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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 소중한 즐거움이 있다면 그것은 “식도락(食道樂:여러 가지 음식을 먹어 봄을 도락으로 삼는 일)”이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음식이 있다. 그 이유를 물으면 그 음식에 얽힌 사연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마늘쫑”만 보면 금새 초등학교 1학년 시절로 생각이 달음질친다. 우리 집은 아버지가 근무하시는 지평 파출소(경기도 양평군 지제면) 건너편에 자리 잡고 있었다. 아버지는 참 부지런하셨다. 경찰 직무를 감당하기에도 분주하셨을 텐데 집 앞마당에 농사까지 지으셨다. 틈만 나면 밭을 일구고 온갖 농작물을 재배하셨다. 내가 장애인이 아니었다면 밭을 일구는 일을 취미로 물려받았을 수도 있었을텐데 나는 보라색과 흰색 오각형 도라지꽃이 망울을 머금으면 손으로 터뜨리고 다니는 철없는 짓만 해댔다.

초여름이 되면 마늘이 왕성한 발육을 시작하면서 “마늘쫑”이 어린아이의 목덜미처럼 고개를 내어민다. 가늘고 길다랗게 올라오는 마늘쫑은 얼마나 연하고 부드러웠는지 모른다. 학교에서 돌아와 엄마가 집에 안 계실때는 나는 곧장 마늘 밭으로 향했다. 한창 물이 오른 ‘마늘쫑’을 뽑아 고추장을 찍어 반찬 삼아 홀로 점심을 먹었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말이다. 그때 어우러지는 매미소리가 지금도 귀에 쟁쟁하다. 지금도 마늘쫑을 보면 어린 시절에 살던 지평 집과 장독대 뒤로 펼쳐지던 밭, 그 분위기가 안개처럼 피어오른다.

우리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에는 경제적으로 너무 힘든 아이들을 위해 점심급식을 실시했다. 멀건 ‘강냉이 죽’을 퍼주던 기억이 있다. 점심시간이 되면 아이들은 ‘벤또’를 들고 줄을 서서 ‘강냉이 죽’을 타먹었다. 아버지가 공무원인 나는 항상 도시락을 지참했다. 그래서인지 엄마가 싸주는 도시락보다 그 ‘강냉이 죽’이 너무 맛있어 보였다. 결국 “영승”이를 설득하여 내 도시락과 ‘강냉이 죽’을 바꾸어 먹는 희한한 일을 자주 저질렀다. 정말 맛이 있었다. 고소한 옥수수 향이 혀끝을 자극하여 묘한 여운을 남겼다.

1992년 12월. 강원도 원통에 있는 육군 12사단 52연대(연대장:조성호 대령)에서 “부흥회”를 인도하고 있었다. 부흥회 중간에 아내가 세 살 난 둘째와 함께 머나먼 길을 찾아왔다. 아침 집회를 마치자 김광구 군목은 군용 지프를 대기시키더니 한계령을 넘어 동해 “대포항”으로 우리가족을 인도했다. 파도소리 들리는 바닷가 횟집에서 그때 처음으로 “산오징어 회”를 시식하게 되었다. 오징어가 그렇게 단것을 그때에야 알았다. 쫄깃하고 감칠맛 나는 오징어 회맛을 또렷이 기억한다. 불행한 것은 지금은 아무리 먹어도 그 맛을 느낄 수가 없다는 것이다.

20대 중반. 서울 천호동 외곽에 있는 “동부교회”에서 중고등부 교육전도사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었다. 가을이면 노회 주일학교 연합회 주최로 “성가 경연대회”가 개최 되었다. 학생 성가대 연습이 시작되던 그 즈음에 청년부에서도 중창부문 출전을 준비하게 되었다. 20대 중반인 나에게 청년들은 중창 팀에 합류할 것을 제의해 왔다. 전도사라고 해서 출전자격이 금지되는 조항은 없었기에 고심 끝에 중창단 멤버로 연습을 시작하였고 그해 경연대회에서 ‘1등’을 거머쥐는 쾌거를 이루었다.

대회가 끝나가면서 가을비가 촉촉이 내리기 시작하였다. 학생들을 귀가 조치한 후에 함께 중창을 불렀던 청년들과 저녁을 먹기 위해 중국집에 자리했다. 즐겨먹던 “짜장면” 대신에 “짬뽕”을 시켰다. 그때 먹던 “짬뽕” 맛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시장한 탓도 있었겠지만 대지를 적시는 빗소리. 1등을 차지한 쾌감이 어우러져서 일까?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지금도 짬뽕을 먹으면 그때 자리했던 청년들의 얼굴이 스쳐간다. 한국에 가서 만난 전우용 장로에게 물었다. “장로님, 그때 먹던 짬뽕 생각나요?” 금방 상기된 얼굴로 반응을 보인다. “목사님, 정말 최고였습니다.” 오늘도 그날처럼 가을비가 뿌린다. “오늘은 짬뽕이나 한 그릇 먹을까나!” 30년 전에 추억이 안개처럼 피어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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