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2018.06.22 14:16

야학 선생

조회 수 40864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야학.jpg

 

 

  20대 초반 그러니까 신학대학 2학년 때였다. 같은 교회에서 사역하는 김건영 전도사께서 주일 낮 예배 후 할 말이 있다.”며 다가왔다. 우리는 비어 있는 유년주일학교 예배 실 뒤편 탁자에 마주 앉았다. 용건은 나에게 야학 선생을 해 달라.”는 것이었다. 매일 사당동까지(당시 우리 집은 청량리) 학교에 다니기도 버거운데 야학까지 담당하기에는 모든 것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전도사님의 너무도 간곡한 부탁이라 거절하기도 그렇고 생각 할 여유를 달라고 했다. 며칠을 고민하다 결국 전도사님의 부탁에 응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야학이 열리는 곳은 월곡동이었다. 드디어 야학 첫 수업을 위해 출발하였다. 청량리에서 전철을 타고 성북역까지 갔다. 그곳에서 버스를 다시 타고 몇 정류장을 지나 내렸다. 당시 월곡동은 개발되기 전이라 허허벌판에 허술한 집들과 공장들이 드문드문 서있는 풍경이었다. 불편한 다리를 끌고 그것도 캄캄한 밤중에 지정한 공장을 찾아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드디어 높은 회색 담이 처진 공장에 당도했다. 기다리고 있던 선배 야학 선생의 인도를 따라 2층 교실로 들어섰다.

 

  자그마한 공간, 머리위에 켜져 있는 형광등 불빛, 그리고 책상에 앉아 있는 30여명의 학생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공장에서 일하는 공원들이었고 대부분 여공들이었다. 이내 소개를 받고 단에 섰다. 모두다 이미 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는지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나를 쳐다보았다. “제 이름은 이재철 입니다. 지금 신학대학에 다니고 있는 신학생이구요. 오늘부터 여러분들에게 음악을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인사가 끝나자 그들은 박수로 환대 해 주었고, 웃으며 자기들끼리 무어라 속삭였다.

 

  당시는 70년대 후반이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였기에 시골에서 많은 10대들이 무작정 상경을 하는 때였다. 운이 좋아 친척이 있는 친구들은 보증을 서주어 공장에 취직을 했다. 일은 엄청나게 하면서도 대부분 낮은 임금을 받고 공장에서 일하는 그들의 모습은 보기에도 안쓰러웠다. 그렇게 일을 하다 보니 공부에 대한 열의가 되살아나게 되었고, 그들의 장래를 위해 따뜻한 마음을 가진 분들이 마련해 준 공간이 야간학교였다. 검정고시 과정을 공부시키는 과정이었다. 따라서 당시 야간학교에는 나이가 든 학생들이 많이 있었다.

 

  당시 나는 23세였다. 학생들은 대부분 16살에서 20살까지였고 어떤 학생은 나의 누이 나이 정도까지 보이기도 했다. 20대 초반의 내 외모는 꽤나 매력이 있었다. 믿거나 말거나. 거기다 음악을 가르쳤으니 학생들의 인기는 얼마안가 나에게 쏠려 버렸다. 1주일에 단 한번 찾아가는 야간학교였지만 행복했다. 처음 야간학교를 찾아갈 때 코에 스며들던 월곡동 골목의 풋풋한 풀 향기를 지금도 기억한다. 음악을 가르치다보면 그들은 이론보다는 노래를 부르는 실기시간을 더 좋아했다.

 

  가끔 기타를 들고 가서 풍금과 맞춰 함께 노래를 불렀다. 분위기가 고조되면 기타를 치며 내가 독창을 했다. 음악시간은 그들의 삶의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기쁨의 시간이었다. 음악책에 나와 있는 노래를 부르며 그들은 모두 아련한 꿈을 꾸고 있었다. 이제 세월이 지나 기억이 흐릿해 졌지만 많은 시간들을 그들과 함께 지내며 꿈을 심었다. 소설 상록수(작가 심훈)의 주인공 채영신의 심정으로 대화 속에서도 소망어린 단어를 많이 구사한 것 같다. 그렇게 시작된 야학선생은 그해 가을, 10 · 26 사건이 터져 시국이 어수선해지면서 흐지부지 막을 내렸다.

 

  사람이 누리는 즐거움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노는 즐거움이고, 다른 하나는 배우는 즐거움이다. 그들은 노는 즐거움 대신 배우는 즐거움을 택했던 사람들이었다. 공부를 가르치는 동안 그들 중에는 눈으로 말하는 학생도 있었고, 노래로 말하는 학생도 있었다. 어느 하늘아래에서 누군가의 어머니로 살아가고 있을 그들의 모습이 문득 그리워진다.

 


  1. 철든 인생

    이야기를 나누던 상대방이 갑자기 일어선다. “많이 바쁘세요?” “손자가 학교에서 올 시간이 되어 픽업을 해야 합니다.” 한편으로 부럽기도하고 헛웃음이 나온다. 그렇게 나이가 들어가는 인생의 모습을 본다. 학교에 다녀오던 아이들...
    Views6988
    Read More
  2. 남편과 아내는 무엇이 다른가?

    성인이 된 남녀는 자연스럽게 짝을 찾는다. 나이도 그렇고 상황에 다다르면 결단을 하고 결혼을 하게 된다. 하지만 가슴만 뜨거울 뿐 아무런 지식도 없이 부부의 연을 이어간다. 세상의 법칙은 자격증이 있어야 따라오는 권리를 누릴 수 있다. 운전도 면허증...
    Views7189
    Read More
  3. 행복과 소유

    소낙비가 한참을 쏟아지더니 갑자기 무지개가 떠올랐다. 조금 후 그 위로 또 하나의 무지개가 피어올랐다. 쌍무지개였다. 일곱 색깔 영롱한 무지개를 보며 행복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인생은 순간이다. 머물고 싶어도 오랜시간 지체할 수 없는 현재의 연속이...
    Views7107
    Read More
  4. 불굴의 비너스

    간사 채용 공고를 내고 몇몇 대상자를 인터뷰하게 되었다. 지인의 소개로 모교회에서 사역하는 분과 마주 앉았다. 이력서를 보며 내심 놀랐다. 그는 절단 장애인이었다. 어린 시절 교통사고로 오른쪽 다리를 잃게 된 것이다. 장애인끼리 통하는 기류를 느꼈다...
    Views6856
    Read More
  5. 서른 아홉

    요사이 흠뻑 빠져 몰입하는 드라마가 있다. <<서른. 아홉>> 손예진, 전미도, 김지현의 자연스럽고도 정감어린 연기와 우정에 흥미를 더해간다. 언뜻 보면 철없던 어린 시절에 만나 스스럼없이 어우러지는 여친들의 이야기 같지만 노련한 유영아 작가는 심오한...
    Views6538
    Read More
  6. 부부 행복하십니까?

    부부는 참 묘하다. 행복한듯하면서도 그냥 그렇고, 서로 냉정한 것 같으면서도 사무치게 챙기고 마음에 두는 사이니까 말이다. 분명한 것은 그 가정에 들어가보지 않고는 부부사이를 알수가 없다. 겉보기에는 다정한 부부 같은데 정작 둘의 관계는 그렇지 못...
    Views6778
    Read More
  7. 3월의 산은 수다스럽다

    경칩을 지나며 봄기운이 서서히 동장군의 기세를 몰아내고 있다. 그렇게 사계절의 입김을 쐬이며 나이는 숫자를 더해간다. 봄이 무척이나 기다려지던 때가 있었다. 산천초목이 흰눈에 뒤덮여 세상이 움추러들기만 하다가 꽁꽁 얼어붙었던 시냇물이 서서히 드...
    Views7089
    Read More
  8. 그렇게 父女는 떠났다

    2002년 남가주(L.A.)밀알선교단 부단장으로 사역할 때에 일이다. L.A.는 워낙 한인들이 많아 유력하게 움직이는 장애인선교 단체만 7개 정도이고, 교회마다 사랑부(장애인부서)가 있어서 그 숫자를 합하면 규모가 크다. 감사하게도 선교기관들이 서로 협력관...
    Views7328
    Read More
  9. 고난의 종착역

    고난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아가가 울며 세상에 태어나는 것은 삶 자체가 고난의 연속이라는 사실을 감지했기 때문이리라. 고난이 없는 인생은 없다. 날마다 크고작은 고난을 감내하며 인생이야기는 흘러가고 있다. 고난을 통과하지 않고는 보배를 ...
    Views7312
    Read More
  10. Home, Sweet Home

    사람들은 집값이 치솟았다고 낙담한다. 특히 한국인들은 집에 대한 애착이 대단하다. 젊어서부터 허리띠를 졸라매며 근검절약하여 집을 장만하려 애를 쓴다. 거의 다가갔나 했더니 집 가격이 천정부지로 올라가며 사람들을 좌절케 만든다. 내가 중학교를 졸업...
    Views7297
    Read More
  11. 쪽 팔리게

    칼럼 제목을 정하면서 잠시 망설였지만 이제 이런 표현이 자극적이거나 품격이 떨어지는 단어가 아니라고 생각하며 과감하게 달아보았다. 내가 어릴때는 ‘겸연쩍다, 민망하다, 부끄럽다’고 표현한 것 같다. 하지만 더 들어가보면 의미는 조금 다...
    Views7764
    Read More
  12. 장애아의 자그마한 걸음마

    누구나 결혼을 하면 아이를 낳는다. 오가며 만나는 아이들을 보며 ‘나에게도 저런 예쁘고 사랑스러운 아이가 태어날 것’을 기대하다가 임신 소식을 듣는 순간 신기함과 감격이 밀려온다. 출산을 준비하고 막상 태어난 아이가 장애를 안고 나왔을 ...
    Views7784
    Read More
  13. Meister

    독일에는 ‘Meister’라는 제도가 있다. 원뜻은 ‘선생’이란 뜻을 갖는 라틴어 마기스터(magister)이다. 영어로는 마스터(master), 이탈리어로는 마에스트로(maestro)이다. 우리말로는 “장인, 거장, 명장”등으로 불리우기도...
    Views7888
    Read More
  14. 그쟈?

    철없던 시절에 친구들끼리 어울려다니며 스스럼없이 얘기를 나누다가 끝에 던지는 말이 있었다. “그쟈?” 무척이나 정겨움을 안기는 말이다. 인생을 살아보니 더딘 듯 한데 빠르게 지나는 것 같다. 지루한 듯한데 돌아보니 까마득한 과거가 되어있...
    Views7811
    Read More
  15. 아빠가 너무 불쌍해요

    새해가 시작되었다. 부부가 행복하려면 배우자의 어린 시절을 깊이 알아야 한다. 한국에서 가정사역을 할 때에 만난 부부이야기이다. 처음 시작하는 즈음에 ‘배우자의 어린 시절 이해하기’ 숙제를 주었다. 마침 그 주간에 대구에서 시어머니 칠순...
    Views8233
    Read More
  16. 2022년 새해 첫칼럼 / 인생열차

    ​ 2022호 인생열차가 다가왔다. 사명을 다한 2021호 기차를 손 흔들어 보내고 이제 막 당도한 기차에 오른다. 어떤 일들이 다가올지 알 수 없지만 오로지 기대감을 가지고 좌석을 찾아 앉는다. 교회에 나가 신년예배를 드림이 감격스러워 성찬을 받는 손길에 ...
    Views7986
    Read More
  17. 새로운 것에 대하여

    오늘은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분기점이다. 여전히 팬데믹은 그 기세를 누그러뜨리지 않고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다. 실로 평범이 그리워지는 시점이다. 마스크 없이 누구와도 아무 거리낌 없이 만나고 활보하던 일상이 그립다. 그런때가 언제나 올...
    Views8206
    Read More
  18. Merry Christmas!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이다. 이제 7일만 지나면 2021년은 역사의 뒤켠으로 사라져 갈 것이다. 팬데믹의 동굴을 아직도 헤매이고 있지만 한해를 보내는 마음은 아쉽기만 하다. 미우나고우나 익숙했던 2021년을 떠나보내며 웃을 수 있음은 성탄절이 있기 때문...
    Views8519
    Read More
  19. 불편했던 설레임

    사람에게는 누구나 첫시간이 있다. 아니 첫경험이 있다. 그 순간은 두렵고 긴장되고 실수가 동반된다. 처음 교회에 나갔을때에 난처했다. 다들 눈을 감은 채 사도신경을 줄줄 외우고, 성경, 찬송가를 척척 찾아 부르는 것을 보면서 모멸감이 느껴졌다. &lsquo...
    Views8533
    Read More
  20. 홀로 산다는 것

    나이가 들어가는 청년들을 만났을 때 “언제 결혼하냐?”고 묻는다면 당신은 상꼰대이다. 시대가 변했다. 결혼을 목표로 공부를 하고 스팩을 쌓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는 말이다. 우리가 어릴 때는 대가족 시대였다. 식사 때가 되면 3대가 온 상에 ...
    Views8774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35 Next
/ 35

주소: 423 Derstine Ave. Lansdale., PA 19446
Tel: (215) 913-3008
e-mail: philamilal@hotmail.com

© k2s0o1d4e0s2i1g5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