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조회 수 30798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명퇴.jpg

 

 

 부지런히 일을 하며 달리는 세대에는 쉬는 것이 작은 소망이다. ‘언제나 일에서 자유로워져서 쉴 수 있을까?’ 젊은 직장인들의 한결같은 하소연이다. 해서 내 오랜 친구는 50에 접어들며 이런 넋두리를 했다. “재철아, 난 일찍 은퇴하고 싶어. 60대 초반이면 일반 목회를 접고 내가 꿈꿔왔던 일들을 추구하려 한다.” 그런데 50대 후반이 되어가며 친구는 말을 바꾸기 시작했다. 급기야 채 60이 되기 전에 은퇴가 없는 사역지로 옮겨가 버렸다. 사람 참 모를 일이다. 사람은 다 그런 것 같다. 일을 할 때는 지겨워하고 막상 그 일을 접을 때가 다가오면 아쉬워하며 놓기를 주저하게 된다.

 

 20대에 입사하여 평생을 헌신해 온 직장인이 있다. 이제 회사 중진이 되어 소신껏 꿈을 펼치려는 나이가 되자 회사에서는 보이지 않은 압력이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정년보다 조금 일찍 퇴직을 하면 넉넉한 퇴직금을 보장한다는 유혹이다. 오랫동안 갈등하던 끝에 드디어 퇴직을 했다. 이름하여 명예퇴직이다. 수십년간 근무하던 직장이니 시원함보다는 섭섭함이 앞선다. 눈물 콧물 다 흘리며 직장 동료들은 한 아름의 편지를 안겨 주었다. 며칠이 걸려 읽은 편지들은 미소 짓게 만든다.

 

 명예퇴직을 한지도 어언 한 달이 지나간다. 제일 먼저 찾아 온 것은 여유로움이다. 뜬금없이 찾아드는 불면의 밤도 늦잠을 잘 수 있으니 초조하지 않다. 출근을 위해 새벽 공기를 가르며 미친 듯이 뛰어 나가지 않아도 된다. 포근한 침대 속에서 즐기는 아침잠의 그 느긋함은 행복감을 느끼게 한다. 충분한 잠으로 전날의 피로가 씻어 지니 상쾌한 아침을 맞게 된다. 은행이나 병원진료 등도 눈치 보지 않고 들를 수 있어 좋다. 운동한답시고 늦은 밤에 들어 와 아침식사 준비로 밤늦게 떨그럭거리지 않아도 된다.

 

 초저녁부터 TV앞에 앉아 리모컨 운전만 열심히 하면 된다. 친구들이랑 차도 마시고 바람도 쏘이며 조잘대는 그 재미도 함께 할 수 있다. 평일 낮의 나들이가 얼마나 편안한지 느끼게 된다. 사람들은 퇴직하고 나니 어떠냐?”고 물어온다. 아직은 여유로움 외에는 잘 모르겠다. 연금이 월급만 하겠는가? 반 이하로 확 줄어버린 연금으로 경제적 부감감이야 당연히 느낀다. 시간이 귀해 늘 택시를 타고 다니던 그가 요즘은 버스나 전철을 타게 된다. 그 속에서 타인들의 사는 모습을 보면서 또 다른 인생을 느끼는 것도 흥미롭다.

퇴직을 하고 나면 4단계의 대학이 있다고 했던가? 하루 종일 바빠 하바드 대학. 하루 종일 와이프 뒤만 따라 다녀 하와이 대학. 하루 종일 동네 경로당에 있어 동경 대학. 그것도 다리 아파 못하면 방구석에 콕 박혀 방콕 대학이라지. 수십년간 직장에 매어 있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그는 백수생활에 젖어 들고 있다. 이제는 편안하게 동창들을 만난다. 자식들도 모두 장성해서 대부분 짝을 맞추었고 짧지 않은 세월 동안 같이 살아온 아내와 함께 한 시름 놓고 적당히 보기 좋은 주름살로 쌓아온 연륜도 즐길 수 있는 친구들이다.

 

 화제는 자연히 황혼의 삶을 어떻게 잘 마무리 할 수 있는가가 중심이었다. 옛일에 대한 향수를 더듬기보다 앞으로 맞이할 백수로서의 시간과 생활에 어떻게 잘 적응하며 여생을 마무리 하는가가 대화의 줄을 이어간다. 세상일은 늘 변화하고 움직이기 때문에 백수에게도 기회가 찾아오지 말라는 법은 없다. 퇴직했다고 멋진 꿈까지 접어서는 안 된다. 자신감과 긍정적인 태도로 퇴직의 여유로움을 느껴야 한다. 마음속에 자기만의 공간을 마련하고 그 속에 끝없는 도전과 희망의 나무를 심는 것이 필요하다.

 

 나이가 들어가면 현역에서 물러나는 일은 당연한 이치이다. 그렇다고 그냥 주저 않아 죽을 날만 헤아리는 것은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다. 나이에 덮여 백수의 아름다움 자체를 스스로 포기해서는 안 된다. 백수가 무엇인가? 백 가지 손을 가지고 최소한 백 가지의 여유를 만들 수 있는 때가 아닐까? 가슴을 펴고 백수의 노래를 불러보자. 그것이 진정 명예퇴직자의 영예이다.


  1. 당신도 제주

    어디론가 홀연히 떠나고 싶을 때가 있다. 아무 간섭도 받지 않고 마냥 생각에 잠기고 아름다운 풍경을 좇아 거닐며 내 삶을 깊이 돌아보고 싶은때가 있다. 한민경 씨. 그녀는 어느 날 김치찌개를 먹다 생각했다. “내가 이렇게 사는 게 잘 사는 걸까?&rd...
    Views7633
    Read More
  2. 전신마비 첫 치과의사

    삶에는 시련이 있다. 하지만 극한 장애가 찾아온다면 견뎌낼 사람이 있을까? 그것도 온몸이 마비되는 경우에 말이다. 그런데 그런 드라마에나 나올듯한 상황을 역전시켜 당당히 살아가는 주인공이 있다. 이규환 교수. 그는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치과 진료를 하...
    Views8149
    Read More
  3. 하숙집 풍경

    “사람을 낳으면 서울로 보내고 말을 낳으면 제주로 보내라”고 했던가? 내가 고교시절에는 지방에서 서울로 유학(?)을 온 학생들이 꽤 많았다. 집안 형편이 좋은 아이는 하숙을 했고,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자취를 했다. 하숙집에는 많은 학생들이...
    Views7653
    Read More
  4. 철든 인생

    이야기를 나누던 상대방이 갑자기 일어선다. “많이 바쁘세요?” “손자가 학교에서 올 시간이 되어 픽업을 해야 합니다.” 한편으로 부럽기도하고 헛웃음이 나온다. 그렇게 나이가 들어가는 인생의 모습을 본다. 학교에 다녀오던 아이들...
    Views7856
    Read More
  5. 남편과 아내는 무엇이 다른가?

    성인이 된 남녀는 자연스럽게 짝을 찾는다. 나이도 그렇고 상황에 다다르면 결단을 하고 결혼을 하게 된다. 하지만 가슴만 뜨거울 뿐 아무런 지식도 없이 부부의 연을 이어간다. 세상의 법칙은 자격증이 있어야 따라오는 권리를 누릴 수 있다. 운전도 면허증...
    Views7933
    Read More
  6. 행복과 소유

    소낙비가 한참을 쏟아지더니 갑자기 무지개가 떠올랐다. 조금 후 그 위로 또 하나의 무지개가 피어올랐다. 쌍무지개였다. 일곱 색깔 영롱한 무지개를 보며 행복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인생은 순간이다. 머물고 싶어도 오랜시간 지체할 수 없는 현재의 연속이...
    Views7956
    Read More
  7. 불굴의 비너스

    간사 채용 공고를 내고 몇몇 대상자를 인터뷰하게 되었다. 지인의 소개로 모교회에서 사역하는 분과 마주 앉았다. 이력서를 보며 내심 놀랐다. 그는 절단 장애인이었다. 어린 시절 교통사고로 오른쪽 다리를 잃게 된 것이다. 장애인끼리 통하는 기류를 느꼈다...
    Views7768
    Read More
  8. 서른 아홉

    요사이 흠뻑 빠져 몰입하는 드라마가 있다. <<서른. 아홉>> 손예진, 전미도, 김지현의 자연스럽고도 정감어린 연기와 우정에 흥미를 더해간다. 언뜻 보면 철없던 어린 시절에 만나 스스럼없이 어우러지는 여친들의 이야기 같지만 노련한 유영아 작가는 심오한...
    Views7392
    Read More
  9. 부부 행복하십니까?

    부부는 참 묘하다. 행복한듯하면서도 그냥 그렇고, 서로 냉정한 것 같으면서도 사무치게 챙기고 마음에 두는 사이니까 말이다. 분명한 것은 그 가정에 들어가보지 않고는 부부사이를 알수가 없다. 겉보기에는 다정한 부부 같은데 정작 둘의 관계는 그렇지 못...
    Views7840
    Read More
  10. 3월의 산은 수다스럽다

    경칩을 지나며 봄기운이 서서히 동장군의 기세를 몰아내고 있다. 그렇게 사계절의 입김을 쐬이며 나이는 숫자를 더해간다. 봄이 무척이나 기다려지던 때가 있었다. 산천초목이 흰눈에 뒤덮여 세상이 움추러들기만 하다가 꽁꽁 얼어붙었던 시냇물이 서서히 드...
    Views8143
    Read More
  11. 그렇게 父女는 떠났다

    2002년 남가주(L.A.)밀알선교단 부단장으로 사역할 때에 일이다. L.A.는 워낙 한인들이 많아 유력하게 움직이는 장애인선교 단체만 7개 정도이고, 교회마다 사랑부(장애인부서)가 있어서 그 숫자를 합하면 규모가 크다. 감사하게도 선교기관들이 서로 협력관...
    Views8219
    Read More
  12. 고난의 종착역

    고난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아가가 울며 세상에 태어나는 것은 삶 자체가 고난의 연속이라는 사실을 감지했기 때문이리라. 고난이 없는 인생은 없다. 날마다 크고작은 고난을 감내하며 인생이야기는 흘러가고 있다. 고난을 통과하지 않고는 보배를 ...
    Views8146
    Read More
  13. Home, Sweet Home

    사람들은 집값이 치솟았다고 낙담한다. 특히 한국인들은 집에 대한 애착이 대단하다. 젊어서부터 허리띠를 졸라매며 근검절약하여 집을 장만하려 애를 쓴다. 거의 다가갔나 했더니 집 가격이 천정부지로 올라가며 사람들을 좌절케 만든다. 내가 중학교를 졸업...
    Views8347
    Read More
  14. 쪽 팔리게

    칼럼 제목을 정하면서 잠시 망설였지만 이제 이런 표현이 자극적이거나 품격이 떨어지는 단어가 아니라고 생각하며 과감하게 달아보았다. 내가 어릴때는 ‘겸연쩍다, 민망하다, 부끄럽다’고 표현한 것 같다. 하지만 더 들어가보면 의미는 조금 다...
    Views8827
    Read More
  15. 장애아의 자그마한 걸음마

    누구나 결혼을 하면 아이를 낳는다. 오가며 만나는 아이들을 보며 ‘나에게도 저런 예쁘고 사랑스러운 아이가 태어날 것’을 기대하다가 임신 소식을 듣는 순간 신기함과 감격이 밀려온다. 출산을 준비하고 막상 태어난 아이가 장애를 안고 나왔을 ...
    Views8789
    Read More
  16. Meister

    독일에는 ‘Meister’라는 제도가 있다. 원뜻은 ‘선생’이란 뜻을 갖는 라틴어 마기스터(magister)이다. 영어로는 마스터(master), 이탈리어로는 마에스트로(maestro)이다. 우리말로는 “장인, 거장, 명장”등으로 불리우기도...
    Views8938
    Read More
  17. 그쟈?

    철없던 시절에 친구들끼리 어울려다니며 스스럼없이 얘기를 나누다가 끝에 던지는 말이 있었다. “그쟈?” 무척이나 정겨움을 안기는 말이다. 인생을 살아보니 더딘 듯 한데 빠르게 지나는 것 같다. 지루한 듯한데 돌아보니 까마득한 과거가 되어있...
    Views8594
    Read More
  18. 아빠가 너무 불쌍해요

    새해가 시작되었다. 부부가 행복하려면 배우자의 어린 시절을 깊이 알아야 한다. 한국에서 가정사역을 할 때에 만난 부부이야기이다. 처음 시작하는 즈음에 ‘배우자의 어린 시절 이해하기’ 숙제를 주었다. 마침 그 주간에 대구에서 시어머니 칠순...
    Views9128
    Read More
  19. 2022년 새해 첫칼럼 / 인생열차

    ​ 2022호 인생열차가 다가왔다. 사명을 다한 2021호 기차를 손 흔들어 보내고 이제 막 당도한 기차에 오른다. 어떤 일들이 다가올지 알 수 없지만 오로지 기대감을 가지고 좌석을 찾아 앉는다. 교회에 나가 신년예배를 드림이 감격스러워 성찬을 받는 손길에 ...
    Views8950
    Read More
  20. 새로운 것에 대하여

    오늘은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분기점이다. 여전히 팬데믹은 그 기세를 누그러뜨리지 않고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다. 실로 평범이 그리워지는 시점이다. 마스크 없이 누구와도 아무 거리낌 없이 만나고 활보하던 일상이 그립다. 그런때가 언제나 올...
    Views9082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35 Next
/ 35

주소: 423 Derstine Ave. Lansdale., PA 19446
Tel: (215) 913-3008
e-mail: philamilal@hotmail.com

© k2s0o1d4e0s2i1g5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