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2019.12.20 09:12

나를 잃는 병

조회 수 26900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치매.jpg

 

 

 세상에서 가장 끔찍하고 무서운 병은 어떤 것일까? 알츠하이머? 치매가 아닐까? 자신은 행복할지 모르지만 가족들과 지인들을 안타깝고 힘들게 만드는 병. 얼마 전 명배우 윤정희 씨가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다는 사실을 그의 부군이자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밝혀 충격을 주었다. 윤정희는 1960년대 문희, 남정임과 함께 '여배우 트로이카'로 통했던 톱배우이다. 그의 미모, 영화를 보며 뭇남성들은 가슴이 울렁였다. 그런 그녀에게 몹쓸 병이 찾아오다니?

 

 윤정희의 알츠하이머 증상이 10년쯤 전에 시작됐다고 했다. 지난 5월부터 프랑스 파리에서 요양 중이며, 딸인 바이올리니스트 백진희가 어머니를 돌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윤정희는 320편의 영화에 출연했으며 최근작은 2010년 영화 ''(감독 이창동). 그녀는 이 영화로 국내 영화 시상식 여우주연상을 휩쓸었으며, 칸 영화제에서 레드카펫을 밟고 LA 비평가협회상 여우주연상도 받았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여배우를 여지없이 짓밟아버린 병이 그래서 두렵고 밉다.

 

 심리학에는 에빙하우스의 망각곡선이라는 것이 있다. 19세기 후반 독일의 심리학자 헤르만 에빙하우스(1855-1909)16년 동안 인간의 망각에 대해 실험을 한 결과로 내놓은 학설이다. 에빙하우스는 인간의 기억은 어떠한 개체를 인지 학습한 후 기억을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소위 에빙하우스의 망각율이라는 개념을 주창한다. 그의 망각곡선에 의하면 사람은 20분 후면 42%, 1시간 후에 55%, 9시간 후에는 65%, 하루가 지나면 66%, 6일이 지나면 75%, 1개월이 지나면 79%를 잊어버리게 된다고 주장 한다.

 

 망각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좋은 기억은 그렇다치더라도 남이 나에게 잘못한 것, 서운하게 한 것, 지우고 싶은 사건들을 전혀 잊어버리지 않고 산다면 그것도 고역이리라! 20년 전, 나의 어머니는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셨다. 새벽기도를 가시다가 뺑소니 음주운전 차량에 추돌하여 숨을 거두셨다. 그 당시 나는 견디기 힘든 정신적 고통에 시달렸다. 부모님 장례를 경험한 분들은 알 것이다. 어머니 장례를 치르며 불효한 것 밖에는 기억이 안났다. 어머니 영정 앞에서 울고 울며 그 사랑을 되뇌이고 급작스럽게 떠나버린 어머니의 잔상이 나를 힘들게 했다. 목회고, 가정이고, 내가 살아있다는 자체가 염증이 났다. 견디기 힘든 고통의 시간이었다.

 

 하지만 어쩌랴! 버텨야했다. 세월이 약이라던가? 시간의 흐름 속에 자제력이 되돌아왔고 어느 순간 까마득한 옛일처럼 지우며 살고 있다. 잊어버릴 수 있다는 것은 인간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축복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마땅히 기억해야 할 것,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을 잊어버리는 것이 문제이다. 나이가 들어가면 망각율은 더 심해지고, 무언가 자꾸 잊어버리게 되는 현상을 치매라고 하지 않는가? 치매에 걸리면 내 생명이라도 내줄 듯이 사랑했던 자식의 얼굴도, 이름도 잊어버리게 되고, 아름다운 사람, 기억을 다 잊어버리게 된다.

 

 치매의 원인은 아직도 확실하지 않다. 물론 나이가 들어가며 신체기능이 떨어지는 현상 중에 하나일 수도 있다. 고혈압, 당뇨병등 동맥경화를 악화시키는 질환들이 문제가 되기도 한다. 뇌에 혈액을 공급해 주는 여러 동맥들을 협소하게 하거나 막히게 하여 뇌의 혈액흐름을 저해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구멍이 숭숭 뚫린 바람든 무를 상상하면 될 것이다. 인생의 짐이 너무 무거워 뇌에서 지워야만 하는 것일까?

 

 그런데 내게 요즈음 치매 증상이 찾아온 것 같다. 주께로 받은 은혜와 사명이 밤하늘의 별처럼 빛나고 있는데 순간순간 그 은혜를 망각한 채로 살아가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순간순간 잊어먹는 것을 섬망증이라 하지만 이것도 발전하면 치매와 별다를 바가 없다. 그래서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정신을 차려보고 자신에게 채찍을 가해 본다. 내가 눈을 감는 순간이 올 때도 그 은혜 그 사명을 움켜쥐고 서쪽 하늘을 찬란하게 물들이며 넘어가는 멋진 태양처럼 살고 싶다. 그분의 은총이 내 삶에 빛나는 노을같이 아름답게 번져가기를 기도하며 말이다.


  1. 당신도 제주

    어디론가 홀연히 떠나고 싶을 때가 있다. 아무 간섭도 받지 않고 마냥 생각에 잠기고 아름다운 풍경을 좇아 거닐며 내 삶을 깊이 돌아보고 싶은때가 있다. 한민경 씨. 그녀는 어느 날 김치찌개를 먹다 생각했다. “내가 이렇게 사는 게 잘 사는 걸까?&rd...
    Views7662
    Read More
  2. 전신마비 첫 치과의사

    삶에는 시련이 있다. 하지만 극한 장애가 찾아온다면 견뎌낼 사람이 있을까? 그것도 온몸이 마비되는 경우에 말이다. 그런데 그런 드라마에나 나올듯한 상황을 역전시켜 당당히 살아가는 주인공이 있다. 이규환 교수. 그는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치과 진료를 하...
    Views8168
    Read More
  3. 하숙집 풍경

    “사람을 낳으면 서울로 보내고 말을 낳으면 제주로 보내라”고 했던가? 내가 고교시절에는 지방에서 서울로 유학(?)을 온 학생들이 꽤 많았다. 집안 형편이 좋은 아이는 하숙을 했고,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자취를 했다. 하숙집에는 많은 학생들이...
    Views7672
    Read More
  4. 철든 인생

    이야기를 나누던 상대방이 갑자기 일어선다. “많이 바쁘세요?” “손자가 학교에서 올 시간이 되어 픽업을 해야 합니다.” 한편으로 부럽기도하고 헛웃음이 나온다. 그렇게 나이가 들어가는 인생의 모습을 본다. 학교에 다녀오던 아이들...
    Views7958
    Read More
  5. 남편과 아내는 무엇이 다른가?

    성인이 된 남녀는 자연스럽게 짝을 찾는다. 나이도 그렇고 상황에 다다르면 결단을 하고 결혼을 하게 된다. 하지만 가슴만 뜨거울 뿐 아무런 지식도 없이 부부의 연을 이어간다. 세상의 법칙은 자격증이 있어야 따라오는 권리를 누릴 수 있다. 운전도 면허증...
    Views7951
    Read More
  6. 행복과 소유

    소낙비가 한참을 쏟아지더니 갑자기 무지개가 떠올랐다. 조금 후 그 위로 또 하나의 무지개가 피어올랐다. 쌍무지개였다. 일곱 색깔 영롱한 무지개를 보며 행복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인생은 순간이다. 머물고 싶어도 오랜시간 지체할 수 없는 현재의 연속이...
    Views7978
    Read More
  7. 불굴의 비너스

    간사 채용 공고를 내고 몇몇 대상자를 인터뷰하게 되었다. 지인의 소개로 모교회에서 사역하는 분과 마주 앉았다. 이력서를 보며 내심 놀랐다. 그는 절단 장애인이었다. 어린 시절 교통사고로 오른쪽 다리를 잃게 된 것이다. 장애인끼리 통하는 기류를 느꼈다...
    Views7867
    Read More
  8. 서른 아홉

    요사이 흠뻑 빠져 몰입하는 드라마가 있다. <<서른. 아홉>> 손예진, 전미도, 김지현의 자연스럽고도 정감어린 연기와 우정에 흥미를 더해간다. 언뜻 보면 철없던 어린 시절에 만나 스스럼없이 어우러지는 여친들의 이야기 같지만 노련한 유영아 작가는 심오한...
    Views7408
    Read More
  9. 부부 행복하십니까?

    부부는 참 묘하다. 행복한듯하면서도 그냥 그렇고, 서로 냉정한 것 같으면서도 사무치게 챙기고 마음에 두는 사이니까 말이다. 분명한 것은 그 가정에 들어가보지 않고는 부부사이를 알수가 없다. 겉보기에는 다정한 부부 같은데 정작 둘의 관계는 그렇지 못...
    Views7868
    Read More
  10. 3월의 산은 수다스럽다

    경칩을 지나며 봄기운이 서서히 동장군의 기세를 몰아내고 있다. 그렇게 사계절의 입김을 쐬이며 나이는 숫자를 더해간다. 봄이 무척이나 기다려지던 때가 있었다. 산천초목이 흰눈에 뒤덮여 세상이 움추러들기만 하다가 꽁꽁 얼어붙었던 시냇물이 서서히 드...
    Views8165
    Read More
  11. 그렇게 父女는 떠났다

    2002년 남가주(L.A.)밀알선교단 부단장으로 사역할 때에 일이다. L.A.는 워낙 한인들이 많아 유력하게 움직이는 장애인선교 단체만 7개 정도이고, 교회마다 사랑부(장애인부서)가 있어서 그 숫자를 합하면 규모가 크다. 감사하게도 선교기관들이 서로 협력관...
    Views8417
    Read More
  12. 고난의 종착역

    고난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아가가 울며 세상에 태어나는 것은 삶 자체가 고난의 연속이라는 사실을 감지했기 때문이리라. 고난이 없는 인생은 없다. 날마다 크고작은 고난을 감내하며 인생이야기는 흘러가고 있다. 고난을 통과하지 않고는 보배를 ...
    Views8354
    Read More
  13. Home, Sweet Home

    사람들은 집값이 치솟았다고 낙담한다. 특히 한국인들은 집에 대한 애착이 대단하다. 젊어서부터 허리띠를 졸라매며 근검절약하여 집을 장만하려 애를 쓴다. 거의 다가갔나 했더니 집 가격이 천정부지로 올라가며 사람들을 좌절케 만든다. 내가 중학교를 졸업...
    Views8367
    Read More
  14. 쪽 팔리게

    칼럼 제목을 정하면서 잠시 망설였지만 이제 이런 표현이 자극적이거나 품격이 떨어지는 단어가 아니라고 생각하며 과감하게 달아보았다. 내가 어릴때는 ‘겸연쩍다, 민망하다, 부끄럽다’고 표현한 것 같다. 하지만 더 들어가보면 의미는 조금 다...
    Views8920
    Read More
  15. 장애아의 자그마한 걸음마

    누구나 결혼을 하면 아이를 낳는다. 오가며 만나는 아이들을 보며 ‘나에게도 저런 예쁘고 사랑스러운 아이가 태어날 것’을 기대하다가 임신 소식을 듣는 순간 신기함과 감격이 밀려온다. 출산을 준비하고 막상 태어난 아이가 장애를 안고 나왔을 ...
    Views8877
    Read More
  16. Meister

    독일에는 ‘Meister’라는 제도가 있다. 원뜻은 ‘선생’이란 뜻을 갖는 라틴어 마기스터(magister)이다. 영어로는 마스터(master), 이탈리어로는 마에스트로(maestro)이다. 우리말로는 “장인, 거장, 명장”등으로 불리우기도...
    Views8960
    Read More
  17. 그쟈?

    철없던 시절에 친구들끼리 어울려다니며 스스럼없이 얘기를 나누다가 끝에 던지는 말이 있었다. “그쟈?” 무척이나 정겨움을 안기는 말이다. 인생을 살아보니 더딘 듯 한데 빠르게 지나는 것 같다. 지루한 듯한데 돌아보니 까마득한 과거가 되어있...
    Views8780
    Read More
  18. 아빠가 너무 불쌍해요

    새해가 시작되었다. 부부가 행복하려면 배우자의 어린 시절을 깊이 알아야 한다. 한국에서 가정사역을 할 때에 만난 부부이야기이다. 처음 시작하는 즈음에 ‘배우자의 어린 시절 이해하기’ 숙제를 주었다. 마침 그 주간에 대구에서 시어머니 칠순...
    Views9151
    Read More
  19. 2022년 새해 첫칼럼 / 인생열차

    ​ 2022호 인생열차가 다가왔다. 사명을 다한 2021호 기차를 손 흔들어 보내고 이제 막 당도한 기차에 오른다. 어떤 일들이 다가올지 알 수 없지만 오로지 기대감을 가지고 좌석을 찾아 앉는다. 교회에 나가 신년예배를 드림이 감격스러워 성찬을 받는 손길에 ...
    Views8971
    Read More
  20. 새로운 것에 대하여

    오늘은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분기점이다. 여전히 팬데믹은 그 기세를 누그러뜨리지 않고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다. 실로 평범이 그리워지는 시점이다. 마스크 없이 누구와도 아무 거리낌 없이 만나고 활보하던 일상이 그립다. 그런때가 언제나 올...
    Views9183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35 Next
/ 35

주소: 423 Derstine Ave. Lansdale., PA 19446
Tel: (215) 913-3008
e-mail: philamilal@hotmail.com

© k2s0o1d4e0s2i1g5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