경이 정말 무서운 것을 느낀다.

우리세대는 ‘가리방 세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교를 졸업할 때까지 가리방 시험지로 학력평가를 받았다. 중간고사나 학기말 고사 시간에 감독관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와 시험지를 공개하고 배부를 하면 그리 싫지 않은 잉크냄새가 코끝으로 올라왔다. 그러던 내가 가리방과 친숙해지기 시작한 것은 섬기는 교회에 주일학교 교사를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신앙심도 깊지 못하고 성경지식도 초라한 나는 교회에서 주일학교 교사를 맡은 날부터 특유의 열정을 불살랐다. 그러다가 친해진 것이 “구자윤”이었다.

함께 중고등부를 다녔지만 주일예배만 겨우 참석하던 나는 교회아이들과 친해질 기회를 갖지 못했다. 그러다가 함께 교사를 하게 되면서 자윤이와 나는 급작스럽게 가까워졌다. 자윤이는 워낙 내성적이어서 말수가 적었고 수줍음을 많이 타는 아이였다. 반면에 나는 전형적이 외향적 성격이었다. 그런 우리가 가까워진 계기는 ‘가리방’이었다. 교회 주일학교에서는 매학기(분기:3개월)마다 성경기말고사를 치르게 된다. 각 학년을 대표하는 선생님이 시험문제를 출제하면 전도사님이 인쇄를 위해 원본을 넘겨준다. 가리방 인쇄의 책임이 신참교사인 자윤이와 나에게 주어지게 되었다.

인쇄를 위해서는 우선 기름종이에 철필로 글씨를 써야한다. 이 과정을 ‘가리방’이라고 했다. 자윤이는 글씨도 여성스러웠다. 오밀조밀하고 정자체로 예쁘게 글씨를 긁어나갔다. 나는 굳이 표현하면 궁서체의 글씨체를 구사하였고 어릴 때부터 아버지는 나에게 “남자는 항상 글씨를 크고 ‘꾹꾹’ 눌러서 써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그것이 체질이 되어 어떨 때는 연필이 부러지고 공책이 찢어지는 일이 부지기 수였다. 경험이 있는 분은 아시겠지만 얇디얇은 기름종이에 철필로 글씨를 쓰는 것은 힘을 주어서는 절대 안 된다. 잘못하면 구멍이 뚫리는데 이것이 인쇄를 할 때면 번져나가 엉망이 되기 때문이다.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철판에 기름종이를 얹어놓고 시험문제를 옮겨 적는 일을 위해 나와 자윤이는 노심초사를 거듭했다. 그 작업이 끝나면 이제는 본격적인 가리방 인쇄를 시작해야 한다. 기계에 시험문제가 담겨있는 기름종이를 붙이고 덮은 후에 로울러에 잉크를 묻혀 살짝 문질러 주어야 한다. 잉크를 너무 많이 묻히면 글씨가 뭉그러지고 엉망이 된다. 잉크가 적으면 군데군데 얼룩이 지면서 인쇄가 깔끔하게 나오질 않는다. 그러다보니 여기저기 잉크가 묻고 나중에는 얼굴은 물론이고 옷에까지 잉크가 묻는 것은 우리가 당연히 감내해야 할 일이었다.

얼굴에 잉크가 묻어 익살스런 모습이 되어가는 서로를 바라보며 우리는 웃어댔고 우정은 그만큼 깊어갔다. 교회 행사가 있을 때면 우리는 그렇게 밤을 새워가며 일을 해야만 하였다. 한밤중까지 일을 끝내놓고 동네 구멍가게에서 친구와 마시는 ‘칠성사이다’는 꿀맛이었다. 어느덧 세월이 가고 우리는 이제 잘 만나지도 못하는 중년이 되었다. ‘옵셋’ 인쇄가 나오면서 가리방은 자취를 감추었고 지금은 컴퓨터의 자판을 두드려 출력만 하면 고급용지에 원하는 내용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세상 참 좋아졌다.

가리방은 옹색하고 번거로운 인쇄방법이었다. 하지만 인쇄되어 나오는 과정에 사람냄새가 가득하고 정성이 담겼던 것이 “가리방”이었다. 어느덧 30여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자윤이와 밤을 새워가며 애쓰던 홍릉교회의 교육관이 문득 뇌리를 스치며 나를 감상에 젖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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