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2020.07.17 11:07

오솔길

조회 수 19356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오솔길.jpg

 

 

  사람은 누구나 길을 간다. 넓은 길, 좁은 길. 곧게 뻗은 길, 구부러진 길. 처음부터 길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 길이 생기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고와 애씀이 있었는지를 생각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길의 종류는 많기도 많다. 기차가 다니는 철로가 있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하늘에도 비행기가 다니는 길이 있다. 마음껏 속도를 내며 다니는 길(high way)이 있다. 바다에도 배가 다니는 길이 있고, 운하도 있다. 길이 있기에 사람이 그곳에 살 수 있는 것이리라! 마을과 마을을 연결하는 길을 보며 문득 어린 시절 거닐던 오솔길을 떠올렸다.

 

  어릴 때는 시골에 사는 것이 못마땅했다. 하지만 이제는 시골에서 산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얼마나 큰 재산인지! 지금도 삶이 힘들고 마음이 곤고해 질 때면 눈을 감고 어린 시절 뛰어놀던 시골 풍경을 천천히 회상해 본다. 그리 높지 않은 아담한 뒷산, 집 앞을 흐르던 정겨운 시냇물, 저만치 보이던 앞산, 사시사철 변해가며 꿈을 주던 나무들과 꽃, 그 사이를 날아다니는 나비, , 벌레들. 가을 하늘을 수놓던 고추잠자리, 저녁 무렵이면 집집마다 피어오르던 굴뚝 연기, 무어라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나무 타는 냄새. 그 모든 것들이 농축되어 글을 토해내게 한다.

 

  아침이면 오솔길을 따라 학교에 간다. 아직은 날씨가 추워서인지 입에서는 하이얀 입김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길옆에 피어오르는 온갖 풀들, 그 사이에 고개를 내미는 이름 모를 들꽃들. 논둑을 가로질러 이제 막 모내기를 해 놓은 논으로 뛰어드는 개구리 한 마리. 다리를 스치는 풀을 괜히 잡아 뜯어 입에 물고, 다리에 걸리는 돌은 저만치 차버린다. 이내 큰길(행길)에 접어들면 아랫마을 사는 친구들과 마주친다. 처음에는 눈웃음으로만 인사를 나눈 우리는 어느새 어제 있었던 이야기를 나누다가 방과 후 뭉쳐서 갈 곳까지 도모하며 학교에 도착한다.

 

  오솔길이 너무 좁아 소달구지는 큰길 귀퉁이에 세워놓은 후 황소와 쇠스랑을 짊어진 옆집 아저씨가 오솔길을 지나갈 때면 잠시 논둑길로 몸을 비켜주어야만 한다. 지나가며 건네는 아저씨의 정겨운 말 한마디가 어린 마음에 얼마나 따뜻하게 느껴지든지! 수줍음이 많던 시절, 오솔길에서 마주친 여자아이를 피해 저만치 논둑길로 달려가다가 애써 심어 놓은 콩 줄기를 밟고 논둑에 발이 빠지기도 했다. 토요일 오후, 오솔길을 걸으며 콧노래를 부르고 오후부터 내일까지 이어지는 휴식이 너무 기뻐서 들뜬 마음으로 불러 제끼던 다양한 노랫가락- 동요부터 어깨너머로 배운 유행가까지.

 

  걷다가 힘들면 걸터앉아 들여다보던 자그마한 도랑물, 미꾸라지의 현란함, 올챙이들의 몸놀림, 윗마을 논에서 흘러온 부평초까지. 그 맑은 물속을 들여다보며 상상의 나래를 폈다. 오솔길은 결코 사람들이 옆으로 서서 갈 수 없다. 한 줄로 서서 지나가야만 한다. 길이 좁아 비껴 갈 수 없다. 한쪽에서 비켜주어야만 지나갈 수 있다. 그래서 마주치면 먼저 그 상황을 결정해야만 했다. 내가 먼저 지나가야 할 것인지? 아니면 상대방이 먼저 가도록 양보해야 할 것인지? 양보가 없이는 둘 다 어려움을 당할 수밖에 없는 길이 오솔길이다.

 

  고속도로는 편리하기는 한데 너무 삭막하다. 속도는 빠를지 모르지만 사고의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다. 세상은 오직 빠르고 편리한 것만을 추구하고 있다. 그래서 소중한 것을 잃어가고 있는 것 같다. 차가 질주하는 대로에서, 까아만 아스팔트 위에서 인생을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오솔길에 접어들면 사람은 비로소 사람이 된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웬지 모를 풍요감이 임하는 곳, 어쩌다 마주친 그 사람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하는 곳, 옆을 스치는 풀 한포기, 벌레 한 마리에도 시선이 가게 하는 곳, 양보가 있고, 따뜻한 인사말이 있고, 서로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저절로 샘솟는 곳- , 그곳이 오솔길이여라!

 

 삶의 지친 사람들이 찾아와 아픈 이야기를 마음껏 지절거리는 그곳, 오솔길 한켠에서 그들을 편안하게 맞아주는 오솔길 지기이고 싶다.

 

 

 


  1.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실로 세월은 덧없이 흐르고 있다. 인생을 살아가기도 버겁건만 난데없는 역병이 엄습하면서 여전히 사람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백신효과가 나타나면서 조금은 여유로운 마음으로 살아가는가 했는데 여기저기서 돌파감염자가 나오며 한숨만 높아간다. 도...
    Views8624
    Read More
  2. 짜증 나!

    사람마다 특유의 언어 습관이 있다. 어떤 사람은 누가 무슨 말을 하든 “정말?”이라고 묻는다. 일이 답답하고 풀리지 않을 때 “와, 미치겠네” 혹은 “환장하겠네”라고 내뱉는다. 10년 이상 우울증을 앓고 있는 남성이 있다...
    Views9094
    Read More
  3. 역할

    사람이 자신의 존재가치를 실감하게 되는 때는 바로 내 역할을 깨닫는 시점이다. 매사에 조건과 배경을 따지면서 우열을 가리는 세태가 되면 삶이 피곤 해 진다. 우리 세대는 불행인지 다행인지 중학교, 고등학교 모두 입시를 치러야 했다. 야속한 것은 우리...
    Views9011
    Read More
  4. 신혼 이혼

    나이가 들어가는 선남선녀들의 소중한 꿈은 결혼이다. 인생의 초반은 혼자 살아가지만 장성하면 짝을 만나 부부의 연을 맺어 살아가는 것이 인생의 법칙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정을 나누고 평생을 부부가 되어 살아가기를 결심한다는 것은 참으로 신비한...
    Views9499
    Read More
  5. 어느 자폐아 어머니의 눈물

    우리 밀알선교단은 매주 토요일마다 발달장애아동을 Care하는 <토요사랑의 교실>을 운영한다. 어느새 30년이 가까워오며 이제 아동이란 명칭을 쓰기가 어색하다. 팬데믹으로 거의 1년반을 모이지 못하다가 지난 9월부터 본격적인 대면모임을 시작했다. 하지만...
    Views9842
    Read More
  6. 저만치 잡힐듯한 시간

    가을이 깊어간다. 푸르던 잎들이 각양각색의 색깔로 갈아입으면서 서서히 정든 나무를 떠날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무척이나 춥고 눈이 쏟아지던 겨울. 나무 속에 숨어 기다리던 새싹들이 ‘호호’ 불어대는 봄바람에 살포시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
    Views9483
    Read More
  7. 표정만들기

    나는 항상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사역 자체가 사람을 만나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오랜 시간 만나온 사람도 있지만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사람을 처음 만날때에 주력하는 것은 첫인상이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나이가 들어가며 첫인상의 촉이...
    Views9931
    Read More
  8. 엄마와 홍시

    엄마는 경기도 포천 명덕리에서 태어나셨다. 천성이 부지런하고 경우가 바른 엄마의 성품은 시대가 어려운 때이지만 조금은 여유가 있는 외가의 분위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외가에 산세는 수려했다. 우아한 뒷산의 정취로부터 산을 휘감아 돌아치는 시냇물은 ...
    Views10223
    Read More
  9. 부부는 싸우면서 성숙한다

    “부부싸움을 왜 해요? 우리는 한번도 싸워본 적이 없어요” 간혹 이런 외계인 부부를 만난다. 한편으로 부럽기도 하지만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사랑을 할 때는 소위 ‘도파민’이 샘솟듯 나오며 거의 미친 듯이 서로를 갈망한다. 이...
    Views9691
    Read More
  10. 장애아 반장

    “차렷, 열중쉬어, 차렷, 선생님께… 선생님 핸드폰께 경례!” 조기훈(12)군이 우렁차게 외치자 친구들이 까르르 웃는다. 기훈이는 서울 목동 신서초등학교 6학년 6반 학급회장이다. ‘경례’를 하기 전까지 기훈이는 휴대전화가 ...
    Views10673
    Read More
  11. 생각하는 갈대

    인간은 약하다. 하지만 생각하는 존재이기에 위대하다. 성장하며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날 때에 부모에게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왜 너는 생각이 없냐?”였을 것이다. 그 시기에는 몸이 생각보다 먼저 반응하기 때문이다. 생각을 하면 멈출수 있다. ...
    Views10202
    Read More
  12. 세월은 사람을 변하게 하는가?

    카메라가 흔하지 않던 시절에는 사진을 찍는 것이 너무도 소중하고 귀했다. 사진관에 가서 카메라를 빌리고 촬영한 필름을 다시 맡겼다가 나온 사진을 찾으러 가는 날은 가슴이 퉁탕거렸다. 흑백사진이었지만 내 모습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기에 정말 행복...
    Views10037
    Read More
  13. “아침밥” 논쟁

    ‘오늘’이라는 시간은 ‘어제’라고 하는 시간의 연장선상에서 존재한다. 내일 역시 ‘오늘’이라는 시간이 만들어 내는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그 사람의 오늘은 그 사람의 어제가 만들고 있다. 배우자의 어린 시절을...
    Views10542
    Read More
  14.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

    우리 밀알선교단에는 다수의 장애아(障礙兒)들이 있다. 토요일마다 귀한 친구들을 보살핀 세월이 어느새 25년이다. 어리디어리던 아이들이 이제는 거의 성인이 되었다. 그러면서도 그들을 장애아라고 부르는 것은 지능지수와 적응하는 반응을 기준으로 삼기 ...
    Views11322
    Read More
  15. 베이비부머

    어느 순간부터 세대를 구별짓는 명칭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사실 이 구분은 미국식이다. 처음 생겨난 세대를 ‘베이비부머’라고 한다. 1955년~1963년에 태어난 사람들을 칭한다. 1965~1980년에 태어난 부류를 ‘X세대’라고 한다. 관...
    Views10844
    Read More
  16. 남 · 녀는 뇌가 다르다

    태어나면 성별(Gender)을 구분 짓는다. 성장하며 그 차이는 점점 벌어진다. 남자아이들은 도전과 모험에 사로잡혀 산다. 반면 여아들은 안정과 가꿈에 집착한다. 현저한 차이는 언어영역이다. 여자는 태어나면서부터 탁월한 언어습득 능력을 발휘한다. 남자는...
    Views11733
    Read More
  17. 관중 없는 올림픽

    모두의 염려 속에 개막한 올림픽이 연일 드라마를 연출하며 막을 내렸다. 승리하여 메달을 딴 선수는 인생 최고 환희의 순간을 만끽했고,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선수는 눈물을 흘리며 일찌감치 짐을 싸야만 했다. 스포츠 매니아라 할 쿠베르탱 남작에 의해 시...
    Views11716
    Read More
  18. 그들의 우정이 빛나는 이유

    한 여고 점심시간, 두 학생이 식당에 들어선다. 한 학생은 휠체어를 타고 있다. “의자 당겨서, 앉아있어.” 한 여학생이 식판 2개를 들고 배식을 받는다. 뇌병변 장애로 두 다리를 전혀 쓰지 못하는 친구 최주희 양을 위해 6년간 학교에서 최 양의...
    Views11766
    Read More
  19. 미안하고 부끄럽고

    이 세상에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사람이 없듯이 가고 싶을 때 가는 사람도 없다. 어느날 나는 지구별에 보내졌고 피부 색깔로 인해, 언어, 문화, 생활양식에 의해 분류되어 살아간다.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사람은 언제 행복할까? 소통이 잘 될 때이...
    Views12514
    Read More
  20. 사는게 영화다

    어느 시대나 그때그때마다 삶의 버거움을 벗겨주는 스타가 있었다. 요즈음의 대세는 BTS, 레드벨벳이라지만 아날로그 시절에는 고달픈 인생을 위로해 주는 청량음료 같은 스타들이 때마다 등장했다. 초등학교 시절에 스타는 프로레슬러 김일이었다. 어쩌다 경...
    Views12009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 35 Next
/ 35

주소: 423 Derstine Ave. Lansdale., PA 19446
Tel: (215) 913-3008
e-mail: philamilal@hotmail.com

© k2s0o1d4e0s2i1g5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