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2019.12.28 15:27

연날리기

조회 수 27018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연날리기.jpg

 

 

 바람이 분다. 겨울이라 그런지 바람 소리가 예사롭지 않다. 앙상한 나뭇가지를 훑어대며 내는 소리는 앙칼지다라고 밖에는 표현이 안된다. 내가 어릴 때는 집이 다 창호지 문이었다. 어쩌다 자그마한 구멍이라도 생기면 파고드는 칼바람의 위력이 대단했다. 칼바람이 매정하게 느껴진 것은 초등학교 시절이다. 학교는 북한 강변에 있었다. 아이들은 바람을 등지고 걸었지만 몸이 부실한 나는 어쩔 수 없이 그 바람을 마주해야 했다. 칼바람이 얼굴을 때리면 금방 붉어지며 눈물이 솟구쳤다. 뺨을 타고 흐르는 찬 눈물을 삼키며 등 ·하교를 해야 했다.

 

 그런데 그 바람이 고마운 시간이 있다. 바로 연을 날릴 때이다. 그런 면에서 연날리기는 겨울과 잘 어울리는 놀이이다. 겨울방학이 되면 악동들은 썰매타기, 팽이치기, 연날리기로 하루를 보냈다. 살을 에이는 듯한 맹추위를 친구삼아 우리는 모이고 뭉치며 겨울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연이라고 해야 지금 생각하면 허접하기 이를데 없었다. 비닐우산에서 대나무를 떼어내어 가늘게 잘라내는 작업을 먼저 한다. 대나무 줄기 위에 문종이를 붙이고 중간 뼈대에는 얇은 싸릿대를 활처럼 휘게 해 붙이는 일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가오리연을 가장 많이 만들었다. 솜씨 좋은 할아버지를 둔 아이는 방패연을 들고 나타났다. 그 애가 그렇게 부러웠다.

 

 가오리연의 몸통을 만들고 꼬리를 붙인다. 어떤 아이는 연은 잘 만들었는데 꼬리를 너무 길게 붙여 날지 못하고 고꾸라지는 모습을 연출한다. 따라서 꼬리는 보기에도 좋지만 무엇보다 균형을 잘 잡아 붙여주는 것이 중요했다. 연을 멋지게 날리려면 언덕배기에 올라야 한다. 등하교길에 만나던 칼바람을 벗 삼아 우리는 언덕을 오르고 또 오른다. 그리고 바람을 등지고 달리며 연을 띄운다. 처음부터 순항을 하면 얼마나 좋으랴! 날기도 전에 고꾸라져 박살이 나고, 나는 듯하다가 빙글빙글 돌아 처박히는 연이 허다하다. 그러다가 떠오르는 연줄을 잡아 본 사람은 왜 그리 추운 날 언덕에 올라 연날리기를 하는지 이해 할 것이다.

 

 서서히 풀러 놓는 연줄을 따라 칼바람이 줄을 타고 연을 하늘 높이 올려놓는다. 까마득히 올라 한 점이 될 때까지 연줄을 풀며 환호성을 지른다. 메아리가 울려온다. 이리저리 좌우로 움직이며 위용을 과시한다. 그리고 어린 날의 꿈도 함께 날린다. 연날리기에는 바람이 필수이다. 바람 없는 연은 아무 의미가 없다. 연은 반대편 바람의 힘을 이용해서 땅에서 떠오른다. 연을 다루는 기술이 능숙해 지면 바람은 강할수록 좋기만 하다. 물체가 비행하도록 해주는 힘, 바로 양력이다. 세찬 바람에 의해 연이 올라갈 때마다 연줄을 풀어주고 연이 떨어지면 곧 줄을 잡아당겨 양력을 잘 유지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연싸움이다. 짖궂은 녀석들이 잘 날고 있는 연에 접근해서 줄을 끊어버린다. 연줄에 풀을 먹이거나 아교를 칠하는 아이도 있었다. 멀쩡히 잘 날고 있는 연에 접근하여 연실을 올려 걸었다가 재빨리 풀어주면 여지없이 줄이 끊어져 나갔다. 연이 곤두박질 칠 때에 한 아이는 울상이 되고, 줄을 끊은 아이는 승리감에 쾌재를 부른다. 참 묘한 광경이다. 연날리기를 잘하려면 우선은 연을 잘 만들어야 한다. 만든 연을 높이 공중에 띄우기 위해서는 얼레로 연줄을 손으로 잡아당겼다 풀었다 하는 기술을 익혀야 한다.

 

 이것은 비단 연날리기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일이든, 어떤 때이든 얼레를 조심스럽게 다루는 손의 역할이 중요하다. 거문고를 가르치는 스승이 제자에게 물었다. “거문고 줄을 세게 당기면 어찌 되겠느냐?” “줄이 끊어집니다.” 다시 묻는다. “거문고 줄을 느슨하게 당기면 어떤가?” 제자가 대답한다. “흥이 나지를 않습니다.” 그렇다. 너무 팽팽하면 피곤하고 긴장이 풀어지면 역동성이 떨어진다. 인생이 그런 것 같다. 때로는 유유자적하게, 때로는 초긴장 상태에서 삶의 줄을 잘 조절해야만 한다. 살아가는 동안 만나는 그 바람, 내 인생의 줄을 끊으려고 달려드는 사람까지도 사랑하고 아우르는 삶의 기술이 필요하다. 그리할때에 어느새 파아란 창공을 향해 날아오르는 극치의 행복감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이다.


  1. 아무리 익숙해 지려해도 거절은 아파요

    인생은 끊임없는 도전으로 이어진다. 반복되면 능숙해지기도 하련만 고비를 넘어서면 더 높은 능선이 길을 막는다. 그 과정을 거치며 때로는 성취감에 행복해하기도 하지만 실패의 아픔을 겪으며 뒹굴어야만 한다. 거절과 실패는 익숙해질 수 없는 끈질긴 친...
    Views269866
    Read More
  2. 아무도 모르는 둘만의 세월

    세월의 흐름은 두려울 정도로 빠르다. 팬데믹에도 한해가 바뀌고 또다시 봄기운이 움트고 있다. 눈과 강풍, 날마다 번져가는 역병. 살면서 이렇게 답답하고 곤고한 때가 있었을까? 초반에는 당황함으로, 시간이 지나며 현실을 받아들이며 체념하다가도 희망의...
    Views15726
    Read More
  3. 장애의 벽 넘어 빛나는 졸업장

    한국은 바야흐로 졸업시즌이다. 하지만 금년은 COVID-19 여파로 빛이 바랬다. 4년의 학업을 마치고 졸업하는 모습은 가족들이나 주위 사람들의 눈에도 귀해 보이거니와 스스로도 커다란 성취감을 맛보는 소중한 시간이다. 하지만 험난한 시국을 만나 영상으로...
    Views15988
    Read More
  4. 저만치 다가오는 그해 겨울

    눈이 온다. 근래 큰 눈이 오지 않아 푸근한 겨울을 꿈꾸었건만 2월에 접어들며 벼르기라도 한 듯 폭설이 일주일 간격으로 퍼붓고 있다. 나는 처음 로스앤젤레스로 이민을 왔다. 낯선 미국 땅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들. 희미하게 잊혀졌던 사람을 먼 미국 땅에...
    Views16136
    Read More
  5. 금수저의 수난

    지난 2월 5일. 변창흠 신임 국토교통부 장관이 국회에서 열린 대정부질문 당사자로 나서게 되었다. 김희국 의원이 물었다. “지금 버스 · 택시 요금이 얼마입니까?” 장관이 즉각 답변을 못하면서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나중에는 “카...
    Views15865
    Read More
  6. 아내 말만 들으면

    우리 세대는 가부장적 분위기에서 자라났다. 아버지의 존재는 실로 무소불위였다. 가정 경제의 키를 거머쥐고 모든 결정을 아버지가 내렸다. 엄마는 뒤에서 뭔가 궁시렁거릴 뿐 그 권세 앞에 아무 힘도 쓰질 못했다. 그 기세가 아들인 우리들에게도 이어질 줄...
    Views15276
    Read More
  7. 다리없는 모델 지망생 “구이위나”

    사람이 위대한 것은 어떤 장벽도 넘어설 수 있음을 꿈꾸며 도전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속담에 “올라가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가 있다. 불가능한 일은 아예 엄두도 내지 말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환경을 탓하며 주저앉는...
    Views15430
    Read More
  8. 삶은 소중한 선물

    신년벽두 아가 ‘정인’의 죽음이 많은 사람들을 충격에 몰아넣었다. 천진난만한 미소로 재롱을 부리는 아가의 모습, 겨우 18개월밖에 살지 못하고 떠나간 생명을 보며 세상이 얼마나 악해졌는가를 실감했고 그렇게 태어나 떠나가는 아이들이 더 있...
    Views16541
    Read More
  9. 나만 몰랐다

    “김치만 먹는 개”라는 영상을 보았다. 개는 늑대의 후손이다. 과거에는 사람들이 먹고 남은 찌꺼기를, 이제는 사료를 먹지만 개는 사실 육식동물이다. 그런데 이 개는 김치만 먹는다. 그것도 아주 매운 김치만.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그 이유가...
    Views16626
    Read More
  10. 군불

    새벽녘에 잠이 깨었다. 무서운 꿈을 꾼 것도 아닌데 갑자기 단잠이 달아나 버렸다. 추적거리며 내리는 겨울비가 금방 잠이 깬 내 의식을 또렷하게 만들었다. 불현듯 고향 사랑방 아궁이가 화면처럼 다가왔다. 어린 시절, 나는 방학만 하면 고향으로 향했다. ...
    Views16416
    Read More
  11. 시간을 “먹는다”와 “늙는다”

    새해가 밝은지 8일 째다. 비상시국이기에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예배를 드림으로 새해맞이를 하였다. 이럴때는 내가 목사라는 것에 자긍심을 느낀다. 성찬식도 거행했다. “지난 한해동안 성찬을 전혀 대하지 못했다.”는 딸의 말이 마음에 걸렸...
    Views16024
    Read More
  12. 2021년 첫칼럼 / 마라에서 엘림으로!

    새해가 밝았다. 듣도 보도 못한 역병이 창궐하며 지난해는 암흑으로 물들여졌었다. 사람들은 물론이요, 어느 장소, 물건을 가까이 할 수 없는 희한한 세월을 보냈다. 문제는 아직도 진행 중이라는 것이다. 언제 끝나게 될지 모를 절박한 상황이 새해라는 희망...
    Views16851
    Read More
  13. 세월은 쉬어가지 않는다

    나는 어린 시절 남한강 줄기에서 자랐다. 강은 보는 각도에 따라 모양과 느낌을 달리한다. 언덕 위에서 볼 때는 마냥 푸르고 잔잔해 보이지만 모래사장에 내려서면 잔잔히 출렁이는 물결이 건너편을 저만치 밀어낸다. 물가에서 보면 만만해 보이지만 일단 몸...
    Views16133
    Read More
  14. 테스형

    지난 추석 KBS는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라는 야심 찬 기획을 세운다. 무려 11년 동안 소식이 없던 그가 다시 무대에 선다는 것 자체가 커다란 이슈였다. 이혼과 조폭 연루설로 인해 힘들어하던 시기 대중 앞에서 “바지를 내리겠다”고 외치며 ...
    Views16107
    Read More
  15. It is not your fault!

    인생이란 무엇일까? 왜 사람들은 평생 그렇게 바쁘게 돌아치며 살고 있을까? 분명히 뭔가 잡으려고 그렇게 달려가는데 나중에는 ‘허무’라는 종착역에 다다르게 되는 것일까? 세상의 모든 것을 원 없이 누렸던 솔로몬은 유언처럼 남긴 전도서에서 ...
    Views16473
    Read More
  16. 지연이의 효심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당사자도 고통스럽지만 그 모습을 바라보고 사는 가족들의 아픔은 말로 표현이 안된다. 우연히 마트에서 손에 약봉지를 든 지인과 마주쳤다. “누가 아파요?” “제 아내가 루게릭병으로 힘들게 살고 있습니다.” ...
    Views16730
    Read More
  17. 1회용

    바야흐로 1회용품이 상용화된 시대이다. 컵부터 시작하여 세면용품, 밴드, 도시락, 가운, 렌즈, 면도기, 카메라, 기저귀, 주사기, 다양한 모양의 그릇까지 요즘에는 일회용으로 만들지 않는 것이 없다. 실로 1회용품 홍수시대이다. 1회용품 중에는 한번 쓰고 ...
    Views16864
    Read More
  18. 라떼는 말이야~

    나는 라떼를 좋아한다. 블랙은 매번 도전을 해 보지만 취향이 아니고 아직은 촌스러워서 달달한 커피가 좋다. 에스프레소에 우유를 갈아서 만드는 라떼는 부드럽고 단맛이 혀 끝에 닿으며 기분을 up 시켜 주어 좋다. 지인들은 첨가물 없이 커피를 즐기며 한마...
    Views17537
    Read More
  19. 미묘한 결혼생활

    가정은 소중하다. 천지창조 시 하나님은 교회보다 가정을 먼저 만드셨다. 그 속에는 가정이 첫 교회라는 비밀이 숨겨져 있다. 하나님은 가정을 통해 참교회의 모습을 계시하셨고 파라다이스를 경험하게 하셨다. 하나님이 아담을 지으신 후 “독처하는 것...
    Views16953
    Read More
  20. 그것만이 내 세상

    우리 밀알선교단에는 다수의 장애인들과 장애아동들이 있다.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힘겨운 일이다. 아울러 가족 중에 장애인이 있는 것도 삶이 평탄하지 않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18년 전, 밀알선교단 단장으로 부임하였을때에 전신마비 장애인이 ...
    Views17238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 4 5 6 7 8 9 10 11 12 13 ... 35 Next
/ 35

주소: 423 Derstine Ave. Lansdale., PA 19446
Tel: (215) 913-3008
e-mail: philamilal@hotmail.com

© k2s0o1d4e0s2i1g5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