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2018.06.29 13:32

미안하고 부끄럽고

조회 수 39886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달.png

 

  매일 새벽마다 이런 고백을 하며 기도를 시작한다. “한번도 살아보지 않은 새날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다. 어제 잠자리에 들며 죽었다면 오늘 아침 다시 부활한 것이다. 지난밤에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다시 깨어났으니 이것이 기적이요, 은총이다. 장례식에 가서 뷰잉을 한다. 이름을 부르면 관에서 일어나 반가워 할 것만 같다. 하지만 말이 없다. 죽은 사람과 깊이 잠든 사람은 멀리서보면 구분이 안 간다. 살아있는 사람만 깨어날 수 있다. 산사람은 아침이 되면 다시 눈을 뜨며 날을 계수한다. 기지개를 켜며 하루를 시작한다.

 

  필라는 숲이 많아서인지 새들도 많다. 새벽에 기도하다보면 온갖 희한한 소리를 내며 지저귀는 새소리에 접한다. ‘쟤네들도 기도를 하는 것이겠지?’ 새소리를 들으며 나는 주님과 깊은 영교에 들어간다. 새롭다. 행복하다. 살아있는 것이 고맙고 소중하다. 돌아보면 고비도 많았다. 아니 육신을 입고 살아가는 여정 속에 또 어떤 일들을 만날지 알 길이 없다. 하지만 새로이 주어진 하루를 대하는 태도에 따라 삶의 방향은 달라진다.

 

  20대 초반에 시작한 신학과정은 무려 8년이 걸렸다. 자유분방하게 살아가던 내가 신학대학교를 들어가는 모습에 모두가 놀랐다. 교회에서 함께 자란 친구들, 선후배들, 나를 잘 아는 지인들. 나 자신도 놀랐으니까. 흘러가는 강물에 몸을 맡기듯 살아가던 삶이 한순간 성직의 길로 전환한다는 것은 실로 극적이었다. 처음 신학대학에 들어가 매일 경건회(신학대학에서 매일 드리는 예배)에 참석하며 결코 평범하지도 쉽지도 않은 길을 선택하였다는 것을 실감했다. 하지만 앞만 보고 달렸다. 십자가와 그리스도. 그것이 내 20대의 키워드였다.

 

  드디어 30대 중반에 담임목회를 시작했다. 만만해보이던 목회는 시간이 흐르며 그 무게가 더해갔다. 교인이 작을 때는 그것이 아쉬웠고, 교회가 부흥하자 그 수만큼 말도, 탈도 많아지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을 대하며 받는 정신적 무게는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안다. 독특한 개성을 가진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키는 목회가 있을까? 처음에는 그들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을 했다. 시간이 지나며 나의 부족을 절실히 깨달았다. 그래서 찾아 나선 곳이 영성수련이었다. 무던히 찾아다니던 영성수련장에서 깨어나는 체험을 했다.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거듭나라고 당부했던 그 경험이 다가온 것이다. 내가 깨어나지 못하고 교인들을 깨우려 했던 내 모습을 비로소 발견한 것이다. 저만큼 엎드려있는 나를 내가 발견하며 밀려온 감정은 미안함과 부끄러움이었다. 나는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살았다. 목사이니까 목회를 한 것뿐이지. 진정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무엇이 가장 중요한 줄도 모르고 달렸다. 주님을 위해 한다고 하면서 결국은 내 만족을 위해 이 길을 걸어왔던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많이 울었다. 미안해서, 억울해서, 나 스스로가 미워서 통곡하며 뒹굴었다. 2살 때 소아마비에 걸려 장애인으로 살아온 것이 너무도 서러웠는데. 깨어나 보니 그것이 은총이었다. 살아오며 부딪쳤던 고통의 시간들이 원망스러웠는데 지금까지 살아온 과정 과정이 내 삶에 꼭 필요한 일만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영성수련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시계와 핸드폰을 맡겨야 한다. 시간개념이 사라지는 것이다. 어느 누구와도 소통을 할 수가 없다. 수련생끼리도 많은 말을 하는 것을 철저히 통제한다. 처음에는 불편하지만 곧 자유함이 찾아온다.

 

  수련 중에 한밤중 밖으로 나갔더니 둥근달이 떠있었다. 너무도 아름다워서 바라보다가 가슴에서 뭔가 욱하고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미안함과 부끄러움이었다. 소중한 성도들을 소중하게 대하지 못한 것에 대한 회한이었다. 나는 어느 날 지구에 왔다. 그런데 정작 그 지구를 모른다. 나를 모르고 내 인생을 모르고 산다. 왜 나는 한국 사람일까? 왜 한국이 아닌 미국에 살고 있을까? 모르고 산다. 정말 미안하고 부끄러운 것이 아닐까? 길을 안다고 생각하는 것과 실제로 그 길을 간 것의 차이를 아는 순간 우리는 소스라치게 놀란다.

 

 오늘은 내 생애에 처음 있는 날이다. 오늘은 어제도 내일도 아니다. 오늘이다. 오늘은 오늘뿐이다. 오늘을 살자!

 

 

 

 


  1. 철든 인생

    이야기를 나누던 상대방이 갑자기 일어선다. “많이 바쁘세요?” “손자가 학교에서 올 시간이 되어 픽업을 해야 합니다.” 한편으로 부럽기도하고 헛웃음이 나온다. 그렇게 나이가 들어가는 인생의 모습을 본다. 학교에 다녀오던 아이들...
    Views6990
    Read More
  2. 남편과 아내는 무엇이 다른가?

    성인이 된 남녀는 자연스럽게 짝을 찾는다. 나이도 그렇고 상황에 다다르면 결단을 하고 결혼을 하게 된다. 하지만 가슴만 뜨거울 뿐 아무런 지식도 없이 부부의 연을 이어간다. 세상의 법칙은 자격증이 있어야 따라오는 권리를 누릴 수 있다. 운전도 면허증...
    Views7190
    Read More
  3. 행복과 소유

    소낙비가 한참을 쏟아지더니 갑자기 무지개가 떠올랐다. 조금 후 그 위로 또 하나의 무지개가 피어올랐다. 쌍무지개였다. 일곱 색깔 영롱한 무지개를 보며 행복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인생은 순간이다. 머물고 싶어도 오랜시간 지체할 수 없는 현재의 연속이...
    Views7111
    Read More
  4. 불굴의 비너스

    간사 채용 공고를 내고 몇몇 대상자를 인터뷰하게 되었다. 지인의 소개로 모교회에서 사역하는 분과 마주 앉았다. 이력서를 보며 내심 놀랐다. 그는 절단 장애인이었다. 어린 시절 교통사고로 오른쪽 다리를 잃게 된 것이다. 장애인끼리 통하는 기류를 느꼈다...
    Views6860
    Read More
  5. 서른 아홉

    요사이 흠뻑 빠져 몰입하는 드라마가 있다. <<서른. 아홉>> 손예진, 전미도, 김지현의 자연스럽고도 정감어린 연기와 우정에 흥미를 더해간다. 언뜻 보면 철없던 어린 시절에 만나 스스럼없이 어우러지는 여친들의 이야기 같지만 노련한 유영아 작가는 심오한...
    Views6543
    Read More
  6. 부부 행복하십니까?

    부부는 참 묘하다. 행복한듯하면서도 그냥 그렇고, 서로 냉정한 것 같으면서도 사무치게 챙기고 마음에 두는 사이니까 말이다. 분명한 것은 그 가정에 들어가보지 않고는 부부사이를 알수가 없다. 겉보기에는 다정한 부부 같은데 정작 둘의 관계는 그렇지 못...
    Views6788
    Read More
  7. 3월의 산은 수다스럽다

    경칩을 지나며 봄기운이 서서히 동장군의 기세를 몰아내고 있다. 그렇게 사계절의 입김을 쐬이며 나이는 숫자를 더해간다. 봄이 무척이나 기다려지던 때가 있었다. 산천초목이 흰눈에 뒤덮여 세상이 움추러들기만 하다가 꽁꽁 얼어붙었던 시냇물이 서서히 드...
    Views7092
    Read More
  8. 그렇게 父女는 떠났다

    2002년 남가주(L.A.)밀알선교단 부단장으로 사역할 때에 일이다. L.A.는 워낙 한인들이 많아 유력하게 움직이는 장애인선교 단체만 7개 정도이고, 교회마다 사랑부(장애인부서)가 있어서 그 숫자를 합하면 규모가 크다. 감사하게도 선교기관들이 서로 협력관...
    Views7330
    Read More
  9. 고난의 종착역

    고난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아가가 울며 세상에 태어나는 것은 삶 자체가 고난의 연속이라는 사실을 감지했기 때문이리라. 고난이 없는 인생은 없다. 날마다 크고작은 고난을 감내하며 인생이야기는 흘러가고 있다. 고난을 통과하지 않고는 보배를 ...
    Views7317
    Read More
  10. Home, Sweet Home

    사람들은 집값이 치솟았다고 낙담한다. 특히 한국인들은 집에 대한 애착이 대단하다. 젊어서부터 허리띠를 졸라매며 근검절약하여 집을 장만하려 애를 쓴다. 거의 다가갔나 했더니 집 가격이 천정부지로 올라가며 사람들을 좌절케 만든다. 내가 중학교를 졸업...
    Views7299
    Read More
  11. 쪽 팔리게

    칼럼 제목을 정하면서 잠시 망설였지만 이제 이런 표현이 자극적이거나 품격이 떨어지는 단어가 아니라고 생각하며 과감하게 달아보았다. 내가 어릴때는 ‘겸연쩍다, 민망하다, 부끄럽다’고 표현한 것 같다. 하지만 더 들어가보면 의미는 조금 다...
    Views7774
    Read More
  12. 장애아의 자그마한 걸음마

    누구나 결혼을 하면 아이를 낳는다. 오가며 만나는 아이들을 보며 ‘나에게도 저런 예쁘고 사랑스러운 아이가 태어날 것’을 기대하다가 임신 소식을 듣는 순간 신기함과 감격이 밀려온다. 출산을 준비하고 막상 태어난 아이가 장애를 안고 나왔을 ...
    Views7788
    Read More
  13. Meister

    독일에는 ‘Meister’라는 제도가 있다. 원뜻은 ‘선생’이란 뜻을 갖는 라틴어 마기스터(magister)이다. 영어로는 마스터(master), 이탈리어로는 마에스트로(maestro)이다. 우리말로는 “장인, 거장, 명장”등으로 불리우기도...
    Views7894
    Read More
  14. 그쟈?

    철없던 시절에 친구들끼리 어울려다니며 스스럼없이 얘기를 나누다가 끝에 던지는 말이 있었다. “그쟈?” 무척이나 정겨움을 안기는 말이다. 인생을 살아보니 더딘 듯 한데 빠르게 지나는 것 같다. 지루한 듯한데 돌아보니 까마득한 과거가 되어있...
    Views7817
    Read More
  15. 아빠가 너무 불쌍해요

    새해가 시작되었다. 부부가 행복하려면 배우자의 어린 시절을 깊이 알아야 한다. 한국에서 가정사역을 할 때에 만난 부부이야기이다. 처음 시작하는 즈음에 ‘배우자의 어린 시절 이해하기’ 숙제를 주었다. 마침 그 주간에 대구에서 시어머니 칠순...
    Views8243
    Read More
  16. 2022년 새해 첫칼럼 / 인생열차

    ​ 2022호 인생열차가 다가왔다. 사명을 다한 2021호 기차를 손 흔들어 보내고 이제 막 당도한 기차에 오른다. 어떤 일들이 다가올지 알 수 없지만 오로지 기대감을 가지고 좌석을 찾아 앉는다. 교회에 나가 신년예배를 드림이 감격스러워 성찬을 받는 손길에 ...
    Views7992
    Read More
  17. 새로운 것에 대하여

    오늘은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분기점이다. 여전히 팬데믹은 그 기세를 누그러뜨리지 않고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다. 실로 평범이 그리워지는 시점이다. 마스크 없이 누구와도 아무 거리낌 없이 만나고 활보하던 일상이 그립다. 그런때가 언제나 올...
    Views8219
    Read More
  18. Merry Christmas!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이다. 이제 7일만 지나면 2021년은 역사의 뒤켠으로 사라져 갈 것이다. 팬데믹의 동굴을 아직도 헤매이고 있지만 한해를 보내는 마음은 아쉽기만 하다. 미우나고우나 익숙했던 2021년을 떠나보내며 웃을 수 있음은 성탄절이 있기 때문...
    Views8526
    Read More
  19. 불편했던 설레임

    사람에게는 누구나 첫시간이 있다. 아니 첫경험이 있다. 그 순간은 두렵고 긴장되고 실수가 동반된다. 처음 교회에 나갔을때에 난처했다. 다들 눈을 감은 채 사도신경을 줄줄 외우고, 성경, 찬송가를 척척 찾아 부르는 것을 보면서 모멸감이 느껴졌다. &lsquo...
    Views8539
    Read More
  20. 홀로 산다는 것

    나이가 들어가는 청년들을 만났을 때 “언제 결혼하냐?”고 묻는다면 당신은 상꼰대이다. 시대가 변했다. 결혼을 목표로 공부를 하고 스팩을 쌓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는 말이다. 우리가 어릴 때는 대가족 시대였다. 식사 때가 되면 3대가 온 상에 ...
    Views8781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35 Next
/ 35

주소: 423 Derstine Ave. Lansdale., PA 19446
Tel: (215) 913-3008
e-mail: philamilal@hotmail.com

© k2s0o1d4e0s2i1g5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