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를 시골(양평)에서 다닌 후 서울에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을 하면서 나는 그리운 친구들과 헤어지게 되었다. 기차역까지 배웅을 나와 떠나가는 나를 향해 플랫 홈에서 손을 흔들어주던 친구들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어린 날에 정들었던 친구들과 헤어지는 것은 아픔 중에 아픔이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내 곁에서 분신처럼 움직이던 “정정호”가 있었다. 장애를 가진 나를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고 가방을 들어줄 뿐 아니라 삶의 자신감을 잃고 살아가던 나에게 강제로 <웅변>을 가르쳐 준 소중한 친구였다. 사실 나이가 들어가며 가장 보고 싶은 친구임에도 정호는 자취조차 없다. 정호가 서울로 떠나가던 나에게 휘호를 하나 적어 주었다. 바로 “열원냉체(熱願冷滯)”였다. 처음에는 그 뜻을 몰라 고개를 ‘갸우뚱’했다. 친구는 해석까지 친절하게 적어놓았다. “뜨겁게 희구하고 차갑게 체념하라”
사자성어에도 없는 “열원냉체”는 적어도 신앙을 가지기 전까지는 나의 철저한 좌우명이 되었다. 정호는 그 어린 나이에 어떻게 그런 신통한 휘호를 만들어낼 수 있었는지 놀라울 뿐이다. 서울로 떠나가던 나에게 쥐어주던 정호의 휘호는 살벌한 서울생활에서 나를 세워준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주었다. 무엇이든 맡겨진 일에 열심을 다했다. 내가 나 스스로를 보아도 “열정”만큼은 따라올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체념할 때에는 차갑게 발걸음을 멈추었다. 문제는 사춘기 시절에 이성교제도 “열원냉체”를 적용했다는 사실이다. 마음에 드는 여학생을 만났을 때에 처음에는 세차게 ‘대쉬’하다가도 ‘이게 아니다’ 싶으면 일방적으로 절교를 선언하는 희한한 삶을 살았다.
새해가 왔다. 사실 엄격하게 말하면 “새해”는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달력을 만드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지혜를 주셔서 날을 계수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을 뿐이다. 지구의 자전과 공전을 연구하고 ‘초’ ‘분’ ‘시간’을 만들고 ‘날’을 만들며 ‘년’(Year)을 만들게 하셨다. 사람들은 동그라미를 만들어 놓고 역사가 그 사이클을 따라 도는 것으로 생각을 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역사는 일직선이다. 지나간 날은 다시 돌아올 수 없도록 섭리하신다. 불교에서는 ‘윤회설’을 주장하지만 그것은 사람의 간절한 소망 일 뿐이다. 새해는 왜 의미가 있을까? 끊고 다시 시작하는 계기를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실제로 새해가 없다 할지라도 지나간 날들을 끊어버리고 오늘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새날을 사는 사람이다.
그런 면에서 해가 가는 길을 알아내고 그 해에 숫자를 붙여 준 조상님들께 이렇게 감사할 수가 없다. 만약에 해가 가는 줄도 모르고 살았다면 우리네 삶이 어떠했을까? 우리 사람에게만 2010년이, 2011년이 있다. 짐승이나 나무나 새들에게는 새해니 헌해니 하는 것이 없다. 오직 우리 사람에게만 있다. 그런 생각을 하게 한 하나님께 감사할 뿐이다. 나무에도 한 한 해의 마디가 있다. 바로 ‘나이테’다. 뼈에도 마디가 있다. 이 마디가 없으면 이어지지가 않는다. 손마디가 있기에 물건을 집고 사람들은 위대한 역사를 창조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어짐이 없으면 그만 끊기고 만다. 365일을 한 해라는 마디로 정했다.
요사이 운전을 해보면 무언가 리듬을 따라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리는 것을 느낀다. 아스팔트를 일정하게 잘라놓았기 때문이다. 여름에는 더위로 아스팔트가 늘어나서 소리가 나지 않지만 겨울에는 추위에 아스팔트가 오그라들면서 소리가 나는 것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기차와 더불어 살았다. 기차 철로도 일정하게 잘라서 붙여놓았기 때문에 기차가 달리면 ‘철커덕 ’ 소리가 경쾌하게 들리는 것이다. 철로도 아스팔트처럼 여름에는 늘어났다가 겨울에는 오그라든다. 다리(Bridge)도 마찬가지이다. 이처럼 끊고 다시 시작하는 원리는 인생어디에나 적용된다.
그렇다. 새해는 끊을 것을 끊고 시작 할 것을 새롭게 시작하는 마디이다. “열원냉체”는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에 나를 잡아주는 인생 ‘좌우명’이었다. 지금은 성경이 나의 유일무이한 인생지침서가 되었다. 하지만 정말 인생의 태도 중에 중요한 것은 끊을 때는 끊고 시작할 때는 멋지게 시작하는 모습이다. 쓸데없는 일에 목숨을 거는 일은 사춘기에도 용납이 안 되는 일 아닌가? 가치 있는 것, 사람을 살리는 일에 생의 전폭을 쏟아 붓는 멋진 인생을 살아가는 모두가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