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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25 03:51

달빛 3/9/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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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에 차를 대고 집안에 들어서려다가 나도 모르게 고개가 하늘로 향한다. 휘영청 밝은 달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아, 오늘이 보름이구나!” 크고 둥그런 달이 하늘 중앙에 떠있다. 똑같은 달인데 머나먼 타국에서 바라보는 달은 그 느낌이 다르다. 벌써 오랜 세월 달을 만나고 달을 바라보며 꿈을 꾸었는데 그 달을 바라보고 있어도 옛정감이 살아나지 않는 것은 내가 변질된 때문일까? 역시 달은 고요 속에서 바라보아야 정감이 넘치는가보다. 하얀 눈이 쌓인 추운 겨울밤에 시골 들판을 “뽀드득”소리를 내며 걷다가 잠시 멈추어 서서 달을 바라본 적이 있는가? 그때 만난 달은 ‘신비’ 그 자체였다.

전기가 없이 자라던 어린 시절에는 둥근 보름달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다른 때는 “귀신이 나온다.”고 겁을 먹고 지나던 곳도 달빛이 비취이면 포부도 당당하게 거들먹거리며 걸어간다. 다리가 불편한 나를 어머니는 자주 업고 다니셨다. 어두운 밤길에는 어머니 등이 나의 유일한 자가용이었다. 엄마 등에서 바라보는 달은 더없이 정겨웠다. 그런데 이상하다. 달이 나를 자꾸 따라온다. 천천히 걸으면 그 속도에 맞추어서 따라오고 빨리 걸으면 달도 빨리 달려온다. “엄마, 달이 나를 쫓아오네! 엄마가 빨리 걸으면 빨리 따라오고 천천히 걸으면 속도가 느려진다.” “달이 재철이를 좋아하는가보다.” 나는 그 말이 진짜인줄 알고 엄마 등을 두드리며 웃었다.

경기도 포천에서 태어나 7살이 되던 정월 보름날. 엄마는 나와 누이를 이끌고 벌판으로 나갔다. 이미 동네 형들은 깡통에 불을 담아 “쥐불놀이”를 하고 있었고 짚단에 붙은 불은 볼만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나를 세워 놓고 내 둘레를 어머니가 불로 휘감고 지나가셨다. “달님, 달님. 우리 재철이 병이 다 낫게 하시고 복을 주옵소서!” 무서웠지만 기분이 좋았다. 하나님을 모르던 어머니는 불기운으로라도 아들의 장애를 치료하고 싶으셨나보다. 달을 한참 쳐다보다가 나도 모르게 중얼거린다. “한국에서 보던 달과 같은 달인데 고국은 정말 멀구나” 갑자기 어린 시절에 바라보던 달에 대한 그리움이 밀려왔다.

둥근 보름달만 운치가 있는 것이 아니다. 수줍은 새색시에 눈썹마냥 가느다란 초생달은 저만치 숨어있는 인생사를 아는 듯 피어오른다. 반달은 수많은 동요를 탄생시켰고, 서서히 형체를 찾아가던 달은 정월 대보름이 되면 둥그런 얼굴을 드러내며 환한 미소를 짓는다. 계수나무아래에서 절구방아를 찧는 옥토끼네 부부의 변함없는 사랑노래도 저 달빛을 타고 내려앉는다. 달이 지고 또다시 달을 채워가는 동안에 수많은 사람들은 달빛아래에서 사랑을 나누고 추억을 만들어 왔을 것이다. 그 옛날 손에 손잡고 빙빙 돌면서 “강강술래”를 부르던 해안처녀들의 자주댕기와 하얀 치마저고리, 외씨보선도 달빛이 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달빛은 차가우면서도 따스하다. 싸늘한 듯 냉정하면서도 포근하고, 도도한 듯 새침하다가도 때로는 수수한 입김으로 만물을 어루만진다. 달빛은 그래서 신비로운가보다. 해는 바라보기가 힘겨워 포기하고 말지만 달은 아무리 바라보아도 질리지 않는 매력이 있다. 같은 달이지만 달빛에서 받는 느낌은 그 사람의 경험이나 감정에 따라 다르다. 살아가면서 가끔은 달빛 앞에 서보자. 휘황찬란한 오색의 간판과 네온들로 하여금 밤이 더 산만하고 거칠어진 시대에 살지만 때로는 두고 온 내 고향 언덕에서 바라보던 그 달빛 앞에 다시 서보자. 진달래가 달빛타고 피는 봄밤을, 풀벌레가 달빛피리를 부는 여름밤을, 억새꽃과 기러기가 만월 속에서 서걱이거나 날아가는 가을밤을, 그리고 나목이 추운 밤, 산등성을 따라 민그림자를 뜨겁게 뜨겁게 그어내는 겨울 달빛 앞에 우리 모두 서 보자!

달빛은 또 다른 우리들의 모습을 비추어 줄 것이다. 달빛은 오늘밤도 그대의 지치고 노곤한 몸을 잠시나마 편안하고 그윽하게 비추어 주리라! “강(江)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南道) 삼백리(三百里) 술 익은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박목월>님의 “나그네”이다. 이런 시도 있다. “달이 아직도 지구를 떠나지 못하는 것은 지구에 달맞이꽃이 피기 때문입니다/ 도시인들이 이렇게 까지 삭막해진 것은 달빛을 받지 못하고 살아서 그렇습니다.”
달빛이 가슴에 내려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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