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2018.08.24 08:40

낙도전도의 추억

조회 수 5326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낙도.jpg

 

  대학 동기가 병역을 필하고 복학을 하더니 적극적인 총학생회 활동을 펼치기 시작하였다. 그사이 나는 이미 대학원 과정에 있었기에 친구와는 학년차이가 꽤나 나있었다. 어느 날 만나자고 하더니 총신 <2기 낙도전도단>에 총무로 일해 달라.”는 제의를 해왔다. 다리도 불편하고 고된 일정이 될 것이 빤한 낙도전도에 나는 쉽게 마음을 열지 못했다. 워낙 무엇이든 마음을 먹으면 밀어붙이는 친구의 강청에 못 이겨 결국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다. 우리 팀이 가는 코스는 남해 일대로 통영(당시, 충무)” 앞바다였다.

 

  대학원생 20, 대학생 40명이 팀을 구성하며 훈련이 시작되었다. 담당은 홍치모 교수가 맡아 평상시 부러지는 말투로 조언을 해주셨다. 단장은 친구였지만 실질적인 업무는 총무인 내가 주관해야했다. 과정은 힘들었지만 많은 추억거리를 만들었다. 밤늦게 까지 캠퍼스의 불을 밝히고 파안대소하며 의견을 나누던 그때가 새삼 그립다. 그렇게 준비하며 젊은 가슴들은 들떠있었다. 드디어 월요일 새벽, 학교 버스로 총신 본관을 출발했다. 그런데 사전에 전혀 보고도 없던 외국인 2명이 탑승하고 있었다.

 

  단장에게 물으니 홍 교수님의 강력 추천으로 금번 <낙도전도>의 합류하게 되었단다. 당시 분위기는 교수님의 권위를 절대 존중하던 때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하얀 피부의 백인 학생들은 그렇게 우리 팀과 56일의 전도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오후 5시가 훨씬 넘어서야 우리는 충무교회에 여장을 풀었다. 저녁은 나중에 먹기로 하고 일단 전도지를 챙겨들고 거리로 나섰다. 첫날은 찬양집회를 열기로 하였기에 중 · 고등학생들을 접촉해야 했다. 하지만 아뿔싸! ‘야자’(야간수업)가 발목을 잡았다.

 

  천신만고 끝에 늦은 밤 시작된 집회는 충무교회의 커다란 예배당을 가득 메운 학생들로 열기가 가득했다. 피곤함을 잊고 젖어들었던 찬양집회의 여운은 몇 십년이 지난 지금도 내 신앙의 에너지이다. 그렇게 시작된 낙도전도는 셋째날 사량도를 거쳐 4팀으로 갈라 각 섬에서 12일 전도 집회를 갖게 되었다. 목요일 오후에 팀을 섬에 내려놓으면 다음날 오후까지 알아서 숙식을 해결하고 전도를 해야만 했다. 내가 팀장인 15명은 욕지도에 투입되었다. 공교롭게도 백인학생들은 우리 팀과 합류하게 되었다.

 

  나는 그때 알았다. 이장의 권세가 그리 쎈지를. “이장님, 서울에서 좋은 노래를 들려줄 대학생 팀입니다. 도와주십시오.” 이장이 움직이니 먹고 자는 것은 단번에 해결되었다. 오후에 온 동네를 다니며 전도를 하고 밤에는 초등학교 마당에서 여름성경학교를 열며 온갖 날벌레들과 씨름하던 기억이 새롭다. 섬 아이들의 심성은 순수했고, 섬 주민들의 인심은 우리의 마음을 넉넉하게 했다. 여름 밤, 멍석에 앉아 똘망똘망한 눈으로 응시하던 아이들이 이제는 장성하였을 것이고, 그때 우리가 들려주던 찬양과 말씀을 어렴풋이나마 기억해 주기를 바라고 싶다.

 

  낙도전도의 마지막 여정은 소록도 방문이었다. 한센병 환자들이 살고 있는 섬에 들어가는 것이 신기하면서도 두려웠다. 어릴 때부터 그분들에 대한 부정적인 소문을 하도 많이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소록도 중앙교회에 가득 모인 한센병 성도들과의 감격스러운 예배, 그 후의 만남, 기도를 통하여 나는 영적인 충격을 받았다. 죽음 앞에서 초연하게 처절한 기도를 드리며 하루를 시작하는 삶. 주어진 시간을 너무도 소중하게 품고 사는 그들의 모습이 안타까워 보였지만 감동이었다.

 

  일그러진 얼굴과 뭉그러진 손으로 품어주던 사랑의 여운은 지금도 내 가슴에 살아있다. 낙도전도를 통해 목회의 새로운 시각이 열렸고, 복음의 능력을 직접 체험할 수 있었다. 머나먼 바다 한가운데 떠있는 낙도에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순박한 섬사람들의 정서가 때 묻은 우리를 정화시켜 주었다. ‘사서라도 고생은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 낙도전도였다.

 


  1. No Image

    아빠, 내 몸이 할머니 같아

    장애인사역을 하면서 가장 가슴이 아플 때는 희귀병을 앓는 장애인을 만날 때이다. 병명도 원인도 모른 채 고통당하는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와 가족들은 커다란 멍에를 지고 가는 듯 한 고통을 감내해야만 한다. 2개의 희귀질병 앓고 있는 김새봄 양. 대학입...
    Views1016
    Read More
  2. 혹시 중독 아니세요?

    사람은 누구나 무엇엔가 사로잡혀 산다. 문제는 “얼마나 바람직한 것에 이끌려 사느냐?” 하는 것이다. 사로잡혀 사는 측면이 부정적일 때 붙이는 이름이 있다. 바로 중독이다. 중독이란 말이 들어가면 어떤 약물, 구체적인 행동을 통제할 수 없어...
    Views1200
    Read More
  3. 겨울만 있는 것이 아니다

    봄이 성큼 다가서고 있다. 미주 동부는 정말 아름답다. 무엇보다 사계절이 뚜렷한 것이 커다란 매력이다. 서부 L.A.를 경험한 나는 처음 필라델피아를 만났을 때에 숨통이 트이는 시원함을 경험했다. 계절은 인생과 같다. 푸릇푸릇한 봄 같은 시절을 지내면 ...
    Views1295
    Read More
  4. 가위, 바위, 보 인생

    누구나 살아오며 가장 많이 해 온 것이 가위 바위 보일 것이다. 누가 어떤 제의를 해오던 “그럼 가위 바위 보로 결정하자”고 손을 내어민다. 내기를 하거나 순서를 정할 때에도 사람들은 손가락을 내어 밀어 가위 바위 보를 한다. 모두를 승복하...
    Views1676
    Read More
  5. 절단 장애인 김진희

    인생을 살다보면 벼라 별 일을 다 겪게 된다. 영화나 드라마에나 나올법한 일이 현실로 닥쳐올 때에 사람들은 흔들린다. 그것도 불의의 사고로 뜻하지 않은 장애를 입으면 당황하고 좌절한다. 나처럼 아예 갓난아이 때 장애를 입은 사람은 체념을 통해 현실을...
    Views1452
    Read More
  6. 별밤 50년

    우리는 라디오 세대이다. 당시 TV를 소유한 집은 부유의 상징일 정도로 드물었다. 오로지 라디오를 의지하며 음악과 드라마, 뉴스를 접하며 살았다. 내 삶을 돌아보면 가장 고민이 많았던 때가 고교시절이었던 것 같다. 그때 다정한 친구처럼 다가온 것이 심...
    Views1427
    Read More
  7. 아이가 귀한 세상

    우리가 어릴 때는 아이들만 보였다. 어디를 가든 아이들이 바글바글했다. 한 반에 60명이 넘는 학생이 오밀조밀 앉아 수업을 들어야만 하였다. 복도를 지날 때면 서로를 비집고 지나갈 정도였다. 그리 경제적으로 넉넉할 때가 아니어서 대부분 행색은 초라했...
    Views3415
    Read More
  8. 동화처럼 살고 싶다

    사람은 누구나 가슴에 동화를 품고 산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평생 가슴에 담고 싶은 나만의 동화가 있다. 아련하고 풋풋한 그 이야기가 있기에 사람은 나이가 들어도 늙지 않는다. 나이가 들면 저절로 철이 나고 의젓한 인생을 살줄 알았다. 하지만 나이...
    Views1626
    Read More
  9. 환상통(幻想痛)

    교통사고나 기타의 질병으로 신체의 일부를 절단한 사람들에게 여전히 느껴지는 통증을 환상통이라고 한다. 이미 절단되었기에 통증은 사라졌을 법한데 실제로 그 부위에 통증이 나타나는 것이다. 통증뿐 아니라 가려움증도 있고 스멀거리기도 한단다. 절단 ...
    Views2064
    Read More
  10. 종소리

    세상에 모든 존재는 소리를 가지고 있다. 살아있는 것만이 아니라 광물성도 소리를 낸다. 소리를 들으면 어느 정도 무엇인지 알아차리게 되어 있다. 조금만 귀기우려 들어보면 소리는 두 개로 갈라진다. 무의미하게 나는 소리가 있는가하면 가슴을 파고드는 ...
    Views2298
    Read More
  11. 누구나 가슴에는 자(尺)가 들어있다

    사람들은 다 자신이 공평하다고 생각한다. 누구보다 의롭고 정직하게 산다고 자부한다. 사건과 사람을 만나며 아주 예리하고 현란한 말로 결론을 내린다. 왜 그럴까? 성정과정부터 생겨난 자신도 모르는 자(尺) 때문이다. ‘왜 저 사람은 매사에 저렇게 ...
    Views2563
    Read More
  12. 땅이 좋아야 한다

    가족은 토양이고 아이는 거기에 심기는 화초이다. 토양의 질에 따라 화초의 크기와 향기가 달라지듯이 가족의 수준에 따라 아이의 크기가 달라진다. 왜 결혼할 때에 가문을 따지는가? 집안 배경을 중시하는가? 사람의 성장과정이 너무도 중하기 때문이다. 미...
    Views2511
    Read More
  13. 목사님, 다리 왜 그래요?

    어린아이들은 순수하다. 신기한 것을 보면 호기심이 발동하며 질문하기 시작한다. 아이는 솔직하다. 꾸밈이 없다. 하고 싶은 말을 거리낌 없이 내뱉는다. 상황과 분위기에 관계없이 아이들은 속내를 배출한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이 무섭다. 한국에서 목회를 ...
    Views2519
    Read More
  14. 가상과 현실

    고교시절 가슴을 달뜨게 한 노래들이 멋진 사랑에 대한 로망을 품게 했다. 70년대 포크송이 트로트의 흐름을 잠시 멈추게 하며 가요판세를 흔들었다. 템포가 그리 빠르지 않으면서도 서정적인 가사는 청춘의 발걸음을 멈추게 만드는 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었...
    Views2869
    Read More
  15. 여자가 나라를 움직일 때

    내가 결혼 했을 즈음(80년대) 대부분 신혼부부들의 소망은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낳아 부모님께 안겨드리는 것이었다. 이것은 당시 최고 효의 상징이었다. 그런 면에서 나는 딸 둘을 낳으면서 실망의 잔을 거듭 마셔야 했다. 모시고 사는 어머니의 표정은 서...
    Views2681
    Read More
  16. 백년을 살다보니

    새해 첫 KBS 인간극장에 철학교수 김형석 교수가 등장했다. 평상시 즐겨보는 영상은 아니지만 제목이 눈에 들어왔고, 평소 흠모하던 분의 다큐멘터리이기에 집중해서 보았다. 김 교수는 이미 “백년을 살다보니”라는 책을 97세에 집필하였다. 이런...
    Views2893
    Read More
  17. No Image

    <2019년 첫 칼럼> 예쁜 마음, 그래서 고운 소녀

    새해가 밝았다. 2019년 서서히 항해를 시작한다. 짙은 안개 속에 감취어진 미지의 세계를 향해 인생의 노를 젓는다. 돌아보면 그 노를 저어 온지도 꽤나 오랜 세월이 지나간 것 같다. 어리디 어린 시절에는 속히 어른이 되고 싶었다. 그만큼 어른들은 할 수 ...
    Views3335
    Read More
  18. No Image

    새벽송을 그리워하며

    어느새 성탄을 지나 2018년의 끝이 보인다. 기대감을 안고 출발한 금년이 이제는 과거로 돌아갈 채비를 서두르고 있는 것이다. 지난 토요일(22일) 첼튼햄 한아름마트 앞에서 구세군남비 모금을 위한 자그마한 단독콘서트를 가졌다. 내가 가진 기타는 12줄이다...
    Views3322
    Read More
  19. No Image

    월급은 통장을 스칠 뿐

    서민들에게 월급봉투는 생명 줄과 같다. 애써 한 달을 수고한 후에 받는 월급은 성취감과 새로운 꿈을 안겨준다. 액수의 관계없이 월급봉투를 받아드는 순간의 희열은 경험해 본 사람만 안다. 세대가 변하여 이제는 온라인으로 급여를 받는다. 편리할지는 모...
    Views3326
    Read More
  20. No Image

    “오빠”라는 이름의 남편

    처음 L.A.에 이민을 와서 유학생 가족과 가까이 지낸 적이 있다. 신랑은 남가주대학(U.S.C.)공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었고, 세 살 된 아들이 하나 있었다. 아이 엄마는 연신 남편을 향해 “오빠”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었다. 지금과 달라서 그때...
    Views3670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24 Next
/ 24

주소: 423 Derstine Ave. Lansdale., PA 19446
Tel: (215) 913-3008
e-mail: philamilal@hotmail.com

© k2s0o1d4e0s2i1g5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