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5/16/2012

by admin posted Nov 25,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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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와서 정말 낯설게 느껴진 것은 팔각형 표지판에 새겨진 <STOP>싸인이었다. 가는 곳마다 <STOP>이 나타나면 차를 정지시켜야만 하는 번거로움이 너무도 낯설었다. 그러면서 그 옛날 주일학교 전도사 시절에 아이들과 불렀던 어린이 복음성가 “STOP”이 떠올랐다. 교사들과 어린이전도협회 강습회에서 배웠던 찬송이었다. “♬ Stop! 들어보세요 내게 행한 주의일. Stop! 들어보세요 내게 행한 주의일. 나의 죄씻고 생명주시고 참 놀라운 영생 주셨네. Stop! 들어보세요 내게 행한 주의일.♪” 리듬도 경쾌하고 가사도 단조로워서 금방 익혔던 것으로 기억한다. 게다가 애교 넘치는 율동교사 장 선생님의 리듬감은 아이들을 집중시켰고 시간이 한참 지났지만 아직도 그 찬송을 기억하게 하는 요인 중에 하나이다.

그때는 무슨 의미인지 몰랐는데 미국에 와서 <STOP>싸인을 보니 작사자의 심정을 읽어낼 수 있었다. L.A(로스엔젤레스)에 오자마자 운전면허시험 준비에 들어갔다. 지금 생각하면 무모한 시도였지만 차 없이는 움직이기 어려운 미국의 현실에서 어쩔 수 없는 첫 선택이었다. 한국 사람이 워낙 많아서인지 한국말로 된 시험지가 있어 다행이었다. 시험문제는 의외로 쉬웠다. 한국 면허시험처럼 질문이 어렵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다음 문항에서 운전자가 해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닌 것을 고르시오” 식의 문제는 없었다. 질문은 단순했고 이미 암송한 예제대로 문제는 출제되어 있었다. 멋지게 필기시험에 합격했다.

문제는 실기였다. 우리가 아는대로 한국에는 신호등만 있을 뿐 <STOP>싸인이 거의 없다. 간혹 <우선멈춤>이 있는 정도이다. 비싼 수업료를 내고 주행 연습에 들어갔다. 한국에서 하던 운전 습관 때문에 <STOP>싸인을 그냥 지나치다가 개인교수에게 호된 야단을 맞았다. “선생님, <STOP>싸인은 빨간 신호와 같습니다. 그렇게 통과하면 큰일이 납니다.” <STOP>싸인 앞에 가면 일단 멈춘다. 좌우로 각각 3초를 둘러본 후 다시 출발을 한다. <STOP> 라인을 지나가서 서도 안 되고 너무 멀리서서도 안 된다. 적응하기 힘든 주행이었다. 거기다가 “Two Way, Three Way, All Way"까지 있어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L.A. 다운타운을 주행하여 당당히 합격하여 드라이브 라이센스를 획득했다. 지금 생각해도 장하디장하다.(죄송)

차는 현대인들에게 너무도 편리한 이동 수단이다. 하지만 잘못되면 사람을 죽이는 “흉기”로 돌변한다. 오늘도 교통사고로 부상을 당하거나 아까운 생명을 잃어버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평탄하던 가정이 단한번의 교통사고로 불행에 휩싸이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차에는 중요한 기능이 많이 있지만 그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엑셀레이터와 브레이크이다. 물론 엑셀레이터가 작동되지 않으면 차는 움직일 수가 없다. 하지만 브레이크가 고장 났다고 생각해 보라! 끔찍하기 이를 데 없다. 따라서 자동차의 기능에서 달리는 것 이상으로 멈추는 <STOP>은 더 중요하다.

<STOP>싸인을 보며 인생을 생각한다. 성공을 향해 달음질치는 사람들이 있다. 돈을 벌기 위해, 출세를 위해,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해 쉬지 않고 달리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부지런해야 한다. 인류 역사상 게을러서 성공한 사람은 없다. 하지만 “쉼”이 없는 삶은 성공을 해도 곤고함에 휩싸인다. <STOP>를 모르는 사람은 나중에 가진 것조차 모두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때로는 <STOP>해야 한다. 눈에 보이는 것을 잡기 이전에 내면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멈춤이 있어야 한다. 그 사람이 정말 멋쟁이요, 성공자이다.

<All(Four) Way>에서는 잠시 멈추고 나보다 먼저 도착한 사람을 보내야 한다. 순서를 지킬 줄 알아야 신사이다. 항상 앞 설수는 없다. 항상 잘될 수도 없다. 잠시 쉬면 내 차례가 온다. 멈추고 내 때를 기다려야 한다. 그 순간에 엑셀 페달을 밟으며 지나가면 된다. 이민자들은 너무도 바쁘다. 그래서 생각할 시간과 “쉼”을 누릴 여유도 없다. 성공은 했는데 속이 허전하다. 순서와 의리를 저버리다 보니 삶이 곤고하다. 달릴 줄도 알지만 멈출 줄도 알아야 한다. 서는 것도 아니고 달리는 것도 아닌 것을 “Rolling Stop”이라고 한다. 아니다. 멈출 때는 확실히 멈추어야 한다. 쉴 때는 쉬어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에너지가 나온다. 회복이 찾아온다. 저만치 보이는 <STOP>을 보며 깊이 느껴보자. “S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