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아프다 8/25/2010

by admin posted Nov 25,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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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사는 것은 언제나 콧노래를 부르는 여정이 아님을 나이가 들어가며 안다. 한국에는 여름이면 장마철이 찾아온다. 한창 뛰어놀기 좋아하던 어린 시절에는 우기(雨期)가 그렇게 미웠다. 어느 날, 처마 밑에 쪼그리고 앉아 쏟아지는 빗줄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내 오른손을 내어 밀어 비를 받아본다. 자그마한 손바닥에 떨어지는 빗방울이 세미한 간지럼을 느끼게 한다. 손을 오그려 빗물을 모아본다. 그리고는 손바닥을 기울여 고인 빗물을 쏟아 낸다. 다시 두 손을 내어민다. 두 손을 모으니 손안에 제법 빗물이 듬뿍 그 양을 더한다. 봉당 흙 위에 빗물을 부어본다. 그러다가 문득 가슴을 파고드는 외로움을 느꼈다.

가뭄이 계속되다가 쏟아지는 비는 사람들의 마음에 시원함을 준다. 농부들에게는 희열을 준다. 쏟아지는 빗줄기 속으로 밀짚모자를 눌러쓰고 삽을 둘러멘 채 밭으로 향하는 농부의 당당한 모습을 본 일이 있는가? 맨발에 하얀 고무신은 너무도 멋진 패션이었다. 농부의 가슴에는 뿌듯함이 샘솟았다. 물고를 터주면 논은 모처럼 넉넉한 호흡을 시작할 것이다. 밭에 곡식들은 모처럼 물줄기를 들이마시며 장차 맺어갈 열매의 꿈을 꿀 것이다. 그때야 다들 깨닫는다. 비님이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가를!

사람들은 너무도 쉽게 말을 한다. 날씨가 화창하면 “오늘 날이 참 좋네”하고 비가 쏟아지면 “날씨가 아주 안 좋으네”라고 말이다. 비는 꼭 필요하다. 비가 안 오면 세상은 말라붙어 삭막한 그림을 연출해 낼 것이다. 그러니 비가 오는 것은 너무도 좋은 일이다. 옛말에도 “비가 온 후에 땅이 굳는다”는 말이 있다. 단단해 지려면 비가 와야 한다. 비오는 날이 있기에 개인 날이 더 아름다운 것이다. 인생을 살면서 “참 인생의 맛”을 알려면 비를 맞아보아야 한다. 아니 빗물 같은 눈물을 흘려보아야 한다. 그래야 인생이다. 인생의 단맛을 알게 된다.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지 않고 성공의 단 열매를 얻으려 한다. 아니다. 눈물을 많이 흘린 사람이 시인이 된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본 사람만이 인생의 참의미를 깨닫게 된다. 그래서 아픔은 귀한 것이다.

사람들은 아파하지 않고 열매를 거두려 한다. 그래서 불행은 시작된다. 아파야 한다. 그래야 인생의 참맛을 안다. 사춘기였다. 갑자기 가세가 기울어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면서 그런 넋두리를 한 적이 있었다. ‘왜 나는 재벌가에 아들로 태어나지 않았는가?’ 정말 그때는 부유하게 사는 아이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꼭 축복이 아님을 나이가 들어가며 깨닫게 되었다. 이미 모든 조건이 갖추어진 환경에서 성장한 사람들은 자그마한 것에서 행복을 찾기가 쉽지 않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도 ‘과연 상대방이 나를 사랑하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가진 조건을 사랑하는 것인지’ 가늠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사람을 의심해야하고 속내를 쉽게 드러내지 못하고 살게 된다. 그것은 얼마나 애석한 일인가!

가진 것이 없지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처럼 다행스럽고 커다란 축복이 없다. 내가 아파 할 때에 함께 그 짐을 나눠질 수 있는 사람만 있다면 그 사람은 누구와 비교해도 아깝지 않은 보화를 가진 사람이라 할 수 있다. 한 초보 강도가 담을 넘어 들어가 방에 누워 있는 집 주인에게 “꼼짝 마, 손들어”하고 외쳤다. 겁에 질려 금방 손을 높이 쳐들 줄 알았는데 주인은 손을 들지 않는다. 당황한 강도가 “왜 손을 안 들어. 죽고 싶어?”라고 협박했더니 주인이 하는 말이 “제가 오십 견이어서 손을 들 수가 없네요”라고 대답했다. 집 주인의 말을 들은 강도는 “오십 견이세요? 저도 오십 견이 있었는데 지금은 다 나았습니다”라고 말하며 칼을 놓더니 집 주인과 오십 견에 대해 치료 정보를 나누고 그냥 가버렸다고 한다. 아픈 사람의 사람은 아파본 사람만이 안다.

로스엔젤레스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 밤중에 어느 교회 목사님 사택에 전화벨이 울렸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한밤중에 걸려오는 전화는 사람의 마음을 ‘철렁’하게 만든다. 놀란 목사님이 일어나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 걸죽한 이북사투리 억양이 수화기를 타고 흘러나왔다. “목사님, 지금 몇시오?” 기가 막혔다. ‘뭐 이런 사람이 있나?’ 생각을 하며 가만히 보니 목사님이 섬기는 교회의 권사님 목소리였다. 불을 켜고 시계를 쳐다보니 새벽 세시였다. “권사님, 지금 새벽 세시입니다.” “알았소”하고는 전화를 끊어버린다. 목사님은 황당했다. ‘아니, 한밤중에 전화를 해서 단잠을 깨워 시간을 물어보고 끊어버려?’ 다시 자려고 누웠으나 잠이 오지 않았다. 잠이 다 달아난 것이다. 거기다가 ‘이런 몰상식한 권사가 있나?’하고 분이 올라와 더 잘 수가 없었다.

분을 삭이며 누워있는데 갑자기 성령의 감동이 밀려왔다. “목사야! 너는 그 정도 밖에 안 되니? 그 권사가 시계가 없어 전화를 했겠니? 오늘따라 새벽에 잠이 깼겠지. 문득 외로움이 밀려오는데 누구의 음성이라도 듣고 싶었겠지.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목사 아니겠니? 그런데 잠을 깨운 것이 그렇게 억울하냐?” 목사님은 일어나 침대머리 맡에 무릎을 꿇었다. “하나님 제가 그 정도 밖에 안 됩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전화를 건 권사에게는 아들하나가 있었다.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그는 일 년에 한번 ‘올까말까’하는 무심한 아들이었다. 얼마나 외로웠으면 한밤중에 목사 사택에 전화를 걸어 음성을 듣고 싶어 했겠는가? 밤새 권사님을 위해 기도한 목사님은 주일날 권사님을 만나 두 손을 꼭 잡고 이야기를 한다. “권사님, 언제든지 전화하세요. 새벽 한시고 세시고 상관없어요. 아무 때나 전화하고 싶으실 때에 하세요. 그리고 예수님이 권사님과 함께 하시잖아요. 이북에서 피난 내려오실 때에 함께하신 예수님이 권사님과 함께 하시잖아요. 힘내세요.” 힘껏 권사님을 안아드렸다. 어떻게 되었을까? 그 이후에 전화는 한번도 걸려오지 않았다. 이제는 영영 전화가 걸려올 수도 없다. 얼마 전에 권사님은 하늘나라에 가셨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나에게 ‘성격이 밝다’고 한다. ‘당당하다’고 하는 분들도 많다. 하지만 그 밝음과 당당함은 많은 비를 맞고서야 하나님께로 주어진 선물임을 밝히고 싶다. 절룩거리는 다리가 서러워 많이 울었다. 놀림과 무시를 당하며 많은 날들을 아파했다. 나이가 들수록 장애를 가지고 넘어가기에는 삶의 장벽이 너무도 높고 견고했다. 자살도 많이 생각했다. 하지만 이대로 죽기는 억울했다. 이를 악물고 견뎌냈다. 어느 날, 깊은 기도 속에 하나님이 찾아오셨다. 그리고 물으셨다. “재철아, 아프냐?” “예, 많이 아파요!” 주님이 말씀하셨다. “나도 아프다” 그 음성을 듣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슬퍼서가 아니었다. 예수님, 그분이 내 마음을 알아주시는 것 자체가 고마워 울었다. 많은 장애
들을 만나며 나도 고백한다. “아프세요, 나도 아파요” 마주 잡은 손끝에 사랑이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