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조회 수 30998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가을 추억.jpg

 

 

 가을이 깊어간다. 푸르던 잎들이 각양각색의 색깔로 갈아입으면서 서서히 정든 나무를 떠날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무척이나 춥고 눈이 쏟아지던 겨울. 나무 속에 숨어 기다리던 새싹들이 호호불어대는 봄바람에 살포시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 나목에 옷을 입히며 어느새 하늘을 덮을 정도로 이파리가 번져갔다. 여기저기서 날아든 새들의 노래 소리와 온갖 친구들이 찾아오며 여름 나무속은 풍성한 이야기로 가득찼다. 입담 좋은 친구의 부풀려진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웃어대고 때마침 불어오는 바람에 그 소식을 날려 보내며 언제까지 함께 할 줄 알았다. 하지만 차가운 가을 기운이 파고들며 분위기는 한산해졌다. 다양한 색깔을 머금고 떠나가는 낙엽의 외침에 나무는 무표정으로 작별을 고하고 있다.

 

  신계령은 <가을사랑>이란 노래에서 가을 가~~을 오면 가지 말아라!” 외치지만 사계절 중 왔다가 가장 짧게 머무르고 가는 것이 가을인 것 같다. 어느때부터인가? 석양이 가슴시리도록 좋아지기 시작했다. 강렬히 타던 태양이 그 빛을 사방에 분산시키며 서쪽 하늘로 넘어가는 그 모습이 왜 그리 정겨워지든지? 나이가 든 증거인 듯 하다. 가을은 삶을 자꾸 반추하게 만드는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잠시 저만치 잡힐듯한 시간으로 몰입해 들어갔다. 내가 20대에는 전화기가 귀하고 귀했다. 문제는 약속을 한 장소에 상대가 나타나지 않을 때 확인할 방법이 없는 것이었다.

 

  다방에서 엽차를 앞에 놓고 기다리는 그 시간은 길고도 지루하다. 30분이 지나도 안 나타난다.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그러다가 기다려운 시간이 아까워 또 기다린다. 참 난감한 시간이었다. 핸드폰이 없는 때이라 어쩔수 없었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사람을 기다리며 오직 상대를 생각했던 그 순간이 그래도 좋았다. 거리마다 요소요소에 공중전화부스가 즐비했다. 사람마다 작은 전화번호가 적힌 포켓 혹은 수첩을 들고서 줄창 기다려야했다. 통화가 길어지면 뒤에서 기다리는 사람에게 눈치가 보이고 비밀이야기를 하려고 목소리를 낮추면 상대방이 못 알아듣기에 답답했다. 당시 내가 암송하는 전화번호가 300개는 되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제는 가족의 전화번호도 다 기억을 못한다. 핸드폰이 내 기억력을 송두리째 앗아가 버렸기 때문이다.

 

  명동 선술집에서 얼큰히 술이 오르면 떠오르는 아이에게 공중전화를 붙들고 한없이 주절거리기도 했다. 그리고 실상 마주치면 움추러들면서 말이다. 물론 신학생이 되기전에 일이다. 당시에는 연인을 만나는 장소가 시계탑, 파고다 공원 앞 등등이었다. 다방보다는 지루함이 덜했고 다른 팀이 만나는 장면을 감상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만나면 분식집으로, 형편이 나은 커플은 경양식집에 들어가 청춘의 대화를 나누었다. 버스가 끊어질 때까지 함께 했던 그 시절이 정말 좋았다. 헤어지기 싫어 서로의 집을 오가며 나누었던 숱한 대화들 그 아이는 기억할까?

 

  난 머리가 복잡해지면 아무 시내버스나 올라탔다. 종점까지 그냥 가서 내려 걸었다. 70년대에는 서울외곽에 가만히 앉아 생각에 잠길 수 있는 공간이 많았다. 지금은 들어선 빌딩과 주택이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지만 말이다. 낯선 중국집 샷시문을 열고 들어가서 창가에 자리를 잡고 홀로 먹는 짜장면, 때맞추어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와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정겨운 대화는 가슴을 따뜻하게 데펴주는 그 시대의 난로였다. 풍요롭지는 않았지만 그 시절은 실로 정()이 있는 때였다.

 

  이제 사람들은 실익을 위해 살고 있다. 아이도 어른도 다 바쁘게 살고 있다. 먹고 살기에 바쁘고 돈을 좇아 헤매이고 있다. 다들 무언가 잡으려고 달려가지만 성취하는 그 시점에 다다르면 허무만이 맴돌 뿐이다. 다른 사람은 안중에도 없고 자기 삶에만 너무 집착하며 사는 개인주의가 당연한 세상이 되어버렸다. 이 가을! 넉넉하지 않았지만 사람 냄새가 나고 이웃을 챙겨주던 그 시절이 문득 떠올랐다. 버튼 하나로 연결되는 세상이 아니라 공중전화 부스 앞에서 그 사람을 생각하다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에 행복 해 하던 그 시절이 그래서 그립고 또 그립다

 


  1. 어느 자폐아 어머니의 눈물

    우리 밀알선교단은 매주 토요일마다 발달장애아동을 Care하는 <토요사랑의 교실>을 운영한다. 어느새 30년이 가까워오며 이제 아동이란 명칭을 쓰기가 어색하다. 팬데믹으로 거의 1년반을 모이지 못하다가 지난 9월부터 본격적인 대면모임을 시작했다. 하지만...
    Views32367
    Read More
  2. 저만치 잡힐듯한 시간

    가을이 깊어간다. 푸르던 잎들이 각양각색의 색깔로 갈아입으면서 서서히 정든 나무를 떠날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무척이나 춥고 눈이 쏟아지던 겨울. 나무 속에 숨어 기다리던 새싹들이 ‘호호’ 불어대는 봄바람에 살포시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
    Views30998
    Read More
  3. 표정만들기

    나는 항상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사역 자체가 사람을 만나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오랜 시간 만나온 사람도 있지만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사람을 처음 만날때에 주력하는 것은 첫인상이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나이가 들어가며 첫인상의 촉이...
    Views31386
    Read More
  4. 엄마와 홍시

    엄마는 경기도 포천 명덕리에서 태어나셨다. 천성이 부지런하고 경우가 바른 엄마의 성품은 시대가 어려운 때이지만 조금은 여유가 있는 외가의 분위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외가에 산세는 수려했다. 우아한 뒷산의 정취로부터 산을 휘감아 돌아치는 시냇물은 ...
    Views30877
    Read More
  5. 부부는 싸우면서 성숙한다

    “부부싸움을 왜 해요? 우리는 한번도 싸워본 적이 없어요” 간혹 이런 외계인 부부를 만난다. 한편으로 부럽기도 하지만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사랑을 할 때는 소위 ‘도파민’이 샘솟듯 나오며 거의 미친 듯이 서로를 갈망한다. 이...
    Views30579
    Read More
  6. 장애아 반장

    “차렷, 열중쉬어, 차렷, 선생님께… 선생님 핸드폰께 경례!” 조기훈(12)군이 우렁차게 외치자 친구들이 까르르 웃는다. 기훈이는 서울 목동 신서초등학교 6학년 6반 학급회장이다. ‘경례’를 하기 전까지 기훈이는 휴대전화가 ...
    Views31674
    Read More
  7. 생각하는 갈대

    인간은 약하다. 하지만 생각하는 존재이기에 위대하다. 성장하며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날 때에 부모에게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왜 너는 생각이 없냐?”였을 것이다. 그 시기에는 몸이 생각보다 먼저 반응하기 때문이다. 생각을 하면 멈출수 있다. ...
    Views31437
    Read More
  8. 세월은 사람을 변하게 하는가?

    카메라가 흔하지 않던 시절에는 사진을 찍는 것이 너무도 소중하고 귀했다. 사진관에 가서 카메라를 빌리고 촬영한 필름을 다시 맡겼다가 나온 사진을 찾으러 가는 날은 가슴이 퉁탕거렸다. 흑백사진이었지만 내 모습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기에 정말 행복...
    Views30757
    Read More
  9. “아침밥” 논쟁

    ‘오늘’이라는 시간은 ‘어제’라고 하는 시간의 연장선상에서 존재한다. 내일 역시 ‘오늘’이라는 시간이 만들어 내는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그 사람의 오늘은 그 사람의 어제가 만들고 있다. 배우자의 어린 시절을...
    Views32443
    Read More
  10.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

    우리 밀알선교단에는 다수의 장애아(障礙兒)들이 있다. 토요일마다 귀한 친구들을 보살핀 세월이 어느새 25년이다. 어리디어리던 아이들이 이제는 거의 성인이 되었다. 그러면서도 그들을 장애아라고 부르는 것은 지능지수와 적응하는 반응을 기준으로 삼기 ...
    Views33831
    Read More
  11. 베이비부머

    어느 순간부터 세대를 구별짓는 명칭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사실 이 구분은 미국식이다. 처음 생겨난 세대를 ‘베이비부머’라고 한다. 1955년~1963년에 태어난 사람들을 칭한다. 1965~1980년에 태어난 부류를 ‘X세대’라고 한다. 관...
    Views33630
    Read More
  12. 남 · 녀는 뇌가 다르다

    태어나면 성별(Gender)을 구분 짓는다. 성장하며 그 차이는 점점 벌어진다. 남자아이들은 도전과 모험에 사로잡혀 산다. 반면 여아들은 안정과 가꿈에 집착한다. 현저한 차이는 언어영역이다. 여자는 태어나면서부터 탁월한 언어습득 능력을 발휘한다. 남자는...
    Views33855
    Read More
  13. 관중 없는 올림픽

    모두의 염려 속에 개막한 올림픽이 연일 드라마를 연출하며 막을 내렸다. 승리하여 메달을 딴 선수는 인생 최고 환희의 순간을 만끽했고,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선수는 눈물을 흘리며 일찌감치 짐을 싸야만 했다. 스포츠 매니아라 할 쿠베르탱 남작에 의해 시...
    Views34237
    Read More
  14. 그들의 우정이 빛나는 이유

    한 여고 점심시간, 두 학생이 식당에 들어선다. 한 학생은 휠체어를 타고 있다. “의자 당겨서, 앉아있어.” 한 여학생이 식판 2개를 들고 배식을 받는다. 뇌병변 장애로 두 다리를 전혀 쓰지 못하는 친구 최주희 양을 위해 6년간 학교에서 최 양의...
    Views34201
    Read More
  15. 미안하고 부끄럽고

    이 세상에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사람이 없듯이 가고 싶을 때 가는 사람도 없다. 어느날 나는 지구별에 보내졌고 피부 색깔로 인해, 언어, 문화, 생활양식에 의해 분류되어 살아간다.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사람은 언제 행복할까? 소통이 잘 될 때이...
    Views34394
    Read More
  16. 사는게 영화다

    어느 시대나 그때그때마다 삶의 버거움을 벗겨주는 스타가 있었다. 요즈음의 대세는 BTS, 레드벨벳이라지만 아날로그 시절에는 고달픈 인생을 위로해 주는 청량음료 같은 스타들이 때마다 등장했다. 초등학교 시절에 스타는 프로레슬러 김일이었다. 어쩌다 경...
    Views33921
    Read More
  17. 징크스

    사람은 누구나 묘한 약점을 가지고 있다. 같은 일이 반복되면 ‘그렇게 될 것’이라는 신념(?)이 은연중에 생기는 것이다. 바로 징크스이다. 징크스란 ‘불길한 일 또는 사람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운명적인 일’을 뜻한다. 어원은 일반...
    Views35291
    Read More
  18. 이마고(IMAGO)를 아십니까?

    현세에 일어나는 위기는 다양하다. 경제적 공황, 불신, 고립, 이제는 역병까지. 하지만 가장 큰 위기는 가정이다. 가정은 삶의 최전선이다. 가정이 흔들리니 관계가 무너질 수밖에 없고 사회 전반의 구조가 지각변동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전 세계의 기독...
    Views35102
    Read More
  19. 동병상련(同病相憐)

    나에게는 소중한 제자들이 많이 있다. 철없던 20살, 반사를 하며 가르쳤던 주일학교 아이들부터, 22살 교육전도사가 되어 지도하던 학생들. 26살부터 지도했던 중 · 고등부 청소년들. 그리고 30이 넘으며 지도하던 청년대학부까지 많기도 많다. 하지만...
    Views34337
    Read More
  20. 이사도라

    아직 젊다고 우기면 우길 수도 있는 나이지만 생을 되돌아보면 안개처럼 피어오르는 아련한 추억이 있다. “마음은 청춘이라”는 말이 나이가 들수록 실감이 난다. ‘나이 들어감’에 대해 이젠 체념을 해야만 할 것 같다. ‘왜 살...
    Views33933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 7 8 9 10 11 12 13 14 15 16 ... 40 Next
/ 40

주소: 423 Derstine Ave. Lansdale., PA 19446
Tel: (215) 913-3008
e-mail: philamilal@hotmail.com

© k2s0o1d4e0s2i1g5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