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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17 12:29

겨울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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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궁이.jpg

 

 

  겨울의 차디찬 바람이 옷깃을 파고든다. 그래도 실내에 들어서면 온기가 충만하고 차에 올라 히터를 켜면 금방 따스해 지니 다행이다. 초등학교 시절에 겨울은 너무도 추웠다. 지금보다 날씨가 더 추웠는지 아니면 입은 옷이 시원치 않아서 그랬는지 그때는 정말 추웠다. 학교를 돌아 나오며 산등성이에서 마주치는 강바람은 지금 생각해도 몸서리를 치게 만든다. 그런 중에도 눈이 쏟아지면 우리는 추위를 잊고 눈싸움에 빠져들었다. 처음에는 장난처럼 오가던 눈 던짐이 얼굴이나 뒤통수를 때리면 아이들은 사나워지기 시작하였다. 한 아이를 잡아 눈 속에 처박는 것부터 시작해서 등 뒤에 한 움큼의 눈뭉치를 집어넣는 것까지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진다. 나중에는 우는 아이까지 생겨나서야 눈싸움은 일단락되었다. 그러다가 마주 보며 웃는 친구의 발그레해진 얼굴이 문득 그립다.

 

  일찍 등교를 한 아이들은 양지쪽에 모여 들었다. 뭐니뭐니해도 햇볕만큼 우리의 몸을 녹여주는 것도 드물었다. 대여섯 명이 모이면 기름짜기를 시작했다. 학교 건물 기둥을 기준으로 몸을 밀어내는 일종의 게임이었다. 대열에서 밀려나면 맨 끝으로 가야만 한다. 그렇게 힘을 쓰다보면 몸에 열기가 오르고 이마에 땀이 흘렀다. 그렇게 그 시절에 아이들은 몸과 몸을 부딪히며 우정을 나누고 추운 겨울을 이겨냈다. 추위에 떨며 집에 돌아오면 엄마가 기다렸다. “엄마!”하고 집에 들어서면 엄마는 꽁꽁 언 아들의 손을 꼭 잡아 아랫목 이불에 묻어주었다. 동상을 예방하기 위함이었지만 엄마의 손길이 아들의 가슴을 따뜻하게 데펴 주었고 아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어 오늘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엄마에게 조근조근들려주었다. 아들을 바라보는 엄마의 시선에 대견함이 묻어난다.

 

  그 시절에는 어느 집이나 아궁이에 불을 때어 밥을 짓고 음식 조리를 했다. 아궁이 앞에 앉아 나무가 타는 모습을 보는 것이 얼마나 신기하고 재미로웠던지. 처음에는 종이나 마른 나뭇잎을 불쏘시개로 삼아 조심스레 살살불을 붙인다. 작은 나뭇가지에 불이 붙고 불길이 거세지면 커다란 장작을 넣기 시작한다. 불은 사람의 마음에 묘한 환상을 일으킨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불이 춤추는 것을 보았다. 불길이 치솟으며 가마솥 뚜껑이 들썩인다. 수줍은 새색시의 모습처럼 가마솥 주위를 빼꼼이 밀고 나오는 거품이 신기하기 이를 데 없었다. ‘빠글빠글그때부터 서서히 큰 나무는 아궁이 밖으로 끌어내야 한다. ‘을 들이기 위해서이다. 기다림의 미학을 나는 아궁이 앞에서 배웠다. 한참을 그렇게 하다가 솥뚜껑을 열어보면 하얀 쌀밥이 가지런히 누워있었다. 그때 코를 파고드는 구수한 밥 냄새는 압권이었다.

 

  다시 아궁이를 뒤진다. 화로에 불을 담기 위해서이다. 그 시절, 겨울에 없어서는 안 될 친구는 화로였다. 화로의 불을 담아 안방에 들이면 금방 따스한 온기가 방에 가득 찼다. 워낙 위풍이 심하던 한옥에 운치를 더해주던 것이 화로였다. 화로에는 불을 쑤셔거릴 인두가 자리하고 둥그런 석쇠도 있어야 했다. 때로는 국을 데워 먹기도 하고 감자나 고구마를 구워먹기도 했던 화롯가에서 가족들은 도란도란이야기꽃을 피웠다. 누구든 그 집 안방에 들어오면 화롯가에 손을 비벼대며 들이대었다. 서먹하던 사람들도 화로를 통해 금방 친숙해 졌다. 그 시절에는 그렇게 소박하지만 화롯불처럼 은근하면서도 오래가는 가족애를 싹틔워 가며 살았다.

 

  겨울이다. 나목(裸木)은 인생을 생각하게 한다. 어느 시인은 나무는 자기의 불행함을 모른다고 노래했다. 겨울바람이 나목을 스치며 내는 소리에서 냉철한 메시지를 들어야만 한다. 눈이 그 나목에 흰 몸을 걸치며 또 다른 겨울 친구가 된다. 그들만에 이야기는 얼마나 정감이 있을까? 내년 봄에 고개를 내어밀기 위해 한창 준비하고 있는 나무속에 을 향해 눈은 무슨 이야기를 들려줄까? 다 잠들어 있는 것 같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겨울에는 다양한 친구들이 있다. 누군가 고독을 즐긴다고 했다. 우리도 겨울을 즐기자. 추위를 즐기고 눈을 즐기고 또 다른 친구를 만나 추억을 만들자. 겨울에는 친구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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