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천국 8/9/2010

by admin posted Nov 25,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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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누구나 누려야 할 권리와 자유를 제한 받는 일은 안타까운 일이다. 밀알선교단이 좋은 이유는 장애인들이 ‘존재의 의미’를 깨닫고 마음껏 자신을 발산하며 살게 해 주는 곳이기 때문이다. 교회가 아무리 좋아도 장애인이 우선이 될 수는 없다. 건강하고 능력이 많은 사람이 교회를 찾아왔을 때보다 장애인 한사람이 나타났을 때에 진심으로 좋아할 수 있는 목회자와 교회가 얼마나 될까? 장애인은 일반 사람과 다를 뿐이다. 다른 것은 다른 것이지 틀린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장애인들을 무시하고 차원 낮게 대해도 상관없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필자가 신내동에서 목회를 하고 있을 때에 일이다. 교회마다 계단이 많았지만 유일하게 평지로 들어갈 수 있는 교회가 하나 있었다. 그래서인지 근처에 있는 복지 홈에 기거하고 있는 장애인들이 하나둘 그 교회에 나가기 시작하였다. 어느 날, 그 교회 목사님과 만나 대화를 하는 중에 “고민이 생겼다”고 하였다. 들어보니 “장애인들이 많아지면서 교회 이미지가 나빠지고 근처에 있는 아파트에서 사람들이 왔다가 그냥 돌아간다”는 말이었다. 금방 반응은 보이지 못했지만 가슴 한 구석이 답답해 오는 것을 느꼈다.

힘 있는 사람, 재력과 세상적 지위가 탄탄한 사람이 교회에 나오면 소위 “큰 고기”라고 하며 좋아한다. “우리 교회에는 박사가 많다”느니, “사업을 하는 사람이 많다”든지 “유명한 사람이 많다”는 것을 자랑하는 것은 별로 특이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너무나 기쁜 표정으로 “지난 주일 우리교회에 장애인이 나왔어”라고 자랑하는 교회나 목회자를 만나기는 참으로 쉽지 않다. 장애인들은 사실 교회에 별 도움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니 폐를 끼치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스러운지도 모른다. 헌금은 물론이요, 변변한 봉사도 하질 못한다. 교회에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하는 장애인들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가슴으로 받아들여주는 곳이 교회여야 하지 않을까?

밀알선교단은 장애인을 소중히 여기는 곳이다. 장애인들을 우선순위에 두고 어느새 31년 동안 묵묵히 사역을 해왔다. 화려하지도 그리 내세울 것도 없지만 그래서 밀알에 나오는 장애인들은 행복하다. 매년 여름 장애인들이 기다리는 축제가 열렸다. 바로 “사랑의 캠프”이다. “사랑의 캠프”에는 동부 지역에 밀알선교단 소속 장애인 600명이 참석하였다. 무더운 여름날이었지만 1년 만에 만나는 밀알들의 표정이 정겹다. 천방지축 달아나려는 장애아동을 꼭 잡은 어린 봉사자들의 손길부터 휠체어에 누운 채 입구에 들어서는 장애인까지 접수를 기다리는 밀알들의 모습이 캠프가 개막되었음을 실감나게 한다. 

시카고 밀알 단장님은 필자의 신학대학 직속 선배이다. 개인적으로는 “형”이라고 부르는데 다가와 안아주는 선배의 품이 포근하다. 워싱톤 단장님도 같은 1년 선배지만 흐트러짐이 없어 어렵게 느껴진다. 분명히 친하기는 한데 왠지 서먹한 이유가 그것이다. 사람은 흐트러질 때에 매력이 있는데 말이다. 아틀란타 단장은 나보다 나이가 어려 편하다. 목소리가 여성스러워서 처음 통화를 할 때에는 여자인 줄 아는 사람들이 많다. 외모나 목소리는 그렇지만 일처리는 항상 지혜롭고 치밀하다. 뉴저지 단장은 20대부터 밀알에 헌신한 귀한 인재이다. 일반 목회를 했어도 크게 성공했을 법한 목사님이 장애인들을 사랑하기에 청춘을 밀알에 헌신한 모습이 그래서 귀해 보인다.

유일하게 뉴욕 단장은 여성이다. 여자라는 단 하나의 이유 때문에 많은 애로사항이 있지만 항상 밝은 표정으로 장애인들을 대하는 단장님은 그래서 보배로워 보인다. 이번 캠프에 특이한 사항은 캐나다 단장님이다. 무려 18년 만에 캐나다 영주권을 받고 “사랑의 캠프”에 참석하였기 때문이다. 온화한 표정에 김 단장님은 사모님과 아들이 모두 장애를 가지고 있다. 그런 취약점을 안고 사는 가정에 왜 그리 순조롭게 일이 풀리지 않았는지 그것이 안타깝다. 오랜 날 함께 기도하여 좋은 결과가 나온 것이 그나마 다행스럽다. 밀알선교단을 설립하고 지금도 밀알을 이끌고 계시는 “이재서 박사”께서 캠프에 참석하였다. 시작장애인인 이 박사님을 대할 때마다 같은 장애인으로서 부끄러움을 느낀다. 앞을 전혀 보지 못하면서도 그분은 엄청난 일들을 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목소리 하나만으로 오래전에 만났던 사람의 이름을 기억해 내는 초능력에 감탄하면서 말이다.

금번 캠프에 강사는 최경학 목사님(순천 강남중앙교회)이었다. 멀리 한국에서 날아와 상처 난 장애인들과 봉사자들의 마음을 치유해 주었다. 역시 장애인들은 재미있는 설교를 좋아하는 것 같다. 장애를 가진 것 자체가 심각해서일까? 목사님은 특유의 전라도 사투리를 섞어가며 유모어를 구사하여 장내를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그러면서도 무언가를 생각하게 하는 깊은 영성의 말씀을 증거 해 주셨다. 캠프 진행을 맡은 나는 맨 앞자리에 앉아 얼마나 큰 도전과 은혜를 받았는지 모른다. 아동 캠프는 김윤나 전도사님(첼튼햄 장로교회)이 강사로 나섰다. 영어권에 아이들에게 슬라이드를 비추어가며 감동적이 설교를 해 주셨다. 역시 집회를 강사의 역할이 중차대하다.

첫날 저녁에 캠프를 찾아온 천사가 있었다. 바이올리니스트 “박지혜”양은 감동적인 간증과 최고수준의 바이올린 연주로 우리 모두를 꿈의 동산으로 인도하였다. 독일에 거주하고 있는 박지혜 양은 어린 나이에도 예수님을 너무도 예쁘게 사랑하는 음악가였다. 천진난만한 표정, 수준 높은 연주, 고난을 넘어선 그녀의 예쁜 간증은 캠프를 은혜의 바다로 인도하고 있었다. 나중에 안일이지만 그녀가 연주하는 바이올린은 세계에서 몇 안 되는 명품이었고 가격이 35억을 호가한다는 말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바이올린 소리가 범상치 않았다.

둘째 날 낮에는 아동들을 위해 마당에 “놀이기구”가 설치되었다. 사람들의 마음에는 누구나 동화 속 같은 곳에서 자유롭게 노닐고 싶은 욕망이 숨어있나 보다. 놀이기구를 타며 내지르는 탄성이 정겨워 보인다. 마지막 날 열리는 “밀알의 밤”은 각조별 대항 “장기자랑” 시간이다. 지적장애인들이 무대에 올라 스타가 되는 곳, 휠체어 장애인이 무대에 올라 휠체어를 흔들며 현란한 춤을 추는 곳, 장애인과 비장애인들이 함께 어우러져 어린아이로 돌아가는 곳, 그 장면을 바라보며 사람들은 외쳤다. “이곳이 천국이라”고.

그렇게 캠프는 막을 내리고 밀알들은 삶의 터전으로 돌아갔다. 내년을 기약하며 내어젖는 손마디에 아쉬움이 배어나온다. 서로를 안아주고 보듬어 주며 재회를 약속하는 장면은 내리쬐는 여름 햇살과 어우러져 영롱한 빛을 발한다. 아, 이곳이 우리들의 천국이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