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가는 분을 그리며 12/26/2011

by admin posted Nov 25,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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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전 필라델피아에 와서 밀알사역을 감당하면서 눈에 들어온 후원자의 이름이 있었다. 특이하게 이름이 네 자였다. “남궁” “독고” “황보”성을 가지신 분들은 자연스럽게 이름이 네자가 나올 수 있지만 그분은 나처럼 “이”씨 성을 가지고 있었다. 정성이 담긴 후원금을 그분은 매달 꼬박꼬박 보내오셨다. 더욱 특이한 것은 수표에 싸인을 한글로 표기하는 것이었다. 그분이 몹시 궁금했다. 그분의 얼굴을 뵙기를 원하며 2005년 “밀알의 밤”에서 그분의 실명을 거론해 보기도 하였다. 본인이나 혹시 아시는 분이 그 안에 계실 것이라는 기대감에서였다. 하지만 전혀 무반응이었다.

나는 3개월마다 렌스데일에 위치한 “귀니드 양로원”을 찾아 말씀을 전한다. 자주는 못가지만 갈 때마다 손을 흔들며 반겨주는 할머니들의 모습에서 어릴 때 나를 무척이나 사랑해 주시던 외할머니의 체취를 추억 해 낼 수 있어 좋다. 3년 전이었다. 그날도 양로원에서 설교를 하고 전에 하던 것처럼 돌아가며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악수를 나누고 있었다. 그때 걸죽한 평안도 사투리로 말을 건네오는 할머니가 계셨다. “목사님, 나도 예던(예전)에는 밀알선교단에 돈을 보냈대시오.” “아, 그러세요. 성함이 어떻게 되시는 데요?” 그 할머니의 입에서 본인의 이름이 나오는 순간 나는 얼어붙고 말았다. 바로 그분이었다. 그토록 뵙고 싶었던 그분을 양로원에서 만난 것이다.

그때부터 양로원에 설교를 하러 갈 때마다 우리는 너무도 반갑게 만나 대화를 나누었다. 지난 11월 29일(화) 오후에 여느때 처럼 귀니드 양로원을 찾았다. 이미 많은 할머니들이 자리하고 계셨고 봉사자들의 부축을 받으며 속속 자리하고 있었다. 예배실에 들어서자 여기저기서 “와! 목사님 오셨네” 반가운 탄성이 터진다. 디렉터 ‘수잔나 박’의 친절한 미소를 마주하며 소파에 앉아 머리를 숙였다. 눈을 뜨고 좌중을 둘러본다. 수십년전에 미국에 오셔서 정말 멋진 현대여성의 삶을 사셨을 그분들의 젊은 날들을 애써 더듬어 본다. 그러면서 친근하게 지내는 몇몇 분에게 시선을 고정하며 눈인사를 나눈다.

그런데 그분이 보이질 않았다. 누구보다 나를 만나면 손을 맞잡고 놓지 않으시던 바로 그분이 보이질 않았다. “박 선생님, 이 권사님이 안보이시네요.” “목사님, 그러지 않아도 목사님이 엄청 서운하실 것 같은 생각을 했는데 오늘 새벽에 하늘나라로 가셨어요.” 갑자기 몸에서 무엇인가 빠져 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다그치듯 물었다. “아니, 왜요?” “얼마 전부터 컨디션이 안 좋으시더니 오늘 아침에 숨을 거두셨습니다.” 가슴이 아려왔다. 고령이셨지만 건강해 보이셨는데 하필 내가 설교를 하러 오는 날에 돌아가신 것이 그렇게 서운할 수가 없었다.

목요일 밤(1일). 그 분의 장례식이 진행되었다. 평소 고인을 사랑하며 교제하던 성도들이 한자리에 모여 은혜로운 입관(Viewing) 예배가 진행되었다. 조사에 나선 외손자의 한마디 “우리 할머니는 참 친절하고 가슴이 따뜻한 분이셨습니다. 밥을 먹을때면 한 그릇 더 먹으라고 권하시며 저에게 사랑을 주셨습니다.” 그랬다. 어린 시절에 만나는 할머니의 모습은 다 그렇게 정감이 넘치고 사랑덩어리였다. 고인의 출생일이 눈길을 끌었다. 1919년 3월 15일. 함경남도 북청 출생이셨다. 삼일 운동이 일어난 지 보름 만에 태어나신 것이다.

장성하여 결혼을 하여 가정을 꾸미고 6· 25 사변을 만나 남쪽으로 피난을 해야만 했다. 1976년 자녀를 따라 미국에 오셨으니까 그 세월이 35년인 셈이다. 그렇게 나이가 들어가시고 향년 92세로 천국에 입성을 하시게 된다. 그 시대에 태어나신 분들이 다 그러했지만 참으로 기구하고 역경의 삶을 살아오셨음이 느껴졌다. 성경 말씀이 뇌리에 스쳐간다.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편 90:10) 92년을 사셨지만 정말 미소 지을 수 있었던 날이 얼마나 되었을까? 그 분의 생애 중에서도 장애인들을 위해 베풀었던 그 사랑은 하늘에서 해같이 빛나리라 믿는다. “권사님, 편히 쉬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