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2015.11.25 07:47

경동시장 1/24/2015

조회 수 76181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희망을_찾아가는_경동시장_07.jpg

 

나는 청소년기부터 대학시절을 “제기동”에서 살았다. 가까이는 청량리 역이 위치해 있었고 조금 더 가면 홍릉과 세종대왕 기념관, 그리고 당시 KIST가 자리한 사통팔달의 동리였다. 그 중에서도 가장 흥미진진한 곳은 ‘시장통’이었다. 우리 집은 청량리 시장 끝 쪽이었고, 집에서 나와 15분 정도만 걸으면 경동시장이 위치하고 있었다. 경동시장의 명물은 한약 재료상이 노상과 더불어 장사진을 이루는 광경이었다. 시장 통에 들어서면 한약냄새가 코로 스며들어 묘한 기분을 유발했다. 무엇보다 새벽장이 열리며 온갖 채소, 과일, 어물, 육류 등이 다양하게 팔려나감과 동시에 여느 시장보다 가격이 저렴하여 서민들의 사랑을 받는 곳이었다.

경동시장은 6.25 전쟁 이후 서울 사람들의 생활이 회복되기 시작하면서 경기도 북부 일원과 강원도 일대의 농민들이 직접 가꾼 농산물과 채소, 임산물들이 옛날 성동역과 청량리역을 통해 모여들기 시작하면서 형성되었다. 지리적 한계로 피난민들의 안식처가 되어주지는 못했지만 서울 동북쪽에 위치한 경동시장의 사회적 의미는 아주 컸다. 한국의 향취는 시장에서 현격히 드러난다. 시장은 실로 시간이 종으로 만나고 공간이 횡으로 만나는 생생한 만남의 광장이다. 그 곳은 단순히 상품 매매가 이뤄지는 곳을 넘어 우리의 공동체 문화가 교환되고 확산되는 문화계승의 장인 것이다.

경동시장은 팔방이 뚤려 있는 지형이었다. 청량리 역에서 건너편으로 걷다보면 청량리 시장을 거쳐 경동시장 청과물 시장통을 만난다. 여름이면 수박장사들이 북새통을 떨었다. 마장동 시외 버스터미널에서 곧장 걸어 들어올 수도 있었다. 한약 재료상과 어물전을 만나는 통로였다. 내가 살던 제기동에서 걸어 들어가면 조금은 한가로이 시장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시장에 갈 때면 어느 늙스구리한 노상 할머니를 만나게 된다. 주로 농산물을 길거리에 놓고 파셨다. 직접 농사를 지으셨는지? 아니면 어디서 떼다 파시는지는 모르지만 사람들이 지나 갈 때마다 “십 리 밖에서 뜯은 취나물이오. 더덕과 백도라지 사세요!”하며 나즈막히 외쳐 대셨다.

경동시장에 또 하나의 명물은 “경동극장”이었다. 두 편의 영화가 동시 상영되는 영화관이었다. 아주 튼튼하고 널따란 극장 계단을 오르면 가슴이 뛰었다. 굳이 따지자면 삼류극장이었지만 표 하나를 사면 기나긴 시간 영화에 심취할 수 있어 좋았다. 재미있는 영화는 또다시 본다고 해도 전혀 방해를 받지 않았다. 덕분에 영화를 많이도 보았다. 무슨 영화를 보았는지는 기억이 희미하지만 볼거리가 거의 없던 70년대에 다양한 영화를 보며 꿈을 꾸었다.

그렇게 20대에 접어들며 22살 신학대학에 입학을 했다. 가난한 신학생 시절. 어머니는 갑자기 경동시장에 가셔서 도라지를 사오셨다. 흙이 잔뜩 묻은 도라지는 보기에도 정이 가질 않았다. 도라지를 큰 다라(함지박)에 쏟아 붓고 수도꼭지를 틀어 물을 부어놓으셨다. 물에 젖은 도라지를 꺼내 투박한 껍질을 벗겨내고 여동생을 불러 앉혀 놓고 도루코 면도날을 끼운 희한한 모양의 칼로 도라지를 갈래갈래 찢어놓는 작업을 하셨다.

다음날 꼭두새벽, 어머니는 그 무거운 도라지를 머리에 이고는 경동시장으로 나가 도라지를 팔아오셨다. 궁색한 가정형편을 지켜만 보고만 있을 수 없으셨던 억척스런 어머니의 생존방편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도라지 까기’는 언제부터인가 우리가정에 일과가 되어갔다. 누이는 이미 직장을 다니고 있었는데 퇴근을 하면 온 식구들이 둘러앉아 도라지를 까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익숙한 풍경이 연출되었다. 나는 남자의 자존심이랄까? 체질에 안 맞아서일까? 절대 도루코 칼을 손에 잡지 않았다. 어머니도 그런 나에게 한번도 일을 시키시지 않으셨다. 한국에 갈라치면 우연히 경동시장을 지나칠 때가 있다. 하지만 옛날 경동시장의 정취를 찾기에는 세월의 흐름이 무섭다. 10대의 청소년이 지나치며 기웃거리던 재래시장의 푸근한 풍경은 말끔히 단장을 하고 세련된 시장 어디에도 없었다. 하지만 내 어린 가슴에 사람 사는 냄새를 심어준 경동시장이 고맙기 그지없다. 그 시절, 상인들의 부산스런 외침이 귀에 들리는 듯하다.


  1. 아무리 익숙해 지려해도 거절은 아파요

    인생은 끊임없는 도전으로 이어진다. 반복되면 능숙해지기도 하련만 고비를 넘어서면 더 높은 능선이 길을 막는다. 그 과정을 거치며 때로는 성취감에 행복해하기도 하지만 실패의 아픔을 겪으며 뒹굴어야만 한다. 거절과 실패는 익숙해질 수 없는 끈질긴 친...
    Views270440
    Read More
  2. 아무도 모르는 둘만의 세월

    세월의 흐름은 두려울 정도로 빠르다. 팬데믹에도 한해가 바뀌고 또다시 봄기운이 움트고 있다. 눈과 강풍, 날마다 번져가는 역병. 살면서 이렇게 답답하고 곤고한 때가 있었을까? 초반에는 당황함으로, 시간이 지나며 현실을 받아들이며 체념하다가도 희망의...
    Views15764
    Read More
  3. 장애의 벽 넘어 빛나는 졸업장

    한국은 바야흐로 졸업시즌이다. 하지만 금년은 COVID-19 여파로 빛이 바랬다. 4년의 학업을 마치고 졸업하는 모습은 가족들이나 주위 사람들의 눈에도 귀해 보이거니와 스스로도 커다란 성취감을 맛보는 소중한 시간이다. 하지만 험난한 시국을 만나 영상으로...
    Views16099
    Read More
  4. 저만치 다가오는 그해 겨울

    눈이 온다. 근래 큰 눈이 오지 않아 푸근한 겨울을 꿈꾸었건만 2월에 접어들며 벼르기라도 한 듯 폭설이 일주일 간격으로 퍼붓고 있다. 나는 처음 로스앤젤레스로 이민을 왔다. 낯선 미국 땅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들. 희미하게 잊혀졌던 사람을 먼 미국 땅에...
    Views16255
    Read More
  5. 금수저의 수난

    지난 2월 5일. 변창흠 신임 국토교통부 장관이 국회에서 열린 대정부질문 당사자로 나서게 되었다. 김희국 의원이 물었다. “지금 버스 · 택시 요금이 얼마입니까?” 장관이 즉각 답변을 못하면서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나중에는 “카...
    Views16086
    Read More
  6. 아내 말만 들으면

    우리 세대는 가부장적 분위기에서 자라났다. 아버지의 존재는 실로 무소불위였다. 가정 경제의 키를 거머쥐고 모든 결정을 아버지가 내렸다. 엄마는 뒤에서 뭔가 궁시렁거릴 뿐 그 권세 앞에 아무 힘도 쓰질 못했다. 그 기세가 아들인 우리들에게도 이어질 줄...
    Views15368
    Read More
  7. 다리없는 모델 지망생 “구이위나”

    사람이 위대한 것은 어떤 장벽도 넘어설 수 있음을 꿈꾸며 도전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속담에 “올라가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가 있다. 불가능한 일은 아예 엄두도 내지 말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환경을 탓하며 주저앉는...
    Views15451
    Read More
  8. 삶은 소중한 선물

    신년벽두 아가 ‘정인’의 죽음이 많은 사람들을 충격에 몰아넣었다. 천진난만한 미소로 재롱을 부리는 아가의 모습, 겨우 18개월밖에 살지 못하고 떠나간 생명을 보며 세상이 얼마나 악해졌는가를 실감했고 그렇게 태어나 떠나가는 아이들이 더 있...
    Views16660
    Read More
  9. 나만 몰랐다

    “김치만 먹는 개”라는 영상을 보았다. 개는 늑대의 후손이다. 과거에는 사람들이 먹고 남은 찌꺼기를, 이제는 사료를 먹지만 개는 사실 육식동물이다. 그런데 이 개는 김치만 먹는다. 그것도 아주 매운 김치만.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그 이유가...
    Views16843
    Read More
  10. 군불

    새벽녘에 잠이 깨었다. 무서운 꿈을 꾼 것도 아닌데 갑자기 단잠이 달아나 버렸다. 추적거리며 내리는 겨울비가 금방 잠이 깬 내 의식을 또렷하게 만들었다. 불현듯 고향 사랑방 아궁이가 화면처럼 다가왔다. 어린 시절, 나는 방학만 하면 고향으로 향했다. ...
    Views16503
    Read More
  11. 시간을 “먹는다”와 “늙는다”

    새해가 밝은지 8일 째다. 비상시국이기에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예배를 드림으로 새해맞이를 하였다. 이럴때는 내가 목사라는 것에 자긍심을 느낀다. 성찬식도 거행했다. “지난 한해동안 성찬을 전혀 대하지 못했다.”는 딸의 말이 마음에 걸렸...
    Views16123
    Read More
  12. 2021년 첫칼럼 / 마라에서 엘림으로!

    새해가 밝았다. 듣도 보도 못한 역병이 창궐하며 지난해는 암흑으로 물들여졌었다. 사람들은 물론이요, 어느 장소, 물건을 가까이 할 수 없는 희한한 세월을 보냈다. 문제는 아직도 진행 중이라는 것이다. 언제 끝나게 될지 모를 절박한 상황이 새해라는 희망...
    Views16895
    Read More
  13. 세월은 쉬어가지 않는다

    나는 어린 시절 남한강 줄기에서 자랐다. 강은 보는 각도에 따라 모양과 느낌을 달리한다. 언덕 위에서 볼 때는 마냥 푸르고 잔잔해 보이지만 모래사장에 내려서면 잔잔히 출렁이는 물결이 건너편을 저만치 밀어낸다. 물가에서 보면 만만해 보이지만 일단 몸...
    Views16216
    Read More
  14. 테스형

    지난 추석 KBS는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라는 야심 찬 기획을 세운다. 무려 11년 동안 소식이 없던 그가 다시 무대에 선다는 것 자체가 커다란 이슈였다. 이혼과 조폭 연루설로 인해 힘들어하던 시기 대중 앞에서 “바지를 내리겠다”고 외치며 ...
    Views16307
    Read More
  15. It is not your fault!

    인생이란 무엇일까? 왜 사람들은 평생 그렇게 바쁘게 돌아치며 살고 있을까? 분명히 뭔가 잡으려고 그렇게 달려가는데 나중에는 ‘허무’라는 종착역에 다다르게 되는 것일까? 세상의 모든 것을 원 없이 누렸던 솔로몬은 유언처럼 남긴 전도서에서 ...
    Views16503
    Read More
  16. 지연이의 효심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당사자도 고통스럽지만 그 모습을 바라보고 사는 가족들의 아픔은 말로 표현이 안된다. 우연히 마트에서 손에 약봉지를 든 지인과 마주쳤다. “누가 아파요?” “제 아내가 루게릭병으로 힘들게 살고 있습니다.” ...
    Views17042
    Read More
  17. 1회용

    바야흐로 1회용품이 상용화된 시대이다. 컵부터 시작하여 세면용품, 밴드, 도시락, 가운, 렌즈, 면도기, 카메라, 기저귀, 주사기, 다양한 모양의 그릇까지 요즘에는 일회용으로 만들지 않는 것이 없다. 실로 1회용품 홍수시대이다. 1회용품 중에는 한번 쓰고 ...
    Views17144
    Read More
  18. 라떼는 말이야~

    나는 라떼를 좋아한다. 블랙은 매번 도전을 해 보지만 취향이 아니고 아직은 촌스러워서 달달한 커피가 좋다. 에스프레소에 우유를 갈아서 만드는 라떼는 부드럽고 단맛이 혀 끝에 닿으며 기분을 up 시켜 주어 좋다. 지인들은 첨가물 없이 커피를 즐기며 한마...
    Views17562
    Read More
  19. 미묘한 결혼생활

    가정은 소중하다. 천지창조 시 하나님은 교회보다 가정을 먼저 만드셨다. 그 속에는 가정이 첫 교회라는 비밀이 숨겨져 있다. 하나님은 가정을 통해 참교회의 모습을 계시하셨고 파라다이스를 경험하게 하셨다. 하나님이 아담을 지으신 후 “독처하는 것...
    Views16974
    Read More
  20. 그것만이 내 세상

    우리 밀알선교단에는 다수의 장애인들과 장애아동들이 있다.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힘겨운 일이다. 아울러 가족 중에 장애인이 있는 것도 삶이 평탄하지 않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18년 전, 밀알선교단 단장으로 부임하였을때에 전신마비 장애인이 ...
    Views17267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 4 5 6 7 8 9 10 11 12 13 ... 35 Next
/ 35

주소: 423 Derstine Ave. Lansdale., PA 19446
Tel: (215) 913-3008
e-mail: philamilal@hotmail.com

© k2s0o1d4e0s2i1g5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