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2015.11.25 03:14

나도 아프다 8/25/2010

조회 수 75697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8930816_orig.jpg

 

 

세상을 사는 것은 언제나 콧노래를 부르는 여정이 아님을 나이가 들어가며 안다. 한국에는 여름이면 장마철이 찾아온다. 한창 뛰어놀기 좋아하던 어린 시절에는 우기(雨期)가 그렇게 미웠다. 어느 날, 처마 밑에 쪼그리고 앉아 쏟아지는 빗줄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내 오른손을 내어 밀어 비를 받아본다. 자그마한 손바닥에 떨어지는 빗방울이 세미한 간지럼을 느끼게 한다. 손을 오그려 빗물을 모아본다. 그리고는 손바닥을 기울여 고인 빗물을 쏟아 낸다. 다시 두 손을 내어민다. 두 손을 모으니 손안에 제법 빗물이 듬뿍 그 양을 더한다. 봉당 흙 위에 빗물을 부어본다. 그러다가 문득 가슴을 파고드는 외로움을 느꼈다.

가뭄이 계속되다가 쏟아지는 비는 사람들의 마음에 시원함을 준다. 농부들에게는 희열을 준다. 쏟아지는 빗줄기 속으로 밀짚모자를 눌러쓰고 삽을 둘러멘 채 밭으로 향하는 농부의 당당한 모습을 본 일이 있는가? 맨발에 하얀 고무신은 너무도 멋진 패션이었다. 농부의 가슴에는 뿌듯함이 샘솟았다. 물고를 터주면 논은 모처럼 넉넉한 호흡을 시작할 것이다. 밭에 곡식들은 모처럼 물줄기를 들이마시며 장차 맺어갈 열매의 꿈을 꿀 것이다. 그때야 다들 깨닫는다. 비님이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가를!

사람들은 너무도 쉽게 말을 한다. 날씨가 화창하면 “오늘 날이 참 좋네”하고 비가 쏟아지면 “날씨가 아주 안 좋으네”라고 말이다. 비는 꼭 필요하다. 비가 안 오면 세상은 말라붙어 삭막한 그림을 연출해 낼 것이다. 그러니 비가 오는 것은 너무도 좋은 일이다. 옛말에도 “비가 온 후에 땅이 굳는다”는 말이 있다. 단단해 지려면 비가 와야 한다. 비오는 날이 있기에 개인 날이 더 아름다운 것이다. 인생을 살면서 “참 인생의 맛”을 알려면 비를 맞아보아야 한다. 아니 빗물 같은 눈물을 흘려보아야 한다. 그래야 인생이다. 인생의 단맛을 알게 된다.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지 않고 성공의 단 열매를 얻으려 한다. 아니다. 눈물을 많이 흘린 사람이 시인이 된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본 사람만이 인생의 참의미를 깨닫게 된다. 그래서 아픔은 귀한 것이다.

사람들은 아파하지 않고 열매를 거두려 한다. 그래서 불행은 시작된다. 아파야 한다. 그래야 인생의 참맛을 안다. 사춘기였다. 갑자기 가세가 기울어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면서 그런 넋두리를 한 적이 있었다. ‘왜 나는 재벌가에 아들로 태어나지 않았는가?’ 정말 그때는 부유하게 사는 아이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꼭 축복이 아님을 나이가 들어가며 깨닫게 되었다. 이미 모든 조건이 갖추어진 환경에서 성장한 사람들은 자그마한 것에서 행복을 찾기가 쉽지 않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도 ‘과연 상대방이 나를 사랑하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가진 조건을 사랑하는 것인지’ 가늠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사람을 의심해야하고 속내를 쉽게 드러내지 못하고 살게 된다. 그것은 얼마나 애석한 일인가!

가진 것이 없지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처럼 다행스럽고 커다란 축복이 없다. 내가 아파 할 때에 함께 그 짐을 나눠질 수 있는 사람만 있다면 그 사람은 누구와 비교해도 아깝지 않은 보화를 가진 사람이라 할 수 있다. 한 초보 강도가 담을 넘어 들어가 방에 누워 있는 집 주인에게 “꼼짝 마, 손들어”하고 외쳤다. 겁에 질려 금방 손을 높이 쳐들 줄 알았는데 주인은 손을 들지 않는다. 당황한 강도가 “왜 손을 안 들어. 죽고 싶어?”라고 협박했더니 주인이 하는 말이 “제가 오십 견이어서 손을 들 수가 없네요”라고 대답했다. 집 주인의 말을 들은 강도는 “오십 견이세요? 저도 오십 견이 있었는데 지금은 다 나았습니다”라고 말하며 칼을 놓더니 집 주인과 오십 견에 대해 치료 정보를 나누고 그냥 가버렸다고 한다. 아픈 사람의 사람은 아파본 사람만이 안다.

로스엔젤레스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 밤중에 어느 교회 목사님 사택에 전화벨이 울렸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한밤중에 걸려오는 전화는 사람의 마음을 ‘철렁’하게 만든다. 놀란 목사님이 일어나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 걸죽한 이북사투리 억양이 수화기를 타고 흘러나왔다. “목사님, 지금 몇시오?” 기가 막혔다. ‘뭐 이런 사람이 있나?’ 생각을 하며 가만히 보니 목사님이 섬기는 교회의 권사님 목소리였다. 불을 켜고 시계를 쳐다보니 새벽 세시였다. “권사님, 지금 새벽 세시입니다.” “알았소”하고는 전화를 끊어버린다. 목사님은 황당했다. ‘아니, 한밤중에 전화를 해서 단잠을 깨워 시간을 물어보고 끊어버려?’ 다시 자려고 누웠으나 잠이 오지 않았다. 잠이 다 달아난 것이다. 거기다가 ‘이런 몰상식한 권사가 있나?’하고 분이 올라와 더 잘 수가 없었다.

분을 삭이며 누워있는데 갑자기 성령의 감동이 밀려왔다. “목사야! 너는 그 정도 밖에 안 되니? 그 권사가 시계가 없어 전화를 했겠니? 오늘따라 새벽에 잠이 깼겠지. 문득 외로움이 밀려오는데 누구의 음성이라도 듣고 싶었겠지.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목사 아니겠니? 그런데 잠을 깨운 것이 그렇게 억울하냐?” 목사님은 일어나 침대머리 맡에 무릎을 꿇었다. “하나님 제가 그 정도 밖에 안 됩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전화를 건 권사에게는 아들하나가 있었다.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그는 일 년에 한번 ‘올까말까’하는 무심한 아들이었다. 얼마나 외로웠으면 한밤중에 목사 사택에 전화를 걸어 음성을 듣고 싶어 했겠는가? 밤새 권사님을 위해 기도한 목사님은 주일날 권사님을 만나 두 손을 꼭 잡고 이야기를 한다. “권사님, 언제든지 전화하세요. 새벽 한시고 세시고 상관없어요. 아무 때나 전화하고 싶으실 때에 하세요. 그리고 예수님이 권사님과 함께 하시잖아요. 이북에서 피난 내려오실 때에 함께하신 예수님이 권사님과 함께 하시잖아요. 힘내세요.” 힘껏 권사님을 안아드렸다. 어떻게 되었을까? 그 이후에 전화는 한번도 걸려오지 않았다. 이제는 영영 전화가 걸려올 수도 없다. 얼마 전에 권사님은 하늘나라에 가셨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나에게 ‘성격이 밝다’고 한다. ‘당당하다’고 하는 분들도 많다. 하지만 그 밝음과 당당함은 많은 비를 맞고서야 하나님께로 주어진 선물임을 밝히고 싶다. 절룩거리는 다리가 서러워 많이 울었다. 놀림과 무시를 당하며 많은 날들을 아파했다. 나이가 들수록 장애를 가지고 넘어가기에는 삶의 장벽이 너무도 높고 견고했다. 자살도 많이 생각했다. 하지만 이대로 죽기는 억울했다. 이를 악물고 견뎌냈다. 어느 날, 깊은 기도 속에 하나님이 찾아오셨다. 그리고 물으셨다. “재철아, 아프냐?” “예, 많이 아파요!” 주님이 말씀하셨다. “나도 아프다” 그 음성을 듣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슬퍼서가 아니었다. 예수님, 그분이 내 마음을 알아주시는 것 자체가 고마워 울었다. 많은 장애
들을 만나며 나도 고백한다. “아프세요, 나도 아파요” 마주 잡은 손끝에 사랑이 흐른다.


  1. 장애인을 사랑하기까지 11/7/2014

    나는 장애인이다. 모두가 그렇듯이 나도 귀한 가정에 아들로 태어났다. 아들을 둘이나 낳았지만 갓난아기 때 병으로 다 잃어버리고, 딸을 낳아 기르다가(누나)내가 태어났으니 부모님은 얼마나 기뻐하셨을까? 하지만 돌이 지나며 ‘소아마비’에 걸...
    Views75637
    Read More
  2. 나도 아프다 8/25/2010

    세상을 사는 것은 언제나 콧노래를 부르는 여정이 아님을 나이가 들어가며 안다. 한국에는 여름이면 장마철이 찾아온다. 한창 뛰어놀기 좋아하던 어린 시절에는 우기(雨期)가 그렇게 미웠다. 어느 날, 처마 밑에 쪼그리고 앉아 쏟아지는 빗줄기를 바라보고 있...
    Views75697
    Read More
  3. 속을 모르겠어요! 5/9/2014

    남자들은 모이면 여자이야기를 한다. 그러면서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은 “도대체 여자들은 속을 모르겠어!”이다. 정말 여자는 팔색조이다. 연애 할 때는 그렇다 치더라도 결혼을 해서 부부로 사는데도 속을 알 수 없는 것이 여자이다. 어느 때는 ...
    Views75697
    Read More
  4. 봄비, 너는 기억하니? 6/21/2014

    미국에 살면서 생겨난 특이한 변화는 비의 관한 새로운 의식이다. 비만 오면 유난스럽게 우산을 펴들던 한국적인 모습이 사라지고 비를 있는 그대로 보게 된 것이다. 아마 그것은 ‘황사’니, ‘미세먼지’니 하는 거추장스러운 용어가 ...
    Views75906
    Read More
  5. 정말 그 시절이 좋았는데 5/16/2012

    실로 정보통신 천국시대가 되었다. 한국에 가보면 어리디어린 아이들도 모두 핸드폰을 들고 다닌다. 젊은 시절에 외국영화를 보면 길거리에서 핸드폰으로 전화를 거는 장면이 있었다. “저게 가능할까?” 생각을 했는데 이제 그 모든 것이 현실이 ...
    Views75926
    Read More
  6. 세상에서 가장 슬픈 소원 11/6/15

    영화 <말아톤>을 보면 장애우 “초원”이 엄마와 마라톤 감독 간에 대화가 주목을 끈다. 감독이 초원이 엄마(김미숙 분)에게 묻는다. “아줌마 소원이 무엇입니까?” 망설이듯 하던 초원 엄마가 대답한다. “내 소원은 초원이보다 ...
    Views75999
    Read More
  7. '쉼'의 참다운 의미

    어느 무더운 여름, 한 목사님께서 하와이 소재 교포 교회에서 부흥회를 인도하는 중에 잠시 해변을 거닐게 되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담임하는 교회에 노 장로님 부부를 그곳에서 마주치게 되었다. 목사님은 너무도 반가워 두 손을 잡았더니 장로님 부부...
    Views76016
    Read More
  8. 글씨 쓰기가 싫다

    한국에서의 일이다. 1984년, 한 모임에서 백인 대학생을 만났다. 남 · 여 두 학생은 백인 특유의 또렷한 이목구비와 훤칠한 키로 눈길을 끌었다. 두 사람이 연인사이였는지, 아니면 그 모임에서 우연히 만난 것인지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다정다감하고 ...
    Views76046
    Read More
  9. 마음이 고프다 4/1/2013

    사춘기에 접어들며 나는 식탐하는 습관이 생겼다. 음식을 보면 도가 지나칠 정도로 집착을 했다. 우리 집안 내력이 대식가라는 것을 차치하고라도 정말 음식을 잘도 먹었다. 어머니는 항상 “福”자가 그려진 ‘대밥그릇’에 고봉으로 밥...
    Views76097
    Read More
  10. 가을 피아노 9/30/2013

    내 생애에 가장 후회되는 것이 있다면 피아노를 배우지 않았다는 것이다. “배우지 못했다”가 아닌 “배우지 않았다”라는 표현은 얼마든지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거부하였음을 의미한다. 고교 1학년 때였다. 아버지가 차려놓은 ...
    Views76129
    Read More
  11. 아버지의 시선 11/13/15

    나의 아버지는 엄한 분이였고 항상 어려웠다. 동리 분들과 어울리실 때는 퍽 다정다감한 것 같은데 자식들 앞에서는 무표정이셨다. 그것이 사춘기시절에는 못 마땅했다. 이유 없는 반항을 하며 대들어보기도 했지만 아버지는 요지부동이셨다. 나이가 들어가며...
    Views76140
    Read More
  12. 음악은 인생의 친구 1/28/2011

    사람마다 취미가 다르고 추구하는 성향이 다르지만 모두가 한결같이 좋아하는 것이 있다. 바로 음악이다. 좋아하는 장르는 다양하겠지만 음악은 인류역사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삶의 조미료 역할을 감당하며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어 준다. 아가가 엄마 뱃속에...
    Views76175
    Read More
  13. 기분 좋은 긴장감 8/31/2013

    사람들은 모두 삶의 긴장감에 대해 두려워하며 살고 있다. 좀 더 편안하고 여유로운 삶을 누구나 원한다. 하지만 어디 인생이 ‘호락호락’하던가? 평안이 계속 될 것만 같던 삶에 갑자기 폭풍우가 몰아치고 긴장감 속에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시간...
    Views76203
    Read More
  14. 아, 한강! 7/24/15

    필라에는 “아리수”라는 이름의 한식당이 있다. 누군가 물었다. “아리수가 무슨 뜻입니까?” 주워들은 이야기가 있어 자신 있게 대답했다. “아, 순수한 우리나라 말로 ‘한강’을 뜻합니다.” 상대방은 고개를 &l...
    Views76316
    Read More
  15. 시드니의 노스탤지어(nostalgia) 5/16/2012

    꿈에 그리던 땅에 도착을 했다. 광활하지만 아름다운 그곳. 호주에 도착하는 그 순간에 나는 이미 들떠있었다. 시드니는 초가을의 숨결로 나를 반겼다. 드높은 코발트색 하늘, 필라델피아를 능가하는 깊은 숲, 시원함을 느끼게 하는 바람이 호주임을 실감하게...
    Views76317
    Read More
  16. 추억의 색깔을 음미하며

    인생이 힘들고 기나긴 여정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가끔 떠오르는 추억이 미소를 머금게도 하고 잠시 현실의 무게를 덜어주기도 한다.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사랑의 색깔이 달라진다. 사람들은 그 색깔을 다시 음미하고 싶어 추억의 장소를 찾아간다. 사진첩...
    Views76319
    Read More
  17. 감동의 우물 사랑의 캠프 8/20/2012

    장애인들은 일 년 동안 이날을 기다린다. 미주 동부 지역에 있는 장애인들은 칠월칠석날 ‘견우와 직녀’가 만나듯이 캠프에서 만나 사랑을 나눈다. 언제나 그렇듯이 친근한 인사가 오가고 가족처럼 포근한 대화가 우물을 감동으로 일렁이게 하면 ...
    Views76361
    Read More
  18. 쪼잔한 이야기 11/10/2013

    “쪼잔하다.”는 표현은 흔히 돈 씀씀이를 연상케 한다. 같은 표현이 있다. “그 사람은 참 검소해.” 그런데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특히 “남자가 말야!”하면서 뒷담화를 친다. 음식을 먹고 밥값을 시원스럽게 내...
    Views76390
    Read More
  19. 잘 되는 나 5/16/2015

    이것은 ‘긍정의 힘’의 저자 조엘 오스틴이 내놓은 역작의 제목이다. 너무 노골적이지만 현대인들은 그런 취향에 익숙해 진지 오래이다. 조엘 오스틴의 책을 접하면서 많은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음을 나도 느낀다. 아마 그것은 정식으로 신학을 하...
    Views76406
    Read More
  20. 고양이를 아시나요? 10/23/15

    나는 고양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특별한 사연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냥 싫다. 눈매와 발톱이 너무 날카로워서일까? 아니면 울음소리 때문일까? “야∼∼옹!” 흉내만 내도 기분이 섬뜻해 진다. 무엇보다 어릴 때 보았던 영화 탓이 큰 것...
    Views76409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 24 25 26 27 28 29 30 31 32 33 ... 36 Next
/ 36

주소: 423 Derstine Ave. Lansdale., PA 19446
Tel: (215) 913-3008
e-mail: philamilal@hotmail.com

© k2s0o1d4e0s2i1g5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