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2016.07.01 17:26

음악은 발이 없잖아!

조회 수 61343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순정 친구.jpg

 

 

 여름방학은 누구에게나 무한한 꿈을 안기며 시작된다. 그 추억을 회상하게 만드는 영화가 “순정”이다. 1991년, 여름방학을 맞이하여 곳곳에 흩어져 유학(?)을 하던 소꿉친구들이 고향인 전라남도 고흥. 섬마을 “청록도”에 모여 든다. 그 섬에는 청초한 외모에 “수옥”이 애타게 친구들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범실, 길자, 개독, 산돌, 그리고 수옥”은 그렇게 만나 또 다른 추억을 만들어 가게 된다. 친구만큼 커다란 자산이 또 있을까? 순수한 10대들의 우정. 그리고 “수옥”을 향한 애잔한 범실의 사랑이야기가 이 영화의 주를 이룬다.

 

 “수옥”은 다리에 장애를 가지고 있다. 게다가 해녀였던 엄마가 물질을 하다가 해류에 휩쓸려 세상을 떠난 아픔을 안고 살아간다. 시신조차 찾지 못한 채 말이다. 장애 때문에 진학도 못한 “수옥”은 방학을 하면 고향을 찾아오는 친구들이 그렇게 반갑고 고마울 수가 없다. 다리를 몹시 저는 수옥을 친구들이 돌아가며 업고 가는 장면에서 내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나도 어릴 때부터 많은 사람의 등에 업혀 다녀야 했다. 물론 가장 많이 업혔던 곳은 엄마 등이다. 엄마는 나를 등에 업고 많은 이야기를 해 주셨다. 그러면서 “재철아, 너는 크게 될거야!” 덕담도 들려주셨다. 그것이 내 재산 1호인지도 모른다.

 

 수옥이 친구들에게 업혔듯이 나를 등에 업고 다녔던 친구들이 많기도 많았다. 수옥이 업혀가는 장면에서 불현 듯 내가 잊고 있던 친구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러면서 깨닫는다. 내가 여기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의 빚을 지며 살아왔는지. 수옥은 지나치리만큼 음악을 좋아한다. 그녀의 꿈은 커서 방송 DJ를 하는 것이다. 친구들이 물었다. “너는 왜 그리 음악을 좋아하니?” 수옥이 대답한다. “응. 음악은 발이 없잖아. 어디든지 갈수 있잖아!” 수옥의 말 한마디가 가슴을 아리게 했다. 아하! 그래서 나도 어려서부터 음악을 좋아했구나!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백수시절. 내 유일한 친구는 음악이었다. 음악의 장르는 다양했다. 클래식, 팝송, 가요 등. FM 라디오를 눈을 뜨자마자 켜면 잠들 때까지 하루 종일 들은 날이 많았다. 음악은 나를 가지 못하는 어디든 인도해 주었다. 음악을 들으며 꿈을 꾸었고, 음악을 통해 상상되는 온갖 판타스틱 한 장면들이 나를 행복하게 해 주었다. 지금도 기타를 잡으면 나는 금방 청춘으로 돌아간다. 수옥의 꿈은 마음껏 걸을 수 있는 것이다. 그 약점을 이용하는 보건소 선생님의 농간을 알아차리고 “수술을 받아도 완치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말에 수옥은 낙심하여 스스로 바다에 몸을 던져 목숨을 끊는다.

 

 동네이장을 비롯한 섬마을 사람들은 “미성년자의 장례는 바다 사람들에게 재앙을 불러온다.”는 설을 내세우며 수옥의 장례를 외면한다. 결국 네 친구들이 어설픈 상여를 만들어 장례를 치르게 된다. 상여 앞에 올려놓은 오디오에서 울려 퍼지는 “Dust in the Wind”(Kansas)가 잔잔한 파고로 듣는 사람의 내면을 잠식해 간다. 진정 인생은 ‘바람 속에 흩날리는 먼지’런가? 그렇게 수옥은 한줌의 재로 사라져 간다. 영화의 흐름은 옛사랑에 대한 회상이지만 한 장애 소녀의 짧은 생애에 안타까움을 느꼈다.

 

 돌아보면 나에게도 많은 고비가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에 올라가며 현저히 달라지는 다리의 차이를 보며 좌절했고 남들처럼 걷지도 뛰지도 못하는 모습에 비애를 느꼈다. 나이가 들수록 장애의 무게는 나를 짓눌렀고 “죽고 싶다”는 절망감과 무던히 싸워야만 하였다. “자살을 하면 지옥에 간다.”는 목사님 말씀 때문에 그곳으로는 시선도 두지 못했다. 그 과정에서 깨달은 것이 있다. 죽을 만큼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나면 그 이상의 기쁨과 환희가 나를 반겼다. 물론 신앙이라는 기초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절망 앞에서 ‘수옥’처럼 스스로 죽음에 자신을 내어주기보다 그 벽 앞에 죽을힘을 다해 도전해 보는 것이 인생의 도리라고 생각한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슬픈 날엔 참고 견디라. 즐거운 날이 오고야 말리니…”(푸쉬킨)

 

 

 


  1. 눈물의 신비

    인체에서는 여러 분비물이 나온다. 그중에서도 눈물은 신비자체이다. 슬퍼서 울 때 나오는 것이 눈물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감동을 받거나 웃을때에도 눈물은 나온다. 우리 세대의 남자들은 눈물 흘리는 것을 금기시했다. 오죽하면 공중화장실 남성 소변기 벽에...
    Views8027
    Read More
  2. 당신도 제주

    어디론가 홀연히 떠나고 싶을 때가 있다. 아무 간섭도 받지 않고 마냥 생각에 잠기고 아름다운 풍경을 좇아 거닐며 내 삶을 깊이 돌아보고 싶은때가 있다. 한민경 씨. 그녀는 어느 날 김치찌개를 먹다 생각했다. “내가 이렇게 사는 게 잘 사는 걸까?&rd...
    Views7707
    Read More
  3. 전신마비 첫 치과의사

    삶에는 시련이 있다. 하지만 극한 장애가 찾아온다면 견뎌낼 사람이 있을까? 그것도 온몸이 마비되는 경우에 말이다. 그런데 그런 드라마에나 나올듯한 상황을 역전시켜 당당히 살아가는 주인공이 있다. 이규환 교수. 그는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치과 진료를 하...
    Views8186
    Read More
  4. 하숙집 풍경

    “사람을 낳으면 서울로 보내고 말을 낳으면 제주로 보내라”고 했던가? 내가 고교시절에는 지방에서 서울로 유학(?)을 온 학생들이 꽤 많았다. 집안 형편이 좋은 아이는 하숙을 했고,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자취를 했다. 하숙집에는 많은 학생들이...
    Views7700
    Read More
  5. 철든 인생

    이야기를 나누던 상대방이 갑자기 일어선다. “많이 바쁘세요?” “손자가 학교에서 올 시간이 되어 픽업을 해야 합니다.” 한편으로 부럽기도하고 헛웃음이 나온다. 그렇게 나이가 들어가는 인생의 모습을 본다. 학교에 다녀오던 아이들...
    Views7966
    Read More
  6. 남편과 아내는 무엇이 다른가?

    성인이 된 남녀는 자연스럽게 짝을 찾는다. 나이도 그렇고 상황에 다다르면 결단을 하고 결혼을 하게 된다. 하지만 가슴만 뜨거울 뿐 아무런 지식도 없이 부부의 연을 이어간다. 세상의 법칙은 자격증이 있어야 따라오는 권리를 누릴 수 있다. 운전도 면허증...
    Views7969
    Read More
  7. 행복과 소유

    소낙비가 한참을 쏟아지더니 갑자기 무지개가 떠올랐다. 조금 후 그 위로 또 하나의 무지개가 피어올랐다. 쌍무지개였다. 일곱 색깔 영롱한 무지개를 보며 행복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인생은 순간이다. 머물고 싶어도 오랜시간 지체할 수 없는 현재의 연속이...
    Views7998
    Read More
  8. 불굴의 비너스

    간사 채용 공고를 내고 몇몇 대상자를 인터뷰하게 되었다. 지인의 소개로 모교회에서 사역하는 분과 마주 앉았다. 이력서를 보며 내심 놀랐다. 그는 절단 장애인이었다. 어린 시절 교통사고로 오른쪽 다리를 잃게 된 것이다. 장애인끼리 통하는 기류를 느꼈다...
    Views7886
    Read More
  9. 서른 아홉

    요사이 흠뻑 빠져 몰입하는 드라마가 있다. <<서른. 아홉>> 손예진, 전미도, 김지현의 자연스럽고도 정감어린 연기와 우정에 흥미를 더해간다. 언뜻 보면 철없던 어린 시절에 만나 스스럼없이 어우러지는 여친들의 이야기 같지만 노련한 유영아 작가는 심오한...
    Views7425
    Read More
  10. 부부 행복하십니까?

    부부는 참 묘하다. 행복한듯하면서도 그냥 그렇고, 서로 냉정한 것 같으면서도 사무치게 챙기고 마음에 두는 사이니까 말이다. 분명한 것은 그 가정에 들어가보지 않고는 부부사이를 알수가 없다. 겉보기에는 다정한 부부 같은데 정작 둘의 관계는 그렇지 못...
    Views7884
    Read More
  11. 3월의 산은 수다스럽다

    경칩을 지나며 봄기운이 서서히 동장군의 기세를 몰아내고 있다. 그렇게 사계절의 입김을 쐬이며 나이는 숫자를 더해간다. 봄이 무척이나 기다려지던 때가 있었다. 산천초목이 흰눈에 뒤덮여 세상이 움추러들기만 하다가 꽁꽁 얼어붙었던 시냇물이 서서히 드...
    Views8193
    Read More
  12. 그렇게 父女는 떠났다

    2002년 남가주(L.A.)밀알선교단 부단장으로 사역할 때에 일이다. L.A.는 워낙 한인들이 많아 유력하게 움직이는 장애인선교 단체만 7개 정도이고, 교회마다 사랑부(장애인부서)가 있어서 그 숫자를 합하면 규모가 크다. 감사하게도 선교기관들이 서로 협력관...
    Views8438
    Read More
  13. 고난의 종착역

    고난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아가가 울며 세상에 태어나는 것은 삶 자체가 고난의 연속이라는 사실을 감지했기 때문이리라. 고난이 없는 인생은 없다. 날마다 크고작은 고난을 감내하며 인생이야기는 흘러가고 있다. 고난을 통과하지 않고는 보배를 ...
    Views8368
    Read More
  14. Home, Sweet Home

    사람들은 집값이 치솟았다고 낙담한다. 특히 한국인들은 집에 대한 애착이 대단하다. 젊어서부터 허리띠를 졸라매며 근검절약하여 집을 장만하려 애를 쓴다. 거의 다가갔나 했더니 집 가격이 천정부지로 올라가며 사람들을 좌절케 만든다. 내가 중학교를 졸업...
    Views8381
    Read More
  15. 쪽 팔리게

    칼럼 제목을 정하면서 잠시 망설였지만 이제 이런 표현이 자극적이거나 품격이 떨어지는 단어가 아니라고 생각하며 과감하게 달아보았다. 내가 어릴때는 ‘겸연쩍다, 민망하다, 부끄럽다’고 표현한 것 같다. 하지만 더 들어가보면 의미는 조금 다...
    Views8929
    Read More
  16. 장애아의 자그마한 걸음마

    누구나 결혼을 하면 아이를 낳는다. 오가며 만나는 아이들을 보며 ‘나에게도 저런 예쁘고 사랑스러운 아이가 태어날 것’을 기대하다가 임신 소식을 듣는 순간 신기함과 감격이 밀려온다. 출산을 준비하고 막상 태어난 아이가 장애를 안고 나왔을 ...
    Views8882
    Read More
  17. Meister

    독일에는 ‘Meister’라는 제도가 있다. 원뜻은 ‘선생’이란 뜻을 갖는 라틴어 마기스터(magister)이다. 영어로는 마스터(master), 이탈리어로는 마에스트로(maestro)이다. 우리말로는 “장인, 거장, 명장”등으로 불리우기도...
    Views8966
    Read More
  18. 그쟈?

    철없던 시절에 친구들끼리 어울려다니며 스스럼없이 얘기를 나누다가 끝에 던지는 말이 있었다. “그쟈?” 무척이나 정겨움을 안기는 말이다. 인생을 살아보니 더딘 듯 한데 빠르게 지나는 것 같다. 지루한 듯한데 돌아보니 까마득한 과거가 되어있...
    Views8789
    Read More
  19. 아빠가 너무 불쌍해요

    새해가 시작되었다. 부부가 행복하려면 배우자의 어린 시절을 깊이 알아야 한다. 한국에서 가정사역을 할 때에 만난 부부이야기이다. 처음 시작하는 즈음에 ‘배우자의 어린 시절 이해하기’ 숙제를 주었다. 마침 그 주간에 대구에서 시어머니 칠순...
    Views9155
    Read More
  20. 2022년 새해 첫칼럼 / 인생열차

    ​ 2022호 인생열차가 다가왔다. 사명을 다한 2021호 기차를 손 흔들어 보내고 이제 막 당도한 기차에 오른다. 어떤 일들이 다가올지 알 수 없지만 오로지 기대감을 가지고 좌석을 찾아 앉는다. 교회에 나가 신년예배를 드림이 감격스러워 성찬을 받는 손길에 ...
    Views8992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35 Next
/ 35

주소: 423 Derstine Ave. Lansdale., PA 19446
Tel: (215) 913-3008
e-mail: philamilal@hotmail.com

© k2s0o1d4e0s2i1g5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