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2016.01.22 21:18

박첨지 떼루아!

조회 수 60364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박첨지.jpg

 

 내가 어린 시절에는 볼거리가 거의 없었다. 따라서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들에게는 손에 잡히는 모든 것이 장난감이었다. 학교를 오가며 논길에 들어서면 거의 모든 것을 훑고 지나다녔다. 강아지풀을 잡아채어 입에 물고 다니는 것으로 시작하여 막 피어나는 도라지꽃을 터뜨리는 재미. 잠자리, 매미는 물론 개구리를 잡아 다양한(?) 방법으로 가지고 놀았다. 이제 막 밑둥에 푸른빛을 띄며 익어가는 ‘무’는 우리들에게는 더할 나위없는 최고의 간식이었다. 강변에 깔려있는 땅콩과 참외밭, 수박밭은 좋은 표적이었다. 교문을 나서며 발견한 깡통을 이리저리 차며 집에까지 몰고 올 정도로 아이들은 놀이에 목말라했다.

 

 전기가 없던 시절이었기에 해가 뜨면 일어나 움직이고 해가 지면 잠자리에 들어야 했다. 이장 집에서 연결한 라디오 스피커에서는 오로지 KBS 국영방송만 울려 퍼졌다. 단조롭고 딱딱한 내용이었지만 사람들은 ‘지직’거리며 들려오는 방송내용에 울고 웃었다. 어린 우리들이 좋아하던 것은 오후 6시에 나오는 “국군의 방송”이었다. 씩씩한 군가로 시작하다가 연속극이 나오는데 전우애가 물씬 풍길 뿐만 아니라 전투장면에 터지는 폭탄과 총소리에 악동들은 매료되었다. 방송을 듣지 않으면 학교에 가서 대화에 낄 수 없기에 항상 줄거리를 꾀고 있어야만 했다.

 

 그러다가 만난 것이 “박첨지 떼루아!”라는 인형극이었다. 기억이 희미하지만 동네에는 달변에 손재주가 뛰어난 한분이 계셨다. 동네사람들에게는 조금 “괴짜”로 취급을 당했던 것 같다. 누가 뭐라고 하던지 그분은 매일 나무 인형을 깎으며 공연을 준비하셨다. 그분이 개발을 한 것인지? 아니면 전승되어 온 것인지는 모르지만 “박첨지 떼루아!”가 공연될 때면 어머니는 나를 대동하고 구경을 가셨다. 커다란 마당에 사람들이 모이면 앞쪽에 쳐진 천막위로 인형들이 떠오르며 극은 시작된다.

 

 천막 뒤에서는 그분과 변사들이 숨어 대사를 이어가는 “박첨지 떼루아!”는 볼거리가 없던 동네사람들에게 대단한 반응을 일으켰다. 잘 다듬어지거나 고운 모양의 인형이 아니었다. 투박하면서도 우스꽝스러운 모양이었다. 그 나무 인형들이 번갈아 나와 변사들의 대사에 맞추어 ‘기우뚱’거리며 반응을 한다. 한창 공연을 하다가 “박첨지 떼루아!”하고는 옆의 인형에 박치기를 하면 다른 인형이 ‘쏙’ 들어가는데 그 모습이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모른다.

 

 내용은 거의 ‘권선징악’(勸善懲惡)이었고 그 당시 “박첨지 떼루아!”는 서민들의 애환을 달래주는 큰 역할을 했다. “박첨지 떼루아!” 공연이 끝나면 아이들은 한동안 그 흉내를 내며 다녔다. “박첨지 떼∽루∽아!”하고는 다른 친구의 머리를 박았다. 그 모습에 아이들은 또한번 자지러진다. 얼마 후 우리는 아버지의 인사이동으로 “서종”으로 이사를 한다. 언제나 그랬듯이 부지런히 친구를 사귀고 부모님이 집안일로 포천에 가신 날. 나는 아이들을 집으로 불러보았다. 어느새 안방은 아이들로 가득차고 “박첨지 떼루아!” 첫 공연이 시작되었다.

 

 각본을 내가 직접 쓰고 인형대신 아이들을 지도하여 연극을 준비했다. 막은 한창 유행하던 국방색 담요 끝에 줄을 매어 사용했다. 공연이 시작되며 아이들은 “재미있다.”고 배꼽을 잡았다. 그날 공연은 대성공이었다. 마지막에 특유의 억양을 넣어 “박첨지 떼∽루∽아!”를 합창하며 연극은 막을 내렸다. 그 끼와 재능은 젊은 전도사 시절, 교회 중고등부를 지도하며 “문학의 밤”을 진행하며 빛을 보았고 지금도 “밀알의 밤”을 연출하며 도움이 되고 있다.

 

 나는 어린 시절에 장인(匠人)을 보았다. 주위의 시선과 평판을 묵묵히 견뎌내며 “박첨지 떼루아!” 공연을 진행하는 그분은 거인이었다. 세월이 흐르며 그분의 소식이 궁금해졌다. 언뜻 들리는 소문에 그분은 “인간문화재”로 지정되어 <한국민속촌>에서 공연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역시! 한 우물을 파던 어르신의 모습이 아스라이 그려진다.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고, 게다가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 있는 것을 추구하는 사람이 장인이요. 거인이다. 게다가 내가 하는 일을 통해 많은 사람이 행복해 진다면 더할 나위없는 값진 인생이 아닌가!


  1. 새로운 것에 대하여

    오늘은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분기점이다. 여전히 팬데믹은 그 기세를 누그러뜨리지 않고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다. 실로 평범이 그리워지는 시점이다. 마스크 없이 누구와도 아무 거리낌 없이 만나고 활보하던 일상이 그립다. 그런때가 언제나 올...
    Views9225
    Read More
  2. Merry Christmas!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이다. 이제 7일만 지나면 2021년은 역사의 뒤켠으로 사라져 갈 것이다. 팬데믹의 동굴을 아직도 헤매이고 있지만 한해를 보내는 마음은 아쉽기만 하다. 미우나고우나 익숙했던 2021년을 떠나보내며 웃을 수 있음은 성탄절이 있기 때문...
    Views9683
    Read More
  3. 불편했던 설레임

    사람에게는 누구나 첫시간이 있다. 아니 첫경험이 있다. 그 순간은 두렵고 긴장되고 실수가 동반된다. 처음 교회에 나갔을때에 난처했다. 다들 눈을 감은 채 사도신경을 줄줄 외우고, 성경, 찬송가를 척척 찾아 부르는 것을 보면서 모멸감이 느껴졌다. &lsquo...
    Views9747
    Read More
  4. 홀로 산다는 것

    나이가 들어가는 청년들을 만났을 때 “언제 결혼하냐?”고 묻는다면 당신은 상꼰대이다. 시대가 변했다. 결혼을 목표로 공부를 하고 스팩을 쌓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는 말이다. 우리가 어릴 때는 대가족 시대였다. 식사 때가 되면 3대가 온 상에 ...
    Views9983
    Read More
  5.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실로 세월은 덧없이 흐르고 있다. 인생을 살아가기도 버겁건만 난데없는 역병이 엄습하면서 여전히 사람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백신효과가 나타나면서 조금은 여유로운 마음으로 살아가는가 했는데 여기저기서 돌파감염자가 나오며 한숨만 높아간다. 도...
    Views9833
    Read More
  6. 짜증 나!

    사람마다 특유의 언어 습관이 있다. 어떤 사람은 누가 무슨 말을 하든 “정말?”이라고 묻는다. 일이 답답하고 풀리지 않을 때 “와, 미치겠네” 혹은 “환장하겠네”라고 내뱉는다. 10년 이상 우울증을 앓고 있는 남성이 있다...
    Views10390
    Read More
  7. 역할

    사람이 자신의 존재가치를 실감하게 되는 때는 바로 내 역할을 깨닫는 시점이다. 매사에 조건과 배경을 따지면서 우열을 가리는 세태가 되면 삶이 피곤 해 진다. 우리 세대는 불행인지 다행인지 중학교, 고등학교 모두 입시를 치러야 했다. 야속한 것은 우리...
    Views10138
    Read More
  8. 신혼 이혼

    나이가 들어가는 선남선녀들의 소중한 꿈은 결혼이다. 인생의 초반은 혼자 살아가지만 장성하면 짝을 만나 부부의 연을 맺어 살아가는 것이 인생의 법칙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정을 나누고 평생을 부부가 되어 살아가기를 결심한다는 것은 참으로 신비한...
    Views10478
    Read More
  9. 어느 자폐아 어머니의 눈물

    우리 밀알선교단은 매주 토요일마다 발달장애아동을 Care하는 <토요사랑의 교실>을 운영한다. 어느새 30년이 가까워오며 이제 아동이란 명칭을 쓰기가 어색하다. 팬데믹으로 거의 1년반을 모이지 못하다가 지난 9월부터 본격적인 대면모임을 시작했다. 하지만...
    Views10978
    Read More
  10. 저만치 잡힐듯한 시간

    가을이 깊어간다. 푸르던 잎들이 각양각색의 색깔로 갈아입으면서 서서히 정든 나무를 떠날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무척이나 춥고 눈이 쏟아지던 겨울. 나무 속에 숨어 기다리던 새싹들이 ‘호호’ 불어대는 봄바람에 살포시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
    Views10605
    Read More
  11. 표정만들기

    나는 항상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사역 자체가 사람을 만나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오랜 시간 만나온 사람도 있지만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사람을 처음 만날때에 주력하는 것은 첫인상이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나이가 들어가며 첫인상의 촉이...
    Views11068
    Read More
  12. 엄마와 홍시

    엄마는 경기도 포천 명덕리에서 태어나셨다. 천성이 부지런하고 경우가 바른 엄마의 성품은 시대가 어려운 때이지만 조금은 여유가 있는 외가의 분위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외가에 산세는 수려했다. 우아한 뒷산의 정취로부터 산을 휘감아 돌아치는 시냇물은 ...
    Views11344
    Read More
  13. 부부는 싸우면서 성숙한다

    “부부싸움을 왜 해요? 우리는 한번도 싸워본 적이 없어요” 간혹 이런 외계인 부부를 만난다. 한편으로 부럽기도 하지만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사랑을 할 때는 소위 ‘도파민’이 샘솟듯 나오며 거의 미친 듯이 서로를 갈망한다. 이...
    Views10849
    Read More
  14. 장애아 반장

    “차렷, 열중쉬어, 차렷, 선생님께… 선생님 핸드폰께 경례!” 조기훈(12)군이 우렁차게 외치자 친구들이 까르르 웃는다. 기훈이는 서울 목동 신서초등학교 6학년 6반 학급회장이다. ‘경례’를 하기 전까지 기훈이는 휴대전화가 ...
    Views11761
    Read More
  15. 생각하는 갈대

    인간은 약하다. 하지만 생각하는 존재이기에 위대하다. 성장하며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날 때에 부모에게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왜 너는 생각이 없냐?”였을 것이다. 그 시기에는 몸이 생각보다 먼저 반응하기 때문이다. 생각을 하면 멈출수 있다. ...
    Views11278
    Read More
  16. 세월은 사람을 변하게 하는가?

    카메라가 흔하지 않던 시절에는 사진을 찍는 것이 너무도 소중하고 귀했다. 사진관에 가서 카메라를 빌리고 촬영한 필름을 다시 맡겼다가 나온 사진을 찾으러 가는 날은 가슴이 퉁탕거렸다. 흑백사진이었지만 내 모습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기에 정말 행복...
    Views11203
    Read More
  17. “아침밥” 논쟁

    ‘오늘’이라는 시간은 ‘어제’라고 하는 시간의 연장선상에서 존재한다. 내일 역시 ‘오늘’이라는 시간이 만들어 내는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그 사람의 오늘은 그 사람의 어제가 만들고 있다. 배우자의 어린 시절을...
    Views11658
    Read More
  18.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

    우리 밀알선교단에는 다수의 장애아(障礙兒)들이 있다. 토요일마다 귀한 친구들을 보살핀 세월이 어느새 25년이다. 어리디어리던 아이들이 이제는 거의 성인이 되었다. 그러면서도 그들을 장애아라고 부르는 것은 지능지수와 적응하는 반응을 기준으로 삼기 ...
    Views12331
    Read More
  19. 베이비부머

    어느 순간부터 세대를 구별짓는 명칭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사실 이 구분은 미국식이다. 처음 생겨난 세대를 ‘베이비부머’라고 한다. 1955년~1963년에 태어난 사람들을 칭한다. 1965~1980년에 태어난 부류를 ‘X세대’라고 한다. 관...
    Views11953
    Read More
  20. 남 · 녀는 뇌가 다르다

    태어나면 성별(Gender)을 구분 짓는다. 성장하며 그 차이는 점점 벌어진다. 남자아이들은 도전과 모험에 사로잡혀 산다. 반면 여아들은 안정과 가꿈에 집착한다. 현저한 차이는 언어영역이다. 여자는 태어나면서부터 탁월한 언어습득 능력을 발휘한다. 남자는...
    Views12790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 35 Next
/ 35

주소: 423 Derstine Ave. Lansdale., PA 19446
Tel: (215) 913-3008
e-mail: philamilal@hotmail.com

© k2s0o1d4e0s2i1g5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