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조회 수 39728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김일.jpg

 

 

  “엄마, 오늘은 제발 보리밥 싸지 마세요.” 학교에 가서 도시락을 열면 널브러져 나를 바라보는 보리밥이 너무 미웠다. 거기다가 단골 반찬은 무말랭이와 콩장이었다. 내 짝꿍 근웅이는 약국집 아들이라 그런지 항상 밥 위에는 노오란 계란이 덮여 있었다. 그게 왜 그리 부러웠던지? 바야흐로 풍요의 시대가 열렸다. 이상하다. 어린 시절에는 그렇게 맛있던 음식이 이제는 옛 맛이 느껴지질 않는다. 김도 어릴 때 먹던 맛이 아니고, 계란 맛도 예전 같지 않다.

 

  음식뿐이 아니다. 눈과 귀도 고급화 되어가는 것 같다. 내가 어린 시절에는 텔레비전이 없었다. T.V.는 고사하고 변변한 라디오도 없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이던가? 이장 댁에서 방송기계를 구비해 놓고 집집마다 연결 해 스피커를 설치하였다. 하루 종일 KBS만 흘러나왔다. 지금 생각하면 초라하기 그지없는 그 자그마한 스피커에 우리는 울고 웃었다.

 

  아침이면 들려오는 미국의 소리는 잡음이 하도 심해서 들렸다 안 들렸다 했지만 장기범 아나운서의 목소리는 낭랑하기만 했다. 우리 아이들의 최고 인기 프로는 국군의 방송이었다. 특히 총소리가 많이 나오는 드라마는 우리의 가슴을 들뜨게 하였다. 지게 작대기나 막대기를 들고 아랫입술을 털며 내던 기관총 소리. 이산 저산을 뒹굴며 우리는 총싸움을 했다. 그럴듯한 포즈를 잡으며 마치 용감한 국군 용사라도 된 것처럼 편을 갈라 드라마 흉내를 냈다. 얼마 후 트랜지스터가 나오면서 듣는 방송이 다양화 되었다.

 

  드디어 텔레비전 시대가 도래했다. T.V.는 또 다른 세계였다. 그 당시 텔레비전을 가진 가구는 특수층이었다. 텔레비전을 가지고 있는 아이는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 텔레비전 보여줄까?” 이 한마디에 그에게서는 엄청난 카리스마(?)가 풍겼다. 어른들의 눈치를 보며 시청하던 드라마. 흑백 T.V.에 지금 생각하면 허술한 세트였지만 그때 드라마는 몸의 전율이 일정도로 재미가 있었다. 1970TBC를 통해 방영된 아씨”. 72KBS여로는 아직도 우리세대 가슴에 남아있다.

 

  텔레비전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바로 프로 레슬러 김일이다. 어쩌다 프로레슬링 경기가 열리면 지금 월드컵 축구 경기가 열리듯 온 동네가 술렁거렸다. 그때에는 군청에서 커다란 T.V.를 건물 창으로 보게 하여 군청 마당 응원이 펼쳐졌다. 어린 눈으로 본 김일 선수는 멋이 있었다. 타국 선수들이나 다른 한국 선수들은 인상이 가벼워 보이지만 김일은 언제나 무표정한 얼굴에 믿음직스러웠다.

 

  호랑이와 담뱃대가 그려진 비단 가운을 입고 링에 오르는 김일. 가운을 벗어젖히면 근육질의 몸이 드러난다. 레슬링 경기를 볼 때마다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김일은 금방 상대 선수를 쓰러뜨리지 않는다. 처음에는 일방적으로 당하고, 어떤 경우에는 무참하게 맞기만 한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그의 이마가 상대방의 이마에 작렬한다. 김일의 주무기인 박치기가 작동하는 찰나이다. 김일이 박치기를 하면 안 쓰러지는 선수가 없었다. 통쾌하기 그지없었다.

 

  가난하고 어려웠던 시절, 김일은 우리의 자존심이었고, 민족의 가슴을 시원하게 하는 치유자였다. 정말 김일은 한국이 낳은 황금이마였다. 그가 박치기로 거구의 서양레슬러들을 쓰러 뜨릴때에 우리도 함께 응원하며 김일의 박치기 흉내를 냈다. 아무것이나 들이받으면서 친구들은 점점 머리가 나빠지기 시작하였다.

 

  우리는 지금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다는 미국 한복판에 살고 있다. 그래서인지 풍요 속에 파묻혀 소중한 것들을 다 망각 해 버린 것 같다. 행복 지수는 점점 낮아져만 간다. 까마득한 옛날이야기지만 추억을 가슴에 간직하고 사는 사람이 부자이다. 눈을 감고 생각하면 그때는 모든 것이 소중했다. 이 더운 여름, 잠시 생각의 타임머신을 타고 옛날로 돌아가자. 그리고 어린 날 마냥 행복 해 했던 그 순간에 머물며 지친 삶을 잠시 추스려 보자. 소박하지만 순수하고 행복했던 날들을 기억 해 보자.

 


  1.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실로 세월은 덧없이 흐르고 있다. 인생을 살아가기도 버겁건만 난데없는 역병이 엄습하면서 여전히 사람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백신효과가 나타나면서 조금은 여유로운 마음으로 살아가는가 했는데 여기저기서 돌파감염자가 나오며 한숨만 높아간다. 도...
    Views8594
    Read More
  2. 짜증 나!

    사람마다 특유의 언어 습관이 있다. 어떤 사람은 누가 무슨 말을 하든 “정말?”이라고 묻는다. 일이 답답하고 풀리지 않을 때 “와, 미치겠네” 혹은 “환장하겠네”라고 내뱉는다. 10년 이상 우울증을 앓고 있는 남성이 있다...
    Views9066
    Read More
  3. 역할

    사람이 자신의 존재가치를 실감하게 되는 때는 바로 내 역할을 깨닫는 시점이다. 매사에 조건과 배경을 따지면서 우열을 가리는 세태가 되면 삶이 피곤 해 진다. 우리 세대는 불행인지 다행인지 중학교, 고등학교 모두 입시를 치러야 했다. 야속한 것은 우리...
    Views8985
    Read More
  4. 신혼 이혼

    나이가 들어가는 선남선녀들의 소중한 꿈은 결혼이다. 인생의 초반은 혼자 살아가지만 장성하면 짝을 만나 부부의 연을 맺어 살아가는 것이 인생의 법칙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정을 나누고 평생을 부부가 되어 살아가기를 결심한다는 것은 참으로 신비한...
    Views9479
    Read More
  5. 어느 자폐아 어머니의 눈물

    우리 밀알선교단은 매주 토요일마다 발달장애아동을 Care하는 <토요사랑의 교실>을 운영한다. 어느새 30년이 가까워오며 이제 아동이란 명칭을 쓰기가 어색하다. 팬데믹으로 거의 1년반을 모이지 못하다가 지난 9월부터 본격적인 대면모임을 시작했다. 하지만...
    Views9811
    Read More
  6. 저만치 잡힐듯한 시간

    가을이 깊어간다. 푸르던 잎들이 각양각색의 색깔로 갈아입으면서 서서히 정든 나무를 떠날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무척이나 춥고 눈이 쏟아지던 겨울. 나무 속에 숨어 기다리던 새싹들이 ‘호호’ 불어대는 봄바람에 살포시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
    Views9451
    Read More
  7. 표정만들기

    나는 항상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사역 자체가 사람을 만나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오랜 시간 만나온 사람도 있지만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사람을 처음 만날때에 주력하는 것은 첫인상이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나이가 들어가며 첫인상의 촉이...
    Views9910
    Read More
  8. 엄마와 홍시

    엄마는 경기도 포천 명덕리에서 태어나셨다. 천성이 부지런하고 경우가 바른 엄마의 성품은 시대가 어려운 때이지만 조금은 여유가 있는 외가의 분위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외가에 산세는 수려했다. 우아한 뒷산의 정취로부터 산을 휘감아 돌아치는 시냇물은 ...
    Views10198
    Read More
  9. 부부는 싸우면서 성숙한다

    “부부싸움을 왜 해요? 우리는 한번도 싸워본 적이 없어요” 간혹 이런 외계인 부부를 만난다. 한편으로 부럽기도 하지만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사랑을 할 때는 소위 ‘도파민’이 샘솟듯 나오며 거의 미친 듯이 서로를 갈망한다. 이...
    Views9673
    Read More
  10. 장애아 반장

    “차렷, 열중쉬어, 차렷, 선생님께… 선생님 핸드폰께 경례!” 조기훈(12)군이 우렁차게 외치자 친구들이 까르르 웃는다. 기훈이는 서울 목동 신서초등학교 6학년 6반 학급회장이다. ‘경례’를 하기 전까지 기훈이는 휴대전화가 ...
    Views10639
    Read More
  11. 생각하는 갈대

    인간은 약하다. 하지만 생각하는 존재이기에 위대하다. 성장하며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날 때에 부모에게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왜 너는 생각이 없냐?”였을 것이다. 그 시기에는 몸이 생각보다 먼저 반응하기 때문이다. 생각을 하면 멈출수 있다. ...
    Views10142
    Read More
  12. 세월은 사람을 변하게 하는가?

    카메라가 흔하지 않던 시절에는 사진을 찍는 것이 너무도 소중하고 귀했다. 사진관에 가서 카메라를 빌리고 촬영한 필름을 다시 맡겼다가 나온 사진을 찾으러 가는 날은 가슴이 퉁탕거렸다. 흑백사진이었지만 내 모습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기에 정말 행복...
    Views9998
    Read More
  13. “아침밥” 논쟁

    ‘오늘’이라는 시간은 ‘어제’라고 하는 시간의 연장선상에서 존재한다. 내일 역시 ‘오늘’이라는 시간이 만들어 내는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그 사람의 오늘은 그 사람의 어제가 만들고 있다. 배우자의 어린 시절을...
    Views10509
    Read More
  14.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

    우리 밀알선교단에는 다수의 장애아(障礙兒)들이 있다. 토요일마다 귀한 친구들을 보살핀 세월이 어느새 25년이다. 어리디어리던 아이들이 이제는 거의 성인이 되었다. 그러면서도 그들을 장애아라고 부르는 것은 지능지수와 적응하는 반응을 기준으로 삼기 ...
    Views11276
    Read More
  15. 베이비부머

    어느 순간부터 세대를 구별짓는 명칭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사실 이 구분은 미국식이다. 처음 생겨난 세대를 ‘베이비부머’라고 한다. 1955년~1963년에 태어난 사람들을 칭한다. 1965~1980년에 태어난 부류를 ‘X세대’라고 한다. 관...
    Views10751
    Read More
  16. 남 · 녀는 뇌가 다르다

    태어나면 성별(Gender)을 구분 짓는다. 성장하며 그 차이는 점점 벌어진다. 남자아이들은 도전과 모험에 사로잡혀 산다. 반면 여아들은 안정과 가꿈에 집착한다. 현저한 차이는 언어영역이다. 여자는 태어나면서부터 탁월한 언어습득 능력을 발휘한다. 남자는...
    Views11665
    Read More
  17. 관중 없는 올림픽

    모두의 염려 속에 개막한 올림픽이 연일 드라마를 연출하며 막을 내렸다. 승리하여 메달을 딴 선수는 인생 최고 환희의 순간을 만끽했고,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선수는 눈물을 흘리며 일찌감치 짐을 싸야만 했다. 스포츠 매니아라 할 쿠베르탱 남작에 의해 시...
    Views11652
    Read More
  18. 그들의 우정이 빛나는 이유

    한 여고 점심시간, 두 학생이 식당에 들어선다. 한 학생은 휠체어를 타고 있다. “의자 당겨서, 앉아있어.” 한 여학생이 식판 2개를 들고 배식을 받는다. 뇌병변 장애로 두 다리를 전혀 쓰지 못하는 친구 최주희 양을 위해 6년간 학교에서 최 양의...
    Views11735
    Read More
  19. 미안하고 부끄럽고

    이 세상에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사람이 없듯이 가고 싶을 때 가는 사람도 없다. 어느날 나는 지구별에 보내졌고 피부 색깔로 인해, 언어, 문화, 생활양식에 의해 분류되어 살아간다.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사람은 언제 행복할까? 소통이 잘 될 때이...
    Views12481
    Read More
  20. 사는게 영화다

    어느 시대나 그때그때마다 삶의 버거움을 벗겨주는 스타가 있었다. 요즈음의 대세는 BTS, 레드벨벳이라지만 아날로그 시절에는 고달픈 인생을 위로해 주는 청량음료 같은 스타들이 때마다 등장했다. 초등학교 시절에 스타는 프로레슬러 김일이었다. 어쩌다 경...
    Views11978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 35 Next
/ 35

주소: 423 Derstine Ave. Lansdale., PA 19446
Tel: (215) 913-3008
e-mail: philamilal@hotmail.com

© k2s0o1d4e0s2i1g5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