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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필.jpg

 

              

 

우리는 연필세대이다. 처음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사용하던 연필은 지금 생각하면 ‘열악’ 그 자체였다. ‘연필심’이 물러 뭉그러지기도 하고 어떤 것은 너무 날카로워 공책을 찢어놓기 일수였다. 어떨 때는 글씨를 쓰다가 연필이 반쪽이 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다가 나온 것이 향나무 연필이었다. 향이 좋은 것은 물론이고 연필심도 강해 반듯한 글씨로 공책을 채워갈 수 있었다. 정작 ‘샤프’가 나온 것은 대학시절에 접어들어서였다. 편리하기는 했지만 연필만이 가진 강한 개성은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문방구에 들러 새 연필을 사서 맡아보는 향, 연필을 깎으며 느끼는 뜻 모를 설레임, 그리고 하얀 종이위에 한글자 한글자 채워나가는 포만감은 연필이 주는 매력이었다. 연필은 누구에게나 많은 이야기를 하게 만든다. 내가 샤프를 사용하지 못하는 이유는 워낙 글씨를 쓸 때에 힘을 주기 때문이다. 지금도 내 오른쪽 가운데 손가락에는 구덕살이 배겨있다. 워낙 힘껏 연필을 움켜쥐고 글씨를 썼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처음 글을 배울 때 연필을 손에 쥐고 글씨를 써내려가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 글씨를 쓰다말고 마음처럼 안 되어 종이에 낙서를 했던 경험들도 가지고 있다. 연필이 종이를 만나면 ‘사각사각’ 소리를 낸다. 조용한 교실에 그 소리가 모아지면 분위기가 제법 진지해 진다. 학습의욕을 높여준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아이들이 공부하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소리라고 해야 할까? 그 소리를 들으며 우리들의 지식은 자라갔고 우정도 돈독해져 갔다.

 

 시험 때가 되면 연필이 전혀 다른 용도로 쓰여 지기도 했다. 소위 “연필 굴리기”가 그것이다. 연필 옆을 ‘살짝’파서 아라비아 숫자를 적어 넣고 나오는 대로 답을 적어 넣는 것이다. 그것이 신통하게 맞아들어 스스로 “용하다!”며 감탄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혹시 지금도 그렇게 인생을 살고 있지 않은지? 은근 걱정이 된다. 공부를 하다 귀가 가려우면 손가락보다 연필심이 유용하게 쓰여 졌고, 친구 얼굴 곁에 날카로운 연필심을 갖다 대고 “○○야!” 불러대면 여지없이 고개를 돌리며 아파하는 표정에 즐거워하기도 하였다.

 

 이제는 추억 속 필기구로 잊혀져 가는 존재이지만 누군가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 최고 미술 작품을 그려 나갈 때 연필은 진가를 발휘한다. 세계적 도시의 초안을 작성할 때에도 첫 시작은 연필의 끝에서 탄생한다. 흔히 사용되는 연필은 HB, B, 2B, 4B가 있지만 사실 경도에 따라 9H부터 9B까지 20여 가지로 나뉘어진다. HB는 흔히 연필 끝에 새겨진 익숙한 글자이다. H(hard)는 심의 단단한 정도를, B(black)는 심의 무른 정도를 나타낸다.

 

 그러니까 H 숫자가 높을수록 단단하고, B가 높을수록 부드러우면서도 짙은 것이다. 4B연필은 중학교 미술시간에 처음 손에 잡았다. 선생님의 지도를 받으며 데생를 하던 기억이 새롭다. 저만치 석고상을 가져다놓고 연필 끝으로 겨냥하며 음양을 세밀히 칠해갔다. 제법 화가 포스가 났다. 4B 연필은 심이 부드럽기 때문에 세밀하면서도 변화가 다양한 선을 그릴 수 있었다.

 

 OMR 카드에 마킹할 적에는 B가 좋다. 6H는 거의 송곳 수준이고 목공용이다. 목수들이 멋지게 귀에 꽂고 작업하는 것이 6H이다. 잘 닳지도 않아 1개로 족하다나? 반면 8B는 거의 색연필 수준이다. 목탄(숯) 정도라고 해야 할까? 연필의 재료는 흑연이다. 반죽된 혼합물질을 국수를 뽑듯이 길다란 막대형태로 뽑아내어 섭씨 1000°~1200°의 높은 온도로 구워내야 한다. 1000° 이하로 구우면 단단한 연필심이 될 수 없다고 한다. 참 신기하다.

 

 연필심을 안고 나무는 깎인다. 길쭉하게 깎여나간 나무 끝에 뾰족한 연필심이 드러나고 날렵한 연필심은 글씨를 쓰며 무뎌진다. 이제는 디지털 시대이다. 연필보다는 펜을 사용하고 자판을 두드리어 출력을 한다. 모든 것이 너무 편리해졌다. 하지만 연필을 깎고 상념에 잠기던 애틋함을 잃어버린 것이 못내 아쉽다. 컴퓨터 자판이 아무리 빠르고, 스마트폰 터치가 아무리 편리해도 연필의 ‘생각하는 감성’과 ‘창조하는 힘’은 결코 대체하지 못한다.

세월의 흐름 속에도 연필은 고고한 매력을 지닌 채 여전히 우리 곁에 존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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