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조회 수 75971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a0108992_49829f4c31902.jpg

 

밀알의 밤이 막을 내렸다. 작년까지만 해도 엄청난 인파가 자리를 메우고 들뜬 분위기로 밀알의 밤은 연출되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인 것을 자랑하고 그것을 행사의 성공기준으로 삼는 것 같은 속성에 빠져있는 나를 발견하고 스스로 놀랐다. 금년 밀알의 밤은 조금은 다른 모습이기를 바랬다. 계획처럼 행사는 예년에 비해 소박하면서도 맛깔스럽게 진행되었다. 우리 밀알의 보배인 “사랑의 교실” 아동들은 의젓하게 국악연주로 오프닝을 장식해 주었고 두 달 가까이 연습을 거듭했던 수화 찬양팀은 “나는 어린양을 따르리!”를 완숙하게 연주하였다. 이승복 박사의 잔잔한 간증이 가슴을 적셔왔고 시각장애의 고통을 클라리넷에 담아 들려주는 장성규 형제의 영감 넘치는 연주는 사람들에게 뭉클함을 안겼다.

밀알의 밤이 열리면 열일을 젖혀놓고 찾아오는 소중한 분들이 있다. 그 분들의 사랑과 관심이 있기에 신명나게 이 귀한 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 것 같다. 그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행사를 마치고 자정이 가까워서야 귀가할 수 있었다. 집에 들어서면서 발밑으로 낙엽이 밟혀옴을 느꼈다. “바스락 바스락” 바쁘게 돌아치다보니 낙엽이 지는 것도 모르고 달려왔다. 우리 집 앞마당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커다란 나무가 버티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다. 뭐가 그리 급한지 가을이 오는가 싶으면 낙엽을 떨어내기 시작한다. 커다란 나뭇잎과 잔디가 엉켜 처리가 곤란 해 지는 때가 도래한 것이다.

초봄에 나뭇가지 끝에서 고개를 내어미는 새싹은 희망의 상징이다. 그러다가 펼쳐내는 초록의 향연은 심장을 뛰게 만든다. 마치 ‘20대의 풋풋함’ 같은 모습이라고나 할까. 누구에게나 청년기가 있다. 나에게도 눈을 감으면 ‘배시시’ 입가로 미소가 번져 나오는 젊은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세월이 더디 갔다. 아버지에게 그렇게 혼이 나면서도 장발을 고수했다. 불편한 다리를 끌고 친구들과 방방곡곡 산과 들을 섭렵했다. 세상은 좁아보였고 무서운 줄도 모르며 마냥 젊음을 만끽했다. 언제나 젊을 줄 알았다. “청춘”은 항상 내 곁에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덧 인생을 깊이 반추하고 책임을 져야만 하는 낙엽의 세대로 치닫고 있다.

낙엽 속에는 인생이 숨겨져 있다. 지난 여름 멋지게 푸르른 잎을 뿜어 낼 때에 찾아와 온갖 이야기를 들려주던 새와 나비, 벌과 온갖 친구들과의 추억이 낙엽 속에 담겨져 있다. 세찬 비바람이 몰아치던 여름밤에 나뭇가지에서 떨어져 나갈까봐 가슴 조리던 공포의 순간이 낙엽에 새겨있다. 낙엽을 보면 나무의 이름을 알 수 있듯이 나이가 들어가는 그분의 뒷모습에서 우리는 그분이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를 가늠 할 수 있다.

지금처럼 현란한 통신시설이 전혀 없던 시절에 낙엽을 주워 책갈피에 꽂아 넣던 때가 있었다. 누군가에게 낙엽편지를 보내기 위해서였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도 아련한 추억이다. 보기 좋게 펼쳐진 낙엽위에 알알히 써 넣은 편지를 그 사람은 지금도 간직하고 있을까? 나무로부터 작별인사를 받으며 땅위에 사뿐히 내려앉는 낙엽도 있지만 아직 머무르고 싶은 나뭇가지로부터 냉정하게 버려져 땅위에 뒹구는 낙엽도 있다.

오늘도 필라델피아 숲에서는 형형색색의 낙엽들이 춤을 추듯 내려앉고 있다. 달리는 차창으로 낙엽은 향연을 벌이듯이 날아 앉는다. 낙엽이 말을 걸어온다. “나도 지난봄에 피어 날때는 너무도 화려했었어요. 여름의 나의 모습은 너무도 싱그럽고 짙은 푸른 녹음이었지요.”라고. 이제 가을 색깔로 치장을 하고 낙엽들은 나무와 안녕을 고하고 있다. 때마침 내리비추는 가을 햇살이 낙엽의 마지막 순간을 찬란하게 만들어 준다. 우리도 낙엽을 생각해야 한다. 언젠가는 우리도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알아차려야만 한다. 아직도 부여잡고 있는 이기심과 욕심을 그래서 우리는 버려야 한다. 낙엽이 되어 스러져 간다 해도 누구나 아름답게 바라보는 그런 낙엽 인생을 살아야만 하는 것이다.

『주여, 때가 되었습니다. 여름은 아주 위대했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해시계 위에 놓으시고 벌판에 바람을 놓아주소서. 마지막 과일들을 결실토록 명하시고, 열매 위에 이틀만 더 남국의 햇빛을 주시어 그들을 완성시켜 주소서』-라이너 릴케의 “가
을 날”중에서.


  1. 살아있는 날 동안

    아르바이트 면접에 합격한 아들은 곧장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실 엄마는 “공부하라”며 아들의 아르바이트를 말렸다. 아들은 ‘어려운 가정형편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다.’는 기쁨이 앞섰다. 그러나 엄마는 전화를 받지 않...
    Views48368
    Read More
  2. 공항의 두얼굴

    1970년대 공항에 대한 노래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공항 대합실” “공항에 부는 바람” “공항의 이별” 가수 ‘문주란’은 굵고 특이하면서도 구성진 창법으로 연속 히트를 쳤다. 그때만 해도 특권층만이 국제 ...
    Views54114
    Read More
  3. 꼰대여, 늙은 남자여!

    사람은 다 늙는다. 여자나 남자나 다 늙어간다. 나이가 들어가는 서러움을 달랠량으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소리쳐 보지만 늙어가는 것은 어찌할 수가 없다. 젊은이들에게 나이든 남자의 이미지를 물었다.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
    Views54844
    Read More
  4. 아미쉬(Amish) 마을 사람들

    사람들은 유명하고 소중한 것이 가까이에 있으면 그 가치를 모르는 것 같다. 우리로 말하면 “아미쉬 마을”이다. 아미쉬는 푸르른 초원을 가슴에 안은 채 특유의 삶을 이어간다. 아미쉬의 특징은 전기, 자동차, 텔레비전 같은 문명의 이기를 철저...
    Views56417
    Read More
  5. 기다림(忍耐)

    현대인들은 빠른 것을 좋아한다. 무엇이든지 짧은 시간에 큰 효과가 나타나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우리가 정작 배워야 할 것은 스피드가 아니라 기다림이다. 왜냐하면 기다림은 하나님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절대 조급하지 않으시다. 하나님의 백성...
    Views158398
    Read More
  6. 감성 고뇌

    가을이 왔는가보다 했는데 한낮에 내리쬐는 햇살의 농도는 아직도 여름을 닮았다. 금년은 윤달이 끼어서인지 가을이 더디 오는 듯하다. 따스한 기온이 고맙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가을 정취에 흠뻑 취하고 싶어 하는 감성적인 사람들에게는 은근히 방해가 되는...
    Views55966
    Read More
  7. 인생을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유학생 부부 모임에 초대를 받았다. 보기에도 퍽 아름답고 유익한 신앙인들의 모임이었다. 먼 이국땅에서 낮선 언어와 문화에 적응하며 사는 것은 상당한 스트레스를 감내해야 한다. 짧은 언어로 일하면서 공부하는 유학생활은 참으로 버거운 과정이다. 같은 ...
    Views56232
    Read More
  8. Not In My Back Yard

    오래전, 버지니아에 있는 한인교회에서 전도 집회를 인도한 적이 있다. 교회 역사만큼 구성원들은 고학력에 고상한 인품을 가진 분들이었다. 둘째 날이었던가? 설교 중에 ‘어린 시절 장애 때문에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으며 힘든 시간을 보냈음’을...
    Views55417
    Read More
  9. 누나, 가지마!

    KBS가 UHD 다큐멘터리 ‘순례’를 방영했다. 흐르는 강물조차 얼어붙은 영하 30도, 혹독한 추위가 찾아온 인도 라다크 깍아 지른 협곡 사이로 수행자들의 행렬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외줄 하나에 온 몸을 의지한 채 순례 길을 걷는 수행자들의 모습...
    Views55113
    Read More
  10. 글씨 쓰기가 싫다

    한국에서의 일이다. 1984년, 한 모임에서 백인 대학생을 만났다. 남 · 여 두 학생은 백인 특유의 또렷한 이목구비와 훤칠한 키로 눈길을 끌었다. 두 사람이 연인사이였는지, 아니면 그 모임에서 우연히 만난 것인지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다정다감하고 ...
    Views71167
    Read More
  11. 청춘과 함께한 행복한 밤

    실로 필라에 새로운 역사를 쓴 뜻 깊은 행사였다. 언제부터인가? 필라에 살고 있는 청춘들을 한자리에 모으고 싶었다. 복음으로 흥분시키고 마음껏 젊음을 발산하는 장(場)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오랜 날 기도하며 준비한 밀알의 밤에 막이 오르고 메인게스...
    Views58461
    Read More
  12. 고독은 가을을 닮았다

    나는 가을을 탄다. 가을만 되면 이상하리만큼 가슴 한켠이 비어있는 듯 한 허전함을 느낀다. 가을은 생각에 잠기게 하는 마력이 있다. 젊은 날에는 그냥 지나치던 것들을 곰곰이 되새기게 된다. 운전을 하며 지나치는 숲속을 주시하고, 우연히 마주친 장애인...
    Views59364
    Read More
  13. 밀알의 밤을 열며

    “목사님, 금년 밀알의 밤에는 누가 오나요?” 가을녘에 나를 만나는 사람들의 물음이다. 그렇다. 필라델피아의 가을은 밀알이 연다. 15년 전, 맨땅에 헤딩하듯 시작된 밀알의 밤이 어느새 15돌을 맞이한다. 단장으로 오자마자 무턱대고 기획했던 ...
    Views52616
    Read More
  14. 넌 날 사랑하기는 하니?

    “넌 나를 사랑하니?” 아이가 태어난 이후 남편은 가끔 섭섭함을 이렇게 토로했다. “사랑하지. 아니면 왜 같이 살겠어?” 남편은 찝찝한 표정을 지으며 혼잣말을 했다. “같이 산다고 사랑하는 건가?” 나도 남편에게 섭섭함...
    Views55118
    Read More
  15. YOLO의 불편한 진실

    바야흐로 웰빙을 넘어 ‘YOLO 시대’이다. ‘YOLO’란 ‘You only live once’의 약자이다. 한마디로 “인생은 한번 뿐이다.”라는 뜻인데 굳이 죽어라고 애쓰며 살지 말고 “오늘을 즐기라”는 것이다. ...
    Views61165
    Read More
  16. 슬럼프(Slump)

    어느 주일 아침, 한 집에서 어머니와 아들이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아들이 하는 말 “어머니 오늘은 교회에 가고 싶지 않아요?” 깜짝 놀란 어머니가 외친다. “교회를 안가겠다니 그게 무슨 소리냐?” 아들이 대답한다. “첫째, ...
    Views55061
    Read More
  17. 밀알 캠프의 감흥

    매년 일관되게 모여 사랑을 확인하고 받는 현장이 있다. 바로 <밀알 사랑의 캠프>이다. 그것도 건강한 사람들의 모임이 아니라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 세월이 어느새 25년이다. 1992년 미주 동부에 위치한 밀알선교단(당시는 필라델피아, 워...
    Views52260
    Read More
  18. 구름을 품은 하늘

    처음 비행기를 탈 때에 앉고 싶은 좌석은 창문 쪽이었다. 날아오르는 비행기의 진동을 느끼며 저만치 멀어져 가는 땅과 이내 다가오는 하늘을 보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그 작은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창 쪽에 앉은 사람을 부러워하며 목을 빼고 밖을 주...
    Views57004
    Read More
  19. 아내 말을 들으면…

    결혼을 하고 처음부터 아내 말에 귀를 기울여 듣는 남편은 거의 없다. 가부장적 배경 속에 서 성장한 남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여자에 대해 급을 낮춰보는 경향이 있다. “어디 여자가? 여자가 뭘?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해요!”등 흔히 들었던 소리...
    Views53666
    Read More
  20. 그렇고 그런 얘기

    핸드폰을 들여다보던 딸이 소리친다. “아빠, 송중기, 송혜교가 결혼한대요. 그것도 10월이라네.” “그래? 와!” 온 가족이 갑자기 두 사람 결혼소식에 수선을 떤다. 아니, 두 사람과 인연은커녕 실제로 얼굴을 마주한 적도 없는데 말이...
    Views55969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 35 Next
/ 35

주소: 423 Derstine Ave. Lansdale., PA 19446
Tel: (215) 913-3008
e-mail: philamilal@hotmail.com

© k2s0o1d4e0s2i1g5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