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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경찰로 살아오시던 아버지는 퇴직을 하시자마자 모든 것을 정리하여 서울행을 결심하신다. 내 나이 16살에 나는 그렇게 꿈꾸던 서울사람이 되었다. 밤이 되면 거리를 수놓는 현란한 네온사인 불빛이 어린 가슴을 설레이게 하였다. 처음에는 어리버리하던 나는 시내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방법으로 서울지리를 익혀가기 시작하였다. 덕분에 빠른 시일 안에 서울 곳곳을 속속들이 알게 되는 순발력을 발휘하게 되었다.

아버지는 동료들이 많이 근무하는 청량리 경찰서 입구에 자그마한 <구멍가게>를 오픈하셨다. 가끔 아버지 후배들이 찾아와 정담을 나누는 모습이 마음을 푸근하게 했다. 가게 아래쪽으로는 미용실과 다방이 붙어있었고 위쪽으로는 그 유명한 “삼일빙과”가 자리하고 있었다. 맞은편에는 연신 스팀을 토해내며 다리미질을 해 대는 “세탁소”가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아스라이 서울의 정감이 묻어나오는 그런 길목이었다. 처음 가게를 인수했을 때는 손님이 뜸했지만 차츰 장사는 활기를 띠게 되었고 단골들도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그중에 가게를 자주 드나드는 부류가 있었는데 바로 청량리 로터리에 자리한 <동보극장> “간판예술가”들이었다. 그 당시에는 “간판쟁이”로 불리 웠던 것 같았다.

그 분들은 항상 늦은 밤에 가게를 찾았다. 팀장같이 보이는 사람은 나이가 들어보였고 아주 나이가 어려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함께 어울려 다니는 여자들도 있었다. 주로 라면과 통조림을 많이 사갔고 술과 담배는 필수 물품이었다. 극장 간판에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라서 그런지 복장이나 행색이 깔끔하지는 않았다. 머리도 거의 지저분한 장발이었다. 아버지는 무엇을 그렇게 잘 보셨는지 처음부터 ‘외상’을 주셨다. 월말이 다 되어가면 미술부장이 나타나 모든 비용을 지불하였기에 우리에게는 큰 손님이었다. 어릴 때부터 워낙 숙기가 좋은 나는 그들과 친해지면서 그들이 작업하는 극장에 자주 드나들 수 있었고 영화도 공짜로 관람하는 특권을 누리기도 하였다.

작업실에 들어서면 온갖 페인트 냄새와 간판예술가들의 땀 냄새가 뒤범벅이 되어 희한한 현기증을 일으키게 하였다. 그분들이 그림을 그리는 모습은 ‘진기명기’ 그 자체였다. 어마어마한 간판에 영화의 키포인트를 잡고 그 당시 최고인기 영화배우의 얼굴을 그려나가는 그들의 손길은 너무도 민첩하고 마술과 같았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세미하게 페인트칠을 해 나가는 광경을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한 간판에 계속 덧칠을 해서 쓰는 것이 특이했다. 전에 상영하던 영화간판을 보존할 이유가 없었기에 상영하던 영화가 내려지면 대기하던 다른 영화 간판이 걸려야만하였다. 따라서 아까운 작품들이 사라져 가야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지금은 자취도 없이 사라진 ‘동보극장’은 중급에 해당되는 곳이었다. 간판예술가는 그 실력에 따라 일하는 극장의 급이 달라졌다. 대한극장이나 국제극장에 내 걸리는 영화간판은 마치 사진을 찍어 놓은 것 같이 배우들의 얼굴과 특징이 그대로 드러나 보였다. 하지만 극장의 급이 떨어질수록 간판에 컨셉과 수준이 달랐다. 극장에는 일하는 분들이 꽤 많았다. 사무실에서 전체 운영을 조율하는 직원들과 간판예술가들. 표를 파는 아가씨들, 극장 입구에서 표를 받고 질서를 잡는 “기도”. 영화상영 사이에 간식과 음식을 파는 사람들, 밤이 되면 청소를 하는 분들까지 극장 안에 소속한 식구들이 즐비함을 어린 나이에 보았다.

그 당시에는 극장마다 실력 있는 간판예술가를 잡으려는 경쟁이 치열했다. 어린친구들은 온갖 수모를 참아내며 그림 그리는 것을 연수받았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며 그들이 설자리가 사라지기 시작하였다. 소위 “실사출력”의 등장 때문이다. 그림간판의 매력은 사람냄새이다. 아무리 지금 실사출력이 발달되었다고 해도 손으로 그려진 사람냄새의 매력은 따라올 수가 없다. 손으로 간판을 완성하여 그림을 거는 날은 극장전체가 잔치 집 분위기였다. 하지만 이제는 실사출력으로 포스터 붙이듯 한순간에 끝이 난다. 번거롭게 커다란 그림을 올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디지털 시대가 열려 화려한 극장 포스터가 나붙는 시대에 아날로그 간판예술가들의 체취가 그리운 것은 어린 시절에 향수 때문이리라! 그 무명의 예술가들은 그 놀라운 솜씨를 뒤로한 채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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