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2020.09.11 09:57

기찻길

조회 수 23196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철로.png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자란 동네에서 어릴 때부터 익숙하게 접하는 것이 있다. 바닷가 근처에 살았다면 푸른 바다와 그 위를 유유히 가르며 다니는 크고 작은 배들. 비행장 근처에 살았다면 헬리콥터로부터 갖가지 모양과 크기에 비행기를 보며 살게 된다. 나는 경기도 양평에서 어린 시절을 지냈다. 그때부터 매일 만난 것은 기차였다. 처음에는 시커먼 연기를 뿜어대며 달리는 증기 기관차를 보았고 어느 때부터 인가 세련된 전기 기관차가 등장했다.

 

 하루에도 수십 차례 기차가 지나간다. 짐을 실은 기차와 사람을 태우고 달리는 여객차가 하루 종일 철로 위를 달렸다. 중앙선이기에 주로 석탄을 실은 기차가 많았다. 오렌지 색깔의 선도 차량에 어떨 때는 많은 차량이, 어떨 때는 수가 얼마 안 되는 적은 차량들이 매어 달려 특유의 리듬을 내며 달려간다. 학교에서 오는 길에나 혹은 친구들끼리 놀다가 기차가 지나가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는 앞에서부터 차량을 세기 시작하였다. 어떤 때는 숫자가 서로 맞지 않아 자그마한 말다툼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기차가 지나가면 손을 흔들었다. 반가이 마주 손을 흔들어 주는 모습에 우리는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그때까지 기차 구경만 했지 한 번도 타보지 못한 아이들이 많았다. 서울에 친척이 있는 아이는 방학이면 기차를 타는 행운을 안았지만,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기차를 탈 기회가 쉽게 주어지지 않았던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기차가 지나가면 이상한 행동(?)을 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소위 팔뚝질이었다. 그게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해괴망칙한 짓을 기차가 다 지나갈 때까지 해댔다. 아마 기차를 마음대로 타지 못하는 것에 심술이 나서 그랬는지 모른다. 지금 이 글을 읽으며 빙그레 웃는 분은 전과자인지도 모른다.

 

 옛날에는 철로 밑을 기름을 먹인 나무로 받혀놓았다. 보통 침목이라고 했는데 그 나무 위로 걸어가면 야릇한 기분이 들었다. 가끔 맨발로 침목 위를 걸으면 까칠까칠한 감촉이 기분을 좋게 했다. 숫자를 세며 그 침목 위를 걷다 보면 집에도 금방 도착하는 느낌이 들었다. 아이들은 아예 레일 위를 마치 평균대 위를 걷듯 걸어 다녔다. “누가 떨어지지 않고 멀리까지 가나?”가 내기 중에 하나였다.

 

 하루는 원표가 이상한 물건을 주머니에서 끄집어내었다. 칼은 칼인데 이상한 모양이었다. 알고 보니 대못을 철길 위에 올려놓아 기차가 지나가며 눌려진 것이었다. 어떤 아이는 동전을 올려놓기도 하였다. 영웅심리 탓일까? 기차 레일 위에 귀를 대고 있다가 기차가 가장 가까이 왔을 때 몸을 일으키는 아이가 이기는 내기도 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위험천만한 일을 그 시절 아이들은 천연덕스럽게 저질렀다.

 

 기찻길을 따라 걷는 것은 낭만이 있다. 그래서 영화에도 종종 연인들이 철로 위를 걷는 장면이 연출 되는가 본다. 강아지풀을 뜯어 입에 물고 철로 위를 걷다 보면 저만치 구부러진 기찻길 위로 아지랑이가 뿌옇게 피어오른다. 친구가 묻는다. “이 기찻길을 따라가면 어디가 나올까?” 뭔가 안다는 듯 정호가 대답했다. “북쪽으로 가면 서울이 나오고, 남쪽으로 가면 원주가 나온다.” 우리는 그 말에 고개를 끄떡이며 미지의 세계에 대한 꿈을 꾸었다.

 

 기차 기적이 울리면 우리는 기찻길에서 황급히 내려섰고, 기차가 지나갈 동안 기찻길 옆 풀밭에 드러누워 하늘을 보았다. 저만치 보이는 산등성이로 독수리가 거만한 자태로 날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부모님을 따라 서울행 기차에 올랐고, 서울과 더불어 꼬박 30년을 살았다. 젊은 날, 서울 생활에 지치고 곤고 해 질 때면 무작정 중앙선 열차에 몸을 실었다. 저만치 산길을 걸어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가물가물해지는 옛 정취를 떠올렸다. 가끔은 통로 계단에 앉아 스쳐가는 바람에 얼굴을 맡기며 노래를 흥얼거렸다. 오늘도 기찻길 위로 수많은 기차들이 달린다. 길 다란 기찻길처럼 인생 이야기도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1. 철든 인생

    이야기를 나누던 상대방이 갑자기 일어선다. “많이 바쁘세요?” “손자가 학교에서 올 시간이 되어 픽업을 해야 합니다.” 한편으로 부럽기도하고 헛웃음이 나온다. 그렇게 나이가 들어가는 인생의 모습을 본다. 학교에 다녀오던 아이들...
    Views6990
    Read More
  2. 남편과 아내는 무엇이 다른가?

    성인이 된 남녀는 자연스럽게 짝을 찾는다. 나이도 그렇고 상황에 다다르면 결단을 하고 결혼을 하게 된다. 하지만 가슴만 뜨거울 뿐 아무런 지식도 없이 부부의 연을 이어간다. 세상의 법칙은 자격증이 있어야 따라오는 권리를 누릴 수 있다. 운전도 면허증...
    Views7190
    Read More
  3. 행복과 소유

    소낙비가 한참을 쏟아지더니 갑자기 무지개가 떠올랐다. 조금 후 그 위로 또 하나의 무지개가 피어올랐다. 쌍무지개였다. 일곱 색깔 영롱한 무지개를 보며 행복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인생은 순간이다. 머물고 싶어도 오랜시간 지체할 수 없는 현재의 연속이...
    Views7111
    Read More
  4. 불굴의 비너스

    간사 채용 공고를 내고 몇몇 대상자를 인터뷰하게 되었다. 지인의 소개로 모교회에서 사역하는 분과 마주 앉았다. 이력서를 보며 내심 놀랐다. 그는 절단 장애인이었다. 어린 시절 교통사고로 오른쪽 다리를 잃게 된 것이다. 장애인끼리 통하는 기류를 느꼈다...
    Views6860
    Read More
  5. 서른 아홉

    요사이 흠뻑 빠져 몰입하는 드라마가 있다. <<서른. 아홉>> 손예진, 전미도, 김지현의 자연스럽고도 정감어린 연기와 우정에 흥미를 더해간다. 언뜻 보면 철없던 어린 시절에 만나 스스럼없이 어우러지는 여친들의 이야기 같지만 노련한 유영아 작가는 심오한...
    Views6543
    Read More
  6. 부부 행복하십니까?

    부부는 참 묘하다. 행복한듯하면서도 그냥 그렇고, 서로 냉정한 것 같으면서도 사무치게 챙기고 마음에 두는 사이니까 말이다. 분명한 것은 그 가정에 들어가보지 않고는 부부사이를 알수가 없다. 겉보기에는 다정한 부부 같은데 정작 둘의 관계는 그렇지 못...
    Views6789
    Read More
  7. 3월의 산은 수다스럽다

    경칩을 지나며 봄기운이 서서히 동장군의 기세를 몰아내고 있다. 그렇게 사계절의 입김을 쐬이며 나이는 숫자를 더해간다. 봄이 무척이나 기다려지던 때가 있었다. 산천초목이 흰눈에 뒤덮여 세상이 움추러들기만 하다가 꽁꽁 얼어붙었던 시냇물이 서서히 드...
    Views7094
    Read More
  8. 그렇게 父女는 떠났다

    2002년 남가주(L.A.)밀알선교단 부단장으로 사역할 때에 일이다. L.A.는 워낙 한인들이 많아 유력하게 움직이는 장애인선교 단체만 7개 정도이고, 교회마다 사랑부(장애인부서)가 있어서 그 숫자를 합하면 규모가 크다. 감사하게도 선교기관들이 서로 협력관...
    Views7333
    Read More
  9. 고난의 종착역

    고난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아가가 울며 세상에 태어나는 것은 삶 자체가 고난의 연속이라는 사실을 감지했기 때문이리라. 고난이 없는 인생은 없다. 날마다 크고작은 고난을 감내하며 인생이야기는 흘러가고 있다. 고난을 통과하지 않고는 보배를 ...
    Views7317
    Read More
  10. Home, Sweet Home

    사람들은 집값이 치솟았다고 낙담한다. 특히 한국인들은 집에 대한 애착이 대단하다. 젊어서부터 허리띠를 졸라매며 근검절약하여 집을 장만하려 애를 쓴다. 거의 다가갔나 했더니 집 가격이 천정부지로 올라가며 사람들을 좌절케 만든다. 내가 중학교를 졸업...
    Views7299
    Read More
  11. 쪽 팔리게

    칼럼 제목을 정하면서 잠시 망설였지만 이제 이런 표현이 자극적이거나 품격이 떨어지는 단어가 아니라고 생각하며 과감하게 달아보았다. 내가 어릴때는 ‘겸연쩍다, 민망하다, 부끄럽다’고 표현한 것 같다. 하지만 더 들어가보면 의미는 조금 다...
    Views7775
    Read More
  12. 장애아의 자그마한 걸음마

    누구나 결혼을 하면 아이를 낳는다. 오가며 만나는 아이들을 보며 ‘나에게도 저런 예쁘고 사랑스러운 아이가 태어날 것’을 기대하다가 임신 소식을 듣는 순간 신기함과 감격이 밀려온다. 출산을 준비하고 막상 태어난 아이가 장애를 안고 나왔을 ...
    Views7794
    Read More
  13. Meister

    독일에는 ‘Meister’라는 제도가 있다. 원뜻은 ‘선생’이란 뜻을 갖는 라틴어 마기스터(magister)이다. 영어로는 마스터(master), 이탈리어로는 마에스트로(maestro)이다. 우리말로는 “장인, 거장, 명장”등으로 불리우기도...
    Views7894
    Read More
  14. 그쟈?

    철없던 시절에 친구들끼리 어울려다니며 스스럼없이 얘기를 나누다가 끝에 던지는 말이 있었다. “그쟈?” 무척이나 정겨움을 안기는 말이다. 인생을 살아보니 더딘 듯 한데 빠르게 지나는 것 같다. 지루한 듯한데 돌아보니 까마득한 과거가 되어있...
    Views7817
    Read More
  15. 아빠가 너무 불쌍해요

    새해가 시작되었다. 부부가 행복하려면 배우자의 어린 시절을 깊이 알아야 한다. 한국에서 가정사역을 할 때에 만난 부부이야기이다. 처음 시작하는 즈음에 ‘배우자의 어린 시절 이해하기’ 숙제를 주었다. 마침 그 주간에 대구에서 시어머니 칠순...
    Views8245
    Read More
  16. 2022년 새해 첫칼럼 / 인생열차

    ​ 2022호 인생열차가 다가왔다. 사명을 다한 2021호 기차를 손 흔들어 보내고 이제 막 당도한 기차에 오른다. 어떤 일들이 다가올지 알 수 없지만 오로지 기대감을 가지고 좌석을 찾아 앉는다. 교회에 나가 신년예배를 드림이 감격스러워 성찬을 받는 손길에 ...
    Views7996
    Read More
  17. 새로운 것에 대하여

    오늘은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분기점이다. 여전히 팬데믹은 그 기세를 누그러뜨리지 않고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다. 실로 평범이 그리워지는 시점이다. 마스크 없이 누구와도 아무 거리낌 없이 만나고 활보하던 일상이 그립다. 그런때가 언제나 올...
    Views8220
    Read More
  18. Merry Christmas!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이다. 이제 7일만 지나면 2021년은 역사의 뒤켠으로 사라져 갈 것이다. 팬데믹의 동굴을 아직도 헤매이고 있지만 한해를 보내는 마음은 아쉽기만 하다. 미우나고우나 익숙했던 2021년을 떠나보내며 웃을 수 있음은 성탄절이 있기 때문...
    Views8526
    Read More
  19. 불편했던 설레임

    사람에게는 누구나 첫시간이 있다. 아니 첫경험이 있다. 그 순간은 두렵고 긴장되고 실수가 동반된다. 처음 교회에 나갔을때에 난처했다. 다들 눈을 감은 채 사도신경을 줄줄 외우고, 성경, 찬송가를 척척 찾아 부르는 것을 보면서 모멸감이 느껴졌다. &lsquo...
    Views8542
    Read More
  20. 홀로 산다는 것

    나이가 들어가는 청년들을 만났을 때 “언제 결혼하냐?”고 묻는다면 당신은 상꼰대이다. 시대가 변했다. 결혼을 목표로 공부를 하고 스팩을 쌓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는 말이다. 우리가 어릴 때는 대가족 시대였다. 식사 때가 되면 3대가 온 상에 ...
    Views8781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35 Next
/ 35

주소: 423 Derstine Ave. Lansdale., PA 19446
Tel: (215) 913-3008
e-mail: philamilal@hotmail.com

© k2s0o1d4e0s2i1g5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