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조회 수 30887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명퇴.jpg

 

 

 부지런히 일을 하며 달리는 세대에는 쉬는 것이 작은 소망이다. ‘언제나 일에서 자유로워져서 쉴 수 있을까?’ 젊은 직장인들의 한결같은 하소연이다. 해서 내 오랜 친구는 50에 접어들며 이런 넋두리를 했다. “재철아, 난 일찍 은퇴하고 싶어. 60대 초반이면 일반 목회를 접고 내가 꿈꿔왔던 일들을 추구하려 한다.” 그런데 50대 후반이 되어가며 친구는 말을 바꾸기 시작했다. 급기야 채 60이 되기 전에 은퇴가 없는 사역지로 옮겨가 버렸다. 사람 참 모를 일이다. 사람은 다 그런 것 같다. 일을 할 때는 지겨워하고 막상 그 일을 접을 때가 다가오면 아쉬워하며 놓기를 주저하게 된다.

 

 20대에 입사하여 평생을 헌신해 온 직장인이 있다. 이제 회사 중진이 되어 소신껏 꿈을 펼치려는 나이가 되자 회사에서는 보이지 않은 압력이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정년보다 조금 일찍 퇴직을 하면 넉넉한 퇴직금을 보장한다는 유혹이다. 오랫동안 갈등하던 끝에 드디어 퇴직을 했다. 이름하여 명예퇴직이다. 수십년간 근무하던 직장이니 시원함보다는 섭섭함이 앞선다. 눈물 콧물 다 흘리며 직장 동료들은 한 아름의 편지를 안겨 주었다. 며칠이 걸려 읽은 편지들은 미소 짓게 만든다.

 

 명예퇴직을 한지도 어언 한 달이 지나간다. 제일 먼저 찾아 온 것은 여유로움이다. 뜬금없이 찾아드는 불면의 밤도 늦잠을 잘 수 있으니 초조하지 않다. 출근을 위해 새벽 공기를 가르며 미친 듯이 뛰어 나가지 않아도 된다. 포근한 침대 속에서 즐기는 아침잠의 그 느긋함은 행복감을 느끼게 한다. 충분한 잠으로 전날의 피로가 씻어 지니 상쾌한 아침을 맞게 된다. 은행이나 병원진료 등도 눈치 보지 않고 들를 수 있어 좋다. 운동한답시고 늦은 밤에 들어 와 아침식사 준비로 밤늦게 떨그럭거리지 않아도 된다.

 

 초저녁부터 TV앞에 앉아 리모컨 운전만 열심히 하면 된다. 친구들이랑 차도 마시고 바람도 쏘이며 조잘대는 그 재미도 함께 할 수 있다. 평일 낮의 나들이가 얼마나 편안한지 느끼게 된다. 사람들은 퇴직하고 나니 어떠냐?”고 물어온다. 아직은 여유로움 외에는 잘 모르겠다. 연금이 월급만 하겠는가? 반 이하로 확 줄어버린 연금으로 경제적 부감감이야 당연히 느낀다. 시간이 귀해 늘 택시를 타고 다니던 그가 요즘은 버스나 전철을 타게 된다. 그 속에서 타인들의 사는 모습을 보면서 또 다른 인생을 느끼는 것도 흥미롭다.

퇴직을 하고 나면 4단계의 대학이 있다고 했던가? 하루 종일 바빠 하바드 대학. 하루 종일 와이프 뒤만 따라 다녀 하와이 대학. 하루 종일 동네 경로당에 있어 동경 대학. 그것도 다리 아파 못하면 방구석에 콕 박혀 방콕 대학이라지. 수십년간 직장에 매어 있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그는 백수생활에 젖어 들고 있다. 이제는 편안하게 동창들을 만난다. 자식들도 모두 장성해서 대부분 짝을 맞추었고 짧지 않은 세월 동안 같이 살아온 아내와 함께 한 시름 놓고 적당히 보기 좋은 주름살로 쌓아온 연륜도 즐길 수 있는 친구들이다.

 

 화제는 자연히 황혼의 삶을 어떻게 잘 마무리 할 수 있는가가 중심이었다. 옛일에 대한 향수를 더듬기보다 앞으로 맞이할 백수로서의 시간과 생활에 어떻게 잘 적응하며 여생을 마무리 하는가가 대화의 줄을 이어간다. 세상일은 늘 변화하고 움직이기 때문에 백수에게도 기회가 찾아오지 말라는 법은 없다. 퇴직했다고 멋진 꿈까지 접어서는 안 된다. 자신감과 긍정적인 태도로 퇴직의 여유로움을 느껴야 한다. 마음속에 자기만의 공간을 마련하고 그 속에 끝없는 도전과 희망의 나무를 심는 것이 필요하다.

 

 나이가 들어가면 현역에서 물러나는 일은 당연한 이치이다. 그렇다고 그냥 주저 않아 죽을 날만 헤아리는 것은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다. 나이에 덮여 백수의 아름다움 자체를 스스로 포기해서는 안 된다. 백수가 무엇인가? 백 가지 손을 가지고 최소한 백 가지의 여유를 만들 수 있는 때가 아닐까? 가슴을 펴고 백수의 노래를 불러보자. 그것이 진정 명예퇴직자의 영예이다.


  1. No Image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

    작가의 삶과 작품은 연관성을 갖는다. 내 글에 내 인생의 체취가 묻어나는 것처럼 말이다. 책 이름이 하도 특이해서 손에 잡았고, 흥미진진하게 단숨에 읽어 나아갔다. 작가 전민식은 실로 꼬인 인생을 살았다. 한마디로 되는 일이 없는 사나이였다. 그러던 ...
    Views4597
    Read More
  2. No Image

    군밤

    모처럼 한국 친구 목사와 전화통화를 하다가 “친구야, 용인에서 먹던 <묵밥>이 먹고 싶다.” 외쳤더니 한참을 웃다가 “너는 기억력도 좋다. 언제든지 와 사줄게.”하는 대답이 정겹게 가슴을 파고든다. 30대였을거다. 추운 겨울날에 친...
    Views4935
    Read More
  3. No Image

    어른이 없다

    아버지의 권위가 하늘을 찌르던 시대에 나는 자라났다. 학기 초 학교에서 내어준 가정환경조사서의 호주 난에는 당연히 아버지의 이름 석자가 자리했다. 간혹 엄마의 목소리가 담을 넘는 집도 있었지만 그때는 대부분 아버지가 가정의 모든 의사결정을 주도하...
    Views5160
    Read More
  4. No Image

    명절이 더 외로운 사람들

    지난 1월 22일은 우리나라 고유명절인 설날이었다. 명절은 누구에게나 기대감과 설레임을 안긴다. 하지만 일부 장애인에게는 해당이 안되는 것 같다. 안타까운 소식은 매년 100여명의 장애인이 버려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버려진 장애인들은 ‘장애와 고...
    Views5391
    Read More
  5. No Image

    잊혀져 간 그 겨울

    겨울의 한복판을 지나고 있다. 날씨는 음력이 정확하게 이끌어 주는 것 같다. 설(22일)을 넘어 입춘(2월 4일)이 한주 앞으로 바싹 다가서고 있다. 불안한 것은 눈이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별걱정을 다한다’고 할지 모르지만 겨울이 겨울답지 않...
    Views5062
    Read More
  6. No Image

    백수 예찬

    젊었을때는 누구나 쉬고 싶어한다. ‘언제나 마음놓고 쉬어볼까?’하며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삶에 열중한다. 아이들의 재롱에 삶의 시름을 잊고 돌아보니 중년이요, 또 한바퀴를 돌아보니 어느새 정년퇴직에 접어든다. 한국 기준으로 보통 60세가 ...
    Views5335
    Read More
  7. No Image

    겨울에도 꽃은 핀다

    사람의 처지가 좋아지면 꽃이 피었다고 표현한다. 여성을 비하한다는 위험성이 있지만 한때는 여성들을 곧잘 꽃에 비유했다. 바라만 보아도 그냥 기분 좋아지는 존재, 다르기에 신비로워서일까? 꽃을 보며 인상을 쓰는 사람은 없다. 어여쁜 꽃을 보면 누구나 ...
    Views5773
    Read More
  8. No Image

    돋는 해의 아침 빛<2023년 첫칼럼>

    사람들은 새해가 되면 해돋이를 위해 산이나 바다로 향한다. 따지고 보면 같은 태양이건만 해가 바뀌는 시점에 바라보는 태양의 의미는 다를 수도 있을 것 같다. 목사이기에 송구영신예배를 드리며 새해를 맞이하는 것은 당연한 모습이요, 삶이 된 것 같다. ...
    Views5782
    Read More
  9. No Image

    그래도 가야만 한다<송년>

    밀알선교단 자원봉사자 9학년 남학생에게 물었다. “세월이 참 빠르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란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그렇구나, 세월이 안간다’고 느끼는 세대도 있구나! 그러면서 그 나이에 나를 생각해 보았다. 경기도 양평...
    Views6074
    Read More
  10. 명품

    누군가는 명품 스포츠용품만 애호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흔히 신는 운동화 하나가 그렇게 고가인 줄은 전혀 몰랐다. 20년 전, 로스앤젤레스에 살고 있을 때이다. 한국에서 절친이 찾아왔는데 갑자기 “‘로데오거리’를 구경하고 싶다&rdquo...
    Views5811
    Read More
  11. 겨울 친구

    겨울의 차디찬 바람이 옷깃을 파고든다. 그래도 실내에 들어서면 온기가 충만하고 차에 올라 히터를 켜면 금방 따스해 지니 다행이다. 초등학교 시절에 겨울은 너무도 추웠다. 지금보다 날씨가 더 추웠는지 아니면 입은 옷이 시원치 않아서 그랬는지 그때는 ...
    Views5855
    Read More
  12. 누가 ‘욕’을 아름답다 하는가?

    사람은 만나면 말을 한다. 조용히, 어떨 때는 큰 소리로, 부드럽게 말을 할 때도 있지만 거칠고 성난 파도가 치듯 말을 하기도 한다. 말 중에 해독이 되는 것이 있는데 바로 ‘욕’이다. 세상을 살면서 욕 한마디 안 해본 사람이 있을까? 나는 비기...
    Views6270
    Read More
  13. 인연

    어느새 2022년의 끝자락이다. 3년의 길고 지루했던 팬데믹을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어 금년 세모는 서러운 생각은 별로 안드는 것 같다. 돌아보니 금년에도 바쁘게 돌아쳤다. 1월 새해 사역을 시작하려니 오미크론이 번지며 점점 연기되어 갔다. 2월부터 ...
    Views5581
    Read More
  14. 인생을 살아보니

    젊을때는 긴장감을 놓을 수 없을 정도로 스쳐가는 삶을 살아야 한다. 미지의 세계를 향해 달려 나가는 청춘은 힘겹고 모든 것이 낯설다. 넘어지고 깨어지고 실수하지만 멈출 수도 없다. 학업, 이후의 취업. 그리고 인륜지대사 결혼. 이후에는 더 높은곳을 향...
    Views6219
    Read More
  15. 웃는 모습이 아름다워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인생에게 주어진 은총이다. 태어나 요람에 누우면 부모의 숨결, 들려주는 목소리가 아이를 만난다. “엄마해 봐, 아빠 해봐” 수만번을 어우르며 외치다 보면 드디어 아이의 입이 열린다. 말을 시작하며 아이는 소통을 시작한...
    Views6269
    Read More
  16. 결혼의 신기루

    연거푸 토요일마다 지인의 자녀 결혼식에 참석하느라 분주하게 보내고 있다. 바야흐로 결혼 시즌이다. 코발트색 가을하늘. 멋진 턱시도와 눈부신 웨딩드레스를 입고 서 있는 신랑 신부의 모습은 진정 영화의 한 장면처럼 영롱하다. 필라에는 정말 멋진 야외 ...
    Views6424
    Read More
  17. 기다려 주는 사랑

    누구나 눈을 뜨면 외출을 한다. 사업이나 직장으로, 혹은 사적인 일을 감당하기 위해 집을 나선다. 누군가 출입문을 나설때면 배웅을 해준다. 덕담을 곁들여서 말이다. 어린 시절에는 부모님께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깍듯이 인사를 하고 등교를...
    Views6191
    Read More
  18. 완전할 수 없는 인간의 그늘

    사람은 생각할수록 신비로운 존재이다. 우선 다양성이다. 미국에 살기에 실감하지만 피부색이 다르고 언어가 다를 뿐 아니라 문화가 다르다. 따라서 대화를 해보면 제스추어도 다양하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정적이다. 대부분 목소리 톤이 낮다. 끄덕이며, 반...
    Views6273
    Read More
  19. 존재 자체로도 귀한 분들

    이 세상에서 제일 못난 사람이 있다면 자신의 부모를 부끄럽게 여기는 사람일 것이다. 부모는 자식의 뿌리이다. 부모 없이 내가 존재할 수 없다. 묻고 싶다. “과연 나는 나의 부모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학력, 인격, 경제력, 기타 어떤 조건을 ...
    Views6017
    Read More
  20. 지금합니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막상 사정이 생기거나 여유가 있다고 생각되면 지금 할 일을 나중으로 미루게 된다. 그것이 흔한 일상이지만 사소한 게으름이 인생의 기회를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게 하는 경험을 ...
    Views6265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35 Next
/ 35

주소: 423 Derstine Ave. Lansdale., PA 19446
Tel: (215) 913-3008
e-mail: philamilal@hotmail.com

© k2s0o1d4e0s2i1g5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