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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少女). 누구의 가슴에나 표현할 수 없는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단어이다. ‘여학생, 처녀, 어린 여자아이.’라는 단어도 있지만 “소녀”란 말은 자연스럽게 눈을 감게 만든다. 우연히 가수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를 들었다. 2절 가사가 가슴에 꽂혔다. “♪밤늦은 항구에서 그야말로 연락선 선 창가에서 돌아올 사람은 없을지라도 슬픈 뱃고동 소리를 들어보렴. 첫사랑 그 소녀는 어디에서 나처럼 늙어갈까 가버린 세월이 서글퍼지는 슬픈 뱃고동 소릴 들어보렴 이제와 새삼 이 나이에 청춘의 미련이야 있겠냐마는 왠지 한 곳이 비어있는 내 가슴에 다시 못올 것에 대하여, 낭만에 대하여♬”

갑자기 나이 들어감에 대한 서러움이 밀려왔다. ‘그래, 나도 소년일 때가 있었지?’ 나는 항상 느렸다. 장애가 있었기에 걸음걸이가 느린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책을 읽을 때도, 밥을 먹는 속도까지 엄청 느렸다. 하다못해 만화책을 볼 때도 다른 아이들처럼 책장을 마구 넘기는 일은 내게 없었다. 아랫목에 배를 깔고 아주 천천히 보았다. 내용이 이해가 안가면 다시 앞쪽으로 가서 내용을 음미하면서 말이다. 소년은 서울에 와서도 그랬다. 집에 갈 버스가 와도 서둘러 급히 타는 일은 없었다. 보내고 또 보내고 타고 싶을 때가 되어서야 차에 올랐다.

소년은 일찍이 “느림의 미학”을 깨우쳤다. 고교시절에 가장 많이 탔던 버스가 ‘77번’이었다. 학교 앞, 사근동에서 출발하여 행당동, 왕십리, 서울운동장 앞을 지나 을지로를 경유하여 남대문 시장을 거쳐 서부역을 휘감아 돌아오는 순환버스였다. 그 시간, 그 자리에서 타다보면 안내양 소녀와 마주친다. 어쩌다 미모의 안내양이 나타나면 학교에서는 화제가 되었다. 확인할 방법은 없었지만 “소녀가 쉬는 날에 만나기로 했다.”며 기염을 토하는 친구도 있었다. 내가 장애가 있어서인지 연민의 시선으로 나를 주시하며 특별한 친절을 베풀어주는 안내양 소녀가 있었다. 눈이 몹시 슬픈 앳된 소녀의 미소 속에 등하교 길이 즐거웠던 추억이 나에게는 있다.

대학 2학년. 같은 교회 여전도사님을 통해 하월곡동에 위치한 야학에서 여공들에게 공부를 가르치는 기회가 주어졌다. 일칭 “야학선생”이었다. 청량리에서 지하철을 타고 석계역에서 내려 다시 버스를 갈아타야하는 번거로움을 무릎 쓰고 배움에 갈망하는 소녀들을 위해 시간을 투자했다. 소녀 가장들은 진학의 길을 포기하고 생활전선에서 쥐꼬리만한 월급을 받아가며 일을 해야만 했다. 하루 종일 일에 시달리며 피곤한 모습 속에서도 검정고시를 보겠노라고 즐겁게 학문을 탐구하는 소녀들의 모습을 평생 잊을 수가 없다. 어떤 소녀들은 주일에 교육전도사인 나를 만나기 위해 교회로 찾아와 당황한 적도 있었다.

20대 중반, 유년부 전도사를 거쳐 대망의 중고등부 전도사로 사역을 시작했다. 내 나이 25세. 고 3은 19살, 중 1은 14살. 그때는 엄청난 차이가 난 것 같았는데 따져보면 별것 아니었다는 것을 나이가 들어가며 알아차렸다. 교복을 입고 예배를 드리는 소녀들의 맑은 눈망울을 잊을 수가 없다. 어쩌다 전도사님이 노래를 부르면 소녀들은 열광했다. 그러기에 청소년 지도자는 만능이 되어야 함을 나는 이미 그때 알았다.

우리 집은 항상 셋방을 살았다. 생각해보니 이사를 참 많이도 다녔다. 대학 시절에 주인집 에 소녀 하나가 있었다. 위로 오빠가 둘이 있는 발랄한 예쁜 소녀였다.얼마나 맹랑한지 나를 전도사가 아닌 보통 오빠처럼 대했다. 지금 생각하면 당돌한 소녀였다. 내가 방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면 어느새 다가와 있었다. 고개를 빼꼼히 내어 밀고 말이다. 어리게만 보였기에 무심하게 지나쳤지만 “낭만에 대하여”를 들으며 이름도 잊혀진 주인집 딸이 생각났다. 그때 여고생이었으니까 이제는 50대 여성이 되어있겠지? ‘피식’하고 웃음이 새어나왔다.

남자들 가슴에는 누구에게나 생각나는 소녀가 있다. 어떤 사연을 간직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소년이었던 때를 생각하면 나름 행복해 진다. 노래가사처럼 “이제와 새삼 이 나이에 청춘의 미련이야 있겠냐마는” 세월의 흐름 속에 엄마, 할머니가 되어 있을 소녀를 상상하며 한번쯤은 그때로 돌아가 풋풋한 소녀를 만나고 싶은 그리움이 사무치게 밀려오는 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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